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제56회
(1984년)
캐서린 헵번
(황금 연못)
메릴 스트립
(소피의 선택)
셜리 매클레인
(애정의 조건)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나탈리 포트먼
(블랙 스완)
메릴 스트립
(철의 여인)
제니퍼 로렌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여우조연상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매기 스미스
(콜걸)
메릴 스트립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메리 스틴버전
(멜빈과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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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메릴 스트립 (Meryl Streep)Meryl Streep
본명메리 루이스 스트립 (Mary Louise Streep)[1]
국적미국
출생1949년 6월 22일, 뉴저지 주 서밋
학력예일대학교 연극대학원 석사
직업배우, 프로듀서
가족돈 검머 (1978 – ), 1남1녀
활동1971년 – 현재
신장168cm
사인

1 개요

Acting machine[2][3]

캐서린 헵번과 함께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여배우[4]

메릴 스트립은 이 세대에서 가장 탁월한 여배우다.
이 문장에 당신이 좋아하는 최상급 단어를 끼워 넣어도 좋다.

2 젊은 시절


이런 중견배우가 다 그렇듯 왕년에 한 끗발 하신 미모다.

1949년 미국 뉴저지 주 서밋의 약품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했다. 성악가를 목표로 12살 때 부터 성악 트레이닝을 받았다가 진로를 배우로 결정한 그녀는 바사 대학교에서 예일 대학교 연극대학원(Yale School of Drama)에 진학한다.

메릴 스트립은 데뷔하기까지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떤 때에는 숙박비가 없어서 런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5]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도 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호텔의 웨이트리스로도 일을 하였다. 1971년에 《세비야의 플레이보이》라는 작품에서 데뷔했고 1977년 TV 영화인 《치명적인 계절》(The Deadliest Season)으로 영화에 들어섰다.

메릴 스트립의 필모그래피에 중요한 초석이된 작품은 1978년에 나온 영화 디어 헌터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조연상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지명 기록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3 영화 활동

1979년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메릴의 초기 필모그래피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먼과의 열연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82년 영화 소피의 선택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에는 그 유명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출연하여 헐리우드 최고의 남자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이 영화로 5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무려 7개부문에 수상하며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메릴은 꾸준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며 활동을 이어간다.

2006년엔 앤 해서웨이와 함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출연하였다. 젊은 세대들에겐 아마 이 영화가 메릴 스트립하면 가장 떠오르는 작품일 것이다. 전설적인 패션 편집장인 "미란다" 역을 맡았으며 정말 소름돋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소설만큼 악독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줬는지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앤 해서웨이는 같이 연기하면서 메릴 스트립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2007년엔 아만다 사이프리드맘마미아에 출연했다.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40대 초반의 주인공 '도나(Donna)' 役을 맡아 열연했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연기와 탁월한 노래 실력을 뽐내며 전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이끌었다.

2008년엔 필립 시모어 호프먼, 에이미 아담스와 다우트란 영화에 출연하였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이듬해엔 줄리 & 줄리아에 출연하여 다시한번 에이미 아담스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이 영화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12년엔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역을 맡으며 실제 영국총리인줄 착각하게 만들만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된다. 사실 오랫동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이미 오스카 위너였기 때문에 일부러 안주는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드디어 수상하게 된다.
이후 줄리아 로버츠, 크리스 쿠퍼와 <어거스트 : 가족의초상>에 출연하였고 가족들에게 독설을 내뿜는 "바이올렛 웨스턴" 역을 맡았다. 얼핏보면 막장드라마 이야기지만, 좋은 연출력을 선보이며 작품성에서 인정받기도 하였다. 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인 가족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력이 가장 돋보였다.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는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14년에는 영화 숲속으로에 출연하여 뮤지컬 형식의 연기를 하였다. 뮤지컬 장르 영화로 유명한 롭 마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조니 뎁, 에밀리 블런트, 안나 켄드릭등도 출연하였다. 이 영화로 메릴은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하지만 이번 후보 지명에 대해서는 이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메릴 스트립은 35년 가까이 예술영화에 헌신해 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대표하는 여배우다. 그녀가 기록한 19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기록은 사이 영의 500승처럼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미국 영화 역사를 통틀어 여배우중 그녀에 비견될 만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은 할리우드 초중기의 전설적 여배우였던 캐서린 헵번[6]이 유일하다. 캐서립 헵번은 아카데미에 12번 노미네이트되어 여우주연상으로 4회나 수상하였다. 현재 아카데미의 여배우 계보는 캐서린 헵번-메릴 스트립-조디 포스터-케이트 블란쳇, 줄리안 무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4 아카데미 시상식 기록

  • 1978년: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조연상 수상.
  • 1981년: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첫 노미네이트.
  • 1982년: 《소피의 선택》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
  • 1983년: 《실크우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7년: 《엉겅퀴꽃》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0년: 《할리우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5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8년: 《원 트루 씽》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9년: 《뮤직 오브 하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2년: 《어댑테이션》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8년: 《다우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9년: 《줄리 & 줄리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2년: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7]
  • 2014년: 《어거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5년: 《숲속으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그외에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29번 노미네이트 되어서 8번 수상했고 비평가상과 그래미상 등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고 수상했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아서 베를린 영화제에서 3번 수상했고(한번은 여우주연상격인 은곰상) 칸 영화제에서도 한번 수상했다.

5 출연작

6 기타

현 남편인 돈 거머 이전에 대부 시리즈의 프레도 콜레오네로 유명한 배우 존 커제일과 연인 사이로 유명했다. 76년 연극무대에서 처음 만난 둘은 이후 커제일이 골수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약 3년간 뉴욕에서 같이 살았다. 두 사람은 이후 영화 디어 헌터에 같이 출연하게 되었는데, 스트립은 극 중 역할에 대해 다소 의구심이 있었으나 몸이 아픈 연인을 옆에서 지켜준다는 사실에 먼저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감독인 마이클 치미노와 각본가와의 협의 하에 폐암 말기까지 겹쳐 극도로 허약해진 커제일의 촬영을 먼저 할수 있도록 재조정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촬영 직후 커제일은 골수암으로 7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스트립은 죽을때까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또한, 2009년에 제작된 《당신을 알았습니다: 다시 보는 존 커제일》(I Knew It Was You: Rediscovering John Cazale)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에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직접 출연해서 그를 회고하기도 했다.

현 남편 돈 거머와는 78년 9월에 결혼했다. 이후 30년 넘게 해로하며, 4명의 자식을 키웠다. 딸 메이미 검머와 그레이스 검머 또한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 이혼이나 스캔들이 일상인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사례. [8] 게다가 영화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활동 등에서 모범적이여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입었던 의상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였다.[9] 이렇게 뛰어난 연기와 자신의 직업과 가정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에서 언제나 열정적이고 모범적인 메릴 스트립을 이 시대의 수많은 여배우들은 자신들의 롤모델[10]로 꼽고 있다.

문성근 닮은꼴이라한다.
  1. 메릴이라는 이름은 메리 루이즈에서 루이즈의 앞글자를 붙여서 나온 것이다.
  2. 사실 이 별명은 그녀가 매 작품마다 컴퓨터로 찍어낸듯이 새로운 스타일의 화법과 정서를 보여준다는 비판 같지는 않지만 유일한 비판(...)이다.
  3. 실제로 앞의 비판(?)과 같은 이유로 메릴 스트립보다 다른 배우를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 문소리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너무 기계적이고 교과서적이라 오히려 이자벨 위페르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4. 아카데미 최고의 여배우, 캐서린 햅번부터 메릴 스트립까지. - 타임지
  5. 그 때 나중에 앞에 보이는 런던 리츠 호텔에 꼭 묵을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그리고 성공 후 그렇게 했다.
  6. 캐서린 헵번이 작고한 뒤 출간된 그녀의 전기 《케이트를 회고하며》(Kate Remembered)에 따르면, 생전에 헵번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계산적이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7.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역으로 출연. 대처는 이듬해 타계했다.
  8. 메릴 스트립의 팬들은 이 부부를 스트립과 검머를 합쳐'Strummer'라고 한다. 팬픽도 있다!
  9. 정확히는 메릴 스트립이 아니라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에서 기부한 것이다.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받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폭스사의 기부는 품격 있는 행동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10. 대표적인 여배우들이 앤 해서웨이, 나탈리 포트먼, 제니퍼 로렌스 등인데, 공교롭게도 이들 전부 아카데미 수상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