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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大阪通り魔殺人事件.
일본의 오사카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범죄 사건이다.
2012년 6월 11일 오사카 시 츄오 구 신사이바시 부근의 길가를 걸어가던 두 명의 남녀가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괴한의 정체는 당시 36세의 이소히 쿄조(礒飛京三)로, 살인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말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폭력 성향을 가지고 있어 경찰은 무차별 묻지마 살인 범죄로 보고 사건을 진행했다.
2 사건 발생
사건은 대낮의 통행량이 많은, 미나미 지역 신사이바시 1번지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길가를 걸어가던 남성을 덮쳐 무참히 흉기를 휘둘렀고 "도와주세요!"라고 몇번이고 외치는 피해자의 옆구리와 허벅지, 가슴을 20~30회 난자했다.
범인은 남성을 덮친 후 일어서 고개를 숙이고 또 다른 목표물을 찾는 듯이 도로를 걸었다. 마침 그 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성이 있었고 사건을 멀리서 목격하던 한 사람이 "아주머니, 위험해요!살인마에요!도망쳐요!"라고 소리치자 여성은 방향을 회전했지만 뒤에서 쫒아온 범인에 의해 사망했다.
범행은 수많은 보행자들이 그대로 목격했고 1분 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들에 의해 범인은 제압되었다.
3 피해자에 대해
사망한 두 명 중 남성 피해자는 음악 프로듀서인 미나미노 신고(南野信吾, 당시 42세)였다. 2007년 게임 회사 데지타보에 입사하여 니트로 플러스의 음악 담당으로 곡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6세, 5세, 2세의 3명의 딸이 있는 아빠로 아이들의 보육에 적극적이며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때문에 밤낮으로 일에 몰두하였고 출장도 잦았지만 운동회와 소풍엔 반드시 참가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였다. 이 날은 자신이 운영하는 음악 레이블의 라이브 투어로 도쿄에서 오사카로 와있었다. 피해자는 목과 허리 등 수군데에 10군데가 넘는 상처를 입었고 하복부에 18cm의 칼집이 남아있었다.
여성 피해자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사사키 토시(佐々木トシ, 당시 66세)로 현장 근처의 맨션에서 10년전부터 홀로 살고있었다. 아름답고 웃음이 멋진 사람이었다는 칭찬이 자자했으며 지인과 주변 이웃들의 평판도 매우 좋았던 인품의 소유자였다. 항상 예쁜 기모노 차림으로 가게에 출근했으며 주변에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평판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지인은 "아는 사람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손수 요리를 만들어 가져다 줄 만큼 아주 따스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범인이 등과 배를 찌르다 범인의 손에 상처가 날만큼 수차례 찔려 심폐정지로 사망했다.
범인은 여성 피해자를 찌른 후 다시 남성 피해자에게 다가가 몸 위에 올라타 재차 수차례 흉기를 휘두르는 잔인무도한 짓을 벌였다.
4 범인에 대해
용의자 이소히 쿄조는 각성제를 복용한 죄로 복역한 후 2012년 5월에 출소하여 사건 2일전 오사카로 옮겨와 지인의 집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경찰 조사로는 일을 찾아 오사카로 왔으며 아는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넣어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까진 유복한 집안 아래서 자라왔지만 모친이 사망하고 부친의 회사도 도산하여 야반도주하듯 다른 현으로 이사했다. 이 시절부터 비행을 저지르게 되어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의 폭주족에 들어가 '총장'으로써 약 30명의 멤버들을 다스렸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엔 폭력단에 가입했다고 한다.
2000년경 시모노시에서 건설 설비업을 하던 때도 있었으나 약물 사건으로 복역했다. 중학교 때부터 그를 알았다는 지인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건 2006년까지이며 엮이는 게 싫었기때문에 아는 척 하지않았다"고 얘기했다.
복역 후엔 토치기현에 있는 요양 시설에 들어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스스로 시설을 나온 후엔 살 곳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용의자는 "일도 없고 살 곳도 없다. 통장에 있던 돈 20만엔을 뺐다. 이제 이것밖엔 없는 걸까, 살기 위해서 어떻게하면 되는걸까 생각하다보니 점점 자살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현장 근처에서 칼을 샀지만 죽지 못하고 다른 이를 죽이면 사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생활 능력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사형을 받기 위해 흉악 범죄를 일으켰다고 추정했다.
5 여파
오사카 부지사(府知事)였던 마츠이 이치로는 사건 당일 체포된 용의자에게 "죽고싶으면 스스로 죽어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말고 자기 완결(自己完結)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사건 당일 방송된 '슈퍼 J 채널(スーパーJチャンネル)'에서 저널리스트인 오오야 아키히로의 "사건이 일어난 유럽 거리(거리명)는 오타쿠 마을로 유명한 닛폰바시와 가깝다. 오타쿠 문화와 관련이 없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오타쿠를 싸잡아 까는발언이 인터넷과 트위터등에서 파문을 일으켜 비판을 받았다.
오사카 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정신 장애의 영향을 최대 참착해도 극중한 형벌이 부득이하다고 판단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그 뒤 판결이 확정되어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다.
일본에서는 과거에도 자립 능력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저지른 묻지마 범죄가 적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으로 1998년 같은 오사카 지역의 사카이시에서 일어난 '사카이시 묻지마 살인사건'이 있으며, 1999년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두 명을 살해한 사건과 2008년 이바라키현에서 8명을 무차별 살상한 사건, 2008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등이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1994년 이후 1년의 수건~수십건으로 추정하며 최다 발생했던 2008년엔 14건이 발생. 2009년 4건▽2010년 5건▽2011년 6건으로 통계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