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펄롱

Edward Walter Furlong
(1977년 8월 2일 캘리포니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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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너" 이 하나로 설명이 끝나는 한 때의 세계적 미소년 심지어 마의 16세마저 잘 넘겨서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었으나, 지금은 자기 관리를 못해 망가진 케이스

생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미래에서 온 이 분 아니었던가??, 멕시코계의 피가 섞인 백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펄롱의 눈매를 보면 보이듯이 러시아계 혈통이기도 하다. 2010년대 역변한 모습을 보면 그냥 부산 초량동러시아타운의 러시아 아저씨 모습이다. 펄롱이라는 성은 외삼촌(어머니의 이부동생)이 양육권을 가지면서 얻은 것. 초기의 매니져도 이 외삼촌과 이모였다.그 이후 10대의 펄롱이 29살의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져 가정교사가 매니져일을 하게 된다

영화계 데뷔는 무명 시절 겪을 것도 없었다. 바로 그 유명한 터미네이터 2의 존 코너 역할이 첫 출연작이었기 때문. 촬영이 끝난 후 아놀드 슈워제네거자전거를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리고,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삼포니 레코드를 통해 음반을 출시해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노래 실력은 정말 형편없다....[1] 서구권에서는 어린 소녀 팬 위주의 하이틴 배우에 불과했지만, 일본에서는 미소년 스타에 대한 성인들의 열광이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린팬은 물론이고 성인 여성들에게도 가히 폭발적인 인기였다.돈도 일본에서 엄청나게 벌었다 아시아 한정 데뷔 음반의 타이틀송은 일본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기존 기록을 깨고 1위를 했으며, 각종 잡지의 단독 화보[2]나 광고, 한창 엔고가 지속될 때의 연예계 활동으로[3] 돈도 제법 만졌다고..

에드워드 펄롱이 일본에서 찍은 컵라면 광고. 가쿠란 교복을 입힌 것에서 일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터미네이터 2에서의 상고머리도 인기를 끌었다. 다만 한국 청소년들은 두발 규제로 따라하지 못했다.사실 어지간한 두상이라면 안 어울리는 디자인이기도 하고

터미네이터2 이후 그만한 흥행작 출연은 못했지만 그래도 인디영화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4], 캘빈 클라인 광고 모델로도 나오는 등 꾸준히 인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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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케이트 모스와 함께 CK모델로 나왔다. 이 사진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평가를 받고 있다. 80년대 영웅주의 시대의 우람한 마초형 액션 배우들과는 정반대의 섬세하고 유약해 보이는 모습이 당대 패션계의 흐름에도 딱 맞아떨어져 헤로인 쉬크의 차세대 패셔니스타로 평가받았다.

23세 때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에드워드 노튼의 동생으로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 받는다. 형제로 출연한 노튼과 펄롱의 시너지 효과가 영화에서 빛을 발했고, 애초부터 흥행을 염두에 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인종갈등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형제애를 기반으로 풀어나가면서 작품성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 이후 에드워드가 출연한 작품에서 호연을 이어갔다면,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미소년 아역 스타가 하나의 배우로 성장한 기점으로 남았을 것이다. 연기력도 외모도 남다른 만큼 팬들 역시 기대를 멈추지 않았다. [5] 같이 연기한 메릴 스트립도 펄롱의 연기력을 인정했고, 스티브 부세미같은 독립 영화 성향의 성격파 배우와 나와도 연기력을 인정받을 정도였으며, 블록버스터 급 흥행 영화엔 출연하지 않아도 비평가들에게는 인정을 받은 배우였으니, 게다가 일찌감치 팬덤도 있었으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대가 되는 배우였던 것.

만약 관리를 잘 했다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망가진 헐리우드 아역 출신들의 공통점인 마약과 알콜이 인생을 망쳐버린다. 사실 굳이 어린이 스타가 아니어도,연예계나 스포츠계같이 젊음과 화려함이 일상인 분야에서는 약물, 알콜, 무절제한 섹스와 낭비로 사람 망가지는 일은 흔하다. 화려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히 화려한 인생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한 것.

또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사실 진실여부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한 나이차 많은 연상의 여성과의 관계도 그렇다만, 펄롱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유혹하던 나이 많은 여자들로 더욱 망가졌다는 말도 있다.

2003년 개봉한 터미네이터3의 경우 터미네이터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욕을 쳐 먹어서 그렇지 제작비의 2.5배인 5억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충분히 흥행작 출연 배우로의 재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3 제작 관련 기사가 나올 초기에는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와 에드워드 펄롱 두 사람이 작품 출연에 무척이나 호의적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이들 배우들의 출연 가능성이 점쳐지자 제임스 카메론도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여겨지면서 시리즈의 팬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1998년 개봉작인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도 절륜의 외모를 자랑했던 에드워드가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마약과 술로 망가진 상태라 출연을 못하고 닉 스탈이란 무명 배우가 대신 출연한다. 10세의 존 코너가 절세의 미소년이었던 에드워드 펄롱과는 달리 닉 스탈은 미남도 아니고 무엇보다 카리스마가 너무 부족해서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악평까지 들으며 흥행수익이 더 떨어졌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 만큼, 만약 펄롱이 관리에 좀 신경을 써서 곱게 청년이 된 모습으로 나왔다면 더 나은 결과가 되었을 수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

에드워드는 터미네이터 3 출연 기회를 놓치면서 그 절망으로 더욱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6]

2006년 인디배우 레이첼 벨라와 결혼해서 아들도 얻지만 그놈의 마약중독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혼 발표 당시의 사진이 손가락으로 퍽유를 날리는 여자와 남자인지라 이게 무슨 퍽유같은 앞날의 복선이라도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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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코 앞에 있는데도 담배를 푹푹 피는 모습같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뭔가 불안하더니만 결국 2009년부터 별거에 들어간다. 2014년 7월인 지금까지 이혼은 하지 않았다. 별거 사유도 마약중독에 폭력문제. 폭력문제는 벨라 이후 만난 새 여친을 때리다가도 불거지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펄롱의 어린 아들의 몸에서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어 양육권도 박탈당한다.

배우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니라 2015년대에도 작품 활동을 하며 출연작들이 있으나 2000년대 이후 B급 영화들이 대부분으로 심지어 우베 볼 영화에도 출연했다. 2011년 그린호넷의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역시나 흥행실패.

네이버 웹툰 꽃가족에 세계적 미남 중 하나로 언급되어 하루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드래곤볼이 캐릭터는 터미네이터 2의 에드워드 펄롱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1. 삼포니 레코드에서는 아시아 한정 출시의 음반으로 에이급까지는 아닌 젊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은 워낙 일본 자본의 파워가 강했던지라, 큰 돈의 유혹에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넘어간 것. 알리사 밀라노, 브리지트 윌슨 등. 아시아권과 달리 배우가 확실히 검증된 실력도 없는데 가수 생활을 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미국팬들의 눈도 피하고 돈도 벌고. 그때는 인터넷 시대가 아니라 아시아권에서의 활동이 미국팬에게 지금같이 금방 알려지지 않았다.
  2. 일본 잡지 시장 규모나 팬들의 사재기 성향을 생각하면 일부러 큰 돈 들여 단독 화보를 기획하는 것도 잡지사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3. 80년대에서 90년대 초,중반 일본 시장은 헐리우드 탑스타들도 알랑방귀낄 정도로 큰 규모. 물론 지금도 그렇다만 그 때는 광고비 몇 백만달러(어지간한 유명스타들 영화출연료 이상)도 예사인지라 스타들입장에서는 반나절에 일년 고생할 돈도 벌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물론 그 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불경기 여파로 ...
  4. 특히 제임스 그레이의 데뷔작인 리틀 오데사에서는 팀 로스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같은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5. 사실 디카프리오도 타이타닉 전에 비록 미소년계의 전설, 너무 기대되는 뛰어난 연기력의 신진으로 인정받았지만 대박 흥행작은 많지 않았다. 타이타닉 전의 배스킷볼 다이어리, 디스보이즈 라이프 등에서의 신들린연기가 타이타닉을 만나 최고의 배우로 시너지 평가를 받은 것을 생각해보자.
  6. 에드워드을 대신해서 존 코너로 출연한 닉 스탈도 이 작품 이후로 씬 시티만 성공하고 나머지 작품은 전부 망하게 되었고 닉 스탈도 에드워드 처럼 마약으로 인해 망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