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1 아일랜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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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원들이 들고 있는 소총은 AR-18이다.

정식 명칭은 아일랜드 공화국군. 이름 그대로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무장단체다. 1910년대 말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든 독립군으로 시작해, 각 시기별로 IRA의 이름을 쓴 수많은 단체가 있었으나, 다른 설명이 없이 언급할 경우의 IRA는 1969년부터 존재해온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 즉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2]이라는 단체를 일컫는다. 1970, 80년대에는 많은 테러를 행했으나 현재는 온건주의 노선을 표방하면서 2000년도에 들어서 무장투쟁을 포기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IRA는 1916년 부활절 봉기의 실패 이후 마이클 콜린스, 리처드 멀카니 등 아일랜드 독립군의 잔여 세력이 재규합하여 결성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후 1919년에서 1921년까지 영국군과 싸우다가 결국 아일랜드 독립을 이루어냈으나, 1922년 영국-아일랜드 협정에서 영국계 주민이 다수인 얼스터 지방은 영국 내에 잔류한다는 조건이 문제시되어 이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으로 갈라져 IRA 또한 양분되었다. 이후 협정에 찬성한 쪽은 현대 아일랜드 국방군의 전신이 되었고, 반협정 IRA (Anti-Treaty IRA)라고 불린 반대파는 여전히 영국은 물론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와도 싸우며 무장투쟁을 계속 해오다가 결국 50~60년대에 들어서는 말라 죽어가는 사멸 직전의 조직이 되었다.

2 북아일랜드 분쟁

다 죽어가던 IRA가 다시 힘을 키워 20세기 후반 서유럽 최대의 무장투쟁의 핵심에 있는 단체가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분쟁의 시작과 IRA의 분열 때문이었다.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에서는 다시 가톨릭계 주민들과 영국계 성공회 주민들의 분쟁이 터졌는데, 말이 분쟁이었지 사실상 수적으로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나 압도적인 우위인 프로테스탄트(혹은 성공회) 영국계 주민들의 일방적인 가톨릭 박해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IRA는 공식적으로 전통적인 가톨릭 민족주의가 아닌 마르크스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세력 자체가 너무도 약해져서 효과적으로 가톨릭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였다. 이에 반발한 IRA 내부의 세력들이 IRA를 탈퇴하고 PIRA(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를 새우고 잔류한 IRA는 스스로를 OIRA(Official IRA : OIRA)로 부름으로서 IRA는 양분되었다.

초기에는 IRA의 그나마 남아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OIRA가 더 세력이 강하였으나, OIRA는 무장투쟁을 포기한 반면 PIRA는 가열찬 투쟁을 벌여 점점 더 가톨릭 주민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72년 영국군 공수부대가 데리 시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비무장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3명의 민간인이 죽은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PIRA는 대대적인 단체로 성장하게 된다.

1970년대면 양차 대전이 끝난지도 4반세기가 흘렀고 1960년대의 각종 시위들도 끝물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선진국 중에 선진국이란 썩어도 준치라는 영국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피의 일요일 사건만 해도 북아일랜드가톨릭 주민들은 영국을 적이 아니라 개신교 주민들의 박해에서 보호해 줄 정부의 보호자이자 중재자로 보았으나, 이 날을 계기로 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자체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기운이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이 날부터 IRA는 줄기차게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영국군프로테스탄트계 무장세력을 상대로 나름 의로운, 또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투쟁 과정에서 당시 각종 테러 사건을 통해 영국과 한창 각을 올리던 무아마르 알 카다피리비아와, 로비와 머릿수, 언플로 인해 연방정부와 치안 당국이 눈을 감아 준 미국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지원을 받아 공간적으로 상당히 제한되었음에도 불구, 돌격소총RPG, 심지어 스팅어 대공미사일 까지도 보유한 저강도 분쟁을 벌이기에는 충분한 화력과 물리력 까지 얻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PLO와 서로 교관과 훈련 장소를 교환하기도 하고, 저 멀리 중남미 콜럼비아FARC와도 관계를 맺는 등 전 세계로 아들딸들을 보낸 아일랜드 역사적 전통에 충실하게 범세계적인 커넥션까지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IRA는 1979년 영국 왕족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3]폭탄으로 끔살해버렸는데, 요트에 탄 채로 수행원들과 형체도 없이 박살났다. IRA를 지지하던 현지 언론은 "영국 왕족도 바다 위에서 죽으니까 한낱 물고기이 되었을 뿐이다."라고 찬양했던 적도 있다.

어쨌든 이들은 잉글랜드[4]의 정부요인을 노린 테러를 행하면서 영국군에 대한 공격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해마다 영국아일랜드에 쏟아붓는 인명과 예산은 날로 불어났고 그에 비례해서 IRA의 활동도 더욱 과격해지기 마련이었다.[5]

그러나 문제는 영국군만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민간인들까지 말려들어서 피해를 입는 일이 늘어나는 데에 있었다. 이를 구실로 내부적으로도 IRA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화해 무드도 불겠다, 이래저래 테러활동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1990년대 들어 신페인당[6]도 강경노선을 전환해서 테러보다 민주적인 정치적 투쟁으로 아일랜드 통일을 달성하겠다고 점차 노선을 바꾸게 된다[7]. 결국 이들은 1998년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 영국 정부와의 3자 협상으로 굿 프라이데이 조약을 체결했으며, 신페인당과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2005년에는 공식적으로 무장투쟁을 철회하고 비축한 무기들을 파기함으로서 이 아니라 선거로 투쟁방식을 바꾸었다. 말이 좋아 화해지, 20년전 당시만 해도 이 문제는 거의 발칸반도급 문제로 답이 없다고 취급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3 분열과 현재

다만 여기서도 소수의 과격파는 무장해제에 반대하며 지금까지도 산발적으로 테러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런 무장투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후 리얼(REAL) IRA라고 지칭되고 있다. 1986년 PIRA에서 갈라져나온 아일랜드 공화국군 연속파(Continuity Irish Republican Army; CIRA), 1997년 PIRA의 무장투쟁 포기에 반발해 나온 아일랜드 공화국군 진정파(Real Irish Republican Army; RIRA) 등이 있다. 그리고 2012년 7월 26일, 이런 잔존 분파들의 대부분이 새로운 IRA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영국북아일랜드에서 철수해야만 아일랜드의 자유를 얻기 위한 무장투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도발과 분쟁을 선택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영국'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 CIRA와 RIRA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가 지정한 불법 단체이며, 영국 정부, 미국 정부는 CIRA, RIRA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다. CIRA는 세력이 작아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별 활동을 않고 있다. RIRA는 마약상이나 갱스터 같은 범죄자들과도 연루되어 있으며, 특히 더블린에서 이러한 범죄자들과 제휴 및 협력한 혐의로 비난받고 있다.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 상당수에게는 애국자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아일랜드 출신 여가수 시네이드 오코너를 비롯한 이들은 '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그렇게 따지자면 잉글랜드는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저지른 테러 유발국가 아니던가?'라면서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

이게 틀린 말이 아닌게 바로 밑에 영화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실화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건 현장을 지나갔던 젊은이가 히피차림에 무직이고 행동이 모두 수상하니 닥치고 잡아가두고 고문하며 IRA라고 억지 자백을 유도하더니만 이게 안되자 무고한 그 피해자 게리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 콘론(1923~1980)까지 잡아와 연좌제를 벌인 영국 정보부였듯이 무고한 사람을 잡아 고문을 저지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무고한 게리를 15년 가까이나 교도소에 가두고 아버지 줏세페는 고문으로 옥사했다....모두 틀림없는 실화이고 이건 영국이 욕먹고 비난당할 사실이다. 억울한 고문과 복역으로 15년 가까운 청춘을 잃어버리고 아버지까지 오명을 쓰고 한을 품고 옥속에서 죽었던 고통을 당한 실존인물 게리 콘론(1954~2014)은 살아 생전인 2005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절대로 용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테러로 맞서지 않는다. 내가 테러를 저지른다면 그자들은 자신이 한 고문에 대한 정당성이나 확립할테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니까. 비폭력으로서 그들을 응징하고 알릴 것이다."라고 절대 잊지 않았....아니 영원히 잊을 수 없었을 거다. 게리의 어머니인 사라 콘론(1926~2008)도 "남편과 아들이 억울하게 잡히면서 저는 테러범의 아내와 어머니라고 돌팔매질을 당하며 지옥같은 억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라며 그녀 역시 몸과 마음 모두 죽도록 고생해야 했다. 더불어 게리나 사라는 "자신들은 테러로 맞서지 않으나, 이런 아픔을 가지고 IRA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욕할 수도 없습니다.그들의 아픔과 그렇게 된 배경을, 그들을 그저 테러범이라고 욕만 하는 이들은 알기나 합니까? 아니 관심이라도 있습니까?" 라며 성토했다.

이거말고도 영국 측에서 북아일랜드인들은 무고하게 잡아가둬서 몇달 정도 구타당하고 심문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놓고 도저히 증거를 찾을 수 없어 풀어준 사례도 많다. 고문후유증이라든지 트라우마, 직장에서도 쫓겨나며 경제적인 타격이라든지 여러 모로 극심한 피해를 당하고 증오로 이를 갈며 IRA에 스스로 들어온 사람도 많았다.이러다 보니 시네이드 오코너가 옹호한 게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당화하기도 힘든 것이, 영국 정부나 정부관계처를 공격하는 것 이외에도 경비가 느슨한 민간인, 민간시설을 노리거나 여성과 어린이도 상관하지 않고 무차별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1972년에는 10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진 맥콘빌이라는 무고한 여성을 증거도 없이 영국의 스파이로 몰아서 납치,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례가 있다. 특히 RIRA는 1998년 8월 15일 민간시설에 폭탄을 장치하여 약 30여명의 사망자와 수백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전형적인 테러리스트의 작태를 보였다. 물론 위에 나온 시네이드 오코너도 이런 건 옹호하지 않고 비난했지만.

이러한 막장성은 RIRA가 분리되어 나오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이전부터 그러한 경향은 있었다. 원래 RIRA가 분열되기 전인 PIRA 시절부터 활동자금을 얻기 위하여 밀수나 협박,갈취,강도 등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고, 그 희생자에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정치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포인 아일랜드인까지 포함되었다. 원류가 동일함에도 무장투쟁을 포기했다는 이유만으로 OIRA도 그 공격대상이 된 시기가 있었다. 조폭집단처럼 변해 이권 다툼에 열을 올리고 목격자들에겐 IRA일이라고 침묵을 요구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서글픈 일이지만 독립한 아일랜드 공화국은 초기부터 북아일랜드 IRA와 사이가 나빴는데, 이미 20년대부터 IRA는 마이클 콜린스를 암살한 것을 비롯해, 아일랜드자유국의 자치파 온건파 정치가들을 배신자,민족분열책동자로 규정하여 납치, 암살 해왔기 때문이다. 1947년 성립된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영국의 강력한 압력협박?으로 IRA에 대한 지원과 IRA의 자국내 활동을 일절 금지하고, 해공군을 동원해 IRA의 해외 무기밀수를 적발하고 테러자금을 추적해 압수하는등 IRA에 적대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IRA는 이에 대항해 아일랜드의 은행과 우체국 등을 습격해 군자금을 탈취하는 테러 행위를 일삼았고, 이로 인해 IRA와 아일랜드 정부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동족상잔 [8] [9] 한편 아일랜드 정부의 이러한 강경한 입장과는 다르게 아일랜드 국민들 일부는 IRA에 동조하여 단원으로 가담하거나, 불법 모금으로 군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과격 IRA 단원의 모금 협박과 절도 범죄, 부유층 납치 인질극 등으로 피해를 입고 IRA 규탄 운동(...)을 전개하는 등 국론분열을 조장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도 심각한 골칫거리로 취급되어갔다. 현재도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북아일랜드 IRA, 특히 PIRA와 RIRA에 대한 견해는 극과극으로 갈리며, 국가의 치부로 여겨 언급 자체를 매우 꺼리는 실정..

또한 이들이 자신들의 테러활동에 불법으로 입수, 개조한 미국산, 일본산 무기를 사용한 것 때문에 양국의 IRA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들이 면허생산된 AR-18이북미로 수출되었다가 다시 북아일랜드로 흘러들어갔고 때문에 무기수출에 대해서 자체적인 규제를 하게 되었다. 계속된 항쟁에 쓰인 결과 AR-18은 과부제조기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테러활동만을 폭력적으로 부각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테러활동의 근원은 바로 영국식민 지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IRA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개신교 측에서 조직한 반IRA 폭력단체(예 : UDA(얼스터 방위협회), UVF(얼스터 의용군))또한 극성을 부렸다. 특히 UVF가 1974년에 벌인 더블린 폭탄 테러에서는 약 33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이들이 죽인 가톨릭 신자들의 숫자 또한 수백명에 달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IRA 측은 적어도 가능하다면 민간 시설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사전 경고를 하거나, 테러의 목표도 알반적으로는 개신교 신자 친영파 민간인이 아니라 북아일랜드 왕립 경찰단, 영국군 등의 '교전 상대'를 대상으로 설정했지만, UVF와 UDA 등의 친영파 계열의 무장 단체들은 교전 상대와 일반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톨릭계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당장 희생자 비율만 봐도 IRA 측은 군대나 경찰, 개신교계 민병대 등이 70%, 민간인이 30% 정도인 반면 개신교계 무장단체는 그 비율이 정반대이다. 물론 IRA의 테러행위를 전면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적으로 IRA만을 악의 근원으로 몰아세우는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궁극적인 원인을 결국 따지고 보면 1970년대까지도 주거, 취업, 참정권에서 악질적으로 가톨릭계를 차별했던 스토어몬트의 개신교가 지배하던 북아일랜드 의회와 이를 철저히 방임했던 런던 영국 정부에 있다. 놀랍게도 북아일랜드는 1970년대까지도 1인 1표의 보통 선거제가 아니라 보유한 재산에 따라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의 원칙에 어긋나는 제한선거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니 당연히 경제력에서 게임이 안되는 가톨릭계가 정치적으로도 제대로 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이러한 차별에 항거해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과 당시 유럽을 휩쓸던 68 혁명의 영향을 받은 비폭력 시민 저항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으나, 피의 일요일 사태로 인하여 '평화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무력 충돌이 본격화 된 것이다.

홍콩 경찰의 비호대(SDU)가 탄생한 원인도 삼합회 및 이 단체이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영국항공의 아시아 지부인 영국아시아항공(英亞航空公司)가 한동안 국적기 노릇을 했던 곳으로 영국 이권이 많이 있어서 테러 대상에 포함되었다. 안 그래도 기승을 부리던 삼합회도 손봐 주고 IRA의 기습공격도 막을 겸 경찰에 테러진압 특공대를 창설하도록 총독이 지시, 1978년 영국군 SAS에서 교관을 초빙해 와 훈련시킨 PTU(폭동진압 기동대) 대원들을 중심으로 SDU를 창설해 현재에 이른다.

4 매체에서의 IRA

4.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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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클랜시 원작소설을 영화화하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숀 빈이 IRA 리더로 나온 패트리어트 게임은 닥치고 이들이 테러리스트로 나온다. 실수한 동료를 가차없이 쏴죽인다든지 자신들 목적을 방해한 미국인 수사관인 주인공의 딸과 아내를 테러를 가하여 죽이려든다든지, 천하의 개쌍놈으로 묘사하여 북아일랜드에서는 언짢은 반응을 보였는데 평은 그냥 그래도 흥행은 꽤 성공(4500만 달러로 제작하여 전세계에서 1억 7800만 달러 수익)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영화지 로드쇼는 IRA를 미국에서 만든, 그저 악당으로 묘사한 영국 봐주기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깠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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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명연기를 보여주고 엠마 톰슨도 나온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보면 영국 정보부야말로 개객끼라고 할 정도로 정반대이다. IRA를 찬양하지 않으나, 영국 정보부는 1974년에 벌어진 IRA폭탄 테러 용의자로 무고한 사람인 게리 콘론(1954~2014)을 IRA로 몰아 잡아가서 고문한다. 당연히 울며불며 모른다고 하는 게리는 1년 넘게 버티지만 1976년에는 영국 정보부는 아버지 주세페 콘론까지 잡아와 심문하는데 아들을 위하여 아버지는 엉터리로 자신이 알뿐 아들은 모른다고 하여 같이 고문받는다...세월이 지나 무려 14년동안 복역하던 게리는 1989년 무죄가 드러나 나오지만 그는 엉엉 울면서 절규해야 했다. 아버지 주세페는 고문을 견디지못하고 1980년에 옥사했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게 죄다 실화이다. 이걸 보면 IRA가 나올만하다고 할 정도로 패트리어트 게임과 이걸 보면 극과 극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1998년에서야 사죄했을 정도로 영국에서 감춘 추악한 실화인데 톰 클랜시는 이 영화를 봤냐는 질문에 안봤다고 말을 피했다고 한다. 이 작품도 1200만 달러로 만들어져서 전세계에서 7000만 달러 정도 벌어들이며 흥행도 성공하고 1994년도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도 받으며 평도 성공했다. 게리와 어머니 사라(1926~2008)는 죽을 때까지 영국 정보부를 비난하고 아버지와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며 활동했다. 영화 끝나고 나온 자막이 소름끼치는데 이 영화에 나온것처럼 온갖 고문과 인권 침해를 저지른 이들은 누구 하나 처벌당하지 않았다.

  • 데블스 오운(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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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 오운은 중립적으로 본다. 패트리어트 게임에서 IRA를 테러범으로 미워하여 맞서던 해리슨 포드가 여기에선 아일랜드계 미국 경찰인 톰으로 나오며 1972년 블러디 선데이 학살로 아버지가 억울하게 영국 경찰에게 사살당한 걸 보고 자라나서 영국에 대하여 증오를 가지고 IRA에 들어간 주인공 프랭키를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이미 미국인이 된 톰은 처음에는 IRA를 테러범으로 보긴 하지만 그 정체를 모르고 미국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던 프랭키와 친해지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고민한다. 테러를 벌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지만 미국은 영국 편을 들어주고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은 조국 북아일랜드에 대하여 우린 당하고 있어야 하냐며 따질때 고민한다. 테러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그 피해를 따지지만 차별당하고 어렵게 사는 북아일랜드 대다수 사람들 피해를 따지는가?...이런 질문을 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가해자인 영국인(그러나 켄 로치는 진보적 사고방식으로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를 비난해왔기에 영국 보수파랑 사이가 나쁜 감독이다.그의 영화들도 한국으로 치자면 좌파라고 수꼴에서 깔 영화들이다. 노동문제나 여러 모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다.)이 감독한 수작이다.

  • 71 (한국 제목은 71: 벨파스트의 눈물)(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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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화 71은 당시 벨파스트에 파병된 영국군이 낙오되어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긴장감이나 여러 모로 볼만하지만 결국은 북아일랜드 폭동이라는 점으로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옹호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발도 거셌다. 비평은 좋았으나 810만 파운드로 만들어 290만 파운드를 벌어들이며 흥행은 망했다... 2016년 7월 21일에 한국에 개봉한다.

4.2 만화, 애니메이션

  • 마스터 키튼 -IRA 관계자를 죽이는 영국 정보부원이 나온다. 사실 그도 과거에 IRA를 추격하다가 폭탄 테러에 휘말렸고,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지만 건물 잔해에 깔린 채로 며칠동안 갇혔는데 동료는 온 몸이 박살나 모가지만 남아 그 시체를 눈 앞에서 맞닿은 채로 그 며칠을 견뎌야 했다. 뭐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 셈이지만 결국 IRA랑 상관도 없는 키튼도 방해한다고 죽이려드는 걸 보면...
  • 기동전사 건담 00에서 리얼 IRA라는 명칭으로 3화 마지막에 잠깐 등장한다. 무려 400년 동안이나 항쟁했다고(...)[10]
  • 용오 - 한국 정발이름은 용오인데 일어판 원제는 유고. 여기서에서 IRA를 더 좋게 봐준다.일본인인 내고시에이터인 유고(한국 정발판은 용오)를 영국 정보부가 잡고 고문한다. 하지만 유고는 IRA에 대하여 테러를 비난하며 중립적으로 나선다. 막판에 영국 정보부원들이 기지를 습격하지만 양복차림에 깔끔하게 준비한 리더만 남아 일부러 생방송중인 영국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연설한다. 리더는 연설로 욕설같은 건 없지만 은근히 영국 정보부원을 자극하며 유고와 알던 정보부원이 권총을 겨눈다.하지만 리더는 무서워하긴 커녕 되려 미소지었고 그 뜻을 알아차린 주인공 유고가 막으려했으나 늦은 다음이었다.사살당한 리더가 가진 권총은 총알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휘하 조직원들은 장비나 정보, 모든 걸 깨끗하게 들고 철수한 다음이었기에 텅 빈 기지는 아무 것도 없고 그 리더 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목숨을 바쳐 IRA를 거룩하게 홍보한 거였다...방송으로 죽음 전에도 리더는 전혀 비굴하지 않고 멋지게(...)연설했으며 총알도 없는 걸 그저 닥치고 쏴버린 것으로 북아일랜드 전역에 방송된 터라 화면을 보던 북아일랜드 민중들이 분노하면서 여론이 IRA를 편들어버렸다. 유고는 북아일랜드를 떠나면서 다시 끝도 없는 충돌이 이어진다고 씁쓸해한다.

4.3 드라마

  • 스트라이크 백 - 시즌4 6화에서 NATO의 운용사항이 담긴 드라이브를 얻기 위해 IRA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 테러를 감행한다.

5 야구용어

IRA(야구) 항목으로.

6 EZ2DJ의 작곡가 KIEN

KIEN의 명의 중 하나. Eraser Rain for GAIA, Tempus Praeterita를 이 명의로 수록했다. EZ2AC EV에서는 Harpe for GAIA를 수록했다.

  1. 위에 쓰인 글자는 BRITS OUT (영국놈 꺼져라)라는 것이다.
  2. 혹은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 왜 임시인고 하니, 이들 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현행 헌법적 체제인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나,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나 모두 불법적인 1922년 분단 조약에 기반하여 새워진 불법 정권이며, 한단계 더 나가 1960년대 말 IRA의 분열 당시의 IRA 최고 군사 평의회 또한 무장 투쟁과 가톨릭 아이리시에 대한 보호를 포기했으니 정통성을 잃었다진짜배기 아일랜드 전역의 합법적인 정부는 자신들의 군사 평의회라는 명목으로 붙힌 것이다. 즉, 한국어로 그 느낌이 통하도록 적절하게 의역하면 아일랜드 공화국 임시 정부군 정도가 된다.
  3.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숙부로 당시 79세의 나이였다. 2차대전 당시 서남아시아 전선 사령관이기도 했다.이 사건후,IRA는 엘리자베스 2세에게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죽은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복수라 하였다.
  4. 영국의 정식명칭은 "대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다. 적어도 나라 이름만큼은. 월드컵에 영국팀이 안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자국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조차도 다른 나라들이 단일팀을 결사거부하여 겨우겨우 웨일즈와 반쪽짜리 단일팀을 이루었다. 결과는 8강에서 대한민국을 만나서 탈락….
  5. 아일랜드 시가지에서 FN FAL을 쓰고있는 영국군 병사들이 찍힌 사진에는 이런 뒷배경이 있는 것이다. 총이나 군복보고 멋있다고 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는 이런 피눈물나는 역사가 있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6. 신페인당은 PIRA의 우당(友黨)으로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다.
  7.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파, 얼스터 연방주의파, 영국 정부 사이의 지지부진한 교섭과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평화협정은 1998년에야 체결됐다.
  8. 당시 아일랜드군의 국내 주요 임무가 IRA를 규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되었을 지경, 아일랜드군은 북아일랜드 영국군과는 거의 충돌이 없었으며, 오히려 IRA단원들의 국경 침투를 감시하며 무기 밀매를 단속하는등 영국군을 간접 지원하는 역할을 더 많이 했다.
  9. 물론 당연히 개개인의 차원으로 가면 IRA에 동조하는 아일랜드 공화국인들 또한 굉장히 많았고,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과 국방군 내에서도 이런 동조자들은 많았다.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말로는 서로 적대하는 관계라지만 UDA와 UVF를 비롯한 친영 무장 단체들과 영국군, 왕립 얼스터 경찰단의 내부 협조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면, IRA 또한 아일랜드 공화국 국방군과 정부 내의 협조자들 여럿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처벌한다는 건 IRA나 공화국 정부나 근본적으로 정신적으로는 공유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반하는 행동으로 인식 되어 공화국 정부는 이런 내부의 불법 커넥션을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못했다. 당장 저걸 단속하려고 들면 나올 그림이 뻔하지 않은가? "아이고 아일랜드 동포들아 이거 좀 보소 핍박 받는 이북 동포 좀 도와준다고 하니 영국한테 얼스터를 팔아 먹은 자유국 괴뢰놈들이 이번에도 또 애국자를 괴롭히네"라는 식으로 언플을 벌이면 이미 분할조약으로 영국에게 얼스터를 팔아 먹은 배신자 정권이란 낙인이 찍혀 있었던 공화국 당국 입장에서는 한숨만 푹푹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0. IRA 저항가요 중 Go On Home British Soldiers라는 노래 가사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너희(영국)와 800년 동안 싸워왔고, 앞으로도 800년간 싸울 것이다.' 라는 가사가 있다. 800년 후 추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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