서동요(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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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 드라마
패션 70's서동요연애시대

1 개요

4구체 향가 서동요를 바탕으로 만든 2005년 9월 5일 ~ 2006년 3월 27일까지 방송된 SBS 창사 15주년 기념 드라마다. 대장금이산으로 유명한 이병훈 감독의 작품. 근초고왕보다 앞서 최초로 백제를 중점적으로 그린 사극. 이 작품 다음으로 백제가 나오는 사극이 연개소문(...).

주인공인 백제의 서동(부여장, 무왕)이 신라선화공주를 후려친다는 플룻은 향가 서동요와 같으나, 노래를 퍼뜨린 사람이 서동을 사랑한 선화공주이었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서동이 태학사라는 백제의 연구 기관에서 연구원(!?)이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본격 공돌이 활약하는 사극온돌을 서동이 만들었고, 두부가 하늘재에서 발명되었다고 하는 등 어이 없는 구석이 많다.[1] 초반에는 서동의 활약을 통해 백제의 과학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는데,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 의도가 묻혔다.[2]

2 등장인물

3 줄거리

서동은 위덕왕과 무선공녀 연가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 연가모는 당시 태학사의 기술사였던 목라수의 약혼녀였다. 목라수가 박사가 되면 혼인하기로 약조했는데 위덕왕의 과오로 모든 일이 어그러져 목라수가 위덕왕한테 네토라레를 당한건데 훗날 이 목라수는 서동의 스승이 되어 서동을 갈군다교육시킨다. 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죽은 뒤 백제의 왕권은 땅에 떨어졌고, 귀족들의 등쌀에 기도 못 펴고 살던 위덕왕은 일본에서 백제로 돌아오던 아좌태자(쇼토쿠 태자의 초상을 그렸다는 그 아좌태자 맞다.)가 풍랑에 휩쓸려 죽었다는 이야기에, 아좌의 시신을 찾지도 못한 상황이라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좌평이던 동생 부여계를 태제로 책봉하려 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태제 책봉식은 취소되고, 이를 위덕왕과 아좌태자의 편이던 태학사의 목라수 박사가 꾸민 흉계로 몰아간 부여선(후의 법왕)은 목라수 박사 일행을 도륙하려 하나, 이 계획을 알아챈 서동이 태학사 일행과 함께 백제를 떠나 신라 하늘재에 숨어들게 된다. 신라궁에 물품을 공급하게 된 하늘재 일행을 따라 간 신라궁에서 서동은 우연히 선화공주를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서동이 선화공주에게 준 백제 태학사의 신표를 선화공주가 잃어버리게 되면서 하늘재 사람들이 백제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게 되고, 문초 과정에서 서동이 친형처럼 따르던 범생이 죽게 되었고,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이유로 서동은 하늘재 일원이 되지도 못하고 근처 허름한 집에서 10년 간 혼자 살게 된다.

10년이 흐른 뒤 596년, 여전히 방황하던 서동은 겨우 하늘재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지만, 또 다시 오해가 얽혀 하늘재에서 쫓겨나 정처없이 떠돌다 우연히 선화공주와 재회하게 된다. 활달한 성격의 선화공주는 10년 전에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서동이 그때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서동을 찾고자 일부러 화랑들처럼 신라 전역을 주유하고 싶다며 아버지 진평왕에게 청해 궁에서 나온 뒤 서동을 찾기 위해 스스로 서동요를 퍼뜨리는데, 서동이 10년 전 만들었던 서동요 구절에 卯(토끼 묘) 자를 첨가해 어릴 적 서동과의 추억이 담긴 토끼굴로 서동이 스스로 찾아오게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둘은 재회하게 되지만 어릴 때 선화공주와의 만남으로 인해 범생이 형이 죽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선화와 만나지 않겠다고 하...지만 둘은 결국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다. 선화공주는 아예 하늘재 근처의 진각사에 눌러앉아 틈만 나면 서동을 찾아와 서동에게 경학을 가르쳐 준다. 그 사이 서동은 선화의 호위무사가 되어 가야 유민들이 살던 척박한 땅을 지렁이를 이용해 기름지게 만드는 등 활약하기도 하는데, 서동이 굉장히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며 주관이 뚜렷하다는 점을 알게 된 선화는 서동이 비록 신분은 낮을지언정[3]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되고, 서서히 서동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한편 서동은 사촌동생 부여선의 위협 때문에 백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를 하늘재에서부터 백제로 잠입할 때까지 호위하게 된다. 서동은 파자놀이를 이용한 참요[4]를 퍼뜨리는 기지를 발휘해 아좌태자가 오히려 부여선의 호위를 받으며 백제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후 아좌태자 옆에서 공을 세우며 목라수와 하늘재 사람들이 백제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서동의 깊은 영혼을 사랑하게 된 선화는 "저는 반말을 할 수 없는 여인은 마음에 품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 서동으로 인해 신라 공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동이 충분히 존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라며 존댓말을 하게 된다. 서동을 비롯한 하늘재 식구들을 수나라 노예 신분에서 면천시켜 주고 크게 들어 써주겠다는 선화의 제안에 서동은 결국 자신들이 백제인이라고 밝히게 되어 선화는 다시 서동에게 "넌 날 속였다."며 명령조 어투를 쓰고 다시는 서동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접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하늘재 기술사였던 사택기루가 실은 신라의 화랑 김도함이자 진평왕이 보낸 첩자이며 사택기루가 하늘재 박사가 되어 백제신기[5]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바로 하늘재 사람들을 모두 죽인 뒤 선화공주와 혼인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게 된 선화는 서동과 김도함이 하늘재에서 동시에 위기에 처하자 신라 공주로서는 김도함을 선택해 그를 위기에서 구하고, 여자로서는 서동을 선택하여 그를 하늘재에서 구해내 함께 야반도주한다. 둘은 평민으로 살아가기로 하지만 결국 김도함이 보낸 추격자들에게 꼬리가 밟혀 선화는 궁으로 돌아가게 되고, 서동은 백제 전의성으로 도망친다. 힘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통감한 서동은 전의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후 김도함이 하늘재에서 박사가 되던 날 하늘재 식구들을 도륙하기 위해 신라에서 보낸 군사들이 서동을 비롯한 하늘재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백제로 달아나도록 방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선화공주는 신라 공주의 신분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딸을 구하고자 진평왕은 대아찬 김도함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붙어먹었기에 스스로 백제로 향한 것이라며 김도함과 김사흠의 가문을 멸문시킨다. 한편 하늘재 도륙 현장에서 화살을 맞고 정신을 잃은 김도함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백제로 오게 된 뒤 자신의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안 그래도 질투하던 서동과 선화를 증오하게 되고, 하늘재에서 쓰던 사택기루라는 이름으로 부여선 일당에 가담하여 목라수와 서동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백제로 완전히 돌아온 후, 그저 나약한 왕자인 줄 알았던 아좌태자가 백성을 아끼는 성군의 재목임을 알게 된 서동은 아좌태자를 성심껏 보필한다. 서동은 스승 목라수와 함께 아좌태자를 보필하며 당시 백제의 실세였던 부여선의 계속되는 위협과 방해를 이겨내고 성장해 간다.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수나라 상인 진가경으로 신분을 위장한 선화도 상단 활동을 하며 부여선 일당을 비롯한 백제 고관대작들과 교분을 쌓으며 서동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서동을 돕는다. 서동이 항상 지니고 있었던 오색야명주의 푸른빛 보석이 실은 백제 왕실에서만 쓰는 보석이라는 걸 알게 된 선화는 서동이 위덕왕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선화를 통해 자신이 백제의 왕자였다는 것을 깨달은 서동은 왜 어렸을 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 연가모와 함께 숨어 살아야 했는지 이해하게 되기도 하지만 백제의 왕자라는 엄청난 정체성에 잠시 방황하고, 위덕왕과 아좌태자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위덕왕은 아들 아좌태자에게 양위하기로 결심하고 동명제를 빌미 삼아 동명제 의식에서 아좌에게 선위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지만, 부여계 일당이 이를 눈치 채게 된다. 아좌태자는 양위를 받기 위해 상대포의 공혈(동굴)로 가 몸을 경건하게 하는데, 여러 의식을 치르다 마지막 의식에서 사택기루가 몰래 잠입시킨 자객 장두에 의해 암살당할 뻔 하지만 서동의 도움으로 큰 부상은 피한다. 몸을 추스리던 중 서동은 아좌태자가 잠든 사이 죽지 말라며, 아직 형님이라 불러 보지도 못했다며 말하는데 이를 들은 아좌태자는 형님이라 불러 보라 한다. 결국 서동은 자신이 바로 아좌태자와 부여선이 그토록 찾았던 연가모의 아들이자 위덕왕의 넷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좌태자에게 털어놓게 되고, 아좌는 자신을 충심으로 보필하던 서동이 실은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다고 하자 무척 기뻐하며 감격의 형제 상봉을 하여 형제의 의를 다진다. 서동은 아좌태자가 무사히 양위받을 수 있도록 사비성까지 그를 호위하여 가지만, 동명제 선위 제단을 눈 앞에 두고 사택기루가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 아좌태자는 서동에게 "백제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사비성의 시전에서 시해당한다.

아좌태자와 함께 새로운 백제를 만들어 가려던 꿈이 좌절된 데다, 형제로서의 정을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형을 잃은 서동은 큰 슬픔과 절망에 빠지고 그런 서동을 선화는 위로해 준다. 그러나 서동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더 이상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아들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아버지 위덕왕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위덕왕은 비밀스럽게 서동을 새로운 태자 '무강태자'로 책봉하고, 부여선을 몸소 암살하려다 실패해 오히려 부여선 세력에게 또 다시 사비성 시전에서 시해를 당한다. 위덕왕의 뒤를 이어 부여선의 아버지이자 위덕왕의 동생인 부여계(혜왕)가 잠시 왕위에 있다 세상을 떠나자, 백제는 곧 부여선의 천하가 된다. 서동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부여선의 신하가 되어 와신상담한다. 서동은 서서히 자신의 사람들을 모으며 힘을 키워가고, 선화공주는 변함없이 늘 곁에서 서동을 지켜보며 내조한다. 부여선 치하에서 서동은 목라수, 우영공주와 함께 서동이 세운 국책안을 실현시켜 보라며 적전 노비로 끌려가 죽도록 고생을 하며 자신이 만든 국책안이 얼마나 이상에만 치우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노비 생활을 하던 서동은 반란 세력을 진압하라는 부여선의 명을 받고 현장에 복귀해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가며[6] 반란군을 진압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면서 더욱 더 힘을 모으게 된다.

마침내 서동은 연등제 행사에서 부여선 세력을 역습해 부여선을 폐위시키고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부여선을 백성들의 앞에 세운다. 부여선은 백성들 앞에서 위덕왕과 아좌태자의 환영을 보며 정신이 나갔고, 결국 그를 보다못한 심복 흑치평이 부여선을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는다. 가장 낮은 백성이었기에 백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동은 마침내 백성을 위한 왕으로 등극한다. 즉위 과정에서 그 어떤 귀족들의 힘도 빌리지 않았고 오로지 백성들의 힘과 자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무왕이었기에 귀족들은 이전과는 달리 무왕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영공주를 황후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워 신라의 천명공주 세력과도 은밀히 손을 잡으려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보다 더 컸던 선화공주의 마음의 크기를 통감한 우영공주가 무왕과 선화공주가 맺어질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귀족들의 이러한 물밑작업을 스스로 무왕에게 폭로하고 낙향함에 따라 귀족들은 이전보다도 더 힘을 잃게 된다. 이에 무왕은 백제의 왕으로서 신라의 공주인 선화공주에게 정식으로 청혼해 마침내 선화공주를 왕후로 맞이한다. 무왕은 이후 40년 동안 백제를 통치하면서 백제를 다시 번영하게 한다. 그 다음 왕이 의자왕이라는 게 문제지만...

4 한계

시청률은 그럭저럭 나왔으나 사극에서 현대적 말투와 억양을 보여준 데다가 배우들이 다 초입이라 연기력 논란이 불거져 나왔으며,[7] 소수의 엑스트라 동원과 초라한 세트로 인해 조촐한 사극이라는 비아냥을 얻으면서 한국 사극의 초라한 규모에 대한 비아냥을 이끌어낸 기념비(?)적인 업적을 달성한다. B급 사극이라고 지칭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특히 같은 시기에 방영한 비슷한 제작비를 가지고 만든 신돈이 전용 세트장 등을 만들어 꽤나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수준낮은 세트는 욕을 먹을 만하다.

그리고 이 비아냥은 서동요가 종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MBC에서 방영한 '주몽'에서 심화된다. 애초에 감독이 대규모 전쟁신보다는 오밀조밀한 재미를 추구하는 이병훈 감독이었기 때문에 규모가 초라했을지도 모른다는 변명 비슷한 것이 있지만, MBC의 초 히트 사극이었던 허준임진왜란 전투 신이 불과 50명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반박의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것은 감독의 탓만으로 돌려질 문제라기보다는 효과음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8] 방송사의 문제일 것이다.

결국 SBS는 서동요에서 겪은 굴욕을 만회하고, 주몽보다 규모가 미칠 듯이 큰 고구려 관련 사극을 기획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연개소문(...)이었다.

5 성과

하지만 어설프게 백제의 과학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다 실패한 초반과 달리 서동이 정치적으로 성장해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 중후반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않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주인공이 평범한 백성으로 태어나 백성들의 삶을 잘 알기에 백성들을 위한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작가 김영현이 뒤에 쓴 작품인 선덕여왕(드라마)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공주가 된 이후로는 별다른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던 덕만과 달리 서동은 끊임없이 고난을 겪으면서 오히려 고난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 서동요보다 더 뒤에 나온 작품인 선덕여왕(드라마)보다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특히 천명공주의 이른 죽음으로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하고 그저 미실 세력에 대한 복수의 도화선으로 전락한 선덕여왕(드라마)의 덕만-천명공주 자매의 관계와 달리 서동-아좌태자 형제의 관계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서로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또 정치와 로맨스가 잘 섞이지 못하고 따로 놀던 선덕여왕(드라마)과 달리 정치와 로맨스도 적절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잘 섞였던 것도 장점. 배우들의 연기력도 초반과 달리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 이런 장점들이 있기에 서동요는 그저 '조촐한 사극', '사극 시트콤'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사극이고, 그저 설화 속 인물로만 느껴지던 서동에게 생생한 인간성을 입혔다는 데 의의가 있는 사극이다.

  1. 온돌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어떤 네티즌은 중간고사에 ‘금속활자와 온돌 중 어느 것이 더 오래 되었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온돌을 정답으로 했다가 틀렸다는 사례가 있다(...). 뭔소리야? 온돌이 금속활자보다 오래된거 맞잖아? 그리고 두부가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는 훨씬 뒤인 10세기때다. 두부 항목 참조.
  2. 이것은 장악원에서 일하는 주인공 동이를 통해 조선의 음악을 보여주겠다던 동이의 초반 의도가 묻힌 것과 비슷한 경우. 동이도 역시 이병훈 감독의 작품이다.(...)
  3. 이때까지만 해도 선화는 서동이 수나라 노예인 줄로만 알았다.
  4. 달이 둘이면 산이 하나(月月一山 → 崩(붕할 붕)), 해가 하나면 집이 하나(一日一家 → 宣(펼 선, 부여선의 이름)) : 황제가 죽으면 선이 한 짓이요, 황제와 태자가 죽으면 그도 선이 한 짓이다.
  5.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의 모든 과학력과 기술력이 집대성되어 있는 백과사전.
  6. 서동은 노비로 끌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여선의 유일한 반대세력이었기에 백성들의 희망이었는데, 그런 서동이 갑자기 변절한 듯 나타나 반란군을 진압한다고 하니...
  7. 2ch 등 해외 게시판 번역 사이트인 "개소문넷"에서는 "한국 사람이 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란 걸 느꼈어요"라는 일본인의 코멘트가 올라오기도 했다.
  8. 화살 발사 효과음은 딱 2종류다. 그것도 화살 발사로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70년대풍 효과음이 연개소문으로 그대로 이어진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