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éad[1] O'Connor. 아일랜드 공화국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름 |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
본명 | Sinéad Marie Bernadette O'Connor |
출생 | 1966년 12월 8일 |
데뷔 | 1987년 1집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 |
1 소개
1980년대에 1집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삭발머리와 반골기질의 저항정신으로 유명. 1990년 2집 앨범에 수록한 <Nothing Compares 2 U>가 크게 히트를 쳐서, 2014년 현재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곡을 뛰어넘는 히트곡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그 곡은 프린스(음악가)의 곡을 리메이크[2]해서 부른 것이라는게 아이러니.
오코너의 대표곡인 <Nothing Compares 2 U>의 뮤직비디오.
2 저항정신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뛰어난 음악가이긴 하지만 저항정신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발언 및 행동들이 그녀의 음악 자체보다 유명하다. 아래는 대표적인 사건들.
-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아름다운 외모는 방해가 되고, 성상품화 또한 반대한다며 삭발.
- 각종 공연이나 방송출연, 시상식 등의 출연을 거부. 이는 걸프전을 용인하는 분위기나, 소수민족에 대한 경시, 반여성적 태도, 또는 극단적인 상업주의 등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많은 음악가들의 꿈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에도 출연을 거부했는데,[3] 때문에 Best Alternative Music Performance 부문에서 수상했음에도 트로피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 IRA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무조건 옹호는 아니라 민간인이 휘말리는 테러는 비판했지만, 무조건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며 영국이 벌이는 북아일랜드 민간인 인권침해에 피의 일요일 사건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 반여성주의 뉘앙스를 풍기는 출연자가 있다는 이유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출연 요청 거절. 그로부터 2년 후인 1992년. 결국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출연한 그녀는 큰 사건 하나를 터뜨리게 되는데...
- 1992년 10월 3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그녀는 밥 말리의 <War>를 부르면서 인종차별(Racism)이라는 가사를 아동학대(Child abuse)로 바꿔 불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린 뒤, "진짜 적과 싸우자"라며 퇴장해버렸다. 이는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건 은폐 및 각종 인권문제 은폐[5] 의혹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훗날 본인을 교회를 증오하는 가톨릭 신자라 칭했다. 한술 더 떠 가톨릭에서 금지하는 여성 사제로도 활동중.[6]
- 그로부터 2주 뒤 뉴욕에서 열린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 헌정공연에 참가. 원래 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으나, 관중들로부터 노래를 연주하지 못할 정도로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그녀는 SNL에서 불렀던 <War>를 무반주로 절규하듯 열창한 뒤 퇴장했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링크</li></ul>
- 마일리 사이러스가 Wrecking Ball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오코너의 <Nothing Compares 2 U> 뮤직비디오에서 일부 모티브를 차용했다고 밝혔고, 이후 MTV VMA 사건을 알게 된 오코너는 사이러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주위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 성을 상품화하지 말라'는 것. 큰 문제 없이 그저 권유하는 내용이었으나 사이러스는 오코너의 과거[7]를 들추며 헐뜯었고, 분노한 오코너는 사이러스가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모습들에 대해, 불우했던 유년시절[8]과 아일랜드 민족정서가 그 뿌리가 아닐까하는 해석도 있다.
3 여담
- MBC <놀러와>에 출연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인 김윤아는, 오코너를 여성 뮤지션들의 우상이라 칭하며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아티스트라고 밝혔다. 오코너의 곡인 <Nothing Compares 2 U>를 직접 키보드를 치며 부른건 덤.
- 2015년. 48세의 나이로 할머니가 되었다. 본인은 이를 매우 기쁘게 생각하여 페이스북에 손주를 안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허나 손주를 얻은 기쁨도 잠시. 아들에게 큰 병이 생겨 모든 공연을 취소했다.
- ↑ 아일랜드어 발음은 장음 때문에 "시네드"
- ↑ 항간에는 시네이드 오코너가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라는 루머가 있는데, 프린스가 이미 몇년 전에 발표했던 곡이다.
- ↑ 신인이던 1989년엔 그래미에서 공연을 한번 하긴 했다.
- ↑ 이는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비판받았다.
- ↑ 대표적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 있는데, 오코너 본인도 막달레나 수녀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 ↑ 사실 엄연히 말하자면 진짜사제는 전혀 아니다.
- ↑ 시네이드 오코너는 양극성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를 들먹인 것. 또한 문제의 교황 사진 사건도 언급하였다.
- ↑ 빈민촌에서의 생활, 부모의 이혼과 폭력, 수녀원 보호시설에서의 성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