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 파월 허블

에드윈 파월 허블
Edwin Powell Hubble

1889년 11월 20일 ~ 1953년 9월 28일

1 소개

천문학계의 레전드
천문학의 영원한 승리자 후계자 되실 NASA 국장님아직도...

미국천문학자.
천문학에 관심있다면 허블이라는 이름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여러모로 천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이 사람의 이름을 딴 허블 우주 망원경도 천문학에서 레전드급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2 일생

미주리주 마시필드 출생이다. 시카고 대학교 법과 졸업 후 옥스포드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시켜서 변호사로 일하였으나 천문학에 흥미를 느껴, 1914년부터 여키스천문대에서 천체관측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에는 윌슨산천문대의 연구원이 되었다.[1]

2.1 윌슨산 천문대에서

허블이 윌슨산 천문대에서 만난 상사가 할로 섀플리였다. 둘은 만나자마자 허블의 건방진 태도에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2]중2병(...)과 4차원(...)의 전설적 만남 거기다 성격 궁합도 최악이었는데 섀플리는 반전평화주의자였고 허블은 세계 대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었다. 거기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늘상 군복을 고집하는데다가 파이프를 피우는 탓에 섀플리가 수도 없이 주의를 줬다고 한다. 물론 단 한번도 듣지는 않았다. 역시 세계 과학사를 뒤집어놓은 과학자답다.(...)와! 역시 허블 선밴님 오! 완전 과학사를 뒤집어 노셔따 와 천문학이 달라진 거 같애 진짜 안 쓰는 연구법 허블, 우주, 망원경

섀플리가 2년만에 하버드로 떠나는 바람에 이 관계는 딱히 오래 가지는 않았다.

거기다 섀플리는 우주가 우리은하가 다라고 생각했는데[3] 그 생각을 아주 부숴버리는 발견을 허블이 하는 바람에 두고두고 원수지간이 되었다고..커티스는 언급도 잘 안 되지만.. 물론 발견 전부터 이론으로도 으르릉댔다고 한다.

3 업적

쉽게 말해 인류의 우주관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뒤바꾼 인물이다(...)

3.1 외부 은하의 발견

당시 천문학계는 외부 은하의 존재 여부를 놓고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할로 섀플리는 우주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소위 나선 성운[4]이라 불리는 천체들이 우리 은하 내에 있는 천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에 대항하는 헤버 커티스는 임마누엘 칸트의 '섬 우주 가설'에서 출발한 외부 은하 가설을 주장했다. 이 아이디어는 우주의 전체라고 여겨지고 있었던 우리 은하가 우주에 퍼져 있는 수많은 은하들 중 하나에 불과이거 어디서 본것 같은데하다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양측 주장에는 각각 그럴듯한 근거가 존재했기 때문에 논쟁을 결판내기 위해서는 실제 거리를 측정하면 될 일이었다. 윌슨산 천문대에 근무하던 허블은 M31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던 도중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측정된 거리는 약 150만 광년. 현대의 측정 결과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우리 은하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안드로메다 성운이 외부 은하라는 것은 확실히 밝혀진 셈이 되었다. 이 발견으로 에드윈 허블은 일약 대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천문학의 흐름을 유럽 위주가 아닌 미국 위주로 돌려세운 시작점이 되는 사건.

허블의 발견으로 인해 대논쟁은 결국 커티스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허블은 시시콜콜 시비만 걸며 갈구던 상사를 보내버렸다 과거 토성까지가 우주라고 생각하던 시대에서 다시 명왕성, 그리고 우리 은하 내의 일부에서 다시 우리 은하 밖의 또다른 우주로 인식이 확장 된 인류 전체의 대사건이다. 이후 허블은 계속해서 관측을 거듭하던 중, 은하들의 형태에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허블 분류를 고안하게 된다. 다만 처음 허블은 이 분류를 은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현재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3.2 우주 팽창을 발견하다

대스타로 떠오른 후 허블은 은하의 분광을 연구하게 된다. 그런데 은하의 스펙트럼에서 거의 대부분의 은하에서 적색편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5] 이를 바탕으로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거리 측정을 통해 더 먼 은하일수록 적색편이가 더 심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혀내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허블은 허블의 법칙을 발표하게 된다. 우주는 영원하고, 정지해 있다는 정적 우주론이 지배하던 학계는 이 발견으로 급변했다. 우주상수를 개발했던 아인슈타인은 직접 허블이 일하는 윌슨 산 천문대에 방문하여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도 했다. 이후 우주론은 대폭발 우주론정상우주론의 양강 체제에 돌입했다.

허블이 최초로 예측한 허블 상수 값은 약 200 정도로 우리 우주의 나이는 약 50억 년 정도라고 예상되었다. 이후 계속 허블 상수가 300~500 정도로 측정되면서 우주의 나이는 30억 년 이하로 낮아졌고 지구의 나이보다도 우주의 나이가 적은 모순이 발생했다. 이 시기의 오차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한 거리 측정 방법을 잘못 이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 컸다. 현재 재계산된 허블 상수는 약 70km/s/Mpc이며 이를 토대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면 대략 137억 년 정도가 된다.

추가바람

4 관련 항목

  1. 제의 자체는 더 전에 받았다고 한다. 당시 허블은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2. 그냥 섀플리가 성격이 나빴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둘 다 보자마자 싫어했다는 얘기도 있다..
  3. 섀플리-커티스 대논쟁 참고
  4. 당시엔 은하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Nebula라고 불렀다. 간혹 나이 드신 분 중엔 아직도 성운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도 있다.
  5. 사실 30개 전후의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리한 예측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허블이 발견하는 은하가 우주에서 분광이 가능한 전체 은하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