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re Koyré (1892. 08. 29. ~ 1964. 04. 28.)
주로 과학사 연구, 특히 과학혁명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며, 과학사학의 형성과정을 연구한 아널드 새크리와 로버트 킹 머튼은 그가 조지 사튼이 이루지 못했던 과학사학의 '인식론적 정체성'과 '전문직업적 정체성'을 확립해냈다고 평가한다.
1 생애
코이레는 러시아의 타간로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8년 독일의 괴팅겐으로 유학하여 에드문트 후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후설이 그의 학위논문을 받아들이지 않아, 코이레는 1912년 파리로 떠나 앙리 베르그송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외인부대의 러시아인 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22년부터 코이레는 파리에 소재한 프랑스고등연구원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후 고등연구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2년부터 1941년까지 코이레는 카이로 대학교의 전신, 푸아드 대학교에서 현대철학을 강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드골이 세운 자유 프랑스 전국위원회에 가입하였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 뉴욕에 위치한 사회 연구를 위한 뉴스쿨(현 뉴스쿨 대학교)에서 초빙 강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프랑스고등연구원과 뉴스쿨 두 곳에서 강의하면서 과학철학과 과학사 그리고 종교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956년에는 프린스턴 고등학문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다. 1961년 그는 그가 행한 탁월한 과학사 연구에 조지 사튼 메달을 수여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1964년 4월 28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2 업적 및 영향
코이레는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물리학사를 연구하여, 후에 허버트 버터필드에 의해 정전적 개념으로 확립된 과학혁명 개념의 기반을 닦았다. 그의 과학사 연구를 대표하는 저작은 1939년에 쓴 "갈릴레이 연구"와 1959년에 출판한 "닫힌 세계에서 열린 우주로"를 들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과학사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을 이용하여 설명하려했다라는 점인데, 이는 후대의 과학철학자들, 대표적으로 토머스 쿤과 임레 라카토슈 그리고 파울 파이어아벤트에게 영향을 주었다. 코이레가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과학사를 설명했다는 점은 상당히 높이 평가되지만,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지 않았다라는 비판이 바슐라르의 제자 조르주 캉길렘에 의해 제기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