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

Eric Patrick Clapton, CBE
에릭 패트릭 클립튼
1945년 3월 30일 ~
eric-clapton.jpg

1 개요

기타의 신

Slowhand

영국 출신의 , 블루스 기타리스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기타의 신이라는 별명이 있다. 후술할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활동할 당시에 길거리 벽면에 씌여진 '클랩튼은 신이다(Lord Eric).'라는 낙서에서 비롯된 별명.(이 당시 그의 나이는 20대였다.) 또한 비틀즈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거기에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 레게, 컨트리, 노년에는 재즈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렇게 현대 팝, 락의 조류를 따라가면서도 언제든지 에릭 클랩튼 본인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델타 블루스로 돌아가 블루스의 기본을 다진 복고적인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가 얘기하길 "블루스는 락이 벽에 부딪혔을 때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 영감을 얻어 돌아오는 군 본진과 같다." 라고 했다.

음악계 종사자들이 최고의 명예중 하나로 꼽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유일한 3중 헌액자이기도 한데, 솔로 아티스트 자격, 야드버즈의 멤버 자격, 크림의 멤버 자격으로 헌액 되었다.

현재 안타깝게도 마약과 알콜중독의 후유증으로 말초신경장애를 얻어 기타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많은 팬들이 그가 다시 기타를 잡기 희망하나 당분간 그의 음악적 활동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인다.
출처: [1]

2 음악적 자취

2.1 초기 :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그는 어린 시절 시카고 블루스와 비비킹, 머디 워터스 등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영향을 받아 기타를 시작했으며 1963년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에 가입한다.

이때 블루스 밴드였던 야드버즈가 본격적으로 팝 밴드로 노선을 바꾸기 위해 투입 되었던 곡이 For Your Love였는데 블루스 음악인으로의 자각이 컸던 에릭 클랩튼은 밴드의 방향 전환에 크게 갈등하게 되고 야드버즈에서 탈퇴 당하게 된다[1]. 이후 후임으로 들어오는 기타리스트가 바로 제프 벡. 야드버즈는 For Your Love[2]의 성공과 제프 벡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으로 나름대로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3]가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클랩튼의 청중으로부터 'Slow Handclap'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한다. 에릭 클랩튼이 빠른 속도의 격렬한 연주를 할 때 줄이 끊어지는 일이 많아지자 줄 교체시간에 관객들이 그에게 느린 박수를 쳐주었는데 이에서 착안된 별명이 슬로우핸드. 다분히 미국적인 뉘앙스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인지 이후 그의 별명이 되었다. 이 표현은 곧 슬로우핸드가 된다.

야드버즈를 지미 페이지와 제프 벡에게 맡기고 그는 영국 블루스의 거장 존 메이욜(믹 재거, 키스 리차드, 지미 페이지 등등도 영향받은 영국 블루스의 큰 어르신)과 존 메이욜 앤 블루스 브레이커스를 결성하고 잠시동안 야드버즈의 팝적인 사운드가 아닌 매우 기본적이고 지금들으면 좀 답답하기도 한 정통 블루스를 연주하며 블루스적 필링을 다진다.

그리고 1966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의 하나인 크림을 조직한다.

2.2 크림 : 최초의 록 수퍼밴드

크림은 에릭 이외에도 최고의 연주실력을 가진 잭 브루스(베이스), 진저 베이커(드럼)가 멤버로 있던 밴드로 락 역사상 최초의 수퍼밴드로 얘기되며 3명의 멤버가 기타 - 베이스 - 드럼(이중 한 멤버가 보컬 겸업)을 연주하는 트리오 밴드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이후 이를 본딴 수많은 락 트리오들이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크림에선 잭 브루스와 에릭 클랩튼이 번갈아 보컬을 맡았지만 주로 잭 브루스가 중요한 보컬을 맡았다.

이 시절 크림은 당시의 락의 조류였던 사이키델릭 락을 선도하면서 몽롱하고 느릿하기만 한 사이키델릭이 아닌 꽉 짜여진 연주와 힘찬 기타 리프, 반복적이고 강렬한 리듬, 무거운 베이스를 깐 락 음악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 탄생하는 하드락과 헤비메탈의 연주측면에서의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이 시절 중요한 곡으로는 리프의 교과서 'Sunshine of Your Love'와 'White Room'이 있다.

비틀즈(특히 조지 해리슨)과 친분이 있어 비틀즈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기타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근데 조지 해리슨하고만 친해지면 좋은데 조지의 부인 패티 보이드와도 친밀해진 것. 패티 보이드는 힌두교에만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4] 조지 해리슨의 질투 작전을 펼쳤지만, 사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조지 해리슨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거기다 조지 해리슨은 이미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 콕스와 바람이 나있던 상황이었고, 에릭 클랩튼도 빈 말로도 인간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 자세한건 조지 해리슨 항목 참고.

아무튼 크림하면 에릭 클랩튼만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멤버들의 음악성도 무시할수 없었고 특히 잭 브루스는 에릭보다 더 전위적이고 정신적으로 심오한 음악세계(주로 프리재즈 성향의)를 추구해 밴드는 계속 유지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결국 1968년 크림은 해체된다. 크림이 해체하게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첫째로는 지나친 투어일정으로 인해 창작활동이 마비된 것, 두번째로 공연이 멤버들의 화려한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를 강조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 세번째로는 멤버 3명 모두 리더기질이 다분한 한성깔(?) 하는 인물들이라서 의견충돌이 잦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성격의 혈기왕성한 젊은 세명의 뮤지션들이 허구언날 붙어다니니 싸움이 안날래야 안날수도 없고 잭브루스의 프리재즈를 지향하는 방향성으로 인해 다른 두멤버와의 음악적 충돌도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다른 이유로는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 때문에 좀 밀렸다는 얘기도 있었다.

2.3 블라인드 페이스 : 또다른 수퍼밴드

크림을 해체한뒤 또다른 슈퍼밴드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하는데 이 밴드는 크림시절의 진저 베이커와 트래픽의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스티브 윈우드, 바이올린과 베이스 주자 릭 그레치가 참여해 이루어진 밴드였다. 이 밴드에서 에릭은 스티브 윈우드의 음악성에 경의를 표하고 밴드의 주도권과 보컬을 넘겨주게 된다.

이 시절의 음악은 스티브 윈우드의 영향으로 굉장히 단아하고 정돈되어 그야말로 고상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를 보여준다. 마치 스티브 윈우드의 전신 밴드였던 트래픽의 음악이 연주적으로 더 알차져서 연주되는 듯한 느낌으로 재즈와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등등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시기의 명곡으로는 현악협주곡처럼 단아한 어쿠스틱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곡 'Can't Find My Way Home', 장엄한 사이키델릭 블루스 'Presence Of The Lord' 등등이 있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이런 지나치게 심오한 음악 세계에 진력이 났는지 앨범 한장만 발표한뒤 곧 밴드를 그만둔다.[5]

2.4 데렉 앤 도미노즈 : 그의 마지막 슈퍼밴드

블라인드 페이스 해체후 1970년 에릭 클랩튼은 '델라니 앤 보니'와 의기투합해 데렉 앤 도미노즈(Derek and the Dominos)를 결성한다. Derek이 에릭 클랩튼, 도미노즈가 델라니 앤 보니다. 여기에 듀언 올맨도 참여한다.

이때의 음악은 블라인드 페이스 시절의 지나친 절제와 정돈을 벗어나 그야말로 푸근하고 따뜻한 블루스록 그 자체를 들려준다. 두 사람의 협연 기타 연주는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시기 명곡으로는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에게 바치는 사랑의 찬가[6] Layla와 정말 슬프고 아름다운 'Bell Bottom Blues'와 어쿠스틱 곡 'Thorn Tree in the Garden',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리프를 새롭게 해석해 연주한 'Little Wing' 등이 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연주 라이벌이자 동반자, 소울메이트같은 관계였던 또다른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사망하고, 밴드를 같이하던 듀언 올맨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다. 사적으로는 패티 보이드에게 실연까지 당했다. [7] [8]

이런 비극이 겹치자 에릭 클랩튼은 한동안 슬픔과 비탄에 잠겨 술과 마약에 빠져 폐인처럼 인생을 허비하며 괴로운 시간을 지냈다.

2.5 이후의 솔로 활동

이후 에릭 클랩튼은 밴드를 그만두고 계속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솔로 이후의 그의 음악은 비트는 많이 줄어들고 섬세한 기타연주를 강조하는 조용한 사운드를 추구하게 된다. 솔로시절 명곡으로는 밥 말리의 레게 곡 리메이크인 'I Shot The Sheriff', 옛날 서울의 달이란 MBC 드라마로 유명해진 'Give Me Strength', 아름다운 발라드 'Let It Grow'[9], 레게풍의 가스펠 리메이크곡 'Swing Low Sweet Chariot', 마약 이름이라 논란이 있었던 'Cocaine[10]', 그리고 마침내 조지 해리슨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한 부인 패티에게 바치는 찬가 'Wonderful Tonight'이 있다(근데 결국 이혼하지만...).

그리고 인도에 심취했던 (자기가 배신한) 친구 조지 해리슨의 권유에 따라 태풍(사이클론)에 희생된 방글라데시 난민들을 돕는 자선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하고, 피트 타운젠트의 밴드 더 후의 락 오페라를 영화화한 작품 'Tommy'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8년,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에게 조지 해리슨이 보여준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고, 에릭 클랩튼의 바람기와 병크를 못 견디고 결국 둘은 이혼한다. 에릭 클랩튼은 조지 해리슨을 질투해서 패티 보이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트로피 와이프 취급한 것이라고 대놓고 밝혔고, 이후 패티는 오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

결국 패티만 피해받은 셈.

2.6 노년기에 다시 찾아온 전성기

1991년 이탈리아의 방송인 로리 델 산토가 낳아준 4살된 아들 코너가 무려 55층이나 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한다[11] 이때 에릭 클랩튼은 슬픔에 빠져 지내다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곡 'Tears in Heaven'을 작곡한다. 무슨 새옹지마인지 이 곡은 영화 러시[12]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어 엄청나게 크게 히트하고 이를 계기로 에릭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언플러그드의 돌풍이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던 때라 에릭은 MTV 언플러그드 콘서트에 나가 'Tears in Heaven' 외에 데릭 앤 더 도미노즈 시절의 히트곡 'Layla'의 어쿠스틱 곡 등등도 선보였고 이 공연은 크게 성공하였다.[13][14]

이 이후로도 에릭 클랩튼은 여전히 계속 활동하고 있다. 영화 페노메논의 삽입곡이자 베이비페이스와의 협업곡인 'Change the World'도 히트시키고 블루스의 거장 비비킹과 협연한(비비킹을 선배로서 극히 예우한) 'Riding with the King' 등등의 정통 블루스로 회귀한 앨범도 내고 있으며, 블라인드 페이스나 크림 시절의 동료들과 만나 그 시절의 곡들을 협연하기도 한다. 또 라이브 투어도 계속하고 있다. 소문으로는 눈과 귀 등이 어두워지는 등 건강이 안좋아 곧 음악활동이 어려워 질거라는 얘기가 있다.

자신도 마약에 중독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약치료시설에 상당한 기부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기부금만 내는 정도가 아니고 Crossroads 라고 아예 자기가 지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재활 시설이 있다. 그리고 자선공연이나 여러 기부행사에도 자주 나가는 편이라고.

에릭 클랩튼이 쓴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중국 등지에서 자신의 라이브 DVD가 불법복제되어서 헐값에 판매되고 있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는 비단 에릭 클랩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국 뮤지션들이 중국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에릭 클랩튼 불법 DVD가 장당 3000원~4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에릭 클랩튼의 팬이라면 정품을 애용하자!
어차피 유튜브에 다 올라오지만 이제 할아버지라 모르실듯


에릭 클랩튼이 첫 내한공연차 방한 했을 때 공연 다음날 가이드에게 서울 시내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가이드가 호텔에서 가까운 압구정동을 안내했다고 한다. 한가한 평일 오후의 압구정 거리를 산책하던 에릭 클랩튼은 '1만원에 3켤레'란 가격에 양말을 파는 노점을 발견하곤 양말을 꼼꼼히 골라 샀는데 노점 주인이 '외국인이 참 곱게 늙었다'며 양말 1켤레를 덤으로 줘서 에릭 클랩튼이 기뻐하며 고마워 했다고 한다.. 역시 한국은 정의 나라이다

2011년 싱가포르 공연을 했는데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이 이 공연을 보러와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3 여담

재산이 3000 ~ 4000억원으로 영국 출신 뮤지션으로는 최상위급이며(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나 로버트 플랜트, 브라이언 메이 등등의 2배가 넘는다)

1995년에 음악적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고, 2004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녀 앤 공주의 추천으로 신년 Honours List에 올라 3등급(CBE)으로 승급되었다.

나이차이가 꽤 나는 현재의 아내[15]와 딸 세명을 두고 있는데, 이분은 한국-아일랜드계 혼혈의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파일:Attachment/에릭 클랩튼/Example.jpg
탑기어 시즌19 4회의 기아 씨드 2세대 모델 리뷰편에서 제레미 클락슨이 기타좀 치는 동네형님으로 소개하면서 짧게 등장하였다.[16]

파일:Attachment/에릭 클랩튼/에릭클랩튼페라리.jpg

페라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차고에 각종 페라리 차량을 수십대 보유중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76년에 첫선을 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512BB 모델을 가장 좋아하여 3대나 보유중이라고 하는데, 최근 페라리측에서 에릭 클랩튼의 특별주문에 따라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기반으로한 원-오프(One-off)모델인 Ferrari SP12 EC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올드카인 512BB에 맞추었으며 본래 클랩튼은 12기통 엔진을 원했으나 458의 v8엔진을 그대로 썼다.

2014년 7월 6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익스트림 서프라이즈에 나왔다.

영국인답게 역시 축구를 좋아한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골수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가장 유명한 팬으로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솔로

4.1.1 정규 앨범

  • Eric Clapton (1970)
  • 461 Ocean Boulevard (1974)
  • There's One in Every Crowd (1975)
  • No Reason to Cry (1976)
  • Slowhand (1977)
  • Backless (1978)
  • Another Ticket (1981)
  • Money and Cigarettes (1983)
  • Behind the Sun (1985)
  • August (1986)
  • Journeyman (1989)
  • From the Cradle (1994)
  • Pilgrim (1998)
  • Reptile (2001)
  • Me and Mr. Johnson (2004)
  • Sessions for Robert J (2004)
  • Back Home (2005)
  • Clapton (2010)
  • Old Sock (2013)
  • I Still Do (2016)

4.1.2 라이브 앨범

  • Eric Clapton's Rainbow Concert (1973)
  • E. C. Was Here (1975)
  • Just One Night (1980)
  • Time Pieces Vol.II Live in the Seventies (1983)
  • 24 Nights (1991)
  • MTV-Unplugged (1992)
  • Crossroads 2: Live in the Seventies (1996)
  • One More Car, One More Rider (2002)
  • Live from Madison Square Garden (with Steve Winwood) (2009)
  • Play the Blues: Live from Jazz at Lincoln Center (with Wynton Marsalis) (2011)
  • Crossroads Guitar Festival 2013 (2013)
  • Slowhand at 70 –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 (2015)

4.1.3 콜라보 앨범

  • Riding with the King (2000)
  • The Road to Escondido (2006)
  • The Breeze: An Appreciation of JJ Cale (2014)

4.1.4 베스트 앨범

  • The History of Eric Clapton (1972)
  • Eric Clapton at His Best (1972)
  • Clapton (1973)
  • Steppin' Out (1981)
  • Timepieces: The Best of Eric Clapton (1982)
  • Backtrackin' (1984)
  • The Cream of Eric Clapton (UK) (1987)
  • Crossroads (1988)
  • Story (1991)
  • Stages (1993)
  • The Cream of Clapton (International) (1995)
  • Blues (1999)
  • Clapton Chronicles: The Best of Eric Clapton (1999)
  • Martin Scorsese Presents The Blues: Eric Clapton (2003)
  • 20th Century Masters –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Eric Clapton (2004)
  • Complete Clapton (2007)
  • Icon (2011)
  • Forever Man (2015)

4.2 밴드

4.2.1 정규 앨범

  • For Your Love (1965, 야드버즈)
  • 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 (1966, 존 메이올 & 블루스 브레이커스)
  • Fresh Cream (1966, 크림)
  • Disraeli Gears (1967, 크림)
  • Wheels of Fire (1968, 크림)
  • Goodbye (1969, 크림)
  • Blind Faith (1969, 블라인드 페이스)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1970, 데렉 앤 더 도미노스)

4.2.2 라이브 앨범

  • Five Live Yardbirds (1964, 야드버즈)
  •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1965, 야드버즈)
  • Live Cream (1970, 크림)
  • Live Cream Volume II (1972, 크림)
  • Live Peace in Toronto 1969 (1968, 플라스틱 오노 밴드)
  • On Tour with Eric Clapton (1970, 델라니 앤 보니 & 프렌즈)
  • In Concert (1973, 데렉 앤 더 도미노스)
  • Live at the Fillmore (1994, 데렉 앤 더 도미노스)
  • Live! Blueswailing July '64 (2003, 야드버즈)
  • Royal Albert Hall London May 2-3-5-6, 2005 (2005, 크림)

4.2.3 베스트 앨범

  • Having a Rave Up (1965, 야드버즈)
  • Best of Cream (1968, 크림)
  • Heavy Cream (1972, 크림)
  • Cream Off The Top (1973, 크림)
  • Strange Brew (1983, 크림)
  • The Very Best of Cream (1995, 크림)
  • 20th Century Masters: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Cream (2000, 크림)
  • BBC Sessions (2003, 크림)
  • Cream Gold (2005, 크림)
  • I Feel Free Ultimate Cream (2005, 크림)
  • Icon (2011, 크림)
  • The Alternative Album (2013, 크림)

4.3 싱글

4.3.1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4.3.1.1 1위
  • "I Shot the Sheriff" (1974, 1위)
4.3.1.2 2위
  • "Tears in Heaven" (1992, 2위)
4.3.1.3 3위 - 10위
  • "For Your Love" / "Got To Hurry" (1965, 6위, 야드버즈)
  • "Sunshine of Your Love" / "SWLABR" (US : Gold) (1968, 5위, 크림)
  • "White Room" / "Those Were the Days" (1968, 6위, 크림)
  • "Layla" / "I am Yours" (1970, 10위, 데렉 앤 더 도미노스)
  • "Lay Down Sally" (1977, 3위)
  • "Promises" (1978,9위)
  • "I Can't Stand It" (1981,10위)
  • "Layla (Acoustic)" (1992, 12위)
  • "Change the World" (1996, 5위)
4.3.1.4 11위 - 40위
  • "Crossroads" (live) / "Passing the Time" (1968, 28위, 크림)
  • "Cold Turkey" / "Don't Worry Kyoko" (1968, 30위, 플라스틱 오노 밴드)
  • "After Midnight" (1970, 18위)
  • "Willie and the Hand Jive"(1974, 26위)
  • "Hello Old Friend" (1976, 24위)
  • "Wonderful Tonight" (1977, 16위)
  • "Cocaine" (1979, 30위)
  • "I've Got a Rock 'n' Roll Heart" (1983, 24위)
  • "Forever Man"(1985, 26위)
  • "My Father's Eyes" (1998, 16위)

4.3.2 영국 UK 싱글 차트

4.3.2.1 1위
  • "Love Can Build a Bridge" (1위, 1995)
4.3.2.2 2위
4.3.2.3 3위 - 10위
  • "For Your Love" (3위, 야드버즈)
  • "Layla" / "Bell Bottom Blues" (1970, 7위, 데렉 앤 더 도미노스)
  • "I Shot the Sheriff" (1974, 9위)
4.3.2.4 11위 - 40위
  • "Wrapping Paper" / "Cat's Squirrel" (1966, 34위, 크림)
  • "I Feel Free" / "N.S.U." (1966, 11위, 크림)
  • "Strange Brew" / "Tales of Brave Ulysses" (1967, 17위, 크림)
  • "Sunshine of Your Love" / "SWLABR" (US : Gold) (1968, 25위, 크림)
  • "Anyone for Tennis (The Savage Seven theme)" / "Pressed Rat and Warthog" (1968, 40위, 크림)
  • "White Room" / "Those Were the Days" (1968, 28위, 크림)
  • "Badge" / "What a Bringdown" (1969, 18위, 크림)
  • "Cold Turkey" / "Don't Worry Kyoko" (1969, 14위, 플라스틱 오노 밴드)
  • "Comin' Home" / "Groupie (Superstar)" (1969, 19위, 댈라니 앤 보니)
  • "Swing Low, Sweet Chariot" (19위, 1975)
  • "Knockin' on Heaven's Door" (38위, 1975)
  • "Lay Down Sally" (39위, 1977)
  • "Promises" (37위, 1978)
  • "Behind the Mask" (15위, 1987)
  • "Bad Love" (25위, 1990)
  • "Wonderful Tonight (Live)" (30위, 1991)
  • "Tears in Heaven" (5위, 1992)
  • "Runaway Train" (31위, 1992)
  • "It's Probably Me" (32위, 1992)
  • "Change the World" (18위, 1996)
  • "Circus (Album version)" (39위, 1998)
  • "My Father's Eyes" (33위, 1998)
  • "Forever Man (How Many Times?)" (26위, 2000)
  1. 밴드 내부 분열보다는 매니저였던 고멜스키와의 대립이 더 컸다. 이 고멜스키란 인물은 롤링스톤즈, 애니멀스, 야즈버드에 모두 관여한 당대의 거물이었다.
  2. 밴드를 나오기 전 클랩튼이 여기서 기타를 쳤다.
  3. 제프 벡 투입전에도 전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4. 그러나 조지는 바람을 계속 피웠다.(...)
  5. 이 이후에도 에릭 클랩튼과 스티브 윈우드는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같이 음악 할 것은 약속하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9년에서야 그 결과물로서 메디슨 스퀘어 가든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6. 결국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하고 에릭 클랩튼과 재혼했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
  7. 에릭과 패티는 꽤 깊은 사이로까지 발전했으나 조지를 사랑하는 패티가 결국 다시 조지에게 돌아가게 되면서 둘은 헤어진다. 그러나 조지의 바람기로 조지와 패티가 이혼하고 뒤에 둘은 결혼하지만 에릭 클랩튼의 심한 바람기로 이혼하게 된다.
  8. 이런것만 보면 에릭이 패티를 엄청 사랑했던 것 같지만, 에릭은 결혼 전이나 후나 마약에 술에 바람을 계속 피웠고 패티가 아이를 못낳는다는 걸 알자 밖에서 사생아를 둘이나 데려온다. 거기다 후에 에릭이 자서전에 밝히길 패티를 원한건 그저 조지 해리슨이 질투났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 나쁜 자식들.
  9. Led Zeppelin의 명곡 'Stairway To Heaven'의 영향을 받았다. 코드카피를 했다고 한다.
  10. 원래 JJ Cale의 곡이지만 에릭클랩튼의 커버버젼이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에릭 클랩튼의 곡으로 알고 있다. 에릭 클랩튼은 마약의 유해성을 알려주는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공연할 때 코러스 가사에 'that dirty cocaine'을 추가하기도 한다.
  11. 가정부가 청소하느라 창문을 열어뒀다고 한다.산토가 전화를 하여 "코너를 당신이 데려갔나요? 안 보이던데요?" 라는 말을 듣고 불길함을 감추지 못했는데...결국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끔찍한 모습으로 된 시체를 보고 만다... 그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담이긴 하지만 이 사건을 가지고 Anal Cunt라는 미국의 그라인드코어 밴드가 Conor Clapton Committed Suicide Because His Father Sucks 라는 노래를 만든다. 다만 고소를 우려한 이 밴드의 소속사가 제목을 교체하긴 했지만 그 교체한 제목이라는 것이 Your Kid Committed Suicide Because You Suck...... 그리고 가사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뭐 그라인드에서 이정도 막장 가사는 아무것도 아니다만(...).
  12. 영화 내용은 노래처럼(?) 아름답진 않다. 마약수사를 위해서 비밀리에 마약소굴에 잠입한 남,녀 경찰이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의 주인공 이름은 짐 레이너의 이름도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13. 동일년도에 공연실황 라이브앨범이 발매됐는데 이 앨범으로 에릭 클랩튼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제외한Record of the Year, Album of the Year, Song of the Year의 주요3부문포함 6관왕을 달성하였다. 다시말하지만 이거 라이브 앨범이다.
  14. 후일담으로 Tears in Heaven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탓으로 너무 많이 부른데다 시간도 많이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때의 감정이 살지 않는다며 이제 부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일도 있다.
  15. Melia McEnery. 1998년 53세의 클랩튼과 22세의 나이로 만나 2001년 결혼.
  16. 카오디오에 일렉기타를 연결하여 짧게 2곡을 연주하며 성능 테스트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