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50 고려의 역대 국왕 | ||||
11대 문종 왕휘 | ← | 12대 순종 왕훈 | → | 13대 선종 왕운 |
묘호 | 순종(順宗) | |
시호 | 영명정헌선혜대왕 (英明靖憲宣惠大王) | |
능묘 | 성릉(成陵) | |
성 | 왕(王) | |
휘 | 훈(勳) | |
자 | 의공(義恭) | |
배우자 | 정의왕후(貞懿王后), 선희왕후(宣禧王后) | |
아버지 | 고려 문종 | |
어머니 | 인예왕후(仁睿王后) | |
생몰년도 | 음력 | 1046년 12월 9일 ~ 1083년 10월 23일 |
양력 | 1046년 12월 28일 ~ 1083년 12월 5일 (37세) | |
재위기간 | 음력 | 1083년 7월 18일 ~ 1083년 10월 23일 |
양력 | 1083년 9월 2일 ~ 1083년 12월 5일(3개월 3일) |
1 소개
고려의 제12대 임금.
문종의 장남. 언제 태자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 문종이 왕위에 오른 걸로 봐서 오랜 기간 동안 태자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태자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지라 이래저래 부왕과 신하들의 걱정을 많이 산 듯. 아니나다를까 문종이 죽자 너무 슬퍼한 것이 탈이 되어 안 그래도 원래 병약한 몸이 더 악화되어 4개월만에 결국 부왕의 뒤를 따라간다. 딱 조선의 인종 필이다. 마침 둘 다 12대다.
별다른 업적없이 죽어버려 그 동생 국원공 왕운(선종)이 엉겁결에 왕에 오른다. 자식에게 물려준 것도 아니고 자식에 대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봐서 병약한 몸 때문에 후사도 낳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록도 엄청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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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 갑신일. 문종을 경루에서 장사지냈다.
- 경자일. 왕이 신봉루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했다.
- 겨울 10월
- 초하루 계유일. 회경전에서 사흘동안 도량을 열고 승려 3만 명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 갑신일. 왕이 자신의 동생인 왕운을 수태사 겸 정서령으로 올려주고 식실봉 1천호를 덧붙여주라고 지시했다.
- ○ 왕은 젊어서 지병이 있었는데 선왕의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병이 더욱 심해졌다.(王小有疾 居廬哀毁 疾益篤)
- 을미일. 친동생 국원공 왕운으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맡아보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이게 다다.
그래도 39년을 재위했는데 기록은 고작 7줄인 개루왕보다는 낫잖아
2 가족관계
비로는 정의왕후 왕씨, 선희왕후 김씨와 장경궁주 이씨가 있다.
정의왕후 왕씨는 순종과 사촌지간인데 이상하게도 여성임에도 왕씨로 기록되어있으며 이유는 불분명하다. 선희왕후 김씨는 경주 출신 김양검의 딸이다. 순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문종이 심하게 그녀를 미워하여 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폐출되었다. 나중에 인종의 명에 의해 복원되고 순종 사당에 모셔졌다. 장경궁주 이씨는 인주 출신 이호의 딸이다. 이호는 이자겸의 아버지기도 하니 이자겸과 순종은 처남 매부지간이 되는셈. 순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곧 순종이 죽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이후 외궁에 거처하였고 장경궁주에 봉해졌으나 자신의 노비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궁주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복원되지 않았다. 이 때 이자겸도 부정한 왕비의 오라비란 이유로 잠시 축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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