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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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준호
생년월일음력 1956년 2월 2일[1]
국적한국
출신지전라남도 담양군
출신학교광신상고 - 경희대학교
포지션센터
신체 사이즈188Cm, 85Kg
소속팀삼성전자 농구단(1979~1986)
감독코오롱 여자 농구단(1995~1996)
청주 SK 나이츠(1996~1998)
서울 삼성 썬더스(2004~2011)
종교개신교

1 소개

삼성 썬더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팀의 중흥기를 연 감독.

전 한국 농구 선수 및 감독. 전 KBL 경기이사 및 전무이사. 강을준 감독과 함께 KBL 양대 개그 감독으로 유명했다. 별명은 안간지, 안어벙, 가가멜(...) 등등. 하지만, 단순히 개그에만 능한 감독으로 볼 수 없는 인물.

유재학 감독만 만나면 힘이 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농구 포스트시즌에서 두 번 만나서 다 이겼다.

2005-2006 KCC 프로농구 챔프전 (VS 모비스 4:0 스윕승)
2008-2009 동부프로미 프로농구 4강전 (VS 모비스 3:1 승)

2 경력

2.1 선수 시절

전남 담양 출신으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로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비로소 농구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탓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경희대에 진학하면서 실력이 늘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고, 국가대표가 되어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이런 유명세 때문에 은퇴 후에 비교적 쉽게 코치 자리를 얻을 수 있어서 공백 없이 계속 농구계에 남았다.

2.2 지도자 시절

1986년 은퇴하자마자 여자 농구 코오롱의 코치를 맡아 정주현 당시 감독을 보좌하며 1995년까지 계속 재직했다. 재직 기간 동안 여자 선수 조련에 명성을 얻으며 1994년 여자 농구 부분 지도자 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여자 농구계에서는 인정받는 코치였다. 여자 농구에 한손 슛을 도입하고, 남성들의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안준호였다. 즉, 절대 개그로 코치, 감독을 유지한 인물이 아니다. 그 결과 1995년 10년간의 코치 생활을 끝내고 감독으로 승진했다.

여자 농구계에서 인정받는 그를 마침 폭발적인 인기로 팀 창단이 이어지던 남자 농구계에서 그냥 보고 있지 않았고, 결국 당시에 새롭게 창단했었던 진로 팀에서 그를 전격적으로 신생 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 대신 막 내정된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는 물러나야 했다. 남자 농구로 옮기는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하지만 진로와 이를 인수한 SK 나이츠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중도에 짤렸다. 1997-98시즌에는 누구나 예상가능한 최하위 전력이라 팀의 기반을 어떻게든 만드는 과정에서 이 당시 KBL 1위 기록인 11연패도 당해가며[2]시즌을 진행했지만, 바로 다음시즌에 10경기도 안되어서 짤리고 만다. 서장훈, 현주엽을 가지고도 하위권으로 쳐졌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짤린 시점에 서장훈과 현주엽은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로 차출된 상태였었다(...).

여자 농구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인물이라 여자 농구계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 당시 여자 농구는 13개 팀이 5개로 줄어드는 한 마디로 망했어요. 결국 TV 해설가로 잠시 살아야 했다. 삼성 썬더스의 코치로 잠시 부임해 김동광 감독을 보좌해 우승을 차지했지만, 또 2003년에 코치 계약 해지 크리...

2.2.1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 시절

그런데 2004년에 결국 서울 삼성 감독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 때부터가 흔히 아는 안준호 감독의 이미지가 형성된 시기다. 무엇보다 작전타임에서 좋게 말하면 민주적인, 나쁘게 말하면 선수들이 개기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었다. 확실히 작전 타임에서 영 말이 잘 안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긴 말 필요없이 이 영상을 보자.

안준호: 아 지금 가면 안돼!
이상민: 아 되지 왜 안돼!
안준호: 돼? 돼? 돼? 그래?
이상민: 아 된다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혹자는 고려대학교 농구단의 박한 전 감독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자성어로 시즌 중 자기 팀 표현하기,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챔프전에서 치악산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간다 드립 등등... 이 때문에 별명은 안어벙, 순식간에 개그맨 되었다.

그래서 안준호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분노해서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몰수패를 각오하고 아예 선수단을 데리고 경기장을 나가버리자 주된 반응이 오죽하면 저 사람좋은 안준호가 저러겠냐라며 심판이 뭔가 잘못했을거란 반응이었을 정도(...).

하지만 이 걸로 안준호 감독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의 바로 후임이었었던 어느 돌감독이 망쳐 놓았었던 후유증이 워낙 커서...

무엇보다 안준호 감독의 능력은 판 짜기에 능하다는 것. 대표적으로 2005-06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장훈올루미데 오예데지의 더블 포스트를 상대할 준비를 하던 모비스에게 전혀 예상 외의 강혁 - 네이트 존슨의 2 대 2 플레이를 주력으로 삼아 허를 찔러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때, 2005-06 시즌에 삼성은 7전 전승으로 PO을 모두 이기며, KBL 역사상 최초의 전승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선수들의 기량 파악에 능하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시즌을 잘 꾸려간다는 장점이 있다. 포워드진이 부족할 때는 아예 3가드 시스템을 구사해서 상대를 누르기도 했는데, KBL에서 본격적으로 3가드 시스템을 쓴 것은 안준호 감독이 처음. 그 외에도 선수들이 개겨도 대충 받아주면서 팀 내의 분란의 요소를 잘 막아낸 것도 높이 살 부분이다.

작전 타임의 경우, 안준호 감독 자신은 이미 정해진 패턴을 선수 이름 부르면서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말이 영 개그화되는 것이 문제일 뿐. 그리고 정해진 패턴과 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탁월한 감독이다. 다만, 순간적인 전략과 임기응변에 있어서 다소 아쉬운 점이 드러났을 뿐이지, 선수들에 맞춰서 판을 짜오는 것은 KBL에서 손꼽히는 감독이다.

무엇보다 서울 삼성은 안준호 감독이 있을 때, 7년 연속 PO 진출 및 세 번의 챔프전 진출, 1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아, 그리고 2010-11 시즌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고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임명한 감독으로 인정할수 없는 김상준 감독 체제에서 삼성은 경기력이 동네 농구 수준으로 떨어지며 14연패의 수모와 함께 2011-12 시즌 중 2011년엔 단 한 번도 홈경기 승리를 못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상준 감독은 자진 사퇴하고 김동광 감독이 재신임되었지만 김동광 감독도 팀을 추슬리기에는 더딘 편이었고 결국 2013-14 시즌 도중 자진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안준호 감독 재임 기간 동안 삼성이 모비스에게 강했다는 것도 재평가되었다. 7시즌 동안 유재학 감독의 모비스를 상대로 정규시즌 26승 16패를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7승 1패로 총 33승 17패를 기록했다. 그가 나가고 난 뒤 4시즌 동안 삼성의 모비스 상대전적은 2승 22패인데다 그 2승도 2011-2012 시즌의 김상준 체제 아래에서 이뤄낸 것이다. 김상준 : 상민아, 내 입장이 되어보니까 어떠냐? 조낸 답답하지?

2.3 행정가 시절

삼성 감독을 그만둔 후 2011년 9월 1일 KBL 경기이사에 임명되고, 2년 뒤 2013년 6월 전무이사직이 실설되자 해당직에 임명된다. 2014년에 미국 뉴욕의 세인트 존스대학의 객원코치로 1년간 연수를 갔다.

3 기타

  • 경기 중 위의 사진처럼 코트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앉은 상태의 각도에서 코트가 더 잘 보인다고...
  • 상기했다시피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 상대로 저승사자와도 같은 상대전적을 자랑한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는 7승 1패로 압도적 우위(이 중 4승은 2006년 파이널 스윕 시절에 기록했다)를 기록 중이다(그것도 하위팀이 상위팀을 누른 업셋 승리라는게 더 의미가 깊다.).
  • 박한 前 고려대 감독처럼 기절초풍한 어록이 많다.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으니 유념하고 보자. 요기서 보자.
  1. 양력으로는 1956년 3월 13일이다.
  2. 이 기록은 불과 1년만에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그 전설의 32연패로 기록을 3배 가까이 늘여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