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 총리 | ||||
15대 | → | 16대 | → | 17대 |
가쓰라 다로 | 야마모토 곤노효에 | 오쿠마 시게노부 | ||
21대 | → | 22대 | → | 23대 |
가토 토모사부로 | 야마모토 곤노효에 | 기요우라 게이고 | ||
상당히 젊은시절 사진인데 총리대신 취임때는
이랬다. 풍채갑
山本(やまもと) 權兵衞(ごんのひょうえ) / 1852.11.26. ~ 1933.12.8.
사쓰마 번(현재의 가고시마 현) 태생. 본명은 야마모토 곤베에로, 곤노효에라는 이름은 그가 군함의 진수식에 참석하였을 때 한 신관에게 받았다고 한다.[1]
메이지 유신 이후 해군병학교를 2기로 수료하고 태동기에 있던 일본 해군의 장교가 되었으나, 사실 그 이전에도 영국-사쓰마 전쟁과 보신전쟁에 사쓰마 번군의 무사로서 참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해군병학료 시절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싸움질이나 하고 다녔다고...... 돛대 빨리 올라가기 시합과 주먹질이 특기였다고 한다.
당시 해군의 대세를 이루고 있던 사쓰마 출신이었기에 일찌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그가 쓴 포술 교본이 일본 해군의 정식 교재로 채택되기도 하고 순양함의 함장 시절에는 밀사로 파견되어 원세개와 비밀리에 회담하기도 했지만, 군정가의 모습으로 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육군의 삽질을 매꾸는 해군 총리들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1904년 해군 시절.
당시 해군 대신이었던 사이고 쓰구미치와 콤비를 이루었다. 사이고 쓰구미치가 처음 부임했을 때, 해군의 막후 세력자였던 곤노효에가 신임 해군대신을 교육할 겸 길도 들일 겸 해서 자료+서류 뭉터기들을 보라고 제출했더니 쓰구미치는 한 번도 읽지 않아서 곤노효에를 벙 찌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폭발하려는 곤노효에에게 책임은 자신이 다 질 테니. 실무자 측에서 생각하는 대로 잘 해 보라는 대인배적인 멘트를 날렸다고. 이 콤비는 사쓰마 번 출신자들을 우대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보신 전쟁 때부터 해군에서 복무해 왔던 머리굳은 고급 장교들을 대거 물갈이해버렸다. 곤노효에 역시 사쓰마 출신이었지만 동향이고 선배고 친구고 뭐고 예외가 없었다. 단 애매하다는 이유로 평가가 유보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 ㅎㄷㄷ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의 등장인물인 아키야마 사네유키의 표현으로는 '선저에 달라붙은 따개비들을 깔끔히 청소해버렸다'고. 결과적으로 일본 해군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모두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대청-대러 강경책을 지지하였으며 청일 전쟁 이후 해군 대장 겸 해군대신으로 진급. 러일 전쟁 이후 남작이 되었고, 그 작위는 최후에는 후작에까지 이르게 된다.
남작 시절.
당대에도 사복간지 종결자라 불렸다.
하지만 정치가로서는 운이 안 따르는 케이스였는지 총리직 돌려막기하던 케이엔 콤비가 한 명은 실각, 한 명은 반대편의 정치공작인 다이쇼 천황의 칙허를 이유로 총리직에 나설 수 없었고 정치거두이자 육군의 거물인 야마가타 아리토모마저 이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터라 해군출신인 그가 정당정치인들과 연합을 이룸으로1913년 총리대신으로 취임한다. 정당정치인들과 연합했으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민-군 간 분리에 힘쓴다. 대표적으로 이제 퇴역군인도 군부대신으로 부임할 수 있게 되어서 군대가 현직 대신을 사퇴시키고 차기 대신 선출을 보이콧함으로 내각 구성을 못하도록 훼방 놓는 걸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는 해군에서 터진 군수 비리(지멘스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곧 사퇴하게 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배경부터가 아주 복잡한데, 국가채무의 지불불이행 선언을 하냐 마냐 운운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상황+육군도 사단증설을 참고 있던 판에 해군요구만 받아들여서 팽창시킨 전함건조 예산을 중의원에서 막무가내식으로 관철하기 등, 악화일로의 경제상황과 육해군과 그들의 뒷배경인 원로들과의 분쟁부터 파악해야 한다. 게다가 가난한 향사출신인데도 정작 해군내에서는 재산이 제일 많았던 것까지 겹치면서 사건이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가난뱅이가 과연 봉급만으로 재산을 불렸겠냐는 것. 이 사건의 여파로 갓 건조에 들어가던 후소급 전함 3,4번함의 예산은 완전 삭감당하여, 1915년 후반기에나 간신히 기공에 들어가게 되었다.[2] 그리고 이렇게 밀려버린 전함 건조 페이스는 워싱턴 조약에서 대미 6할을 강요당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다시 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재건에 애쓰나[3] 같은 해 12월에 터진 도라노몬 사건[4]의 책임을 지고 다시 사퇴하게 된다.
이후 가족들과 여생을 보낸다.
무책임함장 테일러의 등장인물 야마모토 마코토의 선조라고 한다. 후손의 성격은 일본에서 이미징되는 선조의 성격과 거의 판박이인듯. 다만 몇 배는 더 대인배이면서도 또한 우주급으로 골때리는 상사를 만나 죽어라고 고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