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연

元埏

1543-1597

원주원씨의 개념인이자 충신

희대의 무능 장군 원균의 동생. 세상에 형 만한 아니 더 큰! 아우가 있다!!! 형은 이일, 동생은 송상현.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의 차남으로 태어나 큰집인 원수량의 양자로 갔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다가 왜군이 쳐들어오자 청년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했다. 대개 지역에서 명망있는 인물이 의병장이 되는데, 그 점을 고려하면 원연은 형이나 애비와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진위현(오늘날의 경기도 평택) 남쪽에 진을 치고 적을 기다리던 중 용인에 왜군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진에 처들어가 대패시켰다. 여담으로 당시엔 왜군해골이 사방에 굴러다닌다고 햇골이라 불렸다고(...)

여기서 원연은 명장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했는데 의병들 중에 기병들만 추려서 기병들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왜군들에게 도발해서 신나게 약올린 후 왜군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몹몰이를 시전하고 있으면서 시간을 벌어들이는 동안 나머지 병력을 매복시켰다. 그렇게 매복이 끝나자 기병이 왜군들을 햇골로 끌어들인 다음 마구 조져서 대승을 거두었다. 기병을 직접 다뤄본 적이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기병을 어떻게 쓰는 지 알고 있었다![1] 참고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 직전에 전라순찰사 이광이 이끄는 3만의 근왕병을 격파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연기현감에 올랐다가 적성현감(오늘날의 경기 파주시 적성면) 겸 양주진관 병마절제도위로 전보(轉補)되었다. 적성현감으로 재직할 때 고을에 불이 나 황폐화되자 백성들을 모아 황무지를 개척하는 등 정사를 잘 돌봐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관찰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임하고 향리에 돌아와 벼슬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막다가 전사했다.

형과는 다르게 능력도 개념도 있었고 의미있는 승전을 거둔 장수지만 어째 애비와 형의 전무후무한 무능함때문에 같이 묻혀버린 억울한 동생 케이스다. 그리고, 의병장들을 대우 좀 했다던 선조가 대놓고 능력 있어, 무시했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아버지와 형에 묻힌 것도 억울한데 후손이라는 원주원씨 문중과 고향인 평택시는 한심하게도 진짜 존경받을 조상인 원연이 아닌 여러 악행을 저지르고 나라의 위기를 부른 원균을 미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원유철이 밀어주니까
  1. 원균이 개삽질해서 그렇지 원주 원씨 가문은 대대로 무인을 많이 배출했다. 탐관오리긴 해도 친부 원준량도 수군 절도사를 지냈을 정도였고, 원균과 원전 등 형제들도 군문에 몸담고 있었다. 기본적인 무예나 병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무관집안에서 원준량이나 원균같은 인간이 나온게 이상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