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역사를 단순히 일화나 연대기를 쟁여놓은 것 그 이상으로 바라볼 때, (역사는) 우리가 사로잡힌 과학에 대한 상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1]
옛날부터 서양 학생들을 괴롭혀 온 외국어 문법 암기사항을 가리킬 때나 쓰이던 단어 “패러다임Paradigm”에 새로운 뜻을 부여함으로써,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선 누구든 심심할 때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운운할 수 있게 만든 사나이이다.
2 <과학혁명의 구조>를 내기까지
쿤은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우등 졸업summa cum laude으로 물리학 학사 학위를 얻었으며, 1946/1949년에 각각 물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얻었다. 쿤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양자역학의 고체물리학에 대한 응용에 관한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후 1가 금속 이온의 응집 에너지 계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촉망받는 순수과학도이던 쿤은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1947년 처음으로 과학사를 접했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는 인문계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과학사 교육을 생각해냈다. 하버드대 학술회Society of Fellows에 뽑히는 등 촉망받는 인재이던 쿤은 젊은 나이에 이 과정의 강의를 맡게 되었다. 안중에도 없던 과학사 수업을 덜컥 맡게 된 쿤은 '음… 그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물리학부터 차근차근 가르쳐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Φυσικ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을 쿤은 그때 받은 당혹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역학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역학에 무지할 뿐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나쁜 물리과학자로 보였다. 특히 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은 논리건 관찰이건 지독한 오류들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이상했다. 어쨌건 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고전 논리학의 창시자로 칭송받았고 … 경이로울 정도로 꼼꼼한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 그런 특유의 재능이 운동학과 역학에 관해선 어째서 이다지도 체계적으로 그를 저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쿤은 '혹시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나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그 이후로도 끈덕지게 <자연학>을 두고 끙끙댔다. 그러던 어느 날 쿤은 다음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책상 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쳐 놓고 손엔 4색 연필을 쥔 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 그때 내가 본 광경은 여전히 뇌리 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머릿속의 파편들이 스스로 새롭게 짜맞추어지며 탁탁 들어맞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순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단한 물리학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내가 상상조차 못 했던 방식이었다. 그제서야 난 그가 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했다. 이전엔 지독한 착오인 것 같았던 진술들이 이젠 아무리 나쁘게 본들 강력하고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전통 하에서의 아까운 실수로 비추어졌다.[2]
이렇게 과학사에 흥미를 품게 된 쿤은 물리학 학위를 준비함과 동시에 과학사 및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3] 이후 1956년에 UC 버클리로 자리를 옮겨 과학사 강의를 하게 된 쿤은 1961년엔 UC 버클리의 전임교수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 동료 교수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쿤은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는 1962년에 국제 통일과학 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 연작 중 하나로 <과학 혁명의 구조>를 출판한다.
3 <과학 혁명의 구조>
<과학 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판은 1962년에, 2판은 1970년에 출판되었다. 특히 2판은 1판 출판 이후 빗발친 여러 문제 제기에 대한 쿤의 대답인 후서Postscript를 담고 있으므로 정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4년 현재 최신 출판본은 출간 50주년을 기념하여 재판된 4판이며, 생존한 가장 저명한 과학철학자 중 하나인 이언 해킹Ian Hacking이 머리말을 썼다. 2013년 한국에서도 4판이 김명자/홍성욱 공동 번역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다.[4]
3.1 과학의 흐름과 과학 혁명
<과학 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과학은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밟으며 발전해나간다:
- 전(前)과학prescience: 학문 공동체가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패러다임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 즉 아직 미성숙한 단계의 과학이다. 공통된 패러다임이 출현함에 따라 정상과학으로 발전한다.
- 예. 1740-1780년대 프랭클린 이전의 전기기학
- 정상 과학normal science: 패러다임이 확립됨에 따라 공통된 이론적 기반/방법론이 받아들여지는 시기. 이 시기 과학적 탐구는 '퍼즐-풀이' 같은 성격을 지니며, 그 탐구의 성과는 차곡차곡 쌓인다.
- 예. 실험을 통한 물리상수 값의 정밀한 계측
- 위기crisis: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 현상anomaly이 점점 많이 보고됨에 따라 정상 과학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는 단계.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질 여지를 제공한다.
-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위기 끝에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되는 단계. 이는 기존 정상과학 단계에서 쌓인 성과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상과학을 낳는다.
이러한 설명은 흔히 다음과 같은 함축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 과학 활동은 계속 지식을 쌓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 혁명은 기존의 정상과학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패러다임에선 설명할 수 있었던 현상 전부가 그 다음 패러다임에서도 쉽사리 설명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듯 기존엔 멀쩡히 설명할 수 있던게 오히려 패러다임의 교체 이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논지는 많은 논란을 낳았으며, 이는 흔히 Kuhn-loss 문제라고 불린다.
- 과학 활동을 어떤 객관적인 진리에 접근해가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는 생물체의 진화가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점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쿤은 새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보다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으며, 곧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3.2 “패러다임” 개념
고대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paradeigma)에서 유래한 영단어 “Paradigm”은 본래 외국어 문법을 학습할 때 동사의 변화 패턴을 외우는 데 쓰는 범례를 가리킨다. 라틴어 1형 동사 'amo-amas-amat …' 같은 것. 쿤은 재판관이 관습법상의 판례에 준거해 판결을 내리는 것을 과학 활동과 견주어 연상하고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차용했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남용되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쿤 자신이 고백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뿌리 깊게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개념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매우 애매하게 사용되며 1판 출판 당시에 많은 비판을 받게끔 하는 요인이었다. 철학자 마가렛 마스터맨Margaret Masterman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어휘 “패러다임”이 최소한 21개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쿤은 이런 비판을 인정하고 2판의 '후서'에서 “패러다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의를 시도한다.
'후서'에서 쿤은 “패러다임”이 넓은 의미에선 기호적 일반화symbolic generalization (예. 역학에서의 F=ma), 모형models (예. 기체 운동론에서의 기체 운동 모형), 가치value (정확성, 단순성, 일관성 등), 범례exemplar로 구성된 전문분야 행렬disciplinary matrix을 뜻하며, 좁은 의미에선 오직 범례만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때 ‘범례’란 실제 해당 분야에서 해결한 모범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해답들을 가리킨다: 과학 공동체의 예비 구성원들은 이런 연습 문제들을 푸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학 공동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쿤은 이렇듯 과학 가운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구체적인 문제 풀이이며, 과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역시 기존의 문제 풀이 방식을 본땀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 예시로 쿤은 베르누이의 정리 발견이 유체를 하위헌스(호이겐스)의 진자를 빗대어보는 발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말한다.
3.3 공약 불가능성
본래 “공약 불가능하다incommensurable”, 즉 공통된(“com-”) 척도(“measure”)를 결여한다는 말은 직각이등변삼각형에서 빗변 길이를 다른 변 길이로 나눈 값이 유리수가 아니라는 성질을 가리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쿤은 패러다임들끼리의 경쟁이 증명 문제처럼 딱딱 풀리는 것이 아니며,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공약불가능하다”고 말한다.
- 패러다임에 따라 해결해야 할 ‘과학적 문제들의 목록’에 관해 의견을 달리한다.
- 패러다임이 다르면 같은 용어조차도 의미가 달라진다
- 예. 뉴턴 역학에서의 “공간”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공간”
- 각기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과학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며 … 동일한 방향에서 같은 지점을 볼 때에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쿤의 이러한 ‘공약 불가능성’ 개념은 <과학 혁명의 구조>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논란을 낳은 주제 중 하나이며,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젯거리 중 하나로 남아있다.
4 수용과 학문적 영향
<과학 혁명의 구조>는 흔히 20세기 중반 과학적 방법론 논쟁의 역사 속에서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진 칼 포퍼의 반증주의에 관한 막대한 위협을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는 21세기 현재까지도 과학적 실재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구조>의 입장은 곧 논리 경험주의 등 논리학적인 형식에 방점을 둔 전통적인 과학철학적 입장 혹은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많은 반발을 낳았다. 예컨대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 서평에서 그 내용에 관해 부분적인 공감을 표하면서도 쿤의 핵심적 주장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5]
<과학 혁명의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영은 ‘과학이 사회적인 요소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활동이다’라는 주장을 반대하는 진영이었으며, 이는 곧 과학에 대한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그리고 과학기술사회학에서는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me으로 대표되는 과학지식사회학SSK을 낳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선 급기야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여 종국엔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과학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아울러 <과학 혁명의 구조>는 진영을 막론하고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 연구의 비중이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쿤과 같은 이공계열 전공자들이 과학철학 및 과학사 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
<과학 혁명의 구조> 출판 이후 쿤은 프린스턴 대학교, MIT 등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후기로 갈 수록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는 등 과학철학적 주제에 관해 주안점을 두었다.
20세기 후반 내내 쿤은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과 묶여 '합리주의적 과학관'에 반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쿤은 자신이 ‘비합리주의’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으며 상기한 사회 구성주의와 과학지식사회학 옹호자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쿤의 이론중 공약불가능성은 후에 그의 후계자라 할수 있는 피터 갤리슨에 의해 반박된다. 갤리슨은 크리올어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는데, 분명 사용하는 단어와 제반 문화가 다름에도 언어가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소통가능하듯이 과학의 패러다임도 일종의 피진어 형성을 통해 공약 불가능성을 극복한다고 보았다. 특히 과학에서는 이론이 바뀌더라도 몇몇 사실(끓는점 등)이나 실험방법,실험기구 등이 따라 바뀌진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과학자를 이론/실험/기구 연구자로 나누고 실험, 기구 연구자들이 피진어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여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