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

을사조약에 찬성한 다섯 대신에 대해서는 을사오적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五賊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럈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그리고 실제로 볼기가 불이 나게 맞았다(...)

1 개요

김지하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풍자시. 재벌, 국회의원,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1970년대 당시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였다. 당연히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그 후폭풍은 엄청나서 김지하를 필두로 사상계의 편집진들이 줄줄이 코렁탕을 먹었으며 결국 사상계는 이 사건을 빌미로 강제로 폐간되게 된다.

2 줄거리

판소리의 형태를 계승한 서사시의 일종으로 크게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이루어져있다.

1. 오적 소개

또 한 놈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2. 포도대장에게 오적을 체포할 것을 지시

여봐라 / 게 아무도 없느냐 /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여라 / 추상같은 어명이 쾅, / 청천하늘에 날벼락 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 내려 쏟아져 퍼부어싸니 /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3. 꾀수가 오적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받음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 농사로는 밥 못 먹어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넨다. /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 태워 공중잡이 /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4. 꾀수가 오적들의 거처를 밝힘

꾀수놈 이 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 국회의원(獪狋猿),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장성(長猩), 장차관(瞕矔)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1]

5. 오적을 체포하기 위해 포도대장이 출동

오적(五賊) 잡으러 내가 간다 / 남산을 훌렁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 우뢰 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 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렷다

6. 포도대장이 매수[2]당해 오적의 주구가 되고 엉뚱한 꾀수가 체포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 한 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 보도 듣도 맛보도 못한 술인지라 / 허겁지겁 한잔 두잔 헐레벌떡 석잔 넉잔 (중략) /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7. 오적과 포도대장이 벼락을 맞고 급사. 권선징악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3 특징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점이지만 오적은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쓱 읽어만 봐도 일반적인 현대시와 다른 몇가지 독특한 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

  • 함축적인 운율미가 대부분인 현대시와는 달리 한국 고유의 전통 시가인 가사, 판소리, 타령의 형식을 빌렸다는 점.[3]
  • 액자식 구성.[4]
  • 풍자와 조소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화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
  • 잦은 의성/의태어 및 비속어 사용.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적은 '새로운 운문 양식을 개척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 보면 알겠지만 해당 단어를 지칭하기 위해 원래 쓰이는 한자 대신에 부수 개 견(犬)자를 집어넣어서 비꼬고 있다. 즉 인간에 탈을 쓴 짐승이란 뜻이다.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
  2. 당연하지만 이건 당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던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다.
  3. 내용적으로 보자면 이 시는 군부 독재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형식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한국의 고유 시가를 부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연구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4. 오적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화자 본인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전달자'이다. 아예 구절 중간에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건 구전된 이야기'라고 못박고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