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학

1 설명

과학역사, 즉 과학사를 공부하는 학문.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1950, 60년대에 학문의 한 분야로 정착하였다.
국내에서는 한국과학사학회가 창설되어 과학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아직까지는 미미한 위치에 있다.

2 연구 방법

  • 내적접근법
과학사학의 초창기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학의 주종을 이루는 접근법이다. 주로 과학자들이 남긴 문헌의 논리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다룬다.
  • 외적접근법
60년대 이후에 들어서 내적접근법과 더불어 과학사학의 연구 방법으로 강조된 접근법. 과거의 과학을 당시의 사회, 경제, 사상적 여건 하에 이해하고, 그 과학이 당시에 살았던 이들에게 지닌 의미는 어떠한가를 이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다룬다. 30년대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본격적인 업적은 60년대 세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 비교과학사
80년대 말[1]에 새롭게 등장한 연구 방법. 비교과학사 연구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첫째, 여러 문명 사이의 교류,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
두째, 독립적으로 형성된 과학적 개념이나 방법 혹은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제도에 대한 내용을 비교하는 것.
세째, 개개의 과학적 개념이나 성과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포함한 여러 문명권을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것.

3 과학사학의 역사

과학사에 대한 관심은 통사적인 분야사를 서술하려는 전통과 자연지식의 습득의 역사를 탐구한 전통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통사적 분야사를 서술하려는 전통에서 과학사는 과학의 하위 분야로 이해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과학사는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과학이라는 분야의 통사를 그려냄으로써 과학의 역사 자체에 대한 흥미 뿐만 아니라 과학의 개념과 이론, 방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과학분야가 발전되고 전문화되어가면서 과학사적 지식 자체가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짐에 따라, 과학사는 한물간 과학자들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자연지식의 습득의 역사를 탐구한 전통에서 과학사는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의 전체적인 발전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되어야할 것이었다. 이런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는 베이컨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인간의 인성의 본질과 그 적합한 사용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지식의 역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는데, 베이컨의 주장은 이후 18세기에 활동한 콩도르세와 19세기에 활동한 콩트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 과학사 연구는 휘그적 역사관이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 휘그적 역사관은 과거로부터 현재 과학의 이론, 개념, 법칙, 방법 등의 기원을 찾고 변천만을 보며, 현재 과학과의 공통점만 찾게 되어, 과거 과학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며 당시의 이론, 개념, 법칙, 방법 등은 과거 과학에서의 중요성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무시하였다. 그래서 과학사는 인류의 지식이 현재 과학을 향해 나아가는 행진만을 서술하는 것에 그쳤다. 이러한 휘그적 역사관을 극복하여. 과거의 과학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과거의 사회·문화의 일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과학사 연구의 관점이 바뀌게 된 것은 철학사학자들의 영향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19세기에 과거의 철학에서 현대의 철학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쳐러 철학사학자들이 과학사에서도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의 역사를 다루게 되면서 그들의 관점이 과학사로 옮겨졌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코이레 등의 학자들의 영향으로 중세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으며, 중세 과학과 근대 과학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과학사학이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성장하는 데에는 과학사학의 선구자들이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인류의 지식 중 과학을 하나의 단위로 파악하고, 과학의 발전을 살핌에 있어 과학의 여러 개별 분야들을 따로따로가 아닌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사튼은 과학사학 전문 학술지인 이시스를 창간 및 편집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과학사학 강좌를 개설하는 등을 통해서 과학사학이 독자적 학문으로 성립하는 것을 위해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등장한 과학사학 초창기의 여러 학자들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여러 대학들이 초창기 과학사학자들을 받아들이면서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까지 많은 과학사학자들이 배출되었다. 마침 미국 대학의 양적 팽창과 동시에 일어나게 되어 60년대에 미국의 모든 중요 대학들이 과학사학 강의와 전공 과정을 개설하여 연구 인력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연구 수준도 높아졌다.

3.1 한국에서의 과학사 연구

한국의 전통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가 해방 이전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한국의 과학사를 연구하게 된 것은 홍이섭에 의해서였다. 그는 비록 과학사 연구의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학자는 아니었으나, 과학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였는데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가 조광에 연재했던 '조선과학사'다. 조선과학사는 1944년에 일본어로 출간하였는데, 고조선에서 구한말까지의 과학기술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개설서로, 저자 본인이 언급하였듯 과학문화사의 색채가 농후하였지만 과학기술의 내용과 더불어 그 기초가 되는 사회, 경제와의 연관성 하에서 연구한 것으로, 내적 과학사와 외적 과학사를 잘 조화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김두종은 그를 중심으로 역사에 관심있는 과학자들을 모아 한국과학사학회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1960년 7월 16일 서울의대 구내다방에서 한국과학사학회 창립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1963년 말 총회를 끝으로 학회는 동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과학사학회가 동면에 들어간 사이, 1966년에 전상운은 홍이섭의 『조선과학사』에 뒤이은 통사인 『한국과학기술사』를 저술하였다. 천문학, 기상학, 물리학 등의 여러 분야로 나누어 과학사를 기술한 이 책은 이후 영어판으로 쓰여지기도 하였으며, 이후 한글 수정증보판에 이어 일문판으로도 출판되었다. 이 『한국과학기술사』는 미국과 일본의 연구도 보충해나가면서 내용이 몰라볼만큼 나아졌으며, 한국의 전통과학을 세계 학계가 인식하도록 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모 과학사학자의 증언에 따르면, 동양과학사에 대한 국제 학회가 열려서 한중일이 참석하면 중국은 무조건 중화의 위대함으로 포장하려 들고, 일본은 서구중심적인 잣대로 재단하려 들고, 한국은 무조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업적 운운하며 역시 포장하려 든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3국 모두 공정한 시각에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2 북한에서의 과학사 연구

북한에서도 역시 과학사가 연구되었는데, 임정혁 교수는 북한의 과학사연구의 역사를 1972년 이전과 1972년에서 1992년, 그리고 1992년 이후의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972년 이전에 이루어진 과학사 연구의 주요과제는 과학사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한민족 스스로 이룩한 과학 발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데에 있었다.

4 과학사학자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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