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金芝河
1941년 2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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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전라남도 목포 출신. 본명은 김영일으로 김지하는 필명이다. 중동고등학교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나왔다.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가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중.


2 반독재 투쟁 시절

4.19 혁명 이후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신독재를 전후하여 〈타는 목마름으로[1][2], 〈오적(五賊)〉 등의 저항시를 발표하여 독재에 항거하다가 정권의 눈 밖에 나서 여러 번 필화사건을 겪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겪었으며 최종적으로 사형까지 언도받았다가 1980년에 석방되었다.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으며 김수환 추기경 역시 이러한 모습을 대단하게 여기는 동시에 너무 열혈이 지나친 거 아니냐며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때의 일로 인하여 노벨평화상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추천된 경력도 있으며,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문학상까지 수상했을 정도의 대단한 민중시인이었다.

후술할 정치적인 사건들이나 개인의 발언 문제를 제쳐 두더라도 김지하의 시는 초기 〈오적〉으로 대표되는 재기 넘치는 풍자 정신을 보여주는 시편과 감옥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중기의 시들을 통해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으로 남아있다.


3 민주화 이후의 행보

그 이후 원로 지식인 겸 교수로 그럭저럭 지내는 듯했는데...

일단 유신-제5공화국 시절 때의 종교는 천주교였지만 유신-5공 이후에는 원불교-도교 계열에 심취했다. 종교 자체에 대한 개종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지만 하필 환단고기에 깊이 심취하고 증산도 계열에도 지나칠 정도로 빠져들고 말았다.[3] 다른 건 몰라도 환단고기에 심취했다는 것 자체가 합리주의를 중히 여겼던 서슬 퍼런 이전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어처구니 없이 여기는 사람이 매우 많다.

1990년대 후반 사실상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고 있는 단월드의 창시자 이승헌에게 큰절을 올리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러나 이승헌의 내부비리를 접하고 이를 탈퇴하고 단월드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고문후유증 때문에 사람이 망가졌다는 주장이 정설이었다. 실제로 출감 당시 모습을 본 사람은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고 하였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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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김지하. 얼굴 골격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외에 출감 이후 장모인 박경리 선생의 도움으로 원주에서 10년 이상을 은둔과 요양 생활을 했다는 점과 젊을 때 모습과 지금 모습이 지나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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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요양 후의 김지하.

[자기 아들이 대학을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도 기억이 오락가락한 걸 봐선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이것 외에도 과거 자신이 썼던 자서전적 내용과 이후에 주장하는 자신의 경험담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사상의 기본적인 틀 자체는 민족주의와 반전주의를 기반으로 두고 감옥에서의 수감 생활 후에 '생명주의'를 주가치관으로 내세우게 되는데 이는 후에 김지하 변절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이는 1991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 분신 자살을 통한 시위가 횡행할 때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하게 되면서 생긴 사건으로 목숨을 버리면서 하는 민주화 시위를 저주의 굿판에 비유하며 비판한 사건이다. 김지하는 이를 생명주의의 사상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는데 당시 민주화 세력들은 그동안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이었던 김지하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경악스러워하며 김지하를 군부독재에 아부하는 변절자로 규정하고 집단적으로 그를 매도하고 따돌렸다.[참고]
그 이유는 그 기사에서 마치 연이은 자살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는데[6] 그것을 서강대 박홍총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배후세력의 존재를 확정지었고 이에 공안당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기설 자살을 둘러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터뜨리면서 공안정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유서대필 사건은 운동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히며 연이어 터진 정원식 폭행사건 투런홈런으로 정권에게 대역전승을 안겨주게 된다.
물론 유서대필 사건은 2015년 대법원 상고 기각으로 강기훈의 무죄가 입증되었고 궁지에 몰렸던 정권의 조작임이 드러나게 되지만 문제는 정권이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하게 된 배경에 박홍총장과 함께 김지하가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4 김지하가 전향하게 된 이유

부인 김영주씨의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정권의 박해야 예상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이 터지면서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 시인이 좌우 양편에서 박해를 받은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산 인간을 제물로 바치듯 좌파 일각에서 김 시인을 박정희 정권이 죽이도록 유도해 ‘민족의 제물’로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츰 그 상황을 인식한 어머니는 사위를 살리기 위해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남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모 덕분에 살아남았다.”
“좌파의 색채는 여럿이다. 순수한 사람도 많지만 야심가도, 종북주의자도, 간첩도 있다. 돌아보면 민주화 과정에 악(惡)도 기여한 바가 있다. 온갖 세력이 합쳐야 민주화가 가능했다. 민주화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공개적으로 남편 속을 들쑤시고 마음에 상처를 줬다. 석방된 이후 20년 동안 12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진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한 뒤엔 무슨 사회적 발언만 하면 못 잡아먹어 조직적으로 난리를 쳤다. 그 배신감과 원통함이 오죽했겠나.
[#][#]

김지하 시인이 전향을 하게 된 이유가 자신을 제물로 삼으려는 민주화 세력에 대해 배신감을 느껴서라는 증언이다.


4.1 의혹

일부 사람들은 이 증언이 정신병에 따른 망상이라 말하지만, 정신병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증언을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심히 모독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증언이 정확한 근거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뚜렷하게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식으로 협박을 했는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 당시 김지하는 나름 거물급이었고 그러한 권유나 협박이 있다면 역시 거물 선에서 압박이 들어왔을텐데 이러한 구체적 정황이나 협박한 인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이미 박근혜 지지까지 할 정도로 민주세력과 등돌린 김지하가 그걸 구체적으로 말 못할 이유도 전혀 없다. 정신병력을 이유로 모든 걸 망상이라 치부해서는 안되지만 김지하나 그의 아내가 별다른 정황설명없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추상적으로 말하는건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5 이후

2012년 11월 26일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새누리당박근혜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청학련 사건 재심으로 보상금을 수령했는데, 인터뷰에서 ''을 목적으로 재심을 신청했다고 발언했다. 자식교육 등으로 돈이 필요했다고(...) [#]

이에 장정일은 "김지하는 특 A급 문인으로 돈을 융통하기 어렵지 않으며, 아들들은 이미 유학중이거나 졸업했다면서 김지하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밖에 김지하의 고문후유증이나 독방 생활의 노고가 과장되었다고도 주장하였다. [#]
5월 26일 법원은 15억 배상판결을 [확정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밖에 문재인이나 안철수, 리영희, 백낙청 같은 인사들에 대한 원색적 비난 발언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래도 비난받은 인물 측에서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아 그냥 넘어갔다. 여기에 대선 포기 후 27억을 반납하지 않은 이정희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였다.



민청학련 재심 이후 '오적 필화 사건'에 대해서도 항소하여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13년 5월 9일 기각하였다. '재심 사유가 없는 반공법 위반 혐의의 유무죄를 새로 판단할 수 없다'는 법리상의 한계가 그 이유. 이에 김지하는 "육갑(六甲)이고 도깨비 장난", "물이 흘러가듯 제대로 흘러가는 게 법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 장난"이라며 "법 전체가 나한테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반발하였다.
  1. 이 시는 노래로 만들어졌고, 안치환이 부르면서 수많은 운동권 세력이 부르기도 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이 유명하다.
  2. 다만 폴 엘뤼아르의 '자유'와 그 형태가 너무 유사해서 표절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3. 이런 면모는 1984년 간행되어 1999년 출판된 사상기행에 매우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장모 박경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토지〉 4부부터 등장한 해도사라는 인물이 강증산을 언급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좋다 나쁘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4. 역사비평에서 나온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의 기록》에 보면 일제 연간 유명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는 서술이 나온다. 그냥 노래 부르고 춤추는 정도는 물론 아니고. 의외로 그 사람이 겪은 정신이상의 증상들이 김지하가 최근에 글 쓸 때 갑툭튀하게 나오는 망상적 언어와 일치한다. 가장 유명한 예로 박헌영이 겪은 정신병 증상이 있다. 물론 박헌영은 이 증상이 치료된 다음에도 여전히 정신병자인 양 행세를 해서 소련으로 탈출하지만...
  5. 1970-1980년대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체포된 후 무자비한 고문으로 폐인이 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 김지하도 그렇지만 고문 후유증은 PTSD보다도 훨씬 심할 수 있다.
  6.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