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 ||||
일제강점기 (조선통감부 / 조선총독부) (임시정부 / 3.1 운동 / 6.10 만세 운동) | ← | 군사정권 (미군정 / 소련군정) | → | 분단 시대 북한 대한민국 |
1 개요
군대 관련 인사가 핵심이 되는 정권, 또는 군 단체에 의한 정권.
2 군국주의와의 차이점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군국주의는 사실상 대외침략, 팽창주의를 전제로 한 군사정권에 붙이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추축국과 북한[1], 그리고 21세기 최고의 악의 축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를 군국주의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정 반대로 4~5공시절 대한민국처럼 (명목상) 외부세력에 대한 방어를 강조하는 군사정권은 군국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군국주의 국가들은 좌우 이념과 상관없이 대놓고 일당제를 겸하고 있었는데[2] 대한민국은 군사독재 당시에도 어느정도 통제는 받고 있었지만 멀쩡하게 제대로 된 야당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다 언론도 어느정도 구색으로나마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완전한 군국주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는 곤란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군사정권이라 하는거지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하는지는 군부 마음이기 때문에, 비록 군국주의스러운 기조가 사회에 어느정도 자리잡기는 하겠지만 군사정권이라고 반드시 군국주의를 택하게 되는것은 아니라고 할수 있다. 이 때문에 군사정권과 군국주의는 그 개념이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3 역사
인류역사가 막 시작된 무렵 종교와 군사와 정치는 한 틀 안에 있었다. 고대문명은 왕이 정치권력의 정점이기도 하면서 최고 제사장이기도 했고 (실질적인) 군 최고 통수권자이기도 했다.
- 고대 이집트
- 단군왕검 : 단군왕검이 실존 인물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단군이 세속군주, 왕검이 제사장이라는 뜻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아메리카 원주민
그러나 왕조와 원로원 같은 본격적인 통치 체계가 나오면서 군사와 정치는 분리된다. 물론 한 국가가 한 군사집단인 경우, 또는 군사가 통치 체계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 스파르타
- 카이사르 제정 고대 로마, 그리고 군인 황제 시대
- 초기 바이킹 왕국
- 당나라의 절도사의 지방 정권
- 일본 막부
- 고려 무신정권[3]
- 이슬람권 각지에 맘루크들이 세운 왕조
- 가즈니 왕조
- 셀주크 왕조
- 델리 5왕조
봉건제가 나오면서 왕조 정치 체제는 굳어졌다. 군 관련 인사가 쿠데타로 체제를 엎더라도 새 왕조가 시작될 뿐, 통치 체제가 군사 위주로 바뀐 전적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15~ 17세기 절대왕정시대까지 지속됐다. 절대왕정시대가 끝날 무렵 공화주의, 민주주의가 제시되면서 그 반대 성향에 있는 군사정권도 명확한 개념이 세워진다.
제국시대에 몇몇 식민지 통치 하위 기구는 본국한테서 독립하는 과정에 군사정권을 내세웠다.
유럽에서 최초로 진정한 현대적 군사정권이라 할 만한 사례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어났다. 바로 독일 제국인데, 1916년 에리히 폰 팔켄하인 원수가 베르됭 전투의 패배로 원수 직에서 해임되면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빌헬름 2세를 뒷방으로 밀어내고 군사정권을 수립하였다.
- 제1차 세계대전 중의 파울 폰 힌덴부르크, 에리히 루덴도르프 휘하 독일 제국
군사정권의 궁극적인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일어났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민간 공화정과 군부의 경계를 사실상 무너뜨렸고, 도조 히데키 역시 덴노 아래 모든 정치 실권을 군부로 모았다.
2차 대전 직후 냉전이 시작되고 군사정권은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CIA와 KGB는 세계 곳곳의 신생독립국가에 개여하며 국경선을 흔들고 온갖 괴뢰 정부를 만들었다. 여러 독립세력들도 소련과 미국의 대결 속에 적절히 파도를 타며 군사정권을 통해 국가의 기반을 만들었다. 흔히 남미에서 군부쿠데타로 생겨난 그런 유형의 군사정권을 일컬어 '훈타(junta)'로 칭하기도 한다.
오늘날 군사정권은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 여러 개발도상국에 존재한다. 강대국의 복잡한 외교전략과 내부혼란 탓에 이들 나라가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될 날은 아직 멀다.
3.1 한국의 군사정권
고조선은 어느 원시 문명이 그랬듯 교권, 군권, 정권의 경계가 없었다. 그 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가 이어지며 본격적인 왕조 시대가 열렸다.
삼국시대 말 고구려는 연개소문에 의해 한국 역사상 첫 번째 군사정권을 수립했지만, 곧 나당 연합군에 멸망한다. 후삼국시대는 전국시대의 축소판과 다름 없었고, 신라를 뺀 두 나라 후백제와 후고구려는 완벽한 지방군벌국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랫동안 이어졌던 군사정권은 단연 고려의 무신정권이다. 문벌귀족 관료와 무관과의 충돌로 시작된 무신정권은 100여 년 간 계속되며 고려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새 나라 조선을 열었지만, 그 역시 파고들면 무신정권의 연장에 있었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 왜구 진압과 여진족 정벌로 힘을 키운 신흥 군부 인사였다. 비록 고려가 막장에 이르렀더라도 최소한의 정통성은 있었고, 구 정통 귀족들은 건국 직후 이성계를 일개 장수로 여겨 반발하며 건국 직후 조선을 흔들었다.
고려가 중후반 무신정권에 실권을 뺏긴 것과 달리, 조선은 약 500년 동안 왕조를 중심으로 하는 문민 통치를 유지했다. 1910년 조선 왕조(대한제국)가 멸망하고 일제강점기의 35년 시련을 지나,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한반도 북쪽에도 김일성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을 세우면서 한국은 남북분단의 시련을 겪게 되었고, 결국 얼마 안 가 1950년 한국 전쟁을 겪어야 했다.
제1공화국 정부는 독재를 희구했으나, 결국 1960년 4.19 혁명으로 무너졌다. 뒤를 이은 제2공화국이 수립된지 1년도 안 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어 1993년까지 장장 32년에 걸친 군사정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제3공화국은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하여 상당한 성과를 기록하면서 부족한 정권의 정통성을 메웠다. 가시적인 경제개발의 성과로 부족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 국민들의 지지(혹은 최소한도의 묵인)을 이끌어내는 개발독재 모델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1969년 3선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했으며, 1972년에는 한국식 민주주의라 자칭하는 '친위 쿠데타'인 10월 유신을 행하며 사실상 박정희 종신독재체제인 제4공화국을 출범시킨다. 제4공화국은 5.16쿠테다 직후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제3공화국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 시기 군사정권은 중앙정보부로 대표되는 권력기관과 긴급조치를 통해 민주화를 억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10월 유신이 1979년 김재규의 총탄에 끝난 뒤, 제5공화국의 서막을 연 12.12 군사반란과 이듬해의 5.17 내란은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을 2중 쿠데타였다. 신군부 세력은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통해 군권과 국가 통치권을 모조리 장악하였고, 박정희 사후 민주화의 열망에 가득찼던 야당 정치인들과 국민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였다.
신군부는 특정 지역을 본보기로 때려눕혀 정통성 문제를 일축시키고, 민주화를 억압하였다. 그러나 야당과 국민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식을 줄 몰랐고, 결국 1987년 거국적인 6월 항쟁이 일어나고 미국의 압박까지 들어오자[4]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고[5] 김대중의 사면복권, 각종 자유화 조치 등을 시행하면서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직선제로 집권한 노태우 역시 하나회 출신이었으며, 여전히 정·관·군에 하나회 출신 군부 인사들이 포진함으로서 군사정권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비군인 야당 정치인 출신[6]인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서, 장장 32년에 걸친 군사정권이 완전히 종식되었다. 한국의 군사정권이 남긴 부정적인 잔영은 이곳에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할 지경이다. 단적으로 지역감정만 봐도. 그리고 그 후유증은 21세기까지도... 하지만 군인들을 무시하는 이런 새끼들 때문에 군사정권 부활이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할까?
북한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김일성파와 갑산파를 제외한 타 계파가 숙청되면서, 김일성이 독재 체제를 성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초기에는 권력 안정을 위해 경제발전에 힘을 썼으나, 1960년대 무리하게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에서 사실상의 군사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경제난이 닥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4 왜 생기는가?
크게 둘로 나뉜다.
4.1 사회의식
많은 사회 구성원이 공화주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만큼 계몽되지 못한 경우, 당장 사회적 강제력을 가진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많은 군사정권이 여기 든다. 정상적인 국가가 모종의 사태로 민간인들의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진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강제력과 무력을 지니고 있는 군부가 정권을 잡을수도 있기는 하지만, 현대 들어와서는 국가가 그정도로 무너지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서 이런 사례는 별로 없다.
또는 사회적으로 엘리트 층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황에는 군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배운 군인들이 그나마 통치에 적합한 엘리트 층에 해당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군인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 지금처럼 부정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50년대 말부터 나세르를 비롯한 소장파 군인들이 차례로 정권을 잡는 것을 보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며, 5.16이 터진 이후 함석헌 등을 제외하면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4.19 혁명 중에도 이승만과 면담한 학생 대표들이 2년 정도 군정을 해서 북괴의 침입에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4.2 국제정세
중소국의 자원 상황이 강대국의 이권과 이어지는 경우, CIA 같은 강대국 첩보기관들은 해당 국가에 반란세력을 준동시키고 국가문제를 터뜨려서 정권의 혼란을 유도한다. 정권이 약해지면 그 자리를 강대국의 입김을 받은 군부가 치고 올라온다. 중동, 남미 개발도상국의 몇몇 군사정권이 여기 든다.
그외에 한국처럼 바로 이웃에 적을 두고있는 경우도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가고싶지 않아함에도 불구하고 전쟁 위험이 큰 나라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어쩔수 없는 암묵적 동의하에 징병제가 시행되는것처럼, 군사정권 역시 이런 '암묵적 동의'혹은 '필요악'의 확대판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선진국들처럼 민주정권하에 통제되는 군대가 부정부패나 부조리가 적기에 보다 효율적인 군사력을 지닐수 있지만, 거꾸로 말하면 선진국들 수준의 인프라를 지니지 않으면 이런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차선으로 군사정권을 가져서 전쟁 위협을 해결하려 드는 방식이다. 이런 군사정권은 상술했듯 대개 '방어를 위한 군사정권'이기 때문에 군국주의에 빠질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은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정권 역시 장기화될 경우 사회 분위기가 경직될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5 기능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확보하려 여러 사회적 문제 요소에 무력을 동원한다. 구 집권층과 반대세력, 범죄단체가 제1목표로 말살되며 일시적인 사회 안정을 불러온다. 또한 외세 침략, 민족 분쟁 같이 국가 존속에 위해가 되는 상황 역시 억제된다.
- 요시프 브로즈 티토 집권기 유고슬라비아
그러나 한 인사나 한 집단의 단독 집권이 장기화되면, 자연스레 투명한 국가운영이 불가능해진다.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오직 무력에 의해 모든 정책이 수립되면 국가존속에 위기가 온다.
6 계급
보통 군사정권을 세우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상당한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사정권을 일으킨 자들은 장관급 장교인 경우가 많다. 당장 한국만 해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와 전두환이 모두 당시 계급이 소장이었다. 군단장 이상이 되면 병력이 굉장히 흩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단장급에서 가장 병력을 운용하기가 쉽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즉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으면 소장 때 해야 한다[8]
그러나 영관급 장교나 위관급 장교가 쿠데타를 일으킨 경우도 있다. 카다피의 경우에는 대령 때 쿠데타를 일으켰고 더 이상 진급을 하지 않아 대령이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대위때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군사 인프라는 물론 사회 인프라나 정부체계가 빈약한 아프리카에서는 심지어 부사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세운 일도 있다.
7 참고
8 장르 작품의 군사정권
- ↑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의 북한은 팽창은 커녕 내치조차 어려운 실정이라 대남적화통일, 전세계의 주체사상화 같은 슬로건은 명목상의 기치로 전락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군국주의라 칭하기에 조금 애매한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국력이 약해 저지당하고 있을뿐이지 여전히 그런 군국주의 기치를 바라고 있고, 경제만 신장된다면 바로 실행할 의지가 있기 때문에 군국주의 국가임은 분명하다.
- ↑ 물론 이것도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혹은 일당독재 국가를 견제하려는 주변국의 의도를 잠재우기 위해 관제야당 형식의 명목상 다당제를 취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금 북한.
- ↑ 사실 고려는 중기 무신정권 성립 이전에도 강조, 이후에도 이성계 같은 군인들에게 수없이 휘둘렸다.
- ↑ 6월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으나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청와대로 찾아와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본국의 경고장을 전달했다.
- ↑ 사실 이 때 전두환은 이미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으나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머뭇거리자 노태우를 압박하기 위해 계엄령 선포를 거론했다는 설도 있다. 대표적으로 MBC의 제5공화국 드라마.
- ↑ 다만 3당 합당으로 여당(민주자유당) 소속이 되었다.
- ↑ 실질적으로는 그 나라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 ↑ 다만 박정희와 전두환이 쿠데타 당시 소장이었다 해도 박정희는 2군 부사령관이란 실병력도 실권도 없는 자리,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권력은 강하나 실전투병력은 많지 않은 자리였다. 이들이 쿠데타에 성공한 건 실병력을 거느린 영관급에서 준장, 소장급 장교들의 보스격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큰데 전두환의 경우는 되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를 휘하에 두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에게 이런게 가능했던 이유는 전두환이 박정희를 최측근에서 모시던 장관급 장교였던 것에 비해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는 계급은 높지만 전두환과는 달리 박정희와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 ↑ 엄밀히 말하자면 자비 가문 지배하의 지온 한정. 지온 공화국은 엄연한 문민정부다.
- ↑ 군사정권의 수장이었던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처단되고 나서 입헌군주제가 된다.
- ↑ 사실 순수한 군사정권은 아닌데 무인 계급인 기사단의 세력이 강성하다보니 군사정권화 되었다. 기존 정치세력이 몰락하고 종족이 위기에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군인 계급이 정치권의 주류가 된 경우. 대표적으로 사도가 기존의 심판관을 대신할 존재로 육성되는 기사단 소속 프로토스다.
- ↑ 일단 파시스트 성향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외의 정보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