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

1 乳漿

우유치즈를 만들고 나서 남은 액체. 혈액혈장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훼이(Whey), 유청(乳淸)이라고도 한다. 우유에서 지방과 일부 단백질이 응고한게 치즈 그리고 나머지 단백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게 유청이다. 유청 단백질이 몸에 좋다고 알려지게 되면서 이유식건강식품의 재료로 널리 쓰인다. 리코타 치즈의 재료이기도 하다.

2 후한 말의 군벌

유장(삼국지) 참조.

3 전한 시대의 인물

劉章
(기원전 200~기원전 177)

역대제왕묘 배향자

전한의 황족으로 한고조의 손자다. 제나라 도혜왕 유비(劉肥)[1]의 차남으로 제 애왕 유양(劉襄)의 아우다.

기원전 186년, 형을 대신해서 동생 유흥거(劉興居)와 동시에 조정에 입조했다. 이 때 그는 주허후(朱虛侯)[2]에 봉해졌고 유흥거는 동모후(東牟侯)에 봉해졌다. 그는 이 때 여후의 조카였던 여록(呂綠)의 딸을 아내를 맞이하지만 그는 여씨 일문의 전횡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 유비는 살아생전 불미스러운 일로 여후에게 찍혀 목숨까지 위협받았었다.[3]

기원전 181년, 유장은 여후로부터 궁중 연회의 간사장에 임명되고 이 때 군법에 따라 진행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 때 유장은 연회의 여흥으로 민요를 구실로 하고 여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씨 일문의 전횡을 성토하고 또한 머지않아 보복하고 여씨 일족을 도륙낼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또 중도에 연석에서 마음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여씨 일족 사람을 베어 죽이고 여후를 향해 "군법에 따라 이를 처형했습니다"고 당당하게 보고했다. 그러나 여후는 군법에 따라 옳은 일을 한 유장을 비난하지 못했다. 유장은 이 때가 겨우 20세였으며 기개가 있는 사람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된다.

기원전 180년, 여후가 사망하자 여씨 일족의 제위 찬탈 움직임을 알고 형 유양에게 비밀리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오게 했다. 또 자신은 이 일에 호응하는 형태로 주발, 진평 등과 함께 장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여씨 일족을 전부 주살했다. 이 혁명 직전에 유장은 주발 등의 중신과 성공 후에 유양을 황제로, 자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기를 밀야했다. 사실 유양은 한고조의 장손이었므로 황제로 옹립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유양의 외가인 사균 등 사씨 일족이 포악하고 야심가가 많다는 이유로 그들이 제2의 여씨 일족이 될까봐 두려워 결국 무의로 돌아갔다. 결국 한고조의 넷째아들 대왕(代王) 유항(劉炕)이 장안에 들어가 한문제로 즉위했다.

문제가 즉위하자 유장의 아버지 유비가 노원공주에게 헌상했던 성양군을 제나라에 반납했다. 그리고 쿠데타 공적으로 기원전 178년, 유장은 성양왕에 봉해졌다. 유장은 자신의 형 유양이 황제가 못되고 자신도 제왕이 되지 못한 것에 내심 불만이 있었지만 영지에 부임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177년, 유장은 24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그의 아들 공왕 유희가 계승했다. 유장의 시호는 경왕이다.

유장이 죽은 뒤 그의 영토였던 성양 일대에 그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많이 건립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산동 지방에는 신앙이 많이 퍼졌다. 나라 말기 적미군은 이 신앙을 믿는 집단이 많았다. 그래서 유장의 후예 중에서 제비뽑기를 해서 최종적으로 양치기였던 유분자(劉盆子)를 황제로 옹립했다.[4] 그 후 후한 말기에도 신앙은 계속되었지만 제남국상으로 있던 조조가 이 신앙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모두 철거하고 제사를 금지했다.

4 환상게임의 등장인물

유장(환상게임) 참조.
  1. 한고조의 아들 중에서 장남이지만 서장남이라서 황제 자리는 그의 아우인 혜제 유영이 이었다.
  2. 훗날 삼국 시대 때 원소를 명으로 진림이 쓴 조조 토벌 격문에 나오는 주허후가 바로 이 사람이다.
  3. 유비가 조정에 입조해서 혜제를 알현했고 혜제는 연회를 열었다. 이 때 혜제는 자신의 형이라고 유비에게 상석을 양보하려고 했는데 이걸 여후가 보고 분노해서 유비를 독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혜제가 막음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유비는 심복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봉지 중에서 성양군을 여후의 딸 노원공주의 봉지로 헌납했다. 이에 여후는 기꺼워했고 유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4. 그 후 유분자는 적미군이 패배한 뒤에 광무제에게 항복했다. 광무제는 유분자를 보호했고 이 후 실명한 그에게 평생 녹봉을 주고 영지를 주어 편안하게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