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브 아틀레티코 리버 플레이트 | |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 (Estadio MonumentalAntonio Vespucio Liberti) | |
애칭 |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 |
이전 이름 |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Estadio Monumental, 1938~1986) |
위치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Argentina) |
시공 | 1936년 9월 27일 |
완공 | 1938년 |
개장 | 1938년 5월 25일 |
개보수 | 1978년 |
좌석 | 67,664석 |
운영 | CA 리버 플레이트 (CA River Pl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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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의 성지.
1 개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로 축구 클럽인 CA 리버 플레이트의 홈 구장.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여러 차례 리버 플레이트의 회장을 역임했던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졌다.[1] 줄여서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이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보다 이쪽이 더 유명하고 자주 쓰인다. 또 영어권에서는 '리버 플레이트 스타디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축구 외에도 다양한 종목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다목적 경기장이다. 리버 플레이트 외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럭비 국가대표팀도 이곳을 홈 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기장이고,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이 네 차례 열렸으며, 아르헨티나의 첫 FIFA 월드컵 대관식이 이곳에서 치러졌다. 여러모로 아르헨티나의 대표 경기장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나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남미에서 몇 안 되는 경기장이다.
2 역사
1934년 10월 31일, 당시 부유한 재정과 과감한 영입으로 인해 '백만장자들(Los Millonarios)'이라 불리던 리버 플레이트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벨그라노의 부지를 사들이면서 공사 계획이 시작되었다. 이후 정부로부터 250만 달러를 빌린 뒤 1936년 9월 27일에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는 1938년에 완료되었고, 5월 25일에 약 65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경기장이 팬들에게 공개되었다. 역사적인 첫 경기는 다음날에 열렸는데, 약 68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버 플레이트와 우루과이 최고 명문인 페냐롤의 경기가 치러졌고 홈 팀 리버 플레이트가 3-1로 승리했다. 이후 1946년, 1959년에는 아르헨티나의 8번째, 12번째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 이곳에서 확정되었다.
1978년 월드컵의 개최지가 아르헨티나로 확정되면서 개보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리버 플레이트가 군부로부터 돈을 빌려 이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후 돈을 갚느라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개보수 완료 후 첫 경기는 서독과 폴란드의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였다. 이 경기를 포함해 월드컵에서 총 9경기가 치러졌는데 그 중엔 3, 4위전과 결승전도 있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홈 팀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3-1로 꺾고 우승, 명실상부 아르헨티나 축구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아르헨티나가 이곳에서 멕시코를 꺾고 우승했다.
다만 흑역사도 있는데, 1994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콜롬비아에게 0-5로 패배해 홈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이 세워진 바 있다. 하지만 이 경기 이후에는 2015년 10월 8일에 에콰도르에게 지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무패를 이어가기도 했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하계 유스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다.
3 관련 문서
- ↑ 비슷한 사례로 레알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