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 King
1 개요
King Of The Blues
비비 킹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이다. 풍부한 가사 표현 능력과 기타 연주 실력으로 팬이 많다. "블루스 음악의 대부"로 알려졌으며, 롤링 스톤 지에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100인중 3위에 선정되었다. 블루스 팬들이 흔히 말하는 3킹중 한 사람이다.[1]
무려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60년을 넘는 기간 동안 현역으로 활동했다.[2] 이 정도로 오랜 기간동안 현역으로 활동했던 뮤지션은 척 베리 정도밖에 없다. 덕분에 수많은 후배 블루스 뮤지션들에게 꾸준히, 그리고 엄청난 영향을 줘왔고,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거의 신과 같이 떠받들어지던 존재였다. 심지어 에릭 클랩튼도 비비 킹을 선배로서 깍듯이 예우하면서 거의 헌정 앨범급인 'Ride with the King'이라는 콜라보레이션 앨범도 발매할 정도였다.
이러면서도 딱히 후배들 앞에서 허세 피우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각종 공연에서 무명이나 신인급 후배들과 같이 세션을 하기도 하고, 같이 농담따먹기도 하는 등 인격적으로도 딱히 모난 곳이 없었다. 그 호방하고 재미있는 성격 덕에 라이브를 보면 특유의 포근함과 유머러스함이 두드러지는데, 후배가 찰진 솔로잉을 하면 따봉을 세운다던지, 춤추는 시늉을 한다던지, 심지어는 2011년엔 데렉 트럭스&수잔 테데스키라는 블루스 뮤지션 부부와 같이 세션을 한 적도 있는데, 라이브 도중 남편인 데렉이 보는 앞에서 수잔한테 작업을 거는 시늉도 했다(...)[3]
2 생애
본명은 라일리 킹(Riley King)으로 미시시피 주 이타 베나에서 출생하여 미시시피 강 삼각주 지대에서 자랐다. 그가 노래부르는 데 가장 일찍 영향을 준건 교회의 찬송가였다고 한다. 자신의 감성적인 보컬을 소유하기 위하여 특유의 진동음을 지닌 싱글스트링 기타를 연주하였고, 그의 기타 형식은 부카 화이트를 포함한 델타 블루스 연주자들,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천과 장고 라인하트의 영향을 받았다.
비비 킹은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을 했었는데, 거기서 "블루스 보이"(Blues Boy)의 약자인 비비(B.B.)라는 별명이 생겼다.그리고 이 별명을 자신의 성 앞에 붙여 비비 킹 이라는 이름을 만든다.
1951년에 비비 킹은 첫 히트곡인 '3 O'Clock Blues'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미국 전역의 나이트클럽을 순회하는 데 이끌던 곡이다. 비비 킹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300개 이상의 공연지들에서 하룻밤만에 연주하였다. 장기간 성공한 히트곡들로는 'Every Day I Have the Blues', 'Sweet Sixteen'과 인기를 높였던 'The Thrill Is Gone' 등을 포함한다.
1960년대 후반에는 록 기타리스트들이 비비 킹의 영향과 선행을 인정하였으며, 그들은 비비 킹과 비비 킹의 기타인 루실(Lucile)을 백인들에게 소개하였다. 이 시기에 비비킹 최고의 명반 중 하나이자 블루스 전체를 통틀어도 명반 중 하나로 인정받는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Regal' 등이 발매되었다.
1996년에 자서전인 "내 주위의 블루스"(Blues All Around Me)를 발간했다. 1998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자선 공연인 파바로티와 친구들 과테말라&코소보 콘서트에서 파바로티와 듀엣 하고 주케로와도 듀엣을 했다.
그 후로도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했지만,[4] 2015년 5월 14일 밤 9시 40분, 당뇨 합병증으로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3 사용 기타
깁슨의 ES-335를 기반으로 바리톤 스위치가 장착된 ES-345에 F홀이 없는 타입의 기타인 루실(Lucile)을 사용한다. 검정색에 더블바인딩, 금장 하드웨어와 에보니 지판까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생김새가 특징. 깁슨과 에피폰에서 시그네쳐로 나와있으며, 상당히 고가의 기타이다.
기타의 루실이란 이름을 붙이게 된 계기가 있다. 비비킹이 젊은 시절 어느 겨울날 공연을 하다가 루실이란 이름의 여자 때문에 공연장의 두 남자가 싸움을 하게 되고 싸우다가 실수로 난로 근처에 있는 기름을 엎질러 공연장에 불이나게 되었다. 비비킹은 곧바로 밖으로 피신했지만 기타를 두고 왔다는 생각에 다시 불이난 공연장에 들어가 기타를 가지고 나오게 된다. 후에 기타를 가지러 불난 공연장에 들어간게 매우 위험한 짓이란걸 깨달은 비비킹은 자신의 기타에 루실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4 대표곡
비비 킹의 대표곡인 The Thrill is gone.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뿐더러 인기 덕에 유독 다른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한 버전이 많다. 에릭 클랩튼, 스티비 원더, 게리 무어, 트레이시 채프먼,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등등.
위 'The Thrill is gone'은 시카고에서 열린 'Crossroads Guitar Festival 2010'에서 비비 킹과 같이 에릭 클랩튼, 로버트 크레이, 지미 본이 같이 연주한 영상이다.
또 하나의 대표곡인 루실(Lucille). 위에서 설명한 자신의 애용 기타인 루실에 얽힌 스토리를 가사로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1989년 일본 블루스 카니발에서 연주한 Blues boys tune(제목이 All over again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신의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중간에 나온 kamisama!(신님!) 의 탄성도 인상적.- ↑ 비비 킹, 알버트 킹, 프레디 킹. 사실 "3가지 XX" 식으로 따지기를 매우 좋아하는 일본 팬들이 만든 말이며, 유사품으로 세계 3대 시리즈등이 있다(...)..
- ↑ 거기다가 무명 시절에 활동하던 기록까지 합치면 1940년대로 내려간다!
- ↑ 이 때 비비킹 나이가 무려 80대 중반이었다(...) 물론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선후배간 벽이 없었다는 것.
- ↑ 이미 90년대 시점에서 나이는 환갑을 한참 넘었었지만, 그러면서도 연간 200회 이상 라이브를 다니는 등 어지간한 젊은 친구들 못지 않은 노익장을 과시했다. 다만 90년대쯤부터는 아무래도 과체중과 기력의 노쇠 때문에 라이브에서도 서서 연주하지 않고 거의 앉아서만 연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