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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그림.
Ladies-in-waiting, Maiden. 유럽의 왕실, 귀족가문에서 왕비나 귀부인을 곁에서 모시는 일을 맡은 여성들. 동양으로 치면 궁녀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시녀는 높은 신분의 여성이지만 궁녀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시녀는 궁녀와 달리 결혼도 가능하다.
시녀라는 말을 들어보면 하는 일이 메이드하고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어떻게 지체 높은 귀족 여성이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을 하겠는가? 잡다한 일은 모두 일꾼들이 했고, 시녀들이 하는 일은 외출이나 접견시의 수행원이나 궁정의 행정 업무와 같은 것들이었다. 메이드복 그런 거 없다(…). 엄연한 화이트칼라로 메이드가 가사도우미라면 시녀는 비서나 보좌관에 가깝다. 메이드가 주로 하층 계급의 여성들이 맡는 일이었던 것과는 달리 시녀는 매우 높은 가문의 아가씨나 부인들이 맡았다. 예컨대 루이 14세 시기 프랑스 궁정 법도에 의하면 궁중시녀장은 최소 백작부인 이상의 신분을 가진 귀부인만이 맡을 수 있었다. 이처럼 왕후의 시녀는 대귀족 가문의 귀부인이나 아가씨들이 맡았으며, 귀족의 시녀는 그보다는 조금 더 신분이 낮은 귀족 영애들이 맡는 식이었다.
시녀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존재했던 개념이기에 그 동안 변화가 있긴 했지만 본질적인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 동양과 달리 유럽의 시녀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 인맥을 쌓고 교양을 익히는 친목 모임으로서 미혼 귀족 여성에게는 혼사를 물색하는 신부수업이나 마찬가지였고 기혼 귀족 여성에게는 자녀들 사이의 인맥이나 정보 교류를 위한 장이 되었다.[1] 기사들이 들이는 스콰이어와 같은 개념. 왕족 여성, 특히 왕비나 공주 등의 시녀가 되는 것은 귀족 여성으로서 명예 중의 명예였고, 이로 인해 생기는 인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녀나 그 남편, 부모 등에게 떡고물이 떨어졌기에 연줄을 대가며 자기 아내나 딸을 시녀로 들이려 혈안이 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또 시녀가 메이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메이드의 기원은 부르주아 계급이 옛 대귀족 계급이 시녀를 두던 관행을 흉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보다 한 단계 아래 계급인 하층민들을 고용하는 것.
중세 종교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풀이해보면 "종교가 짱이니 철학은 종교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섬겨라!"의 의미가 아니라 '종교와 철학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에 더 가깝다. 굳이 시녀라는 단어를 써서 종교의 우위를 나타내긴 했지만.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어떤 귀족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성인(聖人)을 섬기지는 않았으나 대신 시녀들에게 기도를 올렸다.'[2] 그만큼 왕궁 여관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권력에 직접 연결되는 일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여관의 급여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신 수많은 청탁(!)이나 뇌물이 오갔고 그것으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총애하는 시녀들에게는 몇 가지 은전을 내렸고 또한 어린 시녀들에게 좋은 혼처를 물색해주는 한편 시녀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할 상황에서 제지해주기도 했다. 대신 시녀들은 여왕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었다. 여왕은 시녀들의 후견인이나 다름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당시 왕궁 여관이 된다는 것은 좋은 혼처를 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한 여관이 그만두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즉시 12명의 신청자가 몰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학구파였기 때문에 시녀들 역시 내로라 하는 학식을 보유한 귀족 여성들이 대부분이어서 엘리자베스 1세 재위 시절 잉글랜드 궁정을 방문한 사절들은 마치 대학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