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성


1907년 11월 16일에 촬영된 사진.

1 개요

愼順晟, 1878년 1월 27일 ~ 1944년 2월 7일. 구한말일제강점기군인이자 상선사관이다.

2 생애

1878년 1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동경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한 뒤[1]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갑종 해기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후에 상선사관으로 근무하다가 1902년에 대한제국군이 첫 근대식 군함인 양무호를 도입하면서 근대적인 배를 몰아본 경험이 있는 그를 초대 함장으로 초빙하였다. 그러나 재정문제로 양무호는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 했고 1904년에 그는 세관순시선인 광제호로 소속을 옮겼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그는 민간으로 이동해 상선사관으로 근무하였다. 군 복무기간은 결국 1902년에서 1904년으로 짧은 편이었다. 최종계급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함장이란 직위등으로 볼 때 영관급 장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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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과 찍은 사진. 세관순시선 광제호 시절의 사진이며 맨 뒷줄 오른쪽이 끝이 신순성 함장이다.

그가 한일합방 전에 광제호에서 내린 태극기는 개인적으로 보관되었다가 1945년에 독립이 되면서 당시 유일한 기선인 부산호의 취항식에 다시 게양되었다. 신순성 본인은 1944년에 세상을 떠난 터라 이를 직접 보진 못 했고 아들이 대신 기증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바다에서 배 타는 일을 불경한 것으로 여겼지만[2] 그는 일찌감치 해양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이런 점에선 구한말의 인물이지만 항공력의 중요성을 간파한 노백린과 비슷했다.

3 미디어

  1. 원래는 해군장교를 양성할 계획으로 일본해군병학교에 유학하도록 유도했지만 일본 정부가 불허했다. 조선인과 대만인 입학자를 조금이라도 받은 일본육군사관학교와 달리 순혈주의가 강한 일본해군병학교는 학교 문을 닫을 때까지 외국인을 받지 않았다.
  2. 바다에서 죽으면 주검을 찾기 어려운데 이는 죽은 이를 매장하고 상을 치르는 유교에서 매우 기피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