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潤福, 1758 ~ ?
자는 덕여(德如), 호는 혜원(蕙園).
일명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영조, 정조 시기의 화가.
1 개요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한편으로 김홍도(단원), 장승업(오원)과 함께 삼원(三園)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숙주의 방계 후손이다.
2 화풍
김홍도가 서민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1]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을 주로 그렸으며, 특히 여성들의 생활상이나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김홍도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기생들[2]과 양반들이 주요 모델이였기에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인 혜원전신첩은 양반 문화와 그들의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3 작품 목록
4 성별 논란(?)
이렇게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그림 이외에 그에 대한 자료는 매우 부족하다. 때문에 여성을 주로 그린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냐는 설까지 나왔으나 '기록이 없으니 이렇게 상상해볼 수도 있지 않나' 수준이라 학계에서 별 설득력은 커녕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그렇게 되면 미소녀 일러스트레이터들이나 만화가들은 모두 여자냐?
바람의 화원의 소설판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설이었으나 이 소설이 드라마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으며, 영화 미인도까지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의외로 보편화했다. 하지만 누차 이야기하다시피 신윤복은 절대 여자가 아니다!!!
일단 신윤복의 가계도와 신윤복 가문의 족보를 보면 남자로 확인되는 상황. 그런데 신윤복의 화풍과 스타일은 여성미가 느껴진다, 섬세하다 등등 연이은 드립으로 여자로 몰고가려고 하는 인간들은 아직도 존재하는 중이다. 또한 모 역사서에서 신윤복이 화원에 임명됐다가 쫓겨난 이유가 화원으로 생활하던 중 여자인 게 들통나서라고 하는 설도 있는데 만약 신윤복이 여자고 그 상태에서 화원 생활하다가 들통났다면 그것은 단순히 화원에서 쫓겨난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나랏님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단순히 화원 하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떠나서 나라가 발칵 뒤집힐 대사건이다.[3]
물론 이에 대해 소설, 드라마등의 매체등을 통해서 한국미술과 그 역사가 제대로 조명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이것도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한국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괜찮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신윤복은 여성화가라고 전달되어 그들의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효과는 더 크다. 조선초 희대의 망나니라 평가되는 양녕대군이 소설과 드라마덕에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왕 자리를 양보한 대인배'로 현재까지 인식되고 있는 것만 해도 바로 이때문이다.
김홍도와는 달리 현재까지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미인도 한 점은 절대 그의 자화상이 아니니 유념할 것.
5 창작물에서
- 바람의 화원 - 소설 원작으로 드라마와 만화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