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바르잘리

(안드레아 바르찰리에서 넘어옴)
유벤투스 FC 2016-17시즌 스쿼드
1 부폰 · 3 키엘리니 · 4 베나티아 · 5 퍄니치 · 6 케디라
7 콰드라도 · 8 마르키시오 · 9 이과인
12 알렉스 산드루 · 14 마티엘로 · 15 바르잘리
17 만주키치 · 18 레미나 · 19 보누치 · 20 피아차
21 디발라 · 22 아사모아 · 23 다니 아우베스
24 루가니 · 25 네투 · 26 리히슈타이너 · 27 스투라로
28 링콘 · 29 데 첼리에 · 32 아우데로 · 38 만드라고라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스쿼드에 변동이 있을시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벤투스 No.15
안드레아 바르잘리[1] (Andrea Barzagli)
국적이탈리아
생년월일1981년 5월 8일
출생지토스카나 주 피에솔레
신체 조건187cm, 88kg
포지션센터백
유소년 클럽론디넬라 칼초
소속팀론디넬라 칼초 (1998~2000)
AC 피스토이에세 (2000)
론디넬라 칼초 (2001)
피아첸자 칼초 (2001~2003)
아스콜리 칼초 (임대) (2001~2003)
AC 키에보 베로나 (2003~2004)
US 팔레르모 (2004~2008)
VfL 볼프스부르크 (2008~2011)
유벤투스 (2011~ )
국가대표63경기


저평가의 대명사

1 클럽

17세 때 현지 세리에 C2 클럽 론디넬라 칼초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당시는 미드필더로 플레이하였다. 1998년 1군팀으로 승격하였고, 2000년 세리에 B의 AC 피스토이에세로 이적하였고 팀을 이끌었다. 2001년 론디넬라 칼초로 이적하였다가 다시 피아첸자 칼초로 이적하였는데 출장기회를 얻기위하여 아스콜리 칼초로 임대되어 46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힘과 높이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실적을 쌓아 2003년에 루이지 델 네리가 이끄는 세리에 A 의 AC 키에보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유벤투스 FC로 이적한 니콜라 레그로탈리에의 빈자리를 느낄수 없는 활약을 하였고, '제2의 레그로탈리에'라고 불렸다.

2004년에는 US 팔레르모로 이적하여, 31년 만에 세리에 A로 승격한 팀에서 수비의 핵심으로 성장하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2007년에는 클럽의 주장이기도 하였다.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FM2008에선 진리 센터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2008년 고향 피렌체의 클럽이었던 피오렌티나로 이적 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지만, 팔레르모의 팀메이트이자 친구이기도 한 수비수 크리스티안 자카르도와 함께 5월 28일, 독일의 VfL 볼프스부르크로 수비수로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액(동시에 클럽 최고액)의 이적료 1400만 유로, 팀내 최고 연봉인 40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일년내내 안정된 수비를 보여 리그 총 34경기에 풀타임 출전하였다. 이적 1년만에 보기 좋게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와 본인의 실력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고, 출전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런 상황에 2011년 1월 27일에 키에보 시절 은사인 델 네리가 감독을 맡았던 유벤투스로 3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유벤투스 이적 후 시즌 후반 15경기에 출전하였다. 이적 후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하고, 돌고래잘리라고 욕 먹기도 하며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팀은 잭팟(77)을 완성하고 말았으니... 델 네리는 당연히 잘렸고, 팀 레전드였던 안토니오 콘테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렇게 11-12시즌이 시작되었고 그는 완벽히 각성하였다.

47실점을 기록하며 7등을 하였던 팀이 20실점밖에 하지 않는 철벽과 같은 팀이 되었고, 각성한 바르잘리도 여기에 크게 공헌하였다. 결국 유벤투스는 무패우승을 달성하며 화려한 부활을 하였다. 11-12시즌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보누치,키엘리니와 3백을 이루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5-16시즌은 4-3-1-2 전술이 주가 되고 있기 때문에, 주로 교체출장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3백일 경우에는 거의 선발로 출장), 출장만 하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살려내고 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세비야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시종일관 오른쪽 라인을 뛰어다니며 적극적으로 플레이, 결승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이런 바르잘리를 40명 합친 것이 라노키아 1명

바르잘리의 나이가 많은 편이기에 유벤투스는 바르잘리의 노쇄화에 대비할 센터백을 영입하였다. 바로 오그본나루가니이다. 그러나 그 바르잘리가 무너지지 않기에 오그본나는 서브에 만족하지 못하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떠났고, 루가니는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체력 관리를 위해서 루가니가 본격적으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15-16시즌 25라운드 나폴리전에서 파트너 보누치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교체되었음에도 신예 루가니를 데리고 절호조의 이과인[2]을 꽁꽁 틀어막는 모습을 보이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바르잘리는 15-16시즌 28라운드 아탈란타전에서 골을 넣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골을 넣은건 91경기전 아탈란타[3]전 이였다. 코너킥 상황에서 만주키치가 떨어트려준걸 바르잘리가 발리로 마무리했다. 12-13시즌에도 상대가 아탈란타였는데 우연의 일치로 요번 상대도 아탈란타이다.

2 스타일

위치선정 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선수이며, 이를 바탕으로 맨마킹 상황과 공을 빼내는 태클에 강점을 보이는 센터백이다. 발이 빠른 편이고 유베 이적 후 몸도 많이 단단해졌으며 의외로 숏패스능력이 준수하다. 1516시즌 전반기 유벤투스가 변형 포백을 사용할 때 무려 라이트백으로 출장하며 오른쪽 라인 전체를 책임진 데서 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유벤투스에서 부상기나 폼이 잠깐 안좋을 때를 빼면 지오르지오 키엘리니레오나르도 보누치보다 대체로 더 안정적이고 탄탄한 모습을 보여왔다.

3 국가대표

U-21을 경험 한 후 2004년에 마르첼로 리피가 이끄는 A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같은 해 아테네 올림픽 멤버에 뽑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멤버로 선출되었다. 2경기에 출전해 우승 멤버가 되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예선에서 출전해 본선에서도 부상당한 파비오 칸나바로 대신 마테라치와 수비라인을 구성하였으나 매우 부진하여 많이 까였다.

2011년 10월 7일 약 3년 만에 대표팀에 소집되면 UEFA 유로 2012 예선 2경기에 출전하였다. EURO 2012 본선 직전에 부상을 당하며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조별 리그 3차전 아일랜드 전에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져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유로 2016에도 부폰, 키엘리니, 보누치와 함께 소속팀 유벤투스의 수비진을 그대로 이식시켜놓은 대표팀 센터백 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대회 시작 전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였던 이탈리아가 스페인을 꺾고 8강까지 올라가는데 큰 기여를 했다. 키엘리니가 너무 잘해서 묻힌건 넘어가자
  1. /anˈdrɛa barˈdzaʎʎi/. 선수의 성인 Barzagli의 이탈리아어 표준 발음은 /barˈˈʦaʎʎi/'바르찰리'지만 토리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어중의 z를 /dz/로 발음한다.
  2. 당시 경기당 거의 1골씩 넣고 있었다
  3. 그는 12-13시즌에 아탈란타전에서 페널티킥골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