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슬로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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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Donald Slovik. 1920-1945. 미군탈영병. 남북전쟁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1] 탈영죄로 총살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전시에 탈영병이 총살형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겠지만 남북전쟁 이후 탈영자는 2만1천명에 이르고 그 중 탈영죄만으로 총살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49명이지만 실제로 집행된 건 에디 슬로빅이 유일하다. 사실 군법상으로도 지휘관이 아닌 이상 전시탈영 그 자체만으로는 무조건 사형이 아니기에 운이 없었던 셈.

1 생애

1920년 미시간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손버릇이 나빠 공장 등에서 물건을 훔쳤고 교도소에 두 번이나 가기도 했다. 1942년에 가석방 된 뒤에 앤투어넷 위즈니스키(Antoinette Wisniewski)와 만나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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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투어넷과 에디.

2 입대와 탈영

범죄 등으로 인해 병역에 부적격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인력 소모가 심해지자 징병의 폭이 확대되면서 육군으로 징병되었다.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은 뒤 프랑스 전선에 배치됐지만 동료와 숨는 등 적 앞에서 도망쳤다. 부대에서 낙오하여 후방에 있는 캐나다군 부대에서 6주를 보내기도 했고 이 일로 기소되었다. 슬로빅은 군사 법원에서 자신이 전선에는 맞지 않는다며 소총수로 배치되면 도망갈 거라고 대대장인 로스 헨베스트(Ross Henbest) 중령에게 말했다. 군 변호사인 헨리 서머는 부대로 일단 복귀하면 기소가 연기될 것이고 다른 부대로 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슬로빅은 거부하고 군사 법원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밝혔는데[2] 그게 제 무덤 파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소속됐던 28보병사단은 휘르트겐 숲 전투(Hürtgenwald)를 앞두고 있었고 상당한 피해자가 속출할 것을 예상했다. 그때문에 사단에선 군기를 확실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1944년 11월 11일에 군법 회의가 열렸고 군 검찰 측인 존 그린(John Green) 대위는 그가 전선에 배치될 경우 탈영하겠다고 증언했다고 증인을 내보냈고 변호인 측인 에드워드 우즈(Edward Woods) 대위는 슬로빅이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9명의 장교로 된 배심원은 유죄로 판단했고 총살형이 선고됐다. 사단장인 노먼 코타(Norman Cota) 소장이 재가했다.

1944년 12월 9일 슬로빅은 연합군 최고 사령관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감형 청원을 보내지만 탈주가 심각한 문제라며 기각되었고 12월 23일 아이젠하워는 사형 집행에 서명했다. 이듬해인 1945년 1월 31일 오전 10시 4분에 프랑스 알사스의 광산촌인 생트마리오미느(Sainte-Marie-aux-Mines)의 사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후 전쟁 범죄자들의 묘역에 묻혔으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중범죄자가 아닌 일반 탈영병임을 감안. 그의 시신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허가하여 미국으로 와 1979년에 사망한 아내의 무덤에 같이 묻혔다.

3 비슷한 케이스

사실 미군의 군법재판상 형량. 특히 사형은 1984년에 레이건이 사형제도를 부활하기 전까지 생각보다 일관성이 없어서 소위 시범케이스로 처형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에디 슬로빅 외에도 1961년 존 A 베넷이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11세의 피해 소녀를 강간했지만 살해하지는 않은 점[3]에서 에디 슬로빅과 비슷한데 살인자가 아님에도 당시 미군의 성범죄가 심각했기에 시범케이스로 걸려 처형되었다. 참고로 2차대전 이후 살인죄가 아닌 범죄자로 처형된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4 기타

  • 1974년 그의 이야기가 TV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젊은 나이의 마틴 신이 슬로빅 일병으로 열연하여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1. 이후에도 처형된 미군은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 살인 등 중범죄자였고, 탈영죄만으로 처형된 사례는 없다.
  2. 아마 자기가 탈영만 했으니 사형은 당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군에서 탈영죄로 처형당한 범죄자가 여럿 있긴 했지만 순수 탈영만으로는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이전이건 이후건 없기도 했고.
  3. 정확히는 살인미수라는 점에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의 범인 고종석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