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teven Paul 'Elliott' Smith
(1969-2003)
엘리엇 스미스의 대표곡 "Miss misery".
미국의 가수,싱어송라이터.
2 삶
2.1 유년 시절
1969년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스티븐 폴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모가 이혼했고, 그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텍사스 주 댈러스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재혼을 했는데 이때 양부에게 학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성적 학대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스미스의 주장과 그의 어머니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든 이때 양부의 학대라는 경험은 그의 인생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2:45 a.m.', 'Roman Candle'과 같은 곡에서 양부에 대한 증오와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이 드러나 있다.
2.2 인디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엘리엇이라 개명하고 햄프셔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한다. 대학교 졸업에 대해서 엘리엇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끈기가 결여된 사람'으로만 생각하기에 자신도 마음 먹은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졸업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이미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닐 거스트와 함께 히트마이저라는 펑크 록밴드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히트마이저 활동 중이었던 1994년, 당시 여자친구인 조애나 봄(Joanna Bolme)[1]의 권유로 엘리엇은 자신이 최근에 작곡한 8곡의 데모 테이프를 레코드사에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레코드사의 주목을 받아 데모 전체가 그 해 여름 Roman Candle이라는 제목의 앨범으로 발매된다. 당시 엘리엇은 데모 중에서 한 두 곡이 7인치 싱글 정도로 나오겠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데모 전체가 앨범으로 나오자 굉장히 놀랐다고.
자신의 음악이 메이저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엘리엇은 1995년 셀프 타이틀 앨범인 Elliott Smith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앨범은 전작보다 우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헤로인 중독에 대한 주제가 많이 드러나는데 훗날 엘리엇의 인터뷰에 의하면 두 앨범에 실려있는 곡들이 너무 우울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대중들이 자신을 '어둡고 우울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까 염려되어 다음부터 곡을 쓸때는 가능하면 좀 더 밝은풍의 멜로디와 다른 분위기의 가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또한 앨범 가사에 헤로인 중독을 암시하는 내용이 많이 나와서 엘리엇 스미스가 이 때 부터 약물중독자였다고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사에 나오는 헤로인 중독에 대한 부분은 엘리엇이 주변의 헤로인 중독자들과 소설과 영화 등에 묘사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사한 것이었다고 한다. (엘리엇 스미스가 본격적으로 헤로인을 시작한 것은 <Figure 8> 투어 중이었다.) 1996년, 엘리엇이 조애나의 집에서 솔로 3집 Either/Or의 녹음을 시작하자 그간 엘리엇의 솔로 활동을 반대한 다른 멤버들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게 되고 그는 히트마이저를 나오게 된다. [2]
이후 1년여 동안 여러 장소에서 3집의 녹음을 진행한 엘리엇은 쇠렌 키르케고르가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유래한 3집 앨범 Either/Or을 1997년 발매하게 된다. 그는 앨범 발매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Either/Or 앨범에 대해 다시는 이렇게 힘들게 작업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작업하였으며 앨범 작업 시 작곡한 30곡의 곡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엘리엇의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앨범 레코딩 중에 조애나 봄과 결별한 그는 항상 자살에 대한 이야기만 했으며 실제로 절벽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나뭇가지에 걸려 자살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Either/Or 발매 직후 동향 친구였던 영화감독 거스 밴 샌트가 그에게 자신의 영화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굿 윌 헌팅. 이를 위해 자신의 1집 앨범에서 한곡, 3집 앨범 "Either/Or"에서 몇곡을 골랐고 엔딩을 위해 그간 발표하지 않았던 곡 한곡의 가사를 영화의 장면에 맞게 개사하여 내놓았다. 그곡이 바로 엘리엇 스미스를 가장 널리 알린 곡 "Miss misery"였다.
2.3 메이저 시절
영화가 흥행하면서 "Miss misery"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주제가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엘리엇 스미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되어 이 노래를 불렀다. 비록 주제가상은 셀린 디옹의 타이타닉 삽입곡 "My Heart Will Go On"에게 돌아갔지만 인디 뮤지션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받은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사실 "Miss misery"가 너무 우울한 노래라 아카데미에서 노미네이트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Miss Misery의 성공 후, 엘리엇은 대형 레코드사인 드림웍스 레코드와 계약을 채결하고 4집 앨범 XO의 녹음을 시작한다. 4집 녹음 중 엘리엇은 조애나 봄과의 이별에 대한 후유증과 인디 시절 동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술을 가까이 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걸리게 된다. 1998년 발매된 XO는 전작들보다 2배가 넘게 판매되는 성공을 거뒀고.[3] 싱글로 발매된 Waltz No.2는 Miss Misery, Between The Bars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앨리엇 스미스의 곡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엘리엇은 곧바로 다음 앨범 Figure 8의 녹음을 시작한다.
2000년 앨리엇 스미스의 5집이자 생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앨범 Figure 8이 발매된다. 이 앨범은 전작들과 달리 좀 더 밴드 지향적인 앨범으로 완성되었고 엘리엇은 솔로로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밴드의 형태로 투어를 돌기도 하였다. 앨범은 "엘리엇 스미스와 대형 스튜디오의 협업의 결과물로 발매된 <Figure 8>은 서로의 장점을 합친 멋진 작업물이다."는 호의적인 평가와 "그간 엘리엇의 앨범에 실린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많이 희석되어있는, 그동안 엘리엇 스미스에 열광케 한 사람들을 배신한 앨범."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양분되었다.
2.4 갑작스러운 죽음
투어가 끝난 후, 엘리엇 스미스는 헤로인을 하기 시작했고 지인들에게는 "드림웍스 레코드사가 Figure 8 앨범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으면서 오히려 그들은 나를 상품 가치가 없다며 쫓아냈다." "누군가가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작업물들을 훔쳐갔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드림웍스 레코드사의 직원들을 비난하는 언행을 보인다. 결국, 드림웍스 레코드는 엘리엇과의 계약을 파기했고 Either /Or 앨범부터 엘리엇의 음반을 같이 프로듀싱한 Rob Schnapf와 솔로 1집부터 엘리엇의 매니저였던 Margaret Mittleman 또한 엘리엇과 결별하였다. 엘리엇의 지인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2002년 즈음부터 제니퍼 치바와 동거를 시작한 엘리엇 스미스는 육식과 술, 헤로인을 끊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 재활 치료 센터에 입원하나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나오고 만다. 재활 치료 센터에서 나온 엘리엇은 라이브 공연을 재개하고 자신이 감독하는 새 영화 <The Royal Tenenbaums> 사운드트랙에 비틀즈의 곡 <Hey Jude>를 리메이크 해달라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요청을 수락하는 등 재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엘리엇의 건강 상태 악화로 라이브 공연은 혹평을 받았고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는 엘리엇의 솔로 2집 수록곡 <Needle in The Hay>가 음악 감독을 맡은 스티븐 한프트의 편곡을 거쳐 수록되었다. 당시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엘리엇을 만났던 스티븐 한프트는 이 시기 앨리엇 스미스의 모습을 "헤로인 중독에서 완전히 해결되어 보이는, 마치 터널의 끝자락에 존재하는 밝은 빛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2002년 11월 25일에는 벡과 The Flaming Lips의 합동 공연에서 발생한 패싸움에 엘리엇 스미스와 제니퍼 치바가 연루되어 이틀간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고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3년 10월 21일, 갑작스럽게 엘리엇 스미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엘리엇 스미스는 제니퍼가 리더로 있는 인디 밴드의 첫 앨범 녹음에 참여하고 있었고 제니퍼와의 사이가 안 좋아져서 늘상 다투고 있는 상태였는데 여느때 처럼 엘리엇과 제니퍼가 다툼을 하던 중 제니퍼가 욕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울기 시작하자 엘리엇이 스테이크용 나이프로 자신의 가슴을 연속으로 찔렀다고 한다. "정말로 미안해요, 사랑하는 엘리엇이. 저를 부디 용서해 주세요."라고 적은것이 사실상 유서로 보인다. 다만,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자살 방식 때문에 타살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1]
2004년, 유족인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그간 앨리엇의 음반을 엘리엇과 같이 프로듀스해왔던 롭 슈내프(Rob Schnaph)와 엘리엇의 전 여자친구이자 현재는 록그룹 크립스의 멤버 게리 지만의 부인인 조애나 봄에 의해 엘리엇 스미스의 유작 앨범 From A Basement on The Hill이 발매되었다. 훗날 엘리엇의 자살 직전까지 3년 동안 그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데이브 매코널(Dave McConell)은 "엘리엇은 6~70년대 밴드들의 사운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합하는 일종의 제2의 화이트 앨범을 구상하고 있었고 새 앨범을 위해 무려 135개의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매코널은 롭 슈내프와 조애나 봄이 작업한 결과물에 대해 엘리엇 스미스가 생전에 남긴 메모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믹싱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그들과 작업했던 시절 엘리엇의 사운드를 충실히 재현한 것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최근까지 그가 추구한 음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2] -> 링크만료?!
3 기타
어린시절의 학대경험 등으로 인해 그에게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이때문에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술에 의존한게 결국 알코올 중독의 결과를 낳게 되었고 헤로인까지 하게 되면서 친구들이 거의 반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2007년도 11월자 롤링 스톤 지에서는 역사상 가장 과소평과된 기타리스트 25인 중 23위로 그의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그의 몇몇 곡들이 가진 코드는 상당히 잡기 어려운 프레이즈로 이루어져있어 연주하기 힘들기도 하다. 엘리엇 스미스는 기타뿐만 아니라 피아노, 베이스, 드럼, 클라리넷 등을 연주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특히 피아노의 경우 고난이도인 라흐마니노프의 악보 또한 연주할 수 있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앨범을 녹음할 때도 몇 몇 세션들을 제외하면 원맨 밴드식으로 혼자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고 한다. 기타는 어쿠스틱의 경우, 야마하의 FG-180과 깁슨의 J-45, 그리고 일렉트릭으로는 1969년산 깁슨 ES - 330을 사용했다.
불행한 인생 속에서 아픈 곡을 쓰는 섬세한 사람이었던 엘리엇 스미스는 포크와 클래식의 영향을 받은, 순수하고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멜로디와 특유의 지적이고 고독한 분위기를 지닌 가사가 맞물리는 음악을 창작해 냄으로서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끔 만들었다. 특히 그의 가사는 사람들이 피하고자 하는 현실의 고통과 치부를 들춰냈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미묘한 공감대로써 작용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차분하다 못해 음울하기 까지 한데, 묘하게 70년대를 풍미했던 어쿠스틱 포크 뮤지션 닉 드레이크와 비슷한 면이 있다. 드레이크도 항우울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걸 보면...
이소라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며, 이소라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소라의 7집 앨범 타이틀곡인 "track 08"은 엘리엇 스미스의 자살 소식을 듣고 얻은 감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며, "track 05"에서도 윤동주,김광석과 함께 언급되기도 할 정도다.
또한 국내 인디밴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곡 'Elliott Smith'를 통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벤 폴즈는 Late 라는 곡을 통해 친구인 엘리엇 스미스를 추모하기도 했다. 이 곡의 가사에는 엘리엇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게 바로 엘리엇 스미스다.
Elliott, man, you played a fine guitar엘리엇, 넌 정말 기타를 잘 연주했지
And some dirty basketball
그리고 조금은 거친 농구 실력도
The songs you wrote Got me through a lot
네가 쓴 노래는 내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Just wanna tell you that
그걸 너에게 말하고 싶어
But it's too late
그러나, 너무 늦었어
It's too late
너무 늦었어
No, don't you know
넌 모르니
it's been too late for a long time
너무 늦었다는 걸
다큐맨터리 'Heaven Adores You'는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인생을 다룬다. 2015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출품됐다.
추가바람- ↑ 믹싱 엔지니어이자 배이시스트인 조애나 봄은 엘리엇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둘은 3집 <Either/Or> 녹음 중 결별했는데 엘리엇의 대표곡 'Say Yes', 'Miss Misery'와 같은 곡들이 그녀와 헤어진 직후 쓰여졌다. 특히 Say Yes의 메인 곡조는 그녀와 헤어진 다음 날 아침에 썼다고 한디.
- ↑ 엘리엇이 탈퇴하자 히트마이저는 그대로 해체.
- ↑ <XO> 발매 당시의 인터뷰 http://afxlab1979.egloos.com/m/380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