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랑 부부

1 소개

"음메, 기 죽어! 음메, 기 살어!"
"방 빼!"(지영옥)

"못 빼!"(김한국&김미화)

KBS에서 1988년~1990년까지 방영된 쇼 비디오 쟈키의 개그 코너로 김미화를 한국 최고의 개그우먼으로 만든 전설의 코너.

개그맨 김한국과 김미화가 부부로 나오고, 세트 한쪽에서 이 부부에게 츳코미를 넣거나 맞장구를 쳐주는 관찰역인 국악인 신영희씨가 앉아서 판소리 북을 치면서 추임새를 넣어준다. 또한 애완견으로 행국이가 가끔씩 등장한다. 쓰리랑부부가 세들어사는 집의 집주인으로는 개그우먼 지영옥씨가 등장한다.

참고로 처음에는 부부 둘만 사는 집 설정이었다가 방영 중에 자식이 있는 설정으로 바꾸기도 하였는데, 그 둘의 딸인 김새네 배역을 한 사람이 당시 초등학생 아역배우였던 이재은[1]이었다.

2 발단

KBS '쇼 비디오 쟈키'에서 당시 동기였던 김한국[2]과 아크로바트를 엉터리로 하는 코믹 남매 연기를 하는 '아리랑 남매'라는 코너를 하게 되는데, 한창 방송되던 와중에 그 방송의 피디에게 남매 설정을 부부 설정으로 바꾸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김미화는 매주 방송되는 코너라 갑자기 남매가 사람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대로 부부역할이 되는 건 느낌이 어색하여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말했으나 피디가 계속 요구를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부부로 새롭게 설정을 짜 보기로 한다.[3]

부인 역할로써의 새로운 설정을 고민하다가 일단 외모와 성격을 이전 여동생 역할보다 더 강한 쪽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 이전부터 만화가 故 길창덕 화백이 여성중앙에 연재하던 인기 만화였던 '순악질 여사'라는 만화를 좋아하여 그 만화에 나오는 인물을 개그의 배역으로써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강한 인물 설정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를 기억하여 순악질 여사의 성격과 외모를 따온 역할로 설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눈썹이 일자눈썹인 그 캐릭터와 비슷한 모습을 위하여 눈썹에 검정색 테이프를 붙이고 드센 부인 '순악질 여사'의 연기를 하기로 한다.[4]그러나 눈썹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껴 크기가 작은 어린이용 야구방망이까지 준비해, 드세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드는 부인으로 역할을 확정하고 코너를 준비한다.

이 코너가 바로 그녀를 최고의 스타 개그우먼으로 만들어 준 전설의 개그 '쓰리랑 부부'이다. 바뀐 제목은 전유성이 지어줬다고 하는데,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와 김한국이 코너의 새로운 제목을 결정할 일만이 남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의 선배인 전유성이 원래 아리랑 남매였으니까 쓰리랑 부부로 하면 된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정해줬다고 한다. 아리랑 가사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니까 아리랑 대신 '쓰리랑'을 앞에 넣고, 부부역할이 되었으니 '남매'가 있던 자리에 '부부'를 넣으면 된다는 이유.[5]

3 인기

코너가 처음으로 선보이던 날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이 될 때마다 인기가 올라가 KBS의 최고 개그 코너가 된다.



처갓집 양념통닭의 광고.

당시 사회 분위기상 남성들에게 우위를 빼앗기며 살아온 여성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헐렁한 남편 김한국에게 실컷 바가지를 긁는 순악질 여사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남성시청자들은 드세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는 신선한 부인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꼈기에 그녀의 역할과 코너가 전국민적 사랑을 얻게 된 것이다. 공식 시청률이 60%를 넘긴 적이 여러번이었으니 가히 국민 코미디프로라고 할만 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진짜 부부라는 소문까지 나서 매일같이 방송국에 문의전화도 올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두 사람은 쓰리랑 부부 설정의 광고도 수도 없이 찍었고, 거기다가 수많은 밤무대 출연요청으로 쉴 새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밤무대 경험에 대해 회고하기로는 출연료를 많이 받아서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시기였으나[6], 술취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어두운 밤무대에서 공연했던 것에 대한 기억들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 송으로도 나왔는데 흰 눈 사이로 대야를 타고달리는 느낌이렇게 노래를 불렀었다.

그밖에는 극중 노래도 여럿 부른다. '우리들은~우리들은 하늘이 맺어준 쓰리랑~쓰리랑 부부'이란 노래라든지 숫자를 넣고 부르는 잘잘송이라든지.

1989년에는 쓰리랑 부부라는 코미디 드라마로도 따로 방영되기도 했다. KBS-2에서 밤 10시 50분에 10분 정도로 하던 짧은 드라마였으며 시간이 시간인지라 약간 성인 대상으로 시청자를 잡았다. 야한게 아니라 사회 부조리도 이야기하고 직장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등장인물이 꽤나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고 그래서인지 그리 인기를 끌지못하고 금새 사라져서 이걸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로도 나왔다(...) 물론 라디오로 방송된 것은 아니고, 에피소드가 녹음된 테이프가 발매되었다. 신영희 씨의 국악장단까지 의외로 제대로 들어가 있다. A면에는 '음메 기죽어' 뒷면에는 '딱딱 못맞춰!'라고 써 있는 게 포인트.

4 에피소드

그녀의 밤무대 경험에 대해 지방 밤무대업소에서 쓰리랑 부부가 진짜 부부인 줄 알고 숙소방을 하나만 주려고 했다거나 하는 등의 웃고 넘어갈 에피소드도 많다고 하지만, 웃기만은 할 수 없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지방 밤무대 공연 요청이 와서 갔다가 그곳을 운영하는 건달들이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횟수의 공연을 강요한 적[7]이 있었는데, 이를 행사를 중개하던 매니저가 두 사람에게 전했고, 그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공연을 거부하고 업소 건물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의 숙소인 호텔로 도망쳐서 그 중 김미화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업소를 운영하던 건달들이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찾아왔는데도 문을 열지 않고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한국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 지방 공연을 온 김에 공연끝나고 부부끼리 그 근처 관광도 할 겸 그의 부인과 함께 왔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공연끝나고 돌아오길 기다리며 김한국의 방에 있던 상황이었는데, 건달들이 먼저 김미화의 방 앞으로 갔다가 다급해져서 김한국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어 그 부인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방을 쳐들어온 건달들은 쓰리랑 부부의 얼굴을 몰랐던 상황이라[8] 김한국의 부인이 김미화인 줄 알고 "당신이 쓰리랑 부인이여?"라고 물었고, 부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무섭고 당황해서 내 남편이 쓰리랑 남편이니까 맞네 얼떨결에 "네.."라고 했고, 시간이 없던 건달들은 전후사정 얘기하지 않고 바로 그녀를 업소까지 급하게 끌고 가서 "쓰리랑 남편이 없으니 당신 혼자라도 코미디 공연을 하라"고 강요했다.

그러자 당황한 그녀는 잔뜩 겁을 먹어 울먹이며 "저 그런거 할줄 몰라요. 못해요.."라고 했고 그제서야 건달들은 상황파악이 아 이 부인이 그 부인이 아니구나 되었지만 돌이키기에는 늦어버린 상황이라 건달 : 이미 늦어져서 이제 다시 데려올 시간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당장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밤무대공연 시간분량을 때우기 위해 "어쨌거나 당신 남편 공연시간이니 당신이 남편 대신 무대 올라가서 장기자랑을 하던지 노래를 부르던지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하며 강요했고, 그녀는 겁에 질린 채로 여보 구해줘요 무대에 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미자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무리 연예인이 출연을 거부했다고 해도, 어떻게 죄없는 가족을 끌어다가 밤무대에 강제로 올릴 수가 있냐? 양아치들이란 ㅉㅉ[9]

5 그 이후

이 코너를 진행하는 동안 순악질 여사 역의 김미화는 결혼하고 임신도 했는데 만삭임에도 극중에서 임신을 한 것으로 설정하여 계속 출연했으나 집주인 지씨와 순악질 여사가 다투는 내용이 있는 에피소드에서 지씨가 엉덩이로 순악질 여사를 가격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날 방송 이후 김미화씨가 유산을 하고 한동안 코너가 중지되었다. 그날 방영분의 내용에서 지영옥과 김미화의 몸싸움 연출이 너무 과격한 탓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병원에서는 과로가 문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영옥 씨는 자신의 과격한 연기가 김미화씨의 유산에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서 죄책감을 느꼈는지, 이후 차츰 TV에 출연 빈도가 낮아지면서 90년대 들어서 완전히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이 코너가 종영된 바로 그 해, 김미화는 여성 희극인 최초로 KBS 코미디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마지막 회 보기

개그콘서트 초창기에 김미화가 활동할 때 당시 김대희와의 연인 기믹이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서 특집 때 김미화와 김대희가 부부로 나온 쓰리랑 부부 코너가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2013년 3월 3일 코미디 40년 특집 개그콘서트에서 다시 방송되었다.

6 사회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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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악질 여사를 따라하는 아이들. 앤서니 데이비스?

당시 인기는 두 사람이 극중에 하는 대사들이 모두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는 전국의 남녀노소 모두를 흉내내게 한데다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최고의 유행어이다.

심지어 유행어를 넘어 현재까지 쓰이는 신조어가 탄생되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철가방'이다. 당시까지는 중화요리점의 배달원을 정확히 가리키는 명칭도 속어도 없었고, 그냥 '짱깨'[10]나 '배달통'[11]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쓰리랑 부부에서 김미화가 중국음식을 시켜먹는 연기를 하면서 배달용 양철통을 '철가방'이라 부르자, 그것이 유행되어 이 코너가 끝난 뒤에도 한국사람들은 중국음식 배달하는 통을 '철가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말은 김미화가 즉흥적으로 생각나서 했던 애드리브였다고 하는데, 이름을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있게 지어낸 그녀의 유머감각이 탁월했던 것도 맞지만, 그것이 바로 신조어가 된 건 이 코너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영향이 크다.

여담이지만, 행국이는 한마리가 아니라 비슷한 생김새의 개들 여러 마리를 돌려썼다고 한다.

7 트리비아

  • 진중권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김미화가 출연했을 당시 진중권이 과거에 김미화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방송 같이 출연할 때, 김미화씨를 실제로 봤는데 생각보다 예뻐서 놀랐다고 방송 후에 지인들에게 자랑을 했었다'고 하자, 김미화가 농담으로 '맞다. 내가 개그활동을 많이 하던 시절에 워낙 분장을 많이 했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예쁘다. 근데 그때는 왜들 그렇게 내 미모를 몰라 줬는지 모르겠다. 쓰리랑 부부할때 김한국씨와 내가 둘이 부부 역할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스캔들썸씽도 전혀 없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젊을 때 동료 개그맨들이 나를 여자로들 너무 안 봐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미화는 사실 이 방송 뿐만 아니라 쓰리랑 부부가 끝난 이후에 여러 방송에서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꽤 많은데, 실제로는 김한국의 경우 쓰리랑 부부를 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김미화 역시 쓰리랑 부부를 하던 중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12] 썸씽 없는 것을 아쉬워할 게 아닌 상황..유부남 유부녀끼리 뭐? 뭐 어쩔라고? 결국 그냥 순수한 농담이다.설마 사랑과 전쟁 계열을 원한 건 아니겠지?
  1. 영화 '노랑머리'의 주인공인 그 이재은이 맞다.
  2. 이전에 선배로 작성되어 있었으나 두 사람은 동기다. 단지 김한국이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그 기수의 군기반장이었다고 하고, 김미화 역시 오빠라고 불렀다고 한다.
  3. 토크쇼에서 한 말로는 오빠 오빠하다가 여보 여보 한다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4. 추후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녀는 길창덕 화백을 직접 찾아가 '선생님의 만화인물을 활용한 연기를 하여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길창덕은 이에 크게 기뻐하며 그녀에게 손수 종이에 순악질 여사 만화캐릭터를 그려주고, '순악질 여사, 김미화 여사에게' 라는 메시지까지 들어간 싸인을 해서 선물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싸인을 받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5. 김미화는 처음 그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에는 제목이 원래 제목과 그냥 비슷한 느낌이라 그리 탐탁치 않았다고 하는데,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신선했다고. 우리나라에서 '아리랑'이라는 것은 워낙 유명한 국악이기 때문에 아리랑이라는 표현은 여러 분야에서 인용되지만, '쓰리랑'이라는 표현은 아리랑 노래 가사에는 나와도 막상 다른 분야에 인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 제목이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6. 공연 횟수당 출연료는 그리 크게 받았다는 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워낙 혹사 수준으로 공연 횟수가 많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버는 돈은 많았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기본적인 인기는 항상 괜찮게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 만큼은 계속 벌었는데, 쓰리랑 부부로 완전히 최고 인기 개그우먼이 된 후에는 꽤 부유한 편이 되었다고 한다.
  7. 이런게 엄청 많았다. 심지어 그냥 지방 밤무대 나이트바에 들어가 술마시던 연예인에게 억지로 재능기부 강요하는 것도 흔했다. 심형래도 그런 일을 겪었는데 항목에 나오듯이 가지고 다니던 모형총을 쏴서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우르르 나가게 하고 양아치들이 쫄아서 멍때렸다고...진짜 총소리같고 불꽃도 나는 총이라서...
  8. 당시 쓰리랑 부부가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었으니 아예 몰랐다기보다는, 쓰리랑 부부 자체가 김미화가 워낙 분장을 많이 하는 개그이기도 했고, 다급하고 정신이 없어서 '이 사람이 분장하면 그 모습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9. 이 일로 김미화와 김한국은 밤무대 일에 질려 버려, 당시 출연 요청이 계속 매우 많았음에도 '쓰리랑 부부' 컨셉으로는 밤무대 일을 더 이상 길게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10. 이건 그냥 중국음식, 중국음식 배달부 전체를 가리키는 비하적 의미의 속어
  11. 이건 사실상 표준어 수준이며, 중국음식 배달이 아닌 경우에도 쓸 수 있다.
  12. 김미화는 결혼한지 10여년 이상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했고, 그로부터 다시 몇년 뒤인 2007년에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