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주의(마오이즘) 에서의 과도기적 이념으로의 신민주주의.
1 개요
모택동은 1940년 1월 "신민주주의론"이라는 논문에서 “중국혁명의 역사적 과정은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두 단계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의 주도가 아닌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중국의 혁명이 단순히 독립국가 건설과 구 체제의 인사들을 반대하고 외세를 배격하는것에 지나지 않고, 공산당의 영도를 받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주축이 되어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함을 뜻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중국의 독자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기존의 부르주아지와 민족주의자들의 혁명이 단순히 자본주의 국가를 성립하게 되는것에 반해, 신민주주의 혁명은 각 혁명적 계급들이 연합하여 민주공화국을 만들게 된다고 한다.
이는 기실 기존의 공산주의 혁명론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기존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된 뒤, 자본주의 체제가 무르익은 뒤, 노동자가 주축이 되고 공산당의 볼셰비키가 주축이 되어 혁명(무장혁명이든, 전민항쟁을 통한 민중혁명이든)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시킨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그 외의 계층은 상당부분 소외되거나 배제된다. 볼셰비즘에 의하면 혁명의 수뇌부는 볼셰비키만 가능한 것이므로.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시키기에는 노동자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실제로 소련식 노선을 맹신하다가 난창봉기를 비롯하여 몇몇 도시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중국 공산당은 번번히 실패하고 오히려 도시에서 영향력을 잃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택동은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던 인민혁명 노선을 일부 수정하여 중국의 현실에 맞추게 된다.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려면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조직하여 노동자, 농민 뿐만 아니라 지식인, 소부르주아, 민족 부르주아, 애국적 민주인사, 진보적 민족주의자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공산주의 혁명가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짓, 그야말로 어중이 떠중이 집단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1][2] 이들과 함께 신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공산혁명에서 주장하는것 처럼 굳이 자본주의가 무르익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단번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이 가능하게 된다. 참 쉽죠?
"신민주주의론"에 따르면 중국에 서구의 침략이 가시화 된 시기부터 신해혁명, 5.4운동, 북양군벌을 몰아낸 북벌은 부르주아 혁명에 해당하므로 낡은 혁명이고, 그러므로 쑨원의 삼민주의는 구민주주의라 부른다. 반면 중국 공산당이 선도하는 투쟁은 새로운 민주주의, 다시말해 신민주주의 혁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보기에는 한간,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중국인들로 이루어진 평등한 사회주의 지상락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나 1954년 9월, 중국공산당이 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을 때엔 소부르주아와 민족부르주아에 대한 항목이 빠지고, 오히려 이들도 투쟁 대상에 집어넣음으로서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성립을 천명해 버렸고, 후에 백화제방 운동이 몇달 안가 끝났을때 이들 세력은 죄다 정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쉽게 말해 완전히 토사구팽. 결국 신민주주의는 공산당의 역량 강화를 위해 중도파나 우호적인 집단을 포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해방 후 김두봉, 백남운을 위시한 연안파들의 정당이었던 조선신민당[3]이 이 노선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