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

吳範
(?~226)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점술가. 자는 문칙(文則)

회계군 상우 출신으로 오국팔절 중 한 사람이다.

역법을 익혀 풍속이나 기상에 밝아 이름을 알려 유도에 천거되었지만 세상이 혼란스러워 가지 않았는데, 양주종사를 지내 도겸을 섬겼고 명을 받아 조욱을 도겸에게 등용하려고 한 적도 있다. 이후 강동에서 손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의탁해 일하게 되었고 재앙의 징조가 보일 때마다 미리 구체적인 방책을 이야기했는데, 그의 방술은 효험이 많아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진다.

207년에 손권이 황조를 치고자 할 때 오범은

금년에는 이로움이 적어 내년만 못합니다. 내년은 무자년(戊子)으로 형주의 유표는 물론 나라도 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손권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황조를 정벌하러 갔지만 실패하고 만다.

208년에 손권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심양으로 갔는데, 오범도 손권을 따라갔다가 풍속과 기상을 관찰해 승기가 보이자 손권의 배로 와서 승전을 미리 축하했다. 오범은 그 후 즉시 병사를 재촉하면서 긴급히 행동해 황조의 군사를 무찌르지만 황조는 달아났는데, 이에 손권이 황조를 놓친 것을 걱정하자 오범은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황조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과연 오전 3시와 5시 사이가 되자 풍칙이 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이어서 유표가 오범이 예언한대로 죽고 형주는 분할되었다.

212년에 오범은 손권에게 와서

갑오년(甲午, 214년)에는 유비가 반드시 익주를 얻을 것입니다.

라고 했는데, 여대가 촉에서 돌아오는 길에 유비군을 백제에서 보고 손권에게 돌아와 유비의 부대는 흩어져 절반이 죽었으니 성공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손권이 힐난하자 오범은

신이 말한 것은 하늘의 도리(天道)이지만 여대가 본 것은 사람의 일(人事)일 뿐입니다.

과연 214년이 되자 유장은 유비에게 항복해 촉은 유비의 손에 들어간다.

219년에 손권이 여몽과 함께 관우를 습격할 일을 모의할 때 가까운 신하들만 모아 상의했는데, 손권과 여몽을 제외한 대부분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오범은 관우를 잡을 수 있다고 했으며 과연 그의 말대로 관우는 오나라와 위나라에 밀려 맥성까지 쫓기게 되었으며, 관우는 여기서 항복을 요청한다.

손권이 오범에게

그는 결국 본심으로 투항하려는 것이오?

라고 묻자 오범은 곧

그에게는 달아나려는 징후가 있습니다. 투항한다는 말은 거짓일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손권은 반장을 시켜 관우의 길을 끊도록 했으며, 이 때 정찰하는 자가 돌아와 관우가 이미 떠났다고 보고하자 오범은

비록 떠났을 지라도 모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손권이 이에 놀라 언제 체포하게 되냐고 물었는데,

내일 정오입니다.

손권은 그의 말을 듣고 해시계와 물시계를 장치해 그 시간을 기다렸는데, 정오가 되었는데도 관우가 오지 않아 손권이 까닭을 묻자

시간이 아직 정오가 안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 휘장을 움직이자 오범은 손을 치면서 관우가 붙잡혀 왔다고 말했으며, 밖에서는 만세소리가 들리면서 관우를 붙잡았다는 말이 들어왔다.

손권이 이릉대전이 벌어지기 전 조비와 화친을 맺을 때는

바람의 징후로써 말하면 그들은 예절있는 모습으로 왔지만 사실은 음모가 있으니 마땅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라면서 그들이 배반을 할 것을 예견했으며 유비가 서릉에서 병사를 많이 일으키자 그가 곧 화친을 맺을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 되니 그의 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손권은 이에 오범을 기도위로 임명하면서 태사령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점의 비결을 알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법술을 비밀로 하면서도 아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손권에게 알리지 않자 손권은 매우 한스럽게 생각했다.

손권이 장군으로 임명될 때 오범은 강남에 제왕의 기운이 있어 해년과 자년 사이에 큰 복과 경사가 있을 것이라고 해 이에 손권은

만일 결과가 당신의 말과 같다면 당신을 후(侯)로 임명하겠다.

라고 하자 과연 그의 말대로 220년에 오왕에 봉해졌으며, 이에 오범은 손권에게 그 때의 일을 말하자 손권은 기억난다고 답해 후작의 수대를 주도록 했다. 오범은 이전의 약속을 안 지키려 한다고 생각해 그것을 받지 않았는데, 손권은 오범이 자신에게 법술을 아끼는 것을 한탄하면서 도정후로 임명하려던 것을 취소한다.

오범은 사람됨이 강직해 자신을 뽐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까운 친구와의 왕래에는 시작과 끝이 있었으며, 그는 평소 위등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가 위등이 죄를 짓자 손권은 노여워 해 매우 심하게 질책했다. 이에 대해 간언하는 자를 죽일 정도였으며, 이 때 오범은 위등에게 당신의 일을 앉아서 보기만 할 수 없어 함께 죽겠다고 한다.

그는 곧 머리를 자르고 직접 결박해 궁궐 문 밖으로 와서 장수로 하여금 간언하러 왔다는 것을 통보하게 했는데, 장수가 보고하면 자신이 죽는다면서 하지 않겠다고 하자 오범은 자신이 그의 아들을 돌보겠다고 설득해 결국 그 장수는 손권에게 이 일을 알리러 들어간다. 과연 손권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을 그에게 던져 찌르려고 하자 장수는 운 좋게도 몸을 돌려 달려 나갔으며, 이 때 오범이 갑자기 들어와 머리를 찧어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자 손권이 결국 포기하고 위등을 풀어줬다.

위등은 오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감사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나를 낳고 기를 수는 있었지만 나를 죽음에서 모면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장부(丈夫)의 지기(知)로는 당신과 같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거늘 어찌 많이 얻겠습니까!

226년에 오범은 병으로 죽을 때 오범의 장남은 그보다 먼저 죽었으며, 차남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의 점술은 끊어지게 되었다. 손권은 그를 추념하고 오범과 조달 같이 술수를 알고 있는 자를 천거하도록 해 천호후로 봉하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관우를 사로잡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점을 친 역할이 삼국지연의에서는 여범이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