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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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서부터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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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 박지만(朴志晩)
출생 1958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본관 고령 박씨
부모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육영수
형제 친누나 박근혜, 박근령
가족 배우자 서향희, 아들 4명

2 소개

박정희의 아들이자 박근혜 대통령 및 박근령의 남동생, 그리고 (주)EG[1]의 회장이다.

3 트리비아

1958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2]에서 당시 육군 제1군 참모장 박정희 소장과 후처 육영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누나만 셋이다.(박재옥(김호남과 박정희 사이에서 태어난 딸.), 박근혜, 박근령) 사실 박정희가 여대생 이현란과 동거할 때, 태어난 아들은 얼마 못 가서 죽었다. 이때는 박정희가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이었다.

1977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들어갔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군복무하다 교통사고[3]를 겪는 바람에, 의무 복무기한인 5년만 버티고, 1986년에 대위로 전역한다. 1974년(고등학교 1학년)에는 어머니 육영수, 1979년(육사 3학년)에는 아버지 박정희를 잃었다. 1989년 처음 마약을 사용하여 구속 되었고, 이후 전역 후 죽은 어머니가 세운 육영재단에 들어가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이후 중독 및 의존 증상으로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으로 인해 여러 차례 구속수감되었다.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이던 김대중을 지지하였다.[4] 2000년, 삼양산업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EG로 변경하였다. 2004년 12월 14일, 16세 연하인 변호사 서향희와 결혼하여 2005년 장남 세현을 얻었다. 이후 2014년 둘째 아들을 얻었고 2015년 초에는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그러니까 아들만 넷! 더더구나 2015년 기준으로 박지만은 5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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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아들로서 영상물에서는 제5공화국에 단역으로 나왔다. 이때는 김남길이 연기했다. 알다시피 김남길은 2016년 시점에서는 인기가 많지만, 2005년에는 새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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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씨의 득남을 열렬히 축하하는 경상북도 구미시의 노인들. 박정희의 고향으로서 그에 대한 지지와 향수가 매우 높은 곳임을 플래카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4 논란

4.1 마약 투여 논란

박지만은 1989년 부터 2002년 까지 마약을 투약한 것이 6차례 적발되었고 이 중 5번 구속되었다. 여관.호텔이나 사창가에서 윤락녀들과 수백 차례 마약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져 충격을 주고있다.
1989년 필로폰 상용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1991년 필로폰 상습 복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구속 이유는 1990년 7월, 11월, 12월 그리고 1991년 1월 네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코로 흡입하거나 정맥주사를 통하여 복용한 혐의이다.
1993년 12월 25일 박지만은 1992년 10월 부터 서울 영등포동,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들과 함께 50여회에 걸쳐 필로폰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1996년 11월 19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서울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하는 등 자신의 집, 사창가, 호텔 등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상습 투약을 한 혐의이다.
1998년 2월 2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긴급 체포한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으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1997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주사기를 이용하여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이다.
2002년 7월 25일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박지만에게 필로폰 투약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월 및 치료감호 그리고 추징금 260만원을 구형하였다. 기소 이유는 2001년 8월 부터 2002년 4월까지 서울시내의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12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윤락녀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이며, 2002년 5월 구속기소되었다.

4.2 군인사 영향력 논란

그와 동기인 육사 37기가 육사 한 기수당 평균 6~7명 정도 배출하던 중장을 8명이나 배출하는 바람에 그가 군인사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으나, 대장 3명 배출한 32기, 34기도 있는 마당에 중장을 다른 기수보다 한 명 더 배출한 것을 두고 인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그와 절친한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 취임한지 1년만에 밀려나 전역 대기직인 3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것을 볼 때, 영향을 끼친 건 맞는데 그게 영향이었던 걸로 보인다.

또한 2015년 9월 대장 진급 발표심사에서 박지만 라인은 전원 광탈했다. 박지만과 동기였지만, 그와 접점이 적었던 김영식 항공작전사령관, 엄기학 합참 작전본부장, 박찬주 육군참모차장을 비롯한 셋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더구나 김영식 중장은 한직을 받았는데도 대장에 진급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박지만과 사이가 매우 나쁜 정윤회의 인사개입에 의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1.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소재. 금산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금산은 명목상의 본사일 뿐 향토기업 회장 집무실을 포함한 오피스 빌딩은 강남에 'EG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포스코의 명목상의 본사는 포항 제철소지만 삼성동 포스코빌딩이 실질적 본사인 거랑 같은 이치
  2. 1975년 10월 1일 중구로 편입되었다.
  3. 1985년 3월 23일 0시 5분에 피아트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제3한강교각을 들이받아 전치3주의 부상을 입어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었다.
  4. 이로 인해 동교동계의 대표적인 인사인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