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

1 일반적인 의미

  • 黃鳥 : 꾀꼬리를 뜻하는 한자어. 황조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2 후한 말의 인물

黃祖
(? ~ 208)

후한 말의 강하태수. 유표 휘하의 장수.

다만 유표의 직속 부하나 부장으로 보기엔 영향력과 세력이 매우 막강하였고 독립 군벌로 보는 시각도 있다.

2.1 정사

유표의 밑에서 강하태수를 지냈다. 원술의 명령이라고 쓰고 땡깡이라고 읽는다.으로 유표를 치러 온 손견과의 전투에서 손견이 전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손씨 일가와 대대로 대립하였다.[1]

손책의 대에는 유훈을 돕기 위해 아들 황역을 보내 싸우게 하지만 참패. 오나라쪽 기록에 있는 손책의 표에는 황조와 싸워 이기고 수천, 수만 명을 죽이거나 혹은 포로로 잡아갔다고 하는데, 애초에 표라는 것 자체가 뻥이 심한 거라 수치 그대로 믿기는 좀 그렇다. 저렇게 과장해서 자랑할 정도면 어쨌거나 탈탈 털린 것은 맞나 보다

황조의 신세를 지고 있던 예형의 문재를 아껴서 우대하였다. 어느 날 연회를 열었는데 예형의 말이 불손하였다. 이에 지적을 하자 아예 쌍욕을 날리므로 편형을 부과했다. 예형은 그칠 줄 모르고 되레 더 패악질을 부려댔다. 결국 홧김에 사형에 처했는데 평소 예형을 싫어했던 관리가 즉시 형을 집행하였다. 예형과 친했던 황역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황조도 이내 후회하여 후하게 장사지냈다.

그리고 손권의 대에는 203년에는 손권군에 의해 수군은 격파당했지만 손권 측 장수 능조, 서곤[2]이 전사하고 농성하는 동안에 후방에서 산월과 여타 지역의 반란으로 강하를 지켜내며(?), 그나마 능조를 죽인 건 감녕이다[3] 4차 북벌 때 농서를 지켜낸(?) 사마의가 생각난다[4] 207년에도 손권의 군대를 맞아 강하를 지켜내는데 성공(?)하여 손권은 관리와 백성들을 끌고 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관리, 백성 뺏길 정도면 털린 거 아닌가?

208년, 손권은 또 다시 강하를 침공한다. 황조는 강을 막기 위해 몽충 두 대를 엮어 가로로 놓고 돌에 새끼줄을 달아 닻으로 삼아 고정시킨 뒤에 몽충의 위에는 천여 명의 궁수를 둬서 쇠뇌와 화살을 퍼붓는다.

이에 진격하지 못하고 있던 손권군이었지만 선봉 여몽이 황조군의 진취를 직접 베고 오강 방면으로 진격한 능통장석을 죽인 것에 이어 동습이 백여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몽충 안으로 돌입해서 닻줄로 쓰고 있던 새끼줄을 끊어 몽충을 표류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이후 황조는 성이 함락되어 도륙된 이런 상황을 보고 홀로 달아나려 하였으나, 손권 휘하의 기사(騎士) 풍칙(馮則)이 쫓아가 그를 죽이고 효수하였다.[5] 단, 건강실록에는 생포해서 성문에 효수했다고 되어 있다. 풍칙이 생포해서 처형 뒤 효수했나 보지

2.2 연의

연의에서는 정사에서의 행적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피해를 본 느낌이다.

특히 손견 사망에 연관된 부분은 그 내용이 어째 희한한데 괴량의 계책을 받고 손견을 죽인 건 여공으로 되어있고 황조는 그냥 손견의 패잔병을 공격하다가 황개에게 붙잡히는 역할로 변했는데, 이에 유표 측에서 그냥 황조 죽게 놔 두고 강남을 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그나마 손책이 아버지 시체와 맞바꾸자고 해서 망정이지.(…) 판본에 따라서 괴월과 채모가 황조가 처형당하도록 내버려두자는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도 황조가 죽는다면 가장 득(권력독점)을 보는 것은 그 둘이어서 묘하게 현실적이다.

이후 감녕을 수적 출신이라며 괄시하거나 예형의 악담을 듣고 살해하는 등 그저 장군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장군으로 묘사되다가 후에 손권이 보낸 감녕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더불어 연의에서는 손견의 죽음과 상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씨 일족과의 원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된다.(...)

2.3 평가

2.3.1 긍정적 평가

손견, 손책, 손권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동오 세력과 싸워 오면서도 야전에서는 패해도 결과적으로는 강하를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성공했으며, 특히 손씨 일가 측에서도 대장인 손견, 능조, 서곤이 황조 정벌 중 전사한 것을 보면 그와의 싸움이 꽤나 격렬하고 험난했음을 알 수 있다.[6]

여기에 손책, 손유, 주유, 정보, 황개, 한당, 여몽, 동습, 주태, 우번, 서곤, 능조, 능통 등 쟁쟁한 장수와도 전투에서 살아남는다. 생존왕

또, 일개 병졸인 풍칙황조를 죽였다는 것만으로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보면 그를 죽인 것은 꽤나 높은 공으로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당장 살펴봐도 문추장합 등 전쟁터에서 전사한 장수가 병졸 아무개에게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병졸이 죽여도 그 공은 거의 지휘관에게 돌아갈 뿐, 풍칙같은 경우는 사서에 흔치 않다.[7] 능력을 떠나서 황조가 손씨 세력에게 중대한 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8]

황조와 같은 오직 불리한 기록만을 남긴 인물을 해석하는 데에는 단순히 단편적인 사건만이 아닌 전략적인 결과 역시 중요하다.[9] 황조가 손견손책, 손권에 이른 손씨 일가 3대의 공격을 연이어 상대하면서 적어도 16년 이상 강하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서의 기록으로만 보면 이미 망하고도 남을 황조는 계속 굳건했고, 황조가 죽을 때까지도 영역은 건재했다. 오히려 오서에 기록된 사건은 승전 혹은 국지전만을 기록한 것일 확률이 높고 정사 오범전을 보면 '이길수 없었다' 라는 말을 써서 우회적으로 황조에게 패배하였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가 전사한 후에도 유표의 아들 유기가 채씨 호족을 피해 강하의 서쪽 끝인 하구긴 해도 강하태수로 부임하는 것을 보면 오나라는 황조 전사 후에도 강하 전지역을 장악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10]

디시인사이드 삼국지 갤러리 등에서는 고순처럼 숨은 명장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가끔 나온다.[11][12] 권력만 막강했던 채모와는 달리 이쪽은 아예 무수히 전투를 치른 무장인데 창작물에서의 대우는 영 좋은 편은 못 된다.

요약하면, 연의의 이미지대로 무능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적어도 장수 구실은 했을 역량은 있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섣불리 구국의 영웅으로 칭하기에도 어딘가 민망하다. 확실한 건 장기간 손권 세력과 대치해왔다는 점.

2.3.2 부정적 평가

그렇다고 이것만으로는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게 황조는 잦은 전투에 패하면서, 숱한 장수들을 잃는다. 유표의 조카 유호부터, 한희, 진취, 등룡 등이 손씨 일가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오서에 손권이 203년 황조의 성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황조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산월의 반란 때문에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저걸로 황조의 능력으로 보기엔 미지수다.

기록상에서 아무리 편파적이라고는 해도 뭇 오군 장수들에게 전투력 측정기(...) 취급의 뉘앙스가 강하다. 아들 황역도 마찬가지이고 존재감이 은근 없어서인지 이 인물에 대한 평가도 거의 없는데, 그나마 있는 것도 오나라로 귀순한 감녕의 '황조 걔 늙어서 판단력도 흐려짐'(...)이라는 디스 뿐이다. 실제로 능력이 있었다면 주석으로라도 어떤 평가가 달리기 마련인데, 황조의 경우 진짜로 아무것도 없다.[13]

인품을 볼 수 있는 사례에서는 예형을 죽인 것이 있는데, 극성 어그로꾼 예형의 조롱을 더이상 참지 못해 홧김에 저지른 것이었다. 같은 상황을 겪은 조조랑 유표와는 도량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죽이고 나서 바로 후회하며 예형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2.4 미디어 믹스

2.4.1 삼국지 시리즈

426-Huang-Zu.jpg
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통솔력이 70대로 범장의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그나마 5, 9, 12을 제외한 시리즈는 다 잉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워낙 무장이 부족해 문빙을 제외한 모든 무장이 능력치가 좋지 않은 유표군에선 채모나 황조를 전투에서 써야만 한다.[14]

삼국지 3에서는 강하에 주둔하고 있긴 하지만 원래의 설정대로 강하태수가 되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잡장 쩌리 취급이다. 무력이 66밖에 안되니 이걸로 이미 장군되기는 글렀고 그렇다고 군사가 될 만큼의 지력이나 정치력도 없다. 따라서 강하는 한숭이 태수를 하고 있으며 황조는 그저 한숭의 휘하 잡장으로 나온다. 실제와는 정반대의 설정이다.하기사 삼국지 3에서 유표 휘하에서 쓸만한 장군이라고는 채모와 문빙이 전부다. 나머지는 잡문관들이나 즐비할 뿐 무관계열은 죄다 개허접들 뿐이다. 정확한 능력치는 다음 표와 같은데 이게 어딜 봐서 손견을 암살한 인물인지 의심될 지경이다.

육지수지무력지력정치매력야망냉정용맹
황조6320664339317767
손견819090847287132814

진짜 능력치만 갖고 보면 도대체 왜 손견이 황조에게 죽었는지 이해를 못할 지경이다. 손견쪽이 너무 압도적인지라...퉁퉁이를 패서 병원에 입원시킨 노진구의 위엄. 근데 운은 손견보다 높잖아. 아니 그럼 무력이 90대라도 되길 바라는 건가다만 삼국지 3고순, 우금조차 무력 5~60대의 잡무장으로 만들어버린 게임이라 크게 의미는 없다. 단지 기획자가 그 정도로 삼국지에 대해 이해력이 부족했다고 보면 된다. 사족이지만. 황조의 일러스트는 삼국지 4, 삼국지 5, 삼국지6의 장임과 영걸전 시리즈의 이엄이 쓴다.(...)

삼국지 5에서는 무력이 70 빼고 쩌리이지만, 방원진과 안행진을 가지고 있고, 특수능력으로 화시, 낙석, 난사, 복병을 가지고 있다! 흠좀무. 189년 동탁의 난 상급 시나리오에서 유표로 플레이 할 때 방비를 안해두면 손견이 시작하자마자 강하로 밀고 들어오는데 황조가 방원진으로 손견군의 공세를 견뎌낼 수 있다! 여기에 원군이 도착하면 역으로 손견을 끝장내버릴 수도 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 무력(무력은 60대 후반)을 제외하면 쩌리이지만, 노병 병법인 연사를 가지고 있어서 공성전에서 부속품으로 쓸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4/65/57/44/30로 역시 조금 부족한 능력치에 특기는 5개라고 준게 기술, 보수, 화시, 유인, 제독으로 뭔가 어정쩡하다. 가장 높은 통솔도 70을 간신히 넘기는데 통솔 의존 특기는 화시 하나 뿐이니...

삼국지 11에서는 74/66/53/38/32로, 그나마 낮던 지력과 정치, 매력이 모두 하락했다. 게다가 수군 적성이 채모장윤에 밀리는 A로 나오는 굴욕을 겪기도.

삼국지 12에서도 능력치 자체는 한심하나 전법이 복병! 병종이 궁병, 원사 특기가 있어서 아예 스나이퍼가 되었다. 본인의 지력은 조루포스가 있지만 복병의 코스트가 적고 적을 슬로우시켜서 끔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황조는 드디어 우금처럼 재평가를 받았다. 문빙, 채모와 함께 유표군의 주력 무장으로 대우가 상승할 정도. 참고로 셋 다 궁병이므로 문빙이 궁군강사를 써준 상태에서 황조가 복병을 쓴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손견, 손책이 황조에게 발린 이유를 알겠다.[15]

2.4.2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오나라 스토리에서 자주 털리는 역할밖에 없는 클론 무장이었는데...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첫 참전!! 근데 갑옷 착용한 문관 일러스트같다는 평이 많다(...).

2.4.3 삼국전투기

황조(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1. 정사에는 손견이 황조군의 군사에게 활을 맞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전략에 따르면 이때 손견은 황조의 복병에 의해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다만 영웅기에는 손견을 죽인 것이 여공으로 되어있다.
  2. 서곤은 이때 인지 207년인지 확실하지 않다.
  3. 그것도 황조가 손권군에게 패하여 추격받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이 때 감녕이 능조를 사살하여 구해준 상황이기 때문에 황조의 능력으로 능조를 물리친 것이 아니다.
  4. 제갈량에게 전투의 주도권을 빼앗겨 끌려다니다가 제갈량이 퇴각하는 것을 무리하게 추격했다가 장합까지 잃는다.
  5. 일개 병졸의 이름이 사서에 기록된 건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황조가 손씨 정권에게 중대한 적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6. 손책전 주석 오력
  7. 비슷한 사례로 관우를 사로잡은 반장의 사마 마충이 있다.
  8. 일단 아버지의 원수였다는 특수한 포지션에 있다는 게 크다.
  9. 이는 원소 세력에 대한 기록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진수의 삼국지에서 관도대전 당시 원소 휘하 장수들의 전투 기록을 보면 승전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원소군의 일방적인 패배의 기록만이 남아있지만 무제기와 순욱의 열전 등에 따르면 실제로 이 때 조조는 본진인 관도가 포위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도와는 달리, 황조와 손씨와의 대결은 '~가 -와 싸웠다' 식의 일방적인 기록만 있을 뿐, 전황이나 전투의 전개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 전무하다.
  10. 이것은 다소 재고할만한 게 반대로 말하자면, 어쨌든 강하군 일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후에 익양대치에서 강하군을 오나라에 귀속하기로 했는데, 촉이 오에 강하를 반환하였다는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선, 이미 강하군 대부분은 오나라 관할이었던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1. 다만 학술적으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으니 속단하지 말긴 바란다.아니 그냥 평가가 없다
  12. 삼국지 도원결의에서도 이에 대해 고찰한 글이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다.
  13. 삼국지 위서 유표전에는 황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후한서 유표전에서도 손견이 죽는 부분과 황조가 죽는 부분(...)에서만 언급된다.
  14. 황충도 있긴 하지만 유표의 무장으로 설정되지 않은 시리즈도 허다하다.
  15. 손견과 손책 둘 다 병과가 창병이라서 황조에게 약점을 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