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한자: 總督
영어: governor-general, viceroy[1]
일본어: 総督(そうとく)

1 정의

어떤 관할 구역 안의 모든 행정을 통할하는 직책.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본국에서 보낸 통치 기구의 우두머리를 뜻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총독이라면 이쪽이 더 친숙하다.

1.1 서양의 경우

캐나다영연방 국가 중 일부에선 아직도 총독직이 존재한다. 이들 나라가 명목상이나마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가 원수로 삼기 때문. 물론 권한은 거의 없는 명예직이다. 옛날처럼 영국에서 총독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 중에서 총독을 임명한다. 물론 영국 국왕의 결재가 필요하긴 하나 2012년 현재에 들어서 국왕의 결재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가 된 지 오래이다. 단 홍콩 반환 이전 홍콩 총독부의 경우는 캐나다, 호주 등과 달리 홍콩이 독립국이 아니기 때문에 홍콩 총독은 영국에서 직접 파견되었고, 조선총독부의 경우처럼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직접 쥐고 통솔하는 직위였다.

다만 국왕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총리 해임의회해산이란 큰 권한이 있다. 물론 너무나 큰 권한이기 때문에 실제로 발동할 경우 큰 정치적 파장이 일 것이므로 실제로 총독이 이 권한을 발동한 적은 거의 없으나 최근의 사례로 1975년 호주의 총독 존 커(John Kerr)가 급진적인 정책을 펼친 총리를 해고(!)한 바가 있고, 2008년 9월에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가 조기 총선을 위해 미셸 장 총독에게 의회해산을 요구하여 실행된 적이 있다.보러가기

인도 제국처럼 규모가 큰 식민지는 부왕이 총독 역할을 맡았다.[2]

1.2 일본의 경우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은 식민지배가 끝나는 날까지 단 한 사람도 문관 출신은 임명되지 못한 채 줄곧 군인 출신들이 독식했다.[3] 3.1 운동 이후 일제는 문관 출신도 총독이 될 수 있도록 법도 개정했고 실제로 하려고도 했는데, 결국 군부(특히 육군)의 견제로 현역 해군 장교인인 사이토 마코토 제독이 총독이 되었다. 하지만 사이토 제독이 군부의 온건파(해군 대장 출신)인데다가, 보통 해군 출신 총리나 조선 총독은 문민 관료와 정치적으로 군부를 대표하던 육군이 대립하다 합의하에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사이토 제독이 실제로 실시했던 여러 문화정책들을 보면 문관 총독이래도 별 수 없었겠다 싶은 정책들이 많다. 무단 통치 시기의 강압적인 정책을 완화한답시고 펼친 정책이 친일파를 대거 양성하는 민족분열정책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임명되었던 조선 총독들 중에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장군이나 사이토 제독 등 역대 일본 총리가 된 케이스도 많았다. 사실상 덴노에게만 통제를 받는 데다가 현역 육군 및 해군 대장 신분으로 서열이 총리 다음콩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가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설정의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본격 식민통치 마무리 투수 아베 노부유키 장군은 아예 총리를 지내고 부임했다. 물론 우가키 가즈시게 장군같이 실패한 케이스도 있지만.

총 8명의 총독이 이 자리를 거쳐갔으며[4], 해군대장 사이토 제독을 빼면 전부 육군대장이었다.

1.3 관련항목

1.3.1 총독이었던 실존 인물

1.3.2 총독 직위를 받은 캐릭터

2 중국 명, 청 시대의 고급 지방관리

중국 , 시대엔 성(省) 안의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 지방관 직책이었다. 비슷한 직으로 순무(巡撫)가 있는데 순무는 성내의 관리의 감사, 재정 등을 맡는 직책이었으며, 총독 또한 이러한 권한이 있으나 성내의 최고 결정권과 군권도 가지고 있고 순무와 비교할때 상위권한을 가진 막강한 직책이었다. 직책이 신설된 초기에는 고정된 지방관리의 역할이 아니라 황제가 직속으로 지방에 파견, 상주시킨 감찰관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점차 상설 관직으로 편제되어 기존에 존재했던 지방관리 체계의 맨 위에서 군림하는 최고위 지방관리로 역할이 바뀌었다. 명나라 초기엔 총독과 순무는 비상설 고위관직이자 본질적으로는 지방에 파견한 중앙관리였으나 명 말기부터 상설화되어 청나라 시기 총독과 순무는 중앙관리가 아닌 지방관리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총독은 2-3개의 성을 총괄하였고. 순무는 1개성을 관할했다.[7] 한국에서의 도지사혹은 미국의 주지사와 비슷한 직위, 순무와 총독은 서로 동급의 품계였으며 황제에게 직속된 고위 지방관리이었다. 다만 명나라때에 비해 청나라의 총독은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만주 팔기군 주방의 장군도 종1품 직위로 내려보냈기 때문에 지방행정에서 이들의 협조없이 통치하는게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지역 총독은 한인은 배재되고 만주인이 독점했다.

2.1 중국의 총독을 지낸 실존 인물

  1. 사실 이 단어는 부왕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부왕은 원래 왕의 대리인의 의미가 있으므로 총독 역할을 맡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
  3. 반면 일본의 다른 식민지였던 타이완의 경우 문관 총독이 임명된 사례도 있었다. 19명의 타이완 총독 중 9명이 문관 출신이었다.
  4. 사이토 제독이나 우가키 장군이 두 번 취임했고, 이 중 우가키 장군의 첫 총독직은 직무대행이었으므로 총9대의 총독이 존재했다.
  5. 엄밀히 말하면 총독(프로콘술)이라는 관직은 아니고, 당시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의 휘하에 있던 행정관(프라이펙투스)이었으나,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를 일괄적으로 '식민지 지방관'을 의미하는 총독으로 옮긴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선 이 두 직함을 구분한다.
  6. 14년 홍콩 우산 시위와 관련해서 패튼 경(Lord)의 행적이 재조명되고있다.. 그가 총독으로 재직할 당시에 그의 임무는 중국에 반환되어도 홍콩의 민주/자본주의를 유지하기위한 각종 안전책을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외적으로 홍콩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영국정치인이었으며 총독을 역임한 많은 영국인들중 최초의 정치인출신이었다.(존 메이저 내각 초기 보수당의 의장으로 지냄) 2016년 현재 종신직인 옥스퍼드 대학의 총장으로 10년 넘게 재직중이다.
  7. 예를 들어 '양광(兩廣)총독'은 광서(廣西), 광동(廣東) 2개 성을, '섬감(陜甘)총독'은 섬서(陝西), 감숙(甘肅)의 2개 성을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