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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ライフル魔事件[1]
1965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총격전. 단 한명의 소년이 무려 7천명의 경관에 맞서서 액션영화를 방불케하는 총격전을 벌인 사건이었다.
1 총에 미친 소년
사건의 발단은 1965년 7월 29일, 도쿄 시부야에서 약 50km 떨어진 카나가와현 코자군 자마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을 관할하는 야마토 경찰서에 정체를 알수없는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내용은 한 소년이 산에서 공기총을 쏘고 있으니 빨리 출동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은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신고전화의 내용대로 소년이 공기총을 쏴대고 있다는 산으로 출동했다. 경찰이 소년을 불러세우자 갑자기 소년은 공기총을 경찰에게 겨누고 발사했다. 경찰관의 가슴에 총탄이 명중했으나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소년은 총을 맞고 쓰러진 경찰관을 개머리판으로 수차례 내리쳐서 살해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 정체불명의 신고전화는 공기총을 지닌 소년 본인이 한 전화였고 경찰을 유인해서 죽인 다음 경찰이 가지고 있는 권총을 빼앗으려는 목적에서 저질렀다고 한다. 소년은 경찰관을 살해한후 권총과 제복을 강탈했다.
얼마뒤 출동한 경찰관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경찰서에서 두어명의 경찰관을 더 현장으로 보내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소년은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들에게도 권총을 발사했고 경찰관중 한명이 총을 맞았다. 다행히 이 경찰관은 죽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다른 경찰관이 놀라 허둥대는 사이에 도망쳤다.
소식은 즉시 카나가와현 경찰에 들어갔고 긴급수사본부가 차려졌다. 하지만 소년의 행방을 찾을수는 없었다.
2 소년, 시부야로
도망치던 소년은 지나가던 차를 세우고 경찰관이라 자신을 속이고서는 급한 일이 있어 파출소를 가야 하니 자신을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소년이 경찰관 복장을 하고 있던 터라 운전자는 별 의심 없이 소년을 태워주었다. 하지만 운전자가 근처 파출소에 차를 세우자 당황한 소년은 운전자를 권총으로 위협했다. 이미 카나가와현 내 경찰들에게 경찰차가 아닌 민간인 차량을 타고 경찰관이 나타나면 총기를 강탈한 소년이라 생각하고 대응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상황이었으나, 운전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통에 경찰들은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 몇분간의 대치가 이어지던 중 파출소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상하게 여겨 지나가던 차가 정차하자 소년은 위협하던 운전자를 경찰관들을 향해 밀어버리고 정차한 차에 올라타서 운전자를 위협해 출발하게 했다.
소년은 도쿄 방면으로 차를 몰아가게 하다가 라디오 방송에서 카나가와현 경찰이 도쿄 방면에 검문검색을 강화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를 피하기 위해 차를 카나가와현 가와사키시로 돌리게 했다. 차가 카와사키시에 도착하자 타고 온 차에서 내려 다른 차를 총으로 위협해 갈아타고 도쿄도쪽으로 올라가서 고가네이시로 향했다. 소년이 코가네이시에 도착했을 무렵에 카나가와현 경찰은 그제서야 카와사키시에서 소년이 세번째로 차를 강탈해 도주했다는걸 알고 카와사키시 인근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그러던중 코가네이시의 코가네이 공원에서 소년이 세번째로 강탈한 차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300명의 경관이 동원되어 코가네이 공원을 포위했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코가네이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이 탄 차에 올라타 그들을 총으로 위협하고 코가네이 공원을 탈출해버렸다. 그리고 시부야로 차를 몰게 했다. 소년이 시부야로 향한 이유는, 자신이 처음 구입했던 공기총을 산 곳이 시부야에 있는 총포상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총탄을 강탈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경찰은 코가네이 공원 일대만 수색하고 다녔고 이를 위해 도심부의 경찰관들까지 동원한 터라 시부야와 신주쿠 일대의 경찰관들이 코가네이 공원쪽으로 출동하면서 공교롭게도 시부야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소년은 차로 목적지인 시부야의 로얄 총포상이란 곳에 도착했다. 소년이 차에서 내려 로얄 총포상에 들어가려던 차에 네번째로 강탈된 차의 인질 2명이 차에서 내려 도망쳤고 소년은 권총을 쏘려 했지만 당황해 권총을 빨리 빼는데 실패해서 인질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들은 인근의 소방서로 뛰어들어가 총을 든 남자가 총포상에 들어갔다고 말했고 소방서는 즉시 경찰에 이를 알렸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총포상에 난입해 직원 3명을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경찰이 출동해 소년과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필 그곳이 번화한 시부야였던 데다[2]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퇴근시간과 겹쳐서 사건은 금새 알려졌고 구경꾼 수천여명이 몰려들었다.사건이 일어난 로얄 총포상은 시부야역에서 불과 5분밖에 떨어지지 않은곳인지라 더욱 그러했다.
소년은 무려 7천명이나 되는 경찰관들 및 구경꾼, 기자들에게 110여발의 공기총탄을 쏴댔다. 이때문에 경찰관을 비롯, 구경꾼과 기자등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경찰은 소년을 진압하기 위해 총포상에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가스에 견디지 못한 소년은 두 명의 여성 인질을 방패삼아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던 사이 몰래 접근한 두 명의 경찰관이 소년과 몸싸움을 벌였고 소년은 한 경찰관을 총으로 쏘고 도망치려 했으나 다른 경찰관이 소년을 붙잡아서 시부야 총격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3 범인
이 소년의 이름은 카타기리 미사오로 이때의 나이는 불과 18살밖에 되지 않았다. 1947년 도쿄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카타기리는 내성적인 성격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이상하게 강한 것에 집착했고 그 결과로 총에 미쳐버리게 되었다. 이미 어릴때부터 직접 총을 만들고 개조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때는 진짜 총을 가지고 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위대에 입대원서를 냈지만 탈락했다고 한다.자위대에 갔어도 총기사고 일으켰을 듯 결국 스스로 총을 가지겠다는 생각에 18세가 되어 총기소유 면허를 취득하고 소원하던 자신의 총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총기소유에 제한이 많아 공기총이 일반적으로 보급된 총기류인데 그나마 이 당시에는 공기총류를 소유하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기총만으론 만족을 못한 카타기리는 권총을 갖고 싶어했고 결국 권총을 갖기위해 경찰관을 사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보통이라면 총기 매니아 정도로 끝날수도 있었으나 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결국 범죄로 이어지게 되었던것이라 볼수 있을듯.
4 사건 이후
카타기리는 오야부 하루히코의 야수는 죽어야한다[3] 라는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아(...)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1967년 4월 13일, 요코하마 지방법원은 카타기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1968년 도쿄고등법원은 카타기리가 교화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1969년 10월 2일, 일본 최고재판소도 고등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여 사형이 확정되었다.
카타기리는 "지금도 총의 매력에 빠져있다. 더이상 사람을 죽일 수 없게 사형시켜달라"라고 했다 한다. 결국 1972년 7월 21일, 카타기리 미사오는 25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균사류만도 못한 이시하라 신타로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혐오의 저격수"를 집필하기도 했다. 읽어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