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

1 채소

이미지 및 자료 출처

Brassica rapa
'십자화목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한 식물로, 이름과 달리 와는 속부터 다르다. 속에서 보다시피 순무는 무보다는 오히려 양배추배추 쪽과 가깝다. 사실 배추와는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품종만 다르지 같은 식물이다.[1] 청경채도 마찬가지.

팽이 모양의 둥근 형태이며, 색상은 자주색에 가깝다. 재배방법은 무와 비슷하다. 재배기간이 짧은 편이고 생산량도 많은지라 동서양 군대에서 식량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무에 비해 수분은 좀 더 적고 단맛이 난다. 같은 배추과라서 그런지 배추 뿌리를 깎아 먹으면 순무와 비슷한 맛이 난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 과도해진 전시산업체제로 인해 식량고는 극에 달했고 이런 상황과 맞물린 독일군은 1916년 겨울, 감자의 생산고가 도저히 수요분을 충당하지 못하게 되자 순무를 부족한 감자와 곡류식품의 대용으로 대량 보급받았다. 독일군은 순무를 찧어서 가루를 낸 뒤 반죽해 처럼 쪄먹거나 순무를 생으로 씹어먹었다. 1916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군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이 3번의 겨울을 순무의 겨울로 불렀다. 당연하지만 이 순무의 겨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에도 다시 한 번 재현되었고 이 때문인지 독일에서 나이드신 분들이 이 채소를 보는 관점은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주먹밥을 보는 관점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군부대에 술을 보급해야 하는데 술병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자 치킨무를 만들듯이 순무를 술에 절여 은박지에 싸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었으나 술을 마시는 게 아닌 씹어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기각되었다.

김치로 해먹으면 정말 맛있다. 순무김치 항목 참조.

2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지방관직

명·청 시기에 지방을 순시하며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을 감찰하던 대신으로서 '무대(撫臺)'라고도 부른다. 순무는 "천하를 순행하고 군민을 위로하고 다스린다(巡行天下, 撫治軍民)"는 의미이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관찰사고 현대로 치면 도지사, 주지사.

명나라는 처음에 도지휘사(都指揮使)·포정사(布政使)·안찰사(按察使) 등을 두어 각각 지방의 군사·행정·감찰 업무를 분담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기부터는 새로이 순무가 설치되어 포정사 등의 위에서 지방장관의 실권을 차지하였다. 이 관직은 명나라 초기인 1391년에는 임시로 설치된 것이었지만, 1421년부터는 정식 관직이 되었다. 명대 말기에는 1(省) 혹은 그 일부를 관할하는 지방관이었다. 명나라 시기에는 순무의 총괄 범위가 1개 성을 넘어서거나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나라의 순무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로, 본질적으로 중앙관리이다. 목적은 문신으로 무신을 견제하여 각 성과 각 군진 및 성 내 삼사 사이의 관계를 조화시키고 직권을 통일시켜서 서로 예속하지 못하도록 하고 수평관계의 삼사 사이에 운영이 원할하지 못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청나라때는 명나라때의 제도를 답습하였으나 몇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명나라 시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순무는 중앙관리가 아니라 지방장관직이 되었다. 순무는 포정사, 안찰사, 도지휘사사의 상위 관직이 되었으며 대부분 1개 성(省)에 해당하는 지역을 총괄하게 되었다. 청나라 때는 순무가 1개 성(省)을 지배하게 되어 1∼3개 성을 관할하는 총독과 함께 황제에 직속되어 독무(督撫)라 불리며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지 않았으며, 상주권(上奏權)·성례제정권(省例制定權)·문무관 임면권(任免權)·군대절제권(軍隊節制權)·지방 재정감독권·지방 최고재판권 등 그야말로 중세 부중백과 같은 봉건제후와 같은 권한을 가졌다. 이것의 상위호환이 총독(總督)
  1. 교배가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