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유벤투스 FC 2016-17시즌 스쿼드
1 부폰 · 3 키엘리니 · 4 베나티아 · 5 퍄니치 · 6 케디라
7 콰드라도 · 8 마르키시오 · 9 이과인
12 알렉스 산드루 · 14 마티엘로 · 15 바르잘리
17 만주키치 · 18 레미나 · 19 보누치 · 20 피아차
21 디발라 · 22 아사모아 · 23 다니 아우베스
24 루가니 · 25 네투 · 26 리히슈타이너 · 27 스투라로
28 링콘 · 29 데 첼리에 · 32 아우데로 · 38 만드라고라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스쿼드에 변동이 있을시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벤투스 No. 8
클라우디오 마르키지오[1]
(Claudio Marchisio)
생년월일1986년 1월 19일
국적이탈리아 (Italy)
출신지토리노 (Turin)
신체 조건180cm, 75kg
포지션미드필더 (Midfielder)
주로 쓰는 발오른발
등번호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8번
유벤투스 FC - 8번
유소년 클럽유벤투스 FC (1993 ~ 2006)
소속 클럽유벤투스 FC (2006 ~ )
엠폴리 FC (2007 ~ 2008, 임대)
국가대표
(2009 ~ )
54경기, 5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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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에서 나고 자라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유벤투스의 성골 유스

1 클럽

이탈리아 국적의 축구 선수. 왕성한 활동량과 공수 가담 및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지닌 선수로 골 결정력도 괜찮고 패스 능력도 훌륭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 유벤투스의 리그 무패우승시절 마르시키오-피를로-비달 미들진의 주축이었다. 당시 공격 가담 능력이 상당해 이탈리아에서는 인꾸르소레(습격자)라고 불렸다. 국내에서는 줄여 읽어서 맑쇼, 맑타지스타(맑+판타지스타)로 많이들 부른다. 응? 모 사이트에서 '보통 미드필더'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두 유벤투스 팬이었고 인터뷰에서도 4~5살부터 경기장을 다니며 유베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엄마가 울트라스라는 흠좀무한 카더라가 있다? 그만큼 뼛속부터 유베의 팬이었고, 7살 때 유벤투스 유스팀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였다. 그 후 2007-2008 시즌 임대를 한번 떠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 커리어를 유벤투스에서 이뤄낸 유벤투스의 자랑거리 중 한 명이다. 여러가지 방면에서 진정한 델 피에로의 후계자라는 평가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리고 은근히 유스 출신 선수가 유베에서 성공한 적이 없는 유베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이다.

2008-2009 시즌부터 유벤투스에서 자리를 서서히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 때 밀란의 레전드 중 한 명인 스테파노 보르고노보는 그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마치 과거 유벤투스의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국가 대표 미드필더 마르코 타르델리를 연상시킨다고 한다.[2] 본인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평가라고 만족해 하는 듯. 라니에리 감독 시절에는 다른 미드필더들의 줄부상 및 기량 저하 등으로 자주 선발로 나섰다. 이때의 기록은 32경기 3골 2 어시스트. 아직 어린 미드필더 치고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2009-2010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 2009년 9월에 클럽 웹 사이트에서 이 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으며, 12월 5일에는 인테르와의 이탈리아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때 인테르의 골키퍼인 줄리우 세자르를 농락하는 골을 넣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허나 팀의 상황은 좋지 않아 유벤투스는 유로파 리그도 탈락하고 리그에서도 겨우 7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다. 이 시즌에는 35경기에 출장해 3골 4도움.

2010-2011 시즌에는 팀에 부상신이 강림하여 유로파 리그에서 6무를 거두는 등 막장 같은 상황에서도 마르키시오는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100번째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그리고 대망의 2011-2012 시즌에는 아르투로 비달, 안드레아 피를로와 조합을 이뤄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진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팀의 공격진이 막장 of 막장인 상황에서도 이 미드필더진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정도. 다만 로테이션이 부족해 후반기에 연속으로 무승부를 재배하는 등 조금 주춤하긴 했으나 결국 이 시즌 유벤투스는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다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카바니, 함식의 나폴리에게 패하여 더블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시즌 마르키시오는 39경기 10골 4 어시스트라는 엄청난 스탯과 경기력을 선보였다.

2012-2013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맨유에서 온 폴 포그바콰드오 아사모아 등의 가세로 로테이션이 자주 가동되어 지난 시즌보다 혹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피를로 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까지 25경기 5골 5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콸리아렐라에게 멋진 어시스트를 적립하여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국가 대표팀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인 국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2009년 8월 12일에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부름 하에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A 매치 첫 데뷔를 이루었다. 월드 컵에도 출전했지만 팀의 부진 속에 마르키시오 본인도 큰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유로 2012는 달랐다. 피를로-마르키시오-데 로시-티아구 모따 라인은 스페인과의 멋진 명승부 끝에 이탈리아를 무승부로 이끌었으며, 이 대회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비록 결승에서는 각종 불운 끝에 스페인에게 4-0으로 떡실신당했지만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회가 되었다.

유소년 시절에는 현재의 포지션이 아닌 스트라이커의 포지션, 섀도우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플레이했다고 한다. 때문에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터치와 골 결정력, 슛 스킬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슛 스킬은 웬만한 스트라이커들 뺨 치는 수준. 감아 차기, 칩 샷, 발리 슛같은 스킬들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같은 소속 팀의 아마우리, 이아킨타가 굉장히 투박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들로 갑갑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마르키시오와 비교되어 미드필더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덩달아 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국내 팬들에게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계보를 있는 진정한 판타지스타라 꼽힌다.[3] 조각 같은 외모와 뛰어난 패스, 드리블, 슛 스킬들 그리고 큰 경기에 강한 점, 득점이 그리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한번 할 때마다 나오는 판타스틱한 골들 등등 판타지스타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미드필더라는 약점 아닌 약점이 존재했지만 유소년 시절 섀도우 스트라이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도 해결되었다.

2 2013-14 세리에 A

2013-14 시즌은 영 좋지 않았다. 유망주인 폴 포그바가 기량을 폭발시키며 주전 자리를 훔쳐 가면서 백업 아닌 백업 신세가 되었다.[4] 거기에 그 전 시즌부터 문제가 되었던 골 결정력 하락과 더불어 벤치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에 중원에 추가 영입 루머가 돌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원 사령관 피를로가 부상당하자 피를로의 공백을 마르키시오가 메꾸면서 다시 팀 내 입지가 상승. 덕분에 마르키시오를 노리던 맨유는 멘붕

피를로가 복귀하면서 다시 공기화(...) 되었다가 1월 중순 전반기 마지막 경기 팀의 연승 기록이 걸린 중요한 순간에 역시나 또 피를로의 교체로 투입되어 길쭉한 중거리를 성공시키며 시즌 데뷔골이자 결승골, 역전골을 터뜨리며 죽지 않음을 과시했다. 정작 스트라이커윙백에 조명이 쏠렸다

시즌의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내다가 키에보 베로나라는 상대적 약체 팀을 상대로 선발로 기용되었다. 기용되자 마자 비달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중원을 제대로 장악하였고 골까지 기록, 피오렌티나 전에서도 출장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로 피를로의 롤인 딥 라잉 플레이 메이커로 출장하였으며FM스러운 역할 이름인건 넘어가자, 높은 패스성공률과 과감한 공격침투로 피를로의 대체자 걱정을 없애준 한 시즌을 보냈다.

3 2014-15 세리에 A

시즌 초반부터 월드컵 등 무리한 국대 병행의 영향으로 피를로가 퍼지자 이번 시즌 또한 레지스타를 한 동안 보았었다. 한창 포스트 판타지스타로 주목받던 시절에서 축구도사 느낌으로...그렇다고 중앙 미드필더로써의 폼이 죽은 것은 아니고 일취월장하여 원래 주목받던 능력에 후방에서 플레이하면서 얻은 시야와 움직임 등등까지 나아진 모습으로 기대를 계속하게 만드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피를로와 나올 때는 수비적인 문제가 있는 피를로를 커버하며 플레이 한다. 다만 유벤투스의 공격진이 괜찮아진 영향인지 중거리 득점을 노리는 장면은 줄어든 편.

피를로의 땜빵도 가능하고 비달의 땜빵도 가능하고 포그바의 땜빵도 가능해서 사실상 주전으로 나왔다(만능이라는 소리도 되니..)
공격+수비에 축구지능도 좋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에 맞게 마르키시오도 이적 절대 안한다고 하고 유벤투스도 절대 팔생각없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피를로 나이대가 나이대다 보니 사실상 마르키시오가 대안인셈. 차기에는 포그바와 비달 그리고 마르키시오로 새로운 MVP라인이 완성될 듯 하다.
14/15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피를로와 비달이 예전에 비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데 비해 결승에서 날카로운 중거리 슛을 많이 때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4 2015-16 세리에 A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개막전부터 출전을 못하고 있다. 감독의 전술 문제도 있지만 마르키시오가 없는 유벤투스의 미들진은 문자 그대로 붕괴당하며 세리에A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 후 2연패를 당하고 있다.

원래 마르키시오가 유벤투스 미드필더진에서 조율 그 자체를 담당하고 있고 이는 공수밸런스에 확실한 기여를 해왔었다. 근데 공격적으로 확실한 비달, 롱패스로 볼배급해주는 피를로도 사라졌는데 조율담당인 마르키시오까지 없으니 말그대로 폭망해버린것... 유베입장에서는 어쩔수없이 마르키시오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르키시오가 돌아온 이후 유벤투스는 챔스에서도, 리그에서도 순항중이다.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들 재인식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이제는 다치지 말쟈

그런데.. 33라운드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나가버리는 큰 부상을 당하고만다(...)
당장의 시즌은 이미 승점차를 이미 벌려놓은 것도 있으니 걱정은 없지만 당장 본인의 유로출전이 좌절되었다.
게다가 유벤투스의 입장에서도 다음시즌 초반부까지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다음시즌 대비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뒤에서 완벽하게 경기를 조율하는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후방에서 활동량과 적절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한 공수밸런스유지로 팀에 기여하는 바가 컸기에 문제가 큰 상황. 만드라고라 복권을 긁어봐야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5 2016-17 세리에A

상기한 시즌의 십자인대부상으로 인해 여전히 결장중이고 이로 인해서 유벤투스의 시즌 초반 운영이 많이 꼬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초장부터 핸디캡을 달고 시즌초반을 버텨야하는 유베 마르키시오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에도 레지스타를 고집하는 알레그리의 성향으로 인해 피야니치, 레미나 등의 자원들을 끝끝내 그 자리에 끼워맞추는 시도를 해봤지만 신통치 않은 상황. 시즌 시작이후에도 혼자 프리시즌을(...) 돌리게된 상황때문에 세비야, 인테르, 팔레르모전 등에서 졸전을 하며 마르키시오의 공백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러나 9월말 즈음을 기점으로 마르키시오 본인이 직접 자신의 몸상태가 조만간 복귀가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다는 언급을 해주면서 유베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거기에 마르키시오의 부재기간동안 레지스타자리에서 에르나네스가 결국 각성했고 마르키시오의 복귀이전까지 쏠쏠하게 활용할 수 있게되면서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큰 호재가 되고 있다. 대략 10월중순이나 11월 이후로는 복귀전을 치를 것으로 기대된다.

6 국가대표

2007년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 처음으로 승선을, 이후 1년 만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도 데뷔하였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출전했으나 당시에는 본인의 롤과 전혀 맞지 않았던 플레이메이커 롤로 기용되어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유로 2012에서는 예선에서 데뷔골을 넣는 등 유로 준우승 멤버의 일원이였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도 최종 엔트리에 승선하여 출전한다. 조별리그부터 천금같은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활약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움직임이 매우 구렸으나 이걸로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왼쪽 윙으로 주로 출전했지만 역시 윙 자리는 맑에게 맞지 않았고, 움직임으로는 많이 까였다.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기분좋게 선제골을 넣어 팀의 2대1 승리에 보탬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루과이전에서 상대방 선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며 팀의 패배를 앞장서고 말았다. 잔디밭에 나타난 죠스는 심판이 보지 못했다고 경고도 받지 않았는데, 이 어찌 억울하지 않은가.

7 이탈리아 3대 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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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예능 비정상회담에서 각 나라별 대표 미남미녀들을 소개했다. 이탈리아인 패널이 이탈리아 3대 미남의 사진을 꺼내며 사진 속 남성들에 대해 한 명씩 소개했는데 다른 두 배우와 함께 축구선수인 마르키시오를 꼽았다. 미남들이 많다는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 중에서도 외모가 무기인 배우들과 나란히 할 정도로 주목을 받는 외모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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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과 최고의 미남에 거론되는 수려한 외모의 마르키시오
연푸른 눈이 아름답고 멋지다는 반응이 많다. 또 다른 선수와 함께 축구계 눈알 미남


함께 거론된 두 명의 미남 배우들의 모습을 더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로.

알레산드로 가스만
[1]
유명한 배우, 지금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젊었을 때 장난 아니었다.

알레산드로 페스
[2]
방송인 겸 배우다.

이날 이탈리아 3대 미남을 본 출연자들은 이들의 미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성의 이탈리아 남자

8 여담

엄청나게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어본 선수이다. 유스 시절엔 쉐도우 스트라이커, 그 후엔 중앙 미드필더, 델 네리 시절엔 왼쪽 측면 미드필더였다가 11-12시즌에 드디어 중앙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를 맡으며 제대로 포텐셜을 터트렸다. 그런데 12-13시즌 후반엔 세컨톱, 그리고 지금은 레지스타를 맡고 있는데 군말없이 제대로 소화해냈다. 하지만 제대로 인정을 받은 건 11-12시즌을 빼면 없다는게 아쉽다.

마르키시오는 어릴적 공격수로 뛰었기에 10번 등번호를 꿈꿨지만 자신의 역할이 8번 역할에 가까워 8번 등번호를 선택했다. 또한 스티븐 제라드의 등번호 역시 8번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엄청난 미남이라 여성 팬들이 엄청 많다. 2010년대 이후 잘생긴 축구선수를 따지면 항상 최우선으로 거론되는 선수. 또한 남성 팬(…)도 상당히 많다.[5] 특히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 사커라인에서 이 선수를 꽤나 애정하는 팬들이 즐비하다. 정장빨 역시 매우 잘 받는 선수. 그런데 이미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한 아내[6]의 사진이 올라오자 특정 커뮤니티에서 마르키시오가 더 예쁘다면서 질투하는 말이 많았다. 내가 쟤보다 못한 게 뭔데의 압권 니가 뭔데

사실, 저 사진이 유난히 못나온 것이지 다른 사진을 보면 꽤나 미인에 이탈리아 여성들 특유의 글래머러스하고 늘씬한 체형이다. 다만 사진을 그닥 잘 받는 편은 아닌 듯. 마르키시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여전히 아내 사랑이 흘러넘치는 로맨틱한 부부의 사진이 종종 업로드된다.

원래 마르키시오의 여친은 축구선수는 만나지 않는다고 하여 처음 사귈 때는 건축가라고 뻥치고(…) 사귀었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선수인걸 들키게 되자 여친이 차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자신이 경기 뛰는걸 한번만 보러 와달라고 하며 유벤투스 경기 티켓을 줬는데, 그 경기에서 마르키시오가 데뷔골을 넣었다. 그리고 여친에게 프로포즈해서 지금까지 왔다고. 못 넣었으면 차라리 나았겠다고 아쉬워 할 축구팬들이 많을지도 돈을 잘버니 그때 찼으면 정말 피눈물 흘렸을거다
  1. /klaudjo marˈkiːzjo/. 선수의 성인 Marchisio의 이탈리아어 표준 발음은 /marˈkiːsjo/'마르키시오'지만 토리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어중의 s를 /z/로 발음한다.
  2. 타르델리는 '타르델리의 포효'라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골 뒤풀이의 주인공이다. 당신이 최소 40대 후반이 아닌 이상 봐도 아무 감흥 없으니 기대하진 말자
  3. 카사노를 판타지스타의 후계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델 피에로가 노년 가장 노릇하면서 사실상 동시대에 뛰었던 사이고 후계보단 카사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4. 다만 그냥 밀린 건 아니고 부상이 컸다.
  5. 이름이 멋들어진다며 마음에 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카더라.
  6. 지역 라이벌 토리노 FC의 서포터였지만 맑과 연애를 하며 팀도 옮겼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