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1 일반 명사

  • 留意, 마음에 새겨서 조심하면서 관심을 가짐.

2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

劉毅
(216 ~ 285)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중옹(仲雄).

동래 액 사람으로 유장[1]의 후손이며, 유돈의 아버지.

성품이 정직하고 청렴해 옳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비판했으며, 왕공대인들이 그의 풍격을 우러러 보면서 경외했다. 양평에 있을 때 두서가 그를 초청해 공조로 삼았으며, 군의 관리 300여 명을 사직시켰다. 위군, 평양, 광양 지방에서 유의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두서의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례교위를 지낼 때 호족과 귀족을 감찰해 바로 잡으면서도 거리낄 것이 없었으며, 사마충이 예에 따르면 신하는 동액문에 이르면 수레에서 내려서 들어와야 했지만 고취를 연주하면서 동액문으로 들어오자 이를 탄핵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또한 외척인 양수가 자주 법을 어기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탄핵했는데, 사마염사마주를 파견해 관용을 요청하자 이를 들어줬는데, 도관종사 정위를 통해 지름길로 가게 해 양수에게 소속된 관리들을 잡아들였다가 양수의 죄상을 기록해 상주문을 올려 면직시키도록 했다.

282년 정월 초하루 정축일에 남교에 나아가서 사마염이 성대한 제사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 유의에게 한나라로 치면 어느 임금에 해당하냐고 묻자 유의는 한나라를 망하게 한 환제영제라고 대답했으며, 사마염이 너무 심하다고 하자 유의는 환제와 영제는 관직을 팔아 그 돈을 나라 창고에 넣었지만 폐하께서는 개인 주머니에 넣으시니 오히려 그만도 못하다고 했다.

사마염이 크게 웃으면서 환제, 영제는 이런 말을 듣지 못했지만 짐에게는 직언하는 신하가 있어 그들보다 낫다고 하면서 넘겼다.

284년에는 상서좌복야로 있으면서 두 마리의 청룡이 무기 창고의 우물 가운데에 나타나 백관들이 축하를 드리려고 하자 옛날에 용이 하나라 때 용이 내려와 용의 거품을 간수했다가 주나라 때 그 거품이 들어있는 함을 열었다가 주나라에 화를 입힌 포사를 나오게 만든 전설을 언급하면서 축하하면 안된다고 상소해 사마염이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구품중정제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폐지할 것을 상소했다.

또한 하증의 사치스러움을 탄핵하기도 했으며, 285년에 사직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

세설신어에서는 왕융화교가 모친상을 당하면서 사마염이 화교를 걱정하자 사마염에게 충고해서 화교보다 왕융을 걱정하라고 했다.

  1. 한나라 때 성양경왕의 작위를 지낸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