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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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4일 ~

1 개요

대한민국 공화당 소속의 정치인.

196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부산 성도고등학교남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2009년 백석문화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이 때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결혼했다. 참고로 박근령보다 13살 연하. 2014년 공화당(2014년)을 창당해 총재를 맡고 있다.

2 활동

2014년에 들어서 친허연대와 공화당을 합당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공화당(2014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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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때 석고대죄를 하였다. 석고대죄는 원래 왕족이 하는 것이라는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3 논란

결혼 당시 박근령의 남동생 박지만이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남매 사이와 처남 매부 사이가 모두 틀어졌다. 그 후로 박근령과 박지만 사이에 재산 분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신동욱은 박지만이 사람을 시켜 자신을 중국으로 유인해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고 박지만은 헛소리라고 반박하며 고발하는 등, 남보다도 10배는 못한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삼성가의 이부진임우재의 이혼소송 및 폭로전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래도 임우재가 자신보다는 나은 처지라며 "임우재 고문이 ‘옛 시절에 부마는 잘못하면 산속에서 살았다’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지만, 나는 ‘부마는 공주의 부속품이니 인간 신동욱은 없다’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힘없는 게 죄입니다"라는 명언(?)을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물론 박지만하고만 사이가 나쁜 게 아니라 처형이 되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당연히 당연히 사이가 좋지 못하다. 2009년에 박근혜 당시 의원의 미니홈피에 육영재단 관련 비방글을 수십차례 올렸다가 본인한테 고소 당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하다가 구속되어 결국 2012년에는 징역 1년 6월이라는 실형을 선고 받았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분향소에 검은 리본 수백개를 달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노란 리본이 아니라 검정 리본이다. 노란 리본의 의미는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에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이 벌어진건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의미였는데,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를 가진 검은 리본을 달았으니, 당연히 많은 이들의 빈축을 샀다. 참고로 노란 리본 캠페인은 청와대도 동참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였다..

2015년 8월에는 박근령의 니코니코 인터뷰 사건에 대해 "박 다르크"라며 "총대를 맨 용감한 행위"라고 옹호하였다. 이 일과 관련해 10일 6시경에 MBN 뉴스에 인터뷰로 참여해 앵커와 거친 대화를 나누었다. 보수단체일베를 보면 아내의 발언이 얼마나 발언이 옳았는지 안다고 뉴스에서 호소하였고, 팩트의 중요성에 대하여 짧게 발언하였다. 11일에는 패널에 출연하여 여러가지에 대해 이야기 한 듯 하다. 논점이 왔다 갔다 했지만, 끝은 항상 노무현 탓이다. 이 덕분에 의외로 1968년생치고 얼굴이 동안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2015년 8월 18일에는 노란 리본을 단 김연아를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에서는 노란 리본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이념관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노란 리본 캠페인에 동참한 청와대도 종북이고, 처형인 박근혜 대통령은 종북의 우두머리가 된다.(...) 읍읍! 판사님,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2016년 2월 18일에는 성매매 합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우리나라에도 성매매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고, 공화당의 당론을 성매매 합법화로 바꾸고, 성현아한테 입당과 동시에 공화당 대변인을 맡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성매매 합법화의 필요성을 주장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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