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어

1 개요

본명 John Clayton Mayer
통칭 존 메이어(John Mayer)

현재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팝 블루스[1] 싱어 송 라이터. 그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 블루스의 대중화[2]에 기여한 젊은 거장
  • 롤링스톤 선정 신(新) 세계 3대 기타리스트.[3]
  • Slow Hand Jr.[4]
  • 최연소 펜더 시그니쳐 기타 라인 명명[5]
  • 그리고 위의 어마어마한 타이틀들을 2011년 기준으로 데뷔 12년차에 앨범 6장[6]으로 모두 이루어낸 인물.

1집 Room for Squares로 성공적으로 데뷔한뒤, 그의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음악성보다는 사생활문제로 몹시 말이 많았다. 일단 여성편력이 매우 화려하다. 그동안 스캔들이 있었던 여자만 해도 제니퍼 러브 휴잇, 제시카 심슨, 제니퍼 애니스톤, 르네 젤위거,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등 엄청 많다(...). 그의 사생활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터뷰를 들 수 있는데, 문제가 된 인터뷰 내용을 짤막하게 옮기자면,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 제시카 심슨과의 관계가 너무 좋다며(...) 그녀를 마약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제시카 심슨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서 "정말 화가 난다. 난 내 침대 생활에 대해 누가 알기를 원치 않는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영국 매체'더선'은 "존 메이어가 발표한 앨범보다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고 전하며 그를 비꼬았다. 이렇게 온갖 사고를 치고다니다가 결국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나는 성관계에 관해서는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니그로 여자들에게는 매력을 느낄수 없다"는 발언으로 미국내 매체와 포털, 당연한 얘기지만 특히 흑인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무척 욕을 먹었다. 그러고 며칠 뒤 콘서트에서 눈물 흘리면서 사과했다. 흑은 여성한테 극딜넣고...

하지만 이러한 사생활문제도 최근에는 사그라들고 있다. 위의 흑인비하발언에 대해서는 공연 도중 연주를 멈추고 자신을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칭하며 그렇게 말하면 멋있는 줄 알았다, 자신이 비난받아 마땅하고 다른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그로인해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했다. 4집이후 슬럼프가 오면서 뉴욕과 LA를 왕복하며 살다가 인적이 드문 몬태나주의 작은마을 Bozeman으로 이사. 콘서트나 전국투어를 안할때에는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듯하다.

사생활 관련으로 몹시도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인물이지만, 그가 이 시대의 특히 현시대의 기타리스트들의 히어로인것은 분명하다. 80, 90년대 사람들이 에릭 클랩튼을 기타히어로로 보며 자라듯, 2000년대의 아이들은 그를 이 시대의 기타히어로로 본다 해도 무방하다. [7] 기타리스트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많이 받고 있는 기타리스트임에는 이견이 없다. 블루스에 기반한 필링이 뚝뚝 묻어 나오는 연주와 리프, 그리고 울림이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연주는 어쿠스틱/일렉트릭 양 쪽 모두 깊은 소양을 지니고 있으며, 감정선이 뚜렷하게 짜인 작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느낌있는 연주가 돋보인다. 곡들의 템포는 느린 편이지만 진행이 복잡하여 곡의 속도에 비해 왼손이 많이 바쁜 편, 블루스 연주자이기 때문에 크게 티가 안나지만, 기존의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한 영상들을 찾아보면 속주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대부분의 곡은 일단 어쿠스틱기타로 쓰고 그 뒤 어쿠스틱기타 위주로 갈지 일렉트릭기타 중심으로 갈지 결정하는데, 어쿠스틱 버전과 앨범 버전을 들었을때 느낌 등에서 상당히 큰차를 보이지만 못한다는 느낌이 전혀 안든다. 그만큼 확실히 멜로디메이킹과 프로듀싱 능력은 싱어송라이터로써의 능력을 아주 잘 보여주는것이다.

혹자는 이르길 "신은 존 메이어에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작곡 능력, 감성적인 목소리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손가락을 주셨지만, 동시에 최악의 패션센스 [9]와 바람둥이 기질, 그리고 트위터도 함께 주셨다." 고도 평한다. 기타 바디만한 큰 머리도 같이 주셨지. 노래 부를 땐 못생겨진다.[10]

2 바이오그래피 & 커리어

지미 헨드릭스, 스티비 레이 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정작 기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백 투 더 퓨처의 마티의 기타 플레이가 멋져서. 백 투 더 퓨처를 보고 크게 감명 받은 13살의 나이에, 아버지에게 졸라 렌트한 기타를 가지고 연주를 시작하였고, 그 후 고등학교 밴드 동아리등을 만들어 활동을 하는등 다소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에 이웃으로부터 스티비 레이 본 테이프를 선물받는데, 이 사건이 결국 그를 블루스에 심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테이프를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고.

그리고 그가 프로뮤지션으로 전향을 꿈꾸게 되는 것은 17살 무렵, 심근경색으로 졸도한 이후에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음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평가해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 부모님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에 자신의 삶을 걸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하고, 주변에 노래할수있는 사람이 없자, 자신이 직접 노래하게되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자신의 창법을 개발했고, 고등학교 졸업 뒤 바를 전전하며 기타를 연주해 조그마한 명성을 쌓던 찰나, 더 높은 수준의 음악적인 공부를 위해 보스턴으로 터전을 옮겨 버클리 음악 대학에 진학[11]하지만 2학기만에 자퇴[12][13]를 하게된다.

자퇴후 친구 Clay Cook (현 Zac Brown Band 기타리스트)와 같이 애틀랜타로 이사, Lo-Fi Masters라는 이름의 듀오로 시작하나 서로 음악적 견해차로 갈라선뒤, 혼자 독립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14] 솔로로 활동하면서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작은 커피숍, 바 등에서 공연활동을 펼치며 유명세를 쌓기 시작하고,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로서 기본 및 팬베이스를 다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뒤 미국에서 가장 큰 음악페스티벌 중에 하나인 South by Southwest (SXSW)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리고 당시 소규모였던 어웨어 레코드와 계약, 디지털 음반인 Room For Squares를 발매하고 활동에 들어서려던 찰나, 어웨어 레코드가 콜럼비아 레코드에 인수합병 되면서 2001년 재녹음과 정식 음반 발매가 된 Room For Squares를 가지고 데뷔에 이르른다. 상당히 어쿠스틱 팝적인 색깔이 잘 들어난 앨범인데,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어내며 전국구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 때 메이져 데뷔 이전에도 명성을 쌓아가던 차기 기타히어로 재목이었던 그가 정작 데뷔는 아이돌로 하게 되면서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듬 해인 2002년 1집 싱글 Your Body is Wonderland로 그래미시상식에서 최우수 보컬 퍼포먼스상[15]을 수상하고 성공적인 행보를 계속 이어가게 된다.

2003년에는 정규 2집, Heavier Things를 발매하게 되는데, 1집의 어쿠스틱적인 요소를 그대로 있지만 점점 자신의 정체성은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써의 자아역시 조금씩 들어내게 된다. 팝 넘버 Bigger than My Body도 있고,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넘버인 Come Back to Bed도 있지만 정작 크게 히트친곡은 1집의 첫 싱글 Your Body is Wonderland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되는 트랙인 Daughters. Daughters로 그래미를 한번더 수상하게된다. 그 계기로 존메이어라는 뮤지션에게는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라는 딱지가 붙게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 그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 딱지를 원하지 않았던 존메이어는 결국 2집 활동 종료와 동시에 긴 휴식기를 가지고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의 자아를 찾기위해 Herbie Hancock 앨범 세션 참여 및 다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결정타가 되는게 2집 때 같이 작업했고, Herbie Hancock과 작업할때 만난 드러머 Steve Jordan과의 재회인데, 여기서 베이시스트 Pino Palladino와 트리오를 결성 1년간 존 메이어 트리오라는 이름안에서 활동을 하게되는데, 이것이 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것이다. 팝 적인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블루스한 색채를 극대화하고 일렉트릭기타플레잉에 중점을 맞추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블루스 기타플레이어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아를 찾게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트리오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Steve Jordan과 3집 Continuum을 작업하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블루스적인 색채가 더 강해졌고, 어쿠스틱 곡의 비중이 다른 앨범보다는 낮아서 대중성이 약간 떨어지는 듯 했지만 결과는 대박. 존 메이어의 본연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라 평단과 대중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는 앨범이다. Stop This Train 같이 덤덤하게 읆조리는 가사와 기타가 움직이는 듯한 기타워크부터 강렬한 블루스 색이 드러나는 Slow Dancing in the Burning Room과 Belief, 그리고 콘서트에서 항상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래이자 자신이 가장 소중해하는 노래인 Gravity가 이 앨범에 들어가있다. 3집의 성공이 엄청난 나머지, 3집 이전의 곡들을 베스트 히트식으로 모아서 편곡하여 진행된 2008년 라이브 콘서트의 앨범 "Where the Light Is"는 존 메이어의 팬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좋아한다면 꼭 한 번쯤은 꼭 들어봐야할 명반중의 명반. Youtube에서도 HD화질의 영상들과 함께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아티스트로 보여줄수 있는 세가지 색(솔로 어쿠스틱, 트리오 밴드, 그리고 풀 밴드)을 골고루 잘 나타낸 명반이다. 이 앨범의 노래들은 아직도 미국 라이오스테이션에서 가끔씩 틀어준다. 그만큼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성이 있다는 증거. 그래미수상은 물론이요, 프로듀서로서의 역량까지 제대로 발휘한, 존메이어의 음악성을 잘 나타낸 음반이라고도 할수있다.

그리고 공백기를 가진 뒤, 2010년, 4집 Battle Studies가 나오는데, 자신의 앨범 중에서 가장 테마적으로 대중적인 주제에 가까운 앨범이라고 말한다. 주요주제는 사랑과 전쟁.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싸움, 다툼, 이별 그리고 그 이후의 느낌을 주로 만든건데,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고, 사랑이라는 것을 전쟁으로 착안시키는 아이디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고.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존 메이어 트리오 멤버인 Steve Jordan, Pino Palladino, 그리고 1집부터 같이 작업해온 사운드 엔지니어 Chad Franscoviak과 함께 LA의 집을 스튜디오 겸 집으로 개조해 거기서 먹고, 자고, 살고, 4집 녹음을 다 했다. 메이어 자신도 4집을 발표하면서 3집의 큰성공이 어느정도 부담으로 작용한것이 있었음을 인정했고, 3집의 큰 성공과 앨범에 대한 큰 만족감 때문에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야하나 하는 고민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게 3집 Continuum의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것보다 거기서 끝내고 새로운 느낌으로 작업을 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그러면서 자신의 3집, Continuum을 다시 들어봤을때 자신이 생각했던 완벽한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거기서 뭘 더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차트성적에서는 Continuum, Heavier Things 그리고 Room for Squares 보다는 조금 저조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성공 한 앨범이다.

2012년 5월, 'Born and Raised'를 발표, 이전의 블루스[16] 보다는 포크 성향이 짙은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17] 타이틀곡인 Shadow Days는 성대문제와 여성편력 문제 등 같은 고생을 겪었던 과거에 대해 토로하는 내용. 특히 Dear John이라는 곡까지 썼던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불거졌던 문제[18]를 의식했는지 이에 대해 언급하는 가사가 나온다. 전체적으로 앨범의 분위기가 어두운 편에 속하며, 4집과 5집 발매 사이에 겪었던 모든 사건사고 및 부모님의 이혼등등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느낌이 강한 앨범이다. 짧게나마 5집을 활동할 당시 완전 컨트리스러운 복장에 수염, 장발, 그리고 컨트리스런 모자를 쓰는 사진이 나오는 바람에 팬덤에서 머리 잘라라, 수염 밀어라 등등 좀 달리진 모습에 조금 충격을 먹기도 했다. 앨범을 다 만든뒤 앨범 홍보 겸 전국투어를 준비하다가 취소를 하게 되었는데, 그 연유는 밑에 참조.

2013년 7월, 정규 6집 'Paradise Valley'를 발표하고, 이전 앨범이었던 'Born and Raised'에서보다 심화된 컨트리 감성을 선보이며 컴백하였다. 특히나 5번 트랙의 Call me the Breeze는 컨트리음악에 한 획을 그었던 J.J.Cale의 곡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2013년 J.J.Cale의 장례식에서 헌정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2번트랙의 Dear Marie는 'Continuum'앨범의 Stop This Train이 생각나는 비슷한 리프로 가다가 뒤에서 떼창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내한공연에서도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외에도 이제는 헤어져버린 Katy Perry가 참여한 Who You Love,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인 Frank Ocean이 참여한 두번째 Wildfire등이 있다. 앨범의 대표적인 노래론 Wildfire, I Will Be Found (Lost at Sea), Paper Doll[19]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참고로 모든 작업 시작부터 끝까지 2개월밖에 안걸렸고, Born and Raised를 같이 작업한 Don Was와 같이 제작했다. 전체적으로 Born and Raised보다는 조금 더 밝아진 분위기이며 컨트리, 블루스, 그리고 팝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잘 섞인 앨범이다. 결국 이 앨범의 성공으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2014년 에릭 클랩튼 사단의 일원으로 에릭 클랩튼에게 큰 영향을 끼친 J.J.Cale의 헌정앨범 Eric Clapton&his Friends의 4번 트랙 Lies, 7번 트랙 Magnolia, 15번 트랙 Don't wait에 참여했다. 특히나 7번 Magnolia를 녹음하기 한시간 전에 처음 듣고 바로 녹음해버려,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다는 에릭 클랩튼의 인터뷰도 있다.

2010년 초 즈음 내한 떡밥이 돌기도 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콘서트 몇번 했다. 그리고 영혼이 깃든 현대카드에서 진행하는 컬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14년 5월 6일 드디어 첫 내한 공연을 가지기로 확정했다. 내한 공연 당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그 날 공연 수익 일부와 MD 수익을 모두 세월호 사건에 기부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2015년에는 미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Grateful Dead와 협연을 하게되며 Dead & Company의 멤버로 참여, 7집 앨범 제작에 잠깐 스톱을 걸고 현재 그들과 같이 리허설 및 투어를 하는중이며, 2016년 출시를 목표로 7집 정규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3 장비 및 투어링 밴드

2014년까지 주로 사용하던 메인 기타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펜더 전속 아티스트의 경력도 있어서 곡의 대부분을 다른색깔과 픽업을 가진 스트랫을 주로 연주하지만, 하지만 역시 유명 기타리스트라서 후덜덜한 양의 기타 컬렉션을 가지고 있으며, 팝 아티스트 답게 이런 악기들을 소리에 따라서 골고루 잘 쓰는 편이다. 곡 중간중간 사이에 기타를 계속 바꾸는 편이며, 연주하는 곡에 따라 텔레캐스터, 깁슨 ES-335, 깁슨 SG, 깁슨 L-5, Novax Expression[20], 심지어는 깁슨 플라잉 브이(!!) 까지 쓴다. 현재 기타를 200대 이상 소유한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렇게 기타를 자주 바꾸는것 역시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등의 영향이 돋보이는 부분.

2014년 말 그리고 2015년에 들어와서는 펜더나 깁슨과는 다른 기타도 종종 쓴다. 특히 PRS나, 펜더 산하 브랜드인 Jackson, 그리고 독일의 고급진 기타브랜드인 Duesenberg까지 플레이하며 실제 공연에서도 자주 꺼내서 연주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간 전국투어 콘서트 실황에 보면 잘 나타난다. 기타 뿐만 아니라 이팩터 및 페달도 여러가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해서 그의 톤을 카피하려 시도하는 수많은 방구석 기타리스트들이 피를 토하곤 한다. 앰프 [21] 와 이팩터도 전부다 비싼것들 뿐. 곡에 따라서 어쿠스틱기타 또한 자주 쓰는데, 마틴 전속 아티스트로서 마틴기타만 쓰며 그의 시그네쳐 모델도 여럿 있다. [22]

투어할때 기본으로 20개 이상 페달을 가지고 다니며, 모든것은 미디 스위칭 시스템 컨트롤을 한다. 특히 리허설 및 사운드체크할때 페달 및 이펙터를 조정하고, 공연 들어가기전에 어떤 기타를 사용할지 다 결정한다. 모든 페달은 앰프/스피커 옆에있는 페달 수납고에 잘 보관되어있다. 역시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기타리스트인지라 왼손이 바쁘거늘, 발이 바쁘지는 않다. 이것이 미디 스위칭 시스템의 큰 장점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발이 곡 중간중간에 발이 바쁘지않으며 소위말하는 탭댄싱을 하지 않고 기타 플레잉에만 집중할수 있는 아주 고효율 시스템. 리허설이나 사운드체크 때 모든걸 다 세팅해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번 세팅하고 공연을 하면 이펙트나 페달 같은거 신경안쓰고 연주에만 집중할수있다는게 제일 큰 장점이다. 기분따라서는 프리세팅해놓은거에 또다른 페달을 얹어서 다른 소리를 내거나 그러는게 가능하다.

기타의 경우도 투어할때 기본으로 20개 이상 가지고 다니며 최근에는 하모니카도 가지고 다닌다.[23] 일렉기타는 대부분 수정을 안하고 산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편... 그의 콘서트 실황을 보면, 그의 Guitar Tech, 즉 기타 관리인 및 곡 사이에 기타를 바꿔주는 아저씨는 Guitar Tech계의 거장, Rene Martinez라는 아저씨인데... 이분은 옛날에 존메이어의 아이돌, 스티비 레이 본와 같이 콘서트 및 앨범 작업 현장에 같이 다니며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를 관리해주던 아저씨다. 리허설/사운드체크때 이 아저씨와 어떤 기타로 어떤노래를 할지 상의를 하고, 평상시에서 친하게 지내는 아저씨인듯하다. 녹음할때도 같이있는다고 하니.... 르네 아저씨도 존을 보고 자신이 기타관리해주던 스티비 레이본 만큼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라고 엄지척해주신다.

앨범 홍보를 위한 전국투어 및 월드투어를 돌때는 밴드를 꾸려서 하는데, 존메이어의 밴드에 참여했던 세션 뮤지션들 역시 경력이 후덜덜하다. 미국현지에서 이들의 이름은 앨범을 잘 들여보면 세션뮤지션으로 참여한 앨범양으로는 후덜덜한 수준이다. 트리오를 한 Steve Jordan는 드러머 또 음반 프로듀서로써 역량이 상당하며 현재는 Eric Clapton의 세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인 Pino Palladino옹은 최근에는 미국의 락밴드 The Who의 세션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경력이있다. 1집부터 3집까지 함께한 David LaBuryere 혹은 DeLa 역시 현재는 솔로음반도 몇장 냈다. 4집 투어 때 Steve Jordan의 땜빵으로 들어온 드러머가 Keith Carlock. 이분은 참고로 재즈밴드의 거장 Steely Dan의 드러머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4집부터 참여한 베이시스트 Sean Hurley는 수많은 팝 아티스트 앨범에 베이시스트로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아무튼 존 메이어와 같이 다니는 투어링 뮤지션들은 엄청난 실력파 뮤지션들이다. 3집 투어 및 Where the Light Is에 기타 세션에 참여하신 Robbie McIntosh옹은 슬라이드 기타 및 기타세션뮤지션으로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는 분인데 이런 분들과 벌써 40대가 되기전에 손발을 맞춰봤다는 것 자체가 뮤지션으로서 아니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런 실력파 뮤지션들과의 조우덕에 존메이어 콘서트가 다른 아티스트보다 한단계 높은 이유이기도 한다.

가끔씩 혼자서 어쿠스틱 기타하나들고 서프라이즈 콘서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최근에만 해서 애틀랜타의 Eddie's Attic, LA에 위치한 Hard Rock Cafe나 다른 공연장에 깜짝 서프라이즈로 나타날때가 있다. 그때는 대부분 혼자서 루핑페달과 이펙터몇개 혹은 어쿠스틱 기타 딸랑하나만 가지고 오는데, 밴드의 웅장함은 없지만 독주만이 가진 매력을 잘 표현해내는 편이기도 하다. 특히 4집 Battle Studies의 Heartbreak Warfare는 앨범버젼과 어쿠스틱버전의 느낌이 상당히 다른데, 둘다 잘 어울린다. 팬들은 차라리 어쿠스틱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오기도 한다.

덕분에 한국에서 악기 하는 사람들, 특히 기타리스트와 실용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펜더 스트랫의 거래가를 올린 주범(..)그리고 자신은 더이상 펜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발언을 했고, 그 뒤 2015 그래미에는 잭슨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삥끄삥끄/플로이드 로즈 색깔로.... 그 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펜더의 전속 아티스트가 아님을 밝혔다. 이유를 듣자하니 자신이 처음에 계약했던 그 브랜드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며 자신이 추구했던 것을 충족시키지 못해주기에 서로 연장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듯.. 하지만 시그니쳐 모델도 있고,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Black One[24]도 있으니 계속해서 스트랫을 사용할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다른 브랜드의 기타도 플레이하면서 브랜드를 찾는듯하나 지금은 PRS기타를 즐겨 플레이하는듯... 오피셜 나면 수정바람. 하지만 마틴과의 관계는 아직도 건재하다. 아직도 마틴 어쿠스틱 시그내쳐 기타 3대를 계속해서 돌려 쓰고있다.

4 Discography

  • 정규앨범
    • Room for Squares (2001)
    • Heavier Things (2003)
    • Continuum (2006)
    • Battle Studies (2009)
    • Born and Raised (2012)
    • Paradise Valley (2013)
  • 라이브앨범
    • Any Given Thursday (2003)
    • As/Is (2004) [25]
    • Try! (2005) [26]
    • Where the Light Is: John Mayer Live in Los Angeles (2008)

5 기타사항

공연중 에릭 클랩튼을 연상케하는 팬들과의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인데, 멘트를 하기 위해 간주를 엄청 늘려서 멘트를 한뒤 솔로를 하는 경우가 다다하다. 2007년 Where the Light Is 콘서트 실황 DVD에서는 Daughters 시작전에 어떤 여성팬이 "I love you, thank you so much!"라고 하자 마이크로 속삭이며 "I love you too"라고 해줬다. 팬들을 종종 스테이지에 올리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16살 생일을 맞은 여고생을 불러 올린뒤 볼에 뽀뽀를 해주고, 12살의 Austin이라는 아이가 자신과 Belief라는 노래를 같이 하고 싶다는 사인을 가지고왔는데, 그러자 자신이 어쿠스틱기타으로 백킹을 하고, Austin은 기타 메인 리프를 연주. 그리고 그 기타를 선물로 주었다. 비디오는 여기있다. 연주중 "너 솔로한번 할래?"라고 물어본뒤 못한다고 하자 바로 임기응변 메인리프 한번더 플레이하고 한뒤 멋지게 마무리 지은건 덤. 그리고 2014 Rock In Rio 콘서트에서는 3집 Continuum의 Gravity 공연중 기타를 가져온 팬에게 기타를 달라고 하여 팬의 기타로 연주를 마무리하고 사인후 돌려준 경우도 있다.영상링크는 여기. 이 정도 되고보면 팬서비스라 쓰고 어장관리라 읽는다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영국에서 비디오 관련업에 종사하는 Eastwood Allen 이라는 팬이 2014년까지 그의 연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상이 유튜브에 있는데, 상당히 고퀄로 만들었다. 자신도 직접 그걸 보고 너무 잘 써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고는 엄청 늦게 답을 보내서 미안하다고했다... 다큐멘터리 링크는 여기있다. 직접 보자. 상당히 디테일있게 유년기부터 Paradise Valley가 나온 2013년 여름 시점까지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다. 영어능력자이고 존메이어의 팬이라면 한번 보는것도 추천한다. 참고로 이 팬은 4집 Battle Studies에 있는 Assassins이란 노래의 뮤직비디오도 자체제작으로 만들었는데 상당히 고퀄이다. 참고로 이 영상은 4집 투어때 쓰여졌다. Asasassin 팬제작 뮤직비디오 링크

4집 앨범 이후, 성관계 발언, 플레이보이 인터뷰, 인종차별 발언등등으로 각종 크리를 먹고, 조용히 5집앨범 녹음하는 중에 성대에 육아종이 발견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앨범발매 그리고 녹음작업이 지연되었고, 어찌어찌 수술을 받아서 제거한뒤 앨범작업을 끝내고 출시하고 투어준비중에 다시 육아종이 같은 곳에서 발견, 5집 투어를 완전 취소해야 했다. 참고로 육아종이 발견 되었을때는 육아종을 잘라낸뒤, 성대부분에 보톡스를 주입, 성대를 완전히 마비시켜서 회복을 할수있게 하는것인데, 이것때문에 노래를 부를수가 없는것이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 때 연휴로 투어중에 쉬는 목적으로 산 몬타나주에 사놨던 별장으로 이사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도 투어를 안할때에는 몬타나주에 거주중이다. 육아종때문에 활동을 쉬는 동안 말을 못하는 바람에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소통을 아이패드와 키보드로 하고,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할때 손가락으로 포인트를 해서 의사소통을 해결해야했는데, 그때 만난 여자친구가 바로 케이티 페리.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회복에만 집중하게 해주는 덕분에 성공적인 6집 컴백을 할수 있었다. 특히 6집 활동 당시에는 커리어 초반부터 4집때까지의 존 메이어와는 다른 좀더 성숙해진 모습이 종종 보였고, 케이티 페리와는 "연예인 공개연애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랑하는 느낌이다"라는 발언도 하여 멀어진 팬심도 돌리게 되며, 둘이 행복하게 결혼까지 하는 듯하였으나 천조국 가십거리에서는 그딴거 없다. 결국 헤어졌다.

최근에는 미국의 뉴스채널중에 하나인 MSNBC와 인터뷰도 했는데, 자신은 "Recovered Ego Addict"라고 불렀다. 번역하자면 자신은 옛날에는 "자기애중독자"였는데 현재는 그 증세로부터 회복한거라고... 그래서 요즘에는 그래미시상식등이 끝난뒤에는 뒷풀이파티나 이런데는 안가고 그냥 조용히 집에 간다고 한다. 자신은 현재 몬타나주에서 찾은 새로운 삶에 대해 엄청 만족한다고 하며, 마침내 자신이 편하게 있을수 있는 자신의 집을 마침내 찾은것 같다고... 링크는 여기.

그의 한쪽 팔에는 그를 블루스 세계로 이끈 그의 히어로, SRV의 스펠링이 새겨져 있다.

비범한 센스로 화제를 모았던 B급 호러영화 좀비버(...)에 카메오 출연했다. 좀비 사태를 발생시킨 트럭 운전수 역. 참고로 저 영화는 좀비 + 비버 맞다(...)

2017년에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고 토크쇼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갑작스럽게 존이 트위터로 Pop Music I’m comin’ back… 번역하면
(팝 음악계여 내가 컴백한다..) 라고 올려서 올해(2016년) 후반이나
내년 초에 나올듯 하다 (좌표)https://twitter.com/JohnMayer/status/788851144214929408

앨범 자켓도 이미 자신의 스냅챗으로 올렸다
  1. 전반적으로 모던 블루스/텍사스 블루스/컨트리/로커빌리/팝 블루스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2. 어린세대들에게
  3. 이 호칭은 미국의 음악지 롤링스톤의 1020호(2007년 2월)에서 "New Guitar Gods"라는 특집 기사이다. 나머지 두 명인 존 프루시안테와 데렉 트럭스인데 이 둘도 사실 ㅎㄷㄷ한 기타리스트들. 다만 언급했다시피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게 공식적인 직함이 아니라 그저 한 음악 잡지의 선정이라는 것은 알아두자. 기존 세계 3대 기타리스트중 에릭 클랩튼의 싱어송라이터 포지션을 이어 받았다.
  4. 에릭 클랩튼의 그 별칭을 클랩튼 본인으로부터 물려 받았다.
  5. John Mayer Signature 라인이 나오는데, 펜더 시그니쳐 모델 중에 제일 쓸만하다는 평도 있다. 일단 스티비 레이 본 시그네쳐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모델이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 픽업도 텍사스 스페셜 픽업의 개량형인 Big Dipper 를 장착하고 있는데, 상당히 비싼 픽업이라서 중고로 사려면 픽업만 50만원을 호가한다 (...) 또한 넥감이 끝내주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에릭 존슨 시그니쳐를 더 쳐주는 분위기도 있다.
  6. 말이 좋아 12년차이지, 데뷔 때부터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7. 심지어 전연령대로 넓혀도 무방하다. 한국 연기판의 하정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듯. 젊지만 노년의 연륜과 비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8. 애시당초 롤 모델이 지미 헨드릭스/스티비 레이 본이다.
  9. 단 요새와서는 패션센스가 많이 나아져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같은것을 봐도 꽤 세련되게 입고 다닌다. 역시 celebrity 는 뭔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10. 예전 라이브영상들을 보면 클라이맥스부분에서 발을 구르거나, 애드리브를 할떄 어깨를 들어올리는 등 보기에 안좋은 짓(...)을 많이한다.한마디로 못생겨진다
  11. 이 때문에 후에 존 메이어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머쥐자 버클리에 스트라토캐스터로 블루스를 연주하며 목소리를 내리 까는 기타리스트들이 속출하였다고 한다.
  12. 자퇴했지만 학교와의 관계는 매우 좋은듯, 토모 후지타 (버클리 음대의일본인 교수인데, 존이 Neon 에서 쓰는 핑거링 스타일은 이 사람의 슬랩 기타와 찰리 헌터의 연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와 합연하는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하고, 비정기적이지만 버클리에서 클리닉 강의를 하기도 한다.
  13. 전 각주에서 토모 후지타가 존메이어 시그네춰를 쓴다했지만 이 분은 스티비 레이 본 시그네춰를 쓰신다.[1] 이 기타는 존메이어가 고교 졸업 후에 주유소기름냄새 맡아가며알바로 돈을 모아 산 기타이기도 하다.
  14. Clay Cook은 컨트리 성향이 꽤 짙은 뮤지션이었다. 팝을 지향하던 메이어와는 확실히 안맞은 면이 있는편. 하지만 여전히 친하고, 같이 합주도 몇번했다.
  15. 신인상이 아니다.
  16. 사실 어쿠스틱보다 블루스 곡들이 존 메이어의 색감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상징성을 띠고 있을 뿐 정식으로 오버클래스 데뷔 후에는 일렉트릭기타를 사용한 블루스 곡의 발표 횟수가 눈에 띄게 적다.
  17. 3년만의 발매인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발매 첫주부터 음반 판매량 1위
  18.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내용의 가사 때문에 이에 대해 존 메이어가 싸구려 작사라고 반발한 적이 있다. 여성이라는 점 또 대중적으로 쌓아온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미지 때문에 존 메이어에 대한 안티가 많이 늘어났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사실이 어찌 되었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가사를 써서 곡을 공개한 테일러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중론
  19. 이노래가 테일러 스위프트 디스곡 아니냐는 말이 좀 있었다.
  20. Neon 앨범버젼에 쓰인 기타이다. 1집 표지에 자세히보면 백그라운드에 나와있다.
  21. Two-Rock사에서 나온 시그네쳐 앰프와 앰프헤드를 사용하는데, 앰프해드만 팔백만원이다(...).
  22. 대표적으로 마틴 OMJM, OMJM-28 두개가 있고, 최근에 나온 00-45SC John Mayer 가 있는데, 이건 가격만 $13999 (....) 다른 기타들도 비싸긴 마찬가지라서 가장 싼편인 OMJM 이 국내에서는 최소 400만원대에 거래된다 진짜 거지될 판 참고로 기타리스트 안중재가 OMJM 을 쓴다.
  23. 5집과 6집에서 하모니카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옛날의 블루스를 살짝 줄이고 포크적인 사운드가 더 강해졌는데, 그 연유에도 있는듯하다.
  24. 렐릭화한 검은색 스트랫, 중요한 솔로에서는 항상 나온다. 자신이 존경하는 SRV의 기타를 베이스로 만들었고, 픽업은 그당시 마스터 기타장인 Jon Cruz가 직접 만들어준 커스텀 픽업이라 가격을 매길수가 없다. 가장 비슷한 픽업이 텍사스 스타일 픽업인 Big Dipper인데 이것도 거래가가 후덜덜하니...
  25. 국내에는 라이센스 발매되지 않았다
  26. 정확히는 John Mayer Trio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