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프랑스

프랑스의 역사
Histoire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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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 중세앙시앵 레짐프랑스 근대 정부 체제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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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프랑스
La France Libre
임시 정부
국기국장
1940년 ~ 1944년
수도런던(1940)
브라자빌(1940-1942)
알제(1942-1944)
정치체제민주공화정
언어프랑스어
주요사건1940년 샤를 드 골 6.18 선언->망명
1944년 프랑스 해방
성립 이전프랑스 제3공화국
해방 이후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1 개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샤를 드 골.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필리프 르클레르, 조르주 카트루 등 프랑스 군부 지도자들이 영국망명해서 세운 프랑스 망명 정부. 전후 프랑스에서는 이들이 결국 프랑스정권을 장악해 제4, 제5공화정을 이루었고 지금의 프랑스 정부는 여기서 이어진다.

국기는 청, 백, 적의 정식 프랑스 국기에, 잔 다르크가 사용했다는 로렌의 십자가를 결합한 것이다.[1][2]


2 역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패배해 독일의 수중에 넘어가고 제3공화국 정부가 붕괴하자, 당시 국방차관이었던 드 골은 간신히 프랑스를 탈출하여 몇 안 되는 망명자들과 힙을 합쳐 자유 프랑스 운동을 시작, 독일에 항복한 친독일 정권 비시 정부에 맞서 반독일 운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전쟁 초기에 대다수의 해외 프랑스 식민지들은 비시 정부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1940년 9월까지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중에서 차드지역의 지지를 받고 콩고가봉지역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장악하기는 했다. 미국도 전쟁 초기에는 비시 정부를 프랑스의 공식 정부로 인정했기 때문에 사실 그들의 활동은 상당히 한계가 있었으며 당연히 전시 비중도 바닥을 기었다.[3] 1942년 11월 영-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여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의 프랑스 식민지들을 점령한 이후에는 그곳을 근거지로 삼았으나 영-미의 압력으로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앙드레 지로 장군을 지도자로 받들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상황이 반전되었는데,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에 자극받은 독일군이 결국 비시 정부와의 협상으로 그간 마저 남겨두었던 남부 프랑스까지 점령하여 비시 정부를 사실상의 괴뢰정권으로 만들자, 애초 비시 정부의 출범 명분이였던 '프랑스의 자주 수호'가 사라진 만큼 비시 정부를 지지할 목적이 사라지게 되어 프랑스 국내에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이 점점 세를 키워나가고 자유 프랑스는 이들과 접촉해 국내에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전후를 준비하게 된다.

물론 상황이 자유 프랑스에게 팍 좋아진건 아니라서, 1944년 초 드골이 자기 측근을 프랑스 국내군 사령관으로 잠입시켜 레지스탕스 지휘체계 일원화를 시도했지만 그냥 무시당했다(…) 좌익은 커녕 대다수 우익 레지스탕스도 자유 프랑스의 지도를 거부하고, 연합군과의 연락창구 정도로 활용했다. 밑에도 나오지만 자유 프랑스가 레지스탕스를 지도했다는 건 후대에 윤색된 낭설이다[4]

이후 알제리 등지에서 전쟁이 끝나면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현지인 병력을 끌어모아 세력을 키우는 한편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했다. 여기서 드디어 주목할만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드디어 파리가 가까워졌을때,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였던 아이젠하워는 전후 처리에 정치적 관심이 없어 전술적으로 큰 이득이 없는 파리를 굳이 탈환하기보다는 당장 독일로 진격할 것을 원해 연합군의 진격로에서 파리를 빼버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파리가 곧 프랑스였기 때문에 파리를 얻는 세력이 프랑스를 주도할 수 있었고, 실제로 프랑스를 냅두기로 페탱과 협의한 독일이 기어이 파리(를 포함한 북부 전반 지역)만큼은 자기 차지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였다.

따라서 프랑스의 정치적 세력들에게 있어 파리 탈환은 전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뭐가 어찌되든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고, 실제로 당시 프랑스에 존재했던 내노라하는 세력들은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관이었던 육군대장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에게 각자 밀사를 파견해서 서로 자기 쪽한테 항복하라고 협박한다(...)[5]

자유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로 파리를 탈환하려 했고, 이에 자유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레지스탕스들에게 일제봉기를 사주해[6] 연합군의 진격로를 돌려놓은 뒤 드골의 명에 따라 연합군 사령부를 무시하고 육군 소장 르클레르(Philippe Leclerc de Hauteclocque)[7]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육군 제2기갑사단이 선두로 1944년 8월 25일 파리로 진격, 결국 치열한 정치암투과 비밀공작 끝에 콜티츠 장군은 파리주둔군 장병들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자유 프랑스에 항복한다.

런던에 머물러 있던 드골은 바로 비행기 타고 와서 자유 프랑스군과 함께 파리시에서 개선행진을 한다. 수십 만의 파리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환영했고, 듣보잡이던 드골 장군은 '구국의 영웅', '해방자' 드골로 프랑스인들에게 각인된다. 결국 전후 좌-우 모든 정치세력이 결집한 임시정부는 드골 장군이 주도하게 된다. 피점령기간 동안 처절하게 싸우면서 전후 '프랑스 소비에트 공화국'을 꿈꾸던 좌익계 레지스탕스는 한마디로 죽쒀서 개준꼴...[8] [9]

이후에는 프랑스 남부에 미 육군과 함께 상륙한 프랑스 육군 제1군이 북상하면서 프랑스 대부분을 되찾고 레지스탕스 세력 및 감옥에서 풀려난 제3공화정 시기의 정치인들과 협력하여 드골을 수반으로 하는 프랑스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간신히 인정받게 된다.

드골이 본격 미국 까 정책을 취하게 된 원인이 이때의 미국의 냉랭한 태도와 2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 그리고 이후 핵개발 과정에서 영국 및 캐나다와 손잡고 對프랑스 우라늄 수출을 막는 등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자유 프랑스군의 군사력은 창설 초기였던 1941년 말에는 10,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고 하며, 1944년에 이르러서는 옛 식민지에서 병력을 모집, 여기에 비시 프랑스 육해공군을 통합하여 45만여 명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자유 프랑스 육군 병력의 30% 가량은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파리 입성이나 전승행사 참석을 허락받지 못하였다. 하여튼 본토탈환 후 종전까지는 90만여 명의 대군이 되어 승전국의 말석자리에 끼는데 성공하였다.


3 기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게임 사보추어레지스탕스들이 사용하는 문양이 자유 프랑스의 국기 중앙에 새겨진 문양과 같다. 다만 작중 자유 프랑스 정부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묘사는 딱히 없는 듯.


4 주요 인물

  1. 로렌 십자가는 잔 다르크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나치가 쓰는 卐자에 대항한다는 의미도 있다. 솔직히 한국인에게는 그게 더 설득력 있다. 불교 vs 기독교
  2. 동시에 쿠프라 서약(자유 프랑스군의 장군이었던 르클레르가 휘하 부대원들에게 알자스의 주도인 스트라스부르가 탈환될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사건)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대독일 전쟁에서 알자스-로렌이 가진 상징성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1942년의 비르 하케임 전투에서 자유 프랑스군 여단의 선전으로 체면을 약간 회복하긴 했다.
  4. 사실 2차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70%는 좌익계였고 그중에서도 공산당 계열이 태반이었다.
  5. 더군다나 아돌프 히틀러알프레트 요들 장군을 통해 콜티츠에게 연합군이 파리로 진격해오면 도시를 초토화시키라고 명령한다. 이 와중에 항복을 권유하는 밀사들이 찾아오는 등 말 그대로 개판이였다. 결국 고뇌하던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내자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허위보고를 한 후에 바로 가장 먼저 파리에 도달한 자유 프랑스군에게 항복했다. 그에게는 전쟁이 끝나자 재판에서도 가벼운 형을 받아 석방되고 파리 명예시민 자격이 주어졌으며, 훗날 파리의 구원자로 칭송받는다. 대한민국 도덕 교과서에도 이 일화가 실렸다.
  6. 사실 공산당 계열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먼저 봉기를 일으킬까봐 선수친 것도 있다..
  7. 프랑스군이 사용하는 주력 전차(MBT) AMX-56 르클레르가 이 사람 이름을 딴 것이다.
  8. 이들에게는 독소밀월기간중 독일점령군에 협조했던 원죄가 있기는 하다
  9. 이 과정을 묘사한 영화가 바로 1966년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 흑백이며 상영시간 175분 내내 화끈한 전투장면 따위는 없으며 그 대신 콜티츠 장군의 갈등과 레지스탕스 내부의 좌우대립을 그린 장면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