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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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
본명오프라 게일 윈프리 (Oprah Gail Winfrey)
국적미국
출생1954년 1월 29일, 미시시피 주 코스키우스코
모교테네시 주립대학교
직업방송인, CEO
활동1983년 – 현재
신장169cm
서명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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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프리가 아니다!

1 개요

진정한 인간승리
그야말로 가난과 절망을 딛고 전세계 흑인 여성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자 여성으로서도 세계적으로 부와 명예를 가진 유명인이다.

삶을 이끄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과정을 즐겼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미국 쇼 비지니스 세계, 혹은 전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 받는 사람
그 영향력으로 누명 쓴 피해자를 맹비난하고, 누명을 씌운 가해자들을 옹호한 또 다른 가해자가 된 피해자

2 출생 및 어린 시절

미시시피 강 근처에 있던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엄마는 겨우 18세에 불과했으며 가정부로 생계를 해결하기 바빠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3살때부터 뛰어난 말재간과 암기력을 보여 동네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6살때 외할머니가 병에 들어 오프라를 돌볼수 없게되자, 밀워키에서 파출부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의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으나 어머니는 일에만 몰두하여 오프라에게는 거의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혹독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9살때는 사촌 오빠나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공부와 독서를 부지런하게 하여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인근의 명문사립학교에 입학하게된다. 입학첫날, 학교에 흑인이 자신혼자라는 사실에 절망했으나,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덕에 많은 백인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신과 달리 부모님의 관심속에서 부유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백인친구들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설상가상으로 계속되는 친척의 성적학대로 인해 견디다못해 반항아로 변해 집밖을 나돌게된다. 이 과정에서 오프라는 임신을 하게된다.반항아로 변해버린 오프라를 어머니는 감당할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오프라를 테네시의 아버지집으로 보낸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한 상태였고 오프라가 아이를 낳을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결국 낳은 아이는 2주 만에 죽었다. 기구한 세월을 견뎌내기 어려워 자살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에 현실을 잊고자 했고 한때는 폭식으로 몸무게가 엄청 나가기도 했다. [1]

하지만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절망을 딛고 동네인근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회장에 당선되는등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꿈과 희망을 갖게된다. 그러던중 미국에서 개최한 여러 말하기대회나 콘테스트에 출현하며 점점 유명세를 탔고, 그러다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얻었지만 19살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뉴스캐스터를 시작했지만 뉴스에 감정을 실어서 전달한다는 이유로 8개월만에 해고되었다. 이 사실이 방송국에 퍼지면서, 방송국 간부들은 오프라의 면전에 대고 흉을 보고 모욕하는등 , 오프라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된다. 그러던중 남자친구와 결별을 하게되고, 오프라는 견디다 못해 폭식을 하게되고 사람들이 못 알아볼정도로 살이 급격히 불어났다고한다. 다행으로 그 이후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능력 덕분에 그의 활동무대는낮 시간대의 토크쇼 ,<피플아토킹>으로 옮겨졌다. 이 당시 지역 방송 토크쇼에 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당신이 만약에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받게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다른 토크쇼 참가자들은 저축한다느니 부모님에게 뭘 사다드리겠다느니 보통 많이 생각하는 걸로 말을 한 반면, 오프라 홀로 마음껏 쓸거에요. 저를 위해서 말이죠. 라고 답했다고 한다. 진행자가 "하지만 그 다음은요? 돈은 쓰면 벌기 어렵지 않습니까?" 라고하자 그녀는 똑부러지게 "그만큼 계속 벌 자신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진행자는 속으론 뭔 헛소리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20년도 안가 그녀가 엄청난 부자가 된 걸 보고 근거없던 헛소리가 아니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3 성공

3.1 오프라 윈프리 쇼의 시작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방송 진행자가 되었다. 당시 AM Chicago는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프로로, 당연히 오래가지 못하리라 봤던 이 방송은 한 달 만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1986년에는 이 프로그램 이름까지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대박을 거둬들였으며 당대 미국의 최고의 토크쇼로 손꼽히던 '필 도나후 쇼'의 시청률을 앞서게 된다. 방영 후 3년 후에는 미국 전역에 동시 방송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25년간 총 5,000회 방송, 미국 내 시청자수 2,200만명, 전 세계 140개국 방영, 일일 시청자 수 7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에미상의 단골 수상자가 된 것은 당연지사.

3.2 영화배우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컬러 퍼플(주연은 우피 골드버그)에서 조연을 연기하면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2]

디즈니의 실사영화 시간의 주름(영화)에서 미세스 위치 역을 맡는다.

3.3 신조어

그녀의 신드롬은 사회현상이 되었고 많은 신조어를 만들 정도였다.

  • 오프라히제이션 (Ophrahization) - 오프라 윈프리가 다루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다.
  • 오프라피케이션 (Oprahfication) -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고 치유받는 현상
  • 오프라히즘 (Oprahism) - 인생의 성공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

3.4 그 외

2004년 유엔이 주는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8년 오프라 윈프리 쇼 방송에선 다이어트 선언 4개월 만에 30㎏이나 감량한 뒤 꼭 맞는 청바지를 입고 손수레에 30㎏의 지방덩어리를 싣고 등장했다. 얼마 후 "4개월간 단식했으나 방송 직후 축하 음식을 마구 먹었더니 이틀 만에 청바지가 맞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다이어트 경험을 담아서 낸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3][4]

1992년 미국 포브스 지 선정 미국 방송인 소득 순위에서도 내로라하는 유명 방송인,진행자를 제치고 여성 방송인 소득 1위를 차지했으며 남성 방송인까지 합쳐도 10위권에 들어가는 엄청난 소득을 벌어들인다고 한다.더불어 2007년지 포브스 지 선정 역대 미국 여성 부자 10인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들어갔다.

패션이나 화장, 코디네이터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는데 코디네이터가 어떤 옷을 권하자 근방 옷가게에서 수억원어치 비슷한 옷을 사온 적도 있다고 한다. 뭐 개인 재산 보유가 수천억이 넘으며 각종 부동산과 여러가지 합치면 조만장자급이니

매년 3억 5천만 달러를 번다고 한다. 약 4000억 원 정도다. 하포(Harpo)라는 엔터테인먼트 사를 운영하는데 이게 이름은 오프라(OPRAH)를 거꾸로 한 거였다.

Epic Rap Battles of History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4 오프라 윈프리 쇼

"제 쇼의 출연자들도 그렇지만, 저도 제 이야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일단 말로 풀어 꺼내 놓으면, 다시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니까요."

- 오프라 윈프리

1986년 10월 8일부터 2011년 5월 25일까지 진행했던 이 토크쇼에선 3만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나왔으며 스포츠선수, 연예인에서부터 대통령 및 정치인, 종교인, 예술가 온갖 사람들이 나오면서 미국에서만 5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수를 기록했다. 오프라 윈프리 이름을 날린 이 방송은 인기와 같이 에미상을 휩쓸고 이후 26년 동안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미국 시청자만 수천만명에 세계 140여개국에서 방송되었다.[5]
  1. 본래 이러한 가정사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프라 윈프리가 인기를 얻고 난 후에 그의 가족 중 하나가 폭로를 해 버리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쇼에서 수치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밝혀서 많은 이들에게 갈채와 지지를 받았다.
  2. 그런데 이 영화에서 윈프리는 연기는 잘했는데 그만 작은 실수가 그대로 영화상에 나온다. 영화상에서 기절하여 쓰러진 그녀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이는데 눕혀진 채로 치마가 너무 위로 올라가서 넘어진 탓에 속옷이 미처 보일까봐 기절해야 하던 그녀가 영화를 보면 슬며시 손을 움직여 치마를 얼른 내리는 게 그대로 NG없이 들어가버린 탓에 국내 영화 프로그램에서 영화상 웃기는 실수씬으로 나오기도 했다.
  3.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다이어트는 일반인이 따라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다이어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최소 9억원. 전담 트레이너는 물론이고 요리사와 영양사 등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였으며, 산책은 최고급 온천의 산책 프로그램을 통한다거나 조깅을 하기 위해서 비행기 타고 하와이로 날아가는 등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쓴다는 것에는 다이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잡지 인콰이어러가 추정한 비용은 1Kg 감량당 적어도 1만 달러 이상.
  4. 유명인들의 다이어트 및 몸관리를 보고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탓하지 말자. 폴라 압둘은 식욕때문에 아예 냉장고에 열쇠를 채우고 24시간 입주 영양사에게 열쇠를 준 후, 영양사와 트레이너가 허락해서 꺼내준 음식만 먹기도 했다.
  5. 이후 자신이 세운 채널인 OWN에서 2012년 1월 1일부터 2015년 1월 4일까지 후속작인 오프라 프라임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