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레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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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형인 지미 본 과 함께

Stevie Ray Vaughan A.K.A. SRV
1954 10. 3. - 1990 08. 27

1 소개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

블루스계에 한 획을 그은 기타리스트중 한명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펜타토닉 스케일 위주의 속주를 보여줬고 흡사 훵크 (funk) 기타리스트를 보는 거 같은 화려한 커팅 주법의 대가였다. 또, 당시에 그의 스트라토캐스터가 들려준 톤은 그야말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지금도 스트라토캐스터가 낼 수 있는 소리중의 궁극적인 이상향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전설 그 자체로 표현 될 수 있는 기타리스트다..

2 그의 일대기

비서인 어머니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석면 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티비 레이 본은 어렸을때 부터 형인 지미 본 (이 역시도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다)이 기타 연주 하는걸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자신도 7세부터 기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이런 음악의 대한 관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줬는데, 두 형제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자 이를 신기하게 여겨 손님들을 불러 즐겁게 연주 할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훗날 스티비가 회상한다. 어렸을때 부터 선배격인 기타리스트인 버디 가이, 머디 워터스, 비비 킹들을 듣고 블루스에 심취하여 이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즉흥연주를 하며 연주자의 감각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에는 적응을 전혀 못하고 매일 정학위기 였던 그고, 음악 이론 수업에는 낙제를 먹었지만 10세 때부터 블랙버드란 이름의 밴드를 이끌어와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때 더 이상 있는게 무의미 하다 생각해 중퇴를 하고 태어날때 부터 쭉 살고 있었던 댈러스 시를 떠나 밴드와 함께 오스틴시로 이주하게 된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점점 자신의 인지도와 명망을 얻게 된다. 이 때는 수많은 멤버 교체와 밴드명까지 개명하고, 해체 까지 겪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마지막에 남은 건 블랙버드 시절부터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과 신규멤버인 드러머 클레이 레이튼이었다. 이 셋은 지금도 널리 기억되는 더블 트러블이라는 트리오 밴드를 이루게 된다.

결성하고 꾸준히 소규모 투어를 다니며 인지도를 차차 쌓아놓고 명망을 얻고있던 더블 트러블이었지만 아직도 전국구의 인기를 얻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었다. 성공의 시발점과 돌파구가 필요하던 이때 의외의 인물이 그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다름 아닌 데이빗 보위 였다. 보위는 레이 본의 기가 막힌 기타 솜씨를 보고 경탄해 마지 않아 자신의 앨범인 Let's Dance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고용했었는데, 이 앨범이 플래티넘 히트 까지 칠 정도로 대박이 나버렸다.

이 예상치 못한 인기를 등에 업은 본은 에픽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데뷔 앨범인 Texas Flood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대박이 나 앨범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인 Rude Mood는 그래미 상을 받을정도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를 끄는 일석이조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이후 라이브 실황 비디오인 Austin City Limits를 내놓는데 여기서 스티비 레이 본의 진정한 진가와 충격적인 연주 실력을 감상할수 있다. 본인은 이때 아직 얼떨결한 성공에 익숙하지 않아 죽을만큼 떨렸던 공연이라고 자평했으나 이 영상에 나오는 밴드의 연주력은 완벽이라고 밖에 표현 할수 없는 명연 그자체이다.

계속 해서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던 더블 트러블은 이후에 내놓는 Couldn't Stand The Weather 앨범도 대단한 히트를 쳐 단독 콘서트가 매진이 될 정도로 규모와 인지도가 커져버렸다.

연이어 Soul to Soul 앨범과 Live Alive 앨범을 내놓고, 존경하는 스티비 원더,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도 하고 자신의 영웅격인 알버트 킹과 에릭 클랩튼이랑 합연하는 영광스러운 시절을 살고 있는듯한 그였지만 빠른 성공에 적응을 하지 못한건지 약물과 음주에 유혹에 빠져 지나치게 탐닉해 몸을 망치고 만다. 죽음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러 응급실에 실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중요한건 무엇보다 음악이란걸 깨닫고 약물과 담배를 끊고 술도 절제하며 살게 된다.

재활센터에서 성공적이게 부활한 스티비는 더더욱 음악에 매진 해 단순히 블루스 뿐만이 아닌 다른 장르에도 손을 대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 한다. In Steps가 바로 그 앨범인데 마지막 트랙인 Riviera Paradise는 그가 재즈에 조예도 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증거. 이 앨범은 결국 후에 그가 생전에 내놓은 유작이 되고 만다.

이후 1990년 9월 27일, 친형 지미 본과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Family Style 앨범도 녹음을 마치고 에릭 클랩튼 콘서트에 오프닝 액트로 나서게 된다. 공연도 성공리에 끝 마치고 다음날 헬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스키 슬로프를 미처 보지 못한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안타깝게 명을 달리한다. 향년 35세. 음악적 행보가 기대되던 젊은 뮤지션에겐 안타까운 최후가 된다.[1]

3 연주 스타일

정통적인 블루스를 지향하는 연주자라 사실 펜타토닉/블루스 스케일 이외에 뭘 쓴다는 건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걸 또 진부하다고 할 수 없는게, 그는 당대 블루스 기타리스트중 최고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블루스 스케일이었지만 그 처럼 빠르고 개성있는 연주를 하는 이는 당시에 없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 또한 노트 선택에서 그는 선배들이 이뤄놓은 진부한 릭들을 돌려쓰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있는 프레이즈를 개발해 자기 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평할 수 있다.

텍사스 블루스의 대표주자중 한명이다. 실제로 텍사스 블루스하면 스티비 레이 본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 할 정도 (물론 이 지역 블루스의 창시자란 말이 아니다. 그 전에는 티 본 워커도 있고 알버트 콜린스도 있었다). 그 만큼 위에 언급한 스윙을 중시하는 텍사스 블루스를 지향했다. 느리고 서정적이라는 평과 달리 텍사스 블루스는 이 빠르고 신나는 리듬감을 자랑하기 때문에 블루스란 보통 지루하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입문자에겐 더할나위 없이 추천하기 좋은 장르다.

특히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을 지향하는 이들을 좌절케 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비 레이 본인데, 우선 노트가 매우 많아 비록 한음 한음 카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스타일을 흉내내긴 굉장히 어려우며 또 그 스타일을 유지하며 리듬감을 살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 매우 난이도가 높다. 웬만한 속주 기타리스트들도 scuttle buttin' 이나[2] Rude Mood는 어렵게 여기며 또 레이 본만의 리듬감을 살리기에는 굉장한 실력과 감각이 필요하다고 볼수 있다.

사실 속주도 속주지만 그를 빛나게 했던건 그 속주안에서 빛나는 환상적인 리듬감이었다. 특히 셔플 리듬과 컷팅 주법의 대가였는데, 그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 한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은 스티비 레이본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보다는 훵크쪽에 가깝다고 평할 정도. 그만큼 그루브를 잡는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의 벤딩 주법이나 비브라토는 알버트 킹에게 심히 영향을 받은거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 벤딩할때의 다이내믹과 비브라토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 생전 인터뷰에서도 알버트 킹과 협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는데 실제 협연이 이루어졌으며 그 영상이 남겨져 귀중한 블루스 기타의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3] 그가 하는 코드 보이싱은 헨드릭스와 굉장히 유사하다. 또 레이 본이 한 헨드릭스 커버중 voodoo child와 little wing은 원곡을 뛰어넘는 편곡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커버라고 평을 받았다. 기타의 운용법도 헨드릭스와 비슷하게 하는데, 이사람은 오른손 잡이 기타에 왼손 잡이용 브릿지를 달아 트레몰로 바를 위로 가게 셋팅 해 둔다(...) 또 쇼맨쉽과 무대 퍼포먼스가 헨드릭스와 비슷한 면이 매우 많다. 물론 이빨 기타는 안 하지만... 이빨 기타도 한다.
이러한 스티비의 연주 스타일이 후대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왼팔에 스티비 레이 본의 이니셜인 SRV를 타투로 새길 정도로 그를 영웅으로 삼는 존 메이어가 그 대표주자.

4 사용하던 장비, 그리고 그의 전설적인 톤의 비결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맑고 섬세한 톤으로 경우에 따라 페달을 이용한 드라이브 톤을 사용한다. 스트라토캐스터펜더 앰프를 이용한 맑고 섬세한 톤이라고는 했지만 굉장히 거칠고 투박한 듯한 뉘앙스 또한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굵은 현의 게이지와 강한 피킹 때문일 것이다.

4.1 일렉트릭 기타

4.1.1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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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의 메인 기타는 '넘버 원'이라는 애칭의 59년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대부분의 곡들이 이 기타로 연주되었다. 그가 죽은 후인 92년에 펜더에서 내놓은 시그네춰 모델도 이 '넘버 원'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굉장히 낡은 바디에 검은 픽가드, 그리고 피크가드 위에 스티비가 직접 붙여 놓은 'SRV' 의 이니셜, 로즈우드 지판 (로즈우드 지판을 좋아하는 스티비는 넥을 62년형으로 갈았다) 을 가진 이 기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다. 스티비는 깁슨 기타에 달려있는 스타일의 점보형 프렛이나 던롭의 베이스용 프렛 등을 선호했는데, 그 역시 계속 닳아서 갈아대는 바람에 No.1에 원래 달려 있던 오리지널 넥은 못쓰게 되었다고 한다. 넥은 나중에 구입한 버터스카치 피니쉬된 스트랫의 것으로 교체했다.

특이한 것은 트레몰로 브릿지로, 왼손잡이면서도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그대로 뒤집어 연주하는 오티스 러쉬나 지미 헨드릭스를 동경했던 스티비는 자신의 기타에도 왼손잡이용 트레몰로 브릿지를 달았다. 트레몰로 암이 위쪽에 달려 있어 처음에는 소매가 걸려 찢어지기도 하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으나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스티비는 굉장히 굵은 현을 선호하는데 그 특유의 강하면서도 두꺼운 톤은 굵은 줄에서 나온대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보통 사용한다고 알려진 게이지는 1번줄부 터 .011~.013, .015~.017, .019~.022(와운드되어 있지 않은, 보통 3번줄과 같은 일반 현), .028, .038, .058 의 세팅으로 1~3번줄은 스티비의 컨디션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있다. 예를 들어 1번줄의 경우, 계속되는 공연으로 피로할 때에는 .012나 . 011을 사용한다. 그리고 굵은 현의 장력을 견디기 위해 브릿지 아래에 다섯개의 스프링을 모두 장착했다. 이러한 굵은 게이지의 세팅은 보통 벤딩이나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스탠다드 재즈 뮤지션들이나 여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매우 강한 손힘을 가진 스티비는 거의 009나 010 정도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있다. [4]

"젊었을 때는 거의 중독된 듯이 더욱 굵은 줄을 찾아다니곤 했었죠. 줄이 굵으면 굵을수록 그 소리가 좋았으니까요. 사용해본 가장 굵은 1번줄이 .017 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미친짓이었어요." 스티비의 영향을 받은 신진 기타리스트들도 역시 굵은 현을 사용하여 그와 같은 느낌을 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 듀어트와 존 메이어 같은 경우 .011, 케니 웨인 셰퍼드는 .012의 세트를 쓰고 있다.

4.1.2 SRV 시그내쳐 스트라토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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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스티비가 죽은 뒤인 92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모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티비의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한, 추모의 의미만을 담은 모델은 아니다. 낡고 오래된 '넘버 원'의 자잘한 문제거리 때문에 손이 자주 가는 스티비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 펜더에서는 이 모델을 90년에 처음 개발했다. 물론 '넘버 원'을 모델로 삼은 이 기타는 크게 59년형의 바디에 62년형 스타일의 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판은 파오 페로 (Pao Ferro) 로 되어 있고, 요즘은 대중화된 텍사스 스페셜 픽업은 이 모델에 처음 쓰여졌다. 피크가드에 새롭게 디자인된 SRV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으며 트레몰로 브릿지는 역시 왼손잡이 용이다. 처음 이 기타를 받아 연주해 본 스티비는 매우 좋아했고 죽기 전 몇차례의 콘서트에서 애용했다. 처음 이 모델의 제작을 위해 '넘버 원'을 참조해야 했던 펜더사에선 스티비가 '넘버 원'을 집밖에 내놓기를 꺼리는 바람에 약간의 애로점이 있었다고 한다.

4.1.3 다른 기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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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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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y(레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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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 ES-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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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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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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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스티비는 스튜디오에서나 라이브에서나 대부분의 연주를 '넘버 원'으로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몇개의 기타를 가끔씩 사용하고 있다. 우선 두번째 앨범인 Couldn't Stand the Weather 당시 자주 사용하던 해밀턴의 해밀-톤 (Hamil-tone) 기타가 있는데 뉴욕주의 가타 제작자인 제임스 해밀턴이 만들어 준 것이다. 스트라토의 모양이지만 넥의 조인트는 스루-넥 (thru-neck, 넥과 바디를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같은 한 조각의 나무로 만들어 진 것) 스타일이고 바디도 깁슨 스타일로 두껍고 각이 져 있으며 모서리에는 바인딩이 되어 있다. 지판의 재질은 에보니고 지판 위에 포지션 마크 대신 'Stevie Ray Vaughan' 이라고 새겨져 있다. 픽업은 EMG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무척이나 톤에 예민한 스티비는 6개월에 한번씩 건전지를 갈아주면 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고.

첫 앨범의 Lenny나 In Step 앨범의 Rivera Paradise 같은 서정적인 발라드 연주곡에서 사용하는 기타는 메이플 지판의 스트래토캐스터다. 아내에게 바치는 곡인 Lenny에서의 기타는 역시 '레니' 라는 이름의 브라운색 스트래토로 63 혹은 64년형인 이 기타는 역시 이름이 레니인 스티비의 아내가 선물한 것이다. 이 외에도 오렌지색의 메이플 넥 스트래토가 있다. 스티비는 '로즈우드의 부드럽고 풍부한 사운드를 선호하지 만 메이플 만큼의 브라이트 (Bright)가 없어서' 가끔씩은 메이플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댄일렉트로 (Danelectro) 의 립스틱 픽업이 장착된 흰색의 스트래토를 비롯, 로즈우드 지판을 가진 몇대의 스페어 스트라토 들과 3집인 Soul to Soul 재킷에 들고 나왔던 깁슨의 ES-335, 거의 사용하지 않는 깁슨 레스폴 등이 있다.

4.2 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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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in-step 앨범 제작당시 스튜디오녹음용 앰프셋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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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계의 최고의 명기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덤블앰프 셋팅

스튜디오와 라이브 모두 여러대의 앰프를 함께 울리기를 좋아하는 스티비였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앰프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종류라고는 하지만 브랜드는 거의 펜더마샬의 것들이다. 첫 앨범 시절 부터 항상 중심이 된 것은 펜더의 베이스맨 (Bassman), 바이브로버브 (Vibroverb) 로 후기에는 역시 펜더의 수퍼 리버브 (Super Reverb) 와 트윈 (Twin) 앰프도 즐겨 사용했다. 특히 4집 In Step 에서는 마샬과 덤블 앰프 등으로 더욱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데 이 시기에는 라이브에서 마샬 을 애용하기도 했다. 마샬은 100와트의 JCM 800 스택 (헤드+캐비닛을 말함) 과 60년대에 나왔던 200와트의 메이저 헤드, 그리고 하워드 덤블은 150와트의 스틸 스트링 싱어 헤드 등이 그가 사용했던 모델들이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시에는 대여섯대의 앰프를 한꺼번에 울리기도 한다. 하워드 덤블이 제작한 초고가 앰프인 덤블 앰프의 소유자로도 유명한데, 이 톤은 후대 기타리스트들인 존 메이어 같은 기타리스트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졌다. 더티클린이라고 하는 유리알 깨지는 듯한 클린톤이 전매특허. 앞에서도 밝혔듯 상당히 예민한 톤 감각을 갖고 있던 스티비는 항상 더 좋은 톤을 찾기 위해 여러대의 앰프로 다양한 세팅을 시도하곤 했다.

4.3 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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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바네즈 TS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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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아비터 퍼즈 페이스


주로 깔끔하면서도 힘찬 클린톤을 위주로 하는 스티비 레이 본은 이펙터를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주로 복스의 와와페달과 드라이브계열의 페달 하나 등, 두개의 페달을 발 밑에 놓고 쓰는데 드라이브계열의 이펙트는 아이바네즈의 튜브 스크리머(TS-808)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사용하는 튜브 스크리머는 70년대에 발매된 초기의 모델인 TS-808 로 요즘 리이슈되어 호평받고 있는 TS-9 보다도 더 이전의 것이다. 어차피 많은 양의 드라이브가 걸리는 이펙트도 아니지만 스티비는 '드라이브를 건다'기 보다는 '약간의 날카로움과 서스테인'을 얻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 튜브 스크리머 역시 스티비 를 추종하는 신진 블루스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선 필수 품목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4집에서는 앰프도 그렇지만 이펙트에 있어서도 몇가지 다른 것을 써보고 있는데 마샬 앰프를 사용하면서부터 이펙트 드라이브 또한 헨드릭스적인 느낌의 댈러스 아비터 퍼즈 페이스 (Dallas-Arbiter Fuzz Face) 와 로저메이어 (Roger Mayer) 의 옥타비아 (Octavia)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상 스티비 레이 본이 사용했던 장비들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어떤 사람에게 그와 똑같은 장비, 예를 들어 .013게이지의 현을 장착한 펜더의 SRV 스트라토캐스터와 튜브 스크리머, 그리고 펜더 앰프를 준다 해도 그와 비슷한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스티비 레이 본의 사운드는 그의 연주 스타일, 즉 그의 손에서 나오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중에서도 기타를 마음껏 주무르는 듯한 능숙한 스트로크는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의 중심이다. 거기서 비롯되는, 곡의 흐름을 절대 거스르지 않는 정확한 박자감과 정교한 리듬연주도 그렇지만 미들템포 이상의 곡에선 솔로시에도 항상 스트로크를 유지하며 드라이브감을 잃지 않는다. 또한, 긴 즉흥솔로에서도 끝없이 펼쳐지는 펜타토닉 블루 노트 프레이즈들의 향연과 순발력은 무명시절의 클럽 라이브 등, 수많은 실전 경험에서 얻은 산물일 것이다. 스튜디오 앨범에서의 거창한 사운드 보다는 관객과의 즉흥적인 교감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블루스라는 음악의 특징이라 테크닉적인 작은 실수 정도는 용납이 되고도 남는 것이지만, 한편 그렇기 때문에 라이브에서의 화려한 연주 중에도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는 스티비의 존재는 더더욱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비록 어느 정도 선천적인 특혜를 입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블루스라는 음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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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레이 본의 셋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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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정말 말 그대로 기타를 치다가 기타를 안은 채 잠이들곤 했죠. 아직도 여자가 없을 때는 기타와 함께 자곤 해요 (웃음)." - 1986년 인터뷰 중에서

<가수겸 작곡가 윤병주씨의 글에서 발췌>
  1. 스티비가 탔었던 헬기는 원래 에릭 클랩튼이 타려고 했던 걸 클랩튼이 양보한 것이다. 방향이 달랐기에 사고의 가능성은 낮았겠지만 스티비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에릭 클랩튼의 기분이 어떠하였을까..
  2. 이 곡을 폴 길버트가 자기 스타일에 맞춰 연주한 동영상이 있긴 하다...
  3. 근데 지미 헨드릭스도 알버트 킹에게 영향을 받았다. 알버트 킹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알버트 킹이 왼손잡이라 기타를 돌려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오른손잡이인데도 기타를 왼쪽으로 돌려서 사용했다.
  4. 기타 줄의 게이지, 즉 줄의 굵기는 1번 줄을 기준으로 따진다. 그리고 줄의 굵기와 장력은 서로 비례한다. 일반적인 일렉 기타의 경우 취향에 따라 009~010 게이지를 쓰는데, 할로우바디 타입이나 통기타 같이 그 자체의 울림이 중요한 경우 더 굵은 게이지의 줄을 쓴다. 할로우바디가 보통 011 게이지를 이용하며, 통기타는 012 게이지가 스탠다드임을 생각해볼 때 싱크로 나이즈드 브릿지등 바디와 접촉면이 좁고, 견고성이 떨어지는 브릿지를 가진 일렉기타에 011~013 게이지의 줄을 걸어 자유자재로 쓰는 것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펜더에서 추진하는 헌정기타 프로젝트에서 탄생된 기타중 하나로, 에릭 클랩튼, 애디 벤 헤일런, 잉베이 말름스틴, 제프 벡, 신중현. 그리고 스티비 레이본에게 지급되었다.
  6. 70년대 말레이시안 칩이 들아간 모델을 최고의 오버드라이브 페달 명기라고 치는 기타리스트들도 종종 있다. 페달이라는 것이 개인 취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