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

이름이계성(李啓星)
생년월일1977년 2월 8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신일고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1996년 2차 9라운드(삼성)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6~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9)
삼성 라이온즈(2000)
롯데 자이언츠(2001~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8번
김승관(1995)이계성(1996~1998, 2000)최창양(2001)

1 소개

전 야구선수. 현재 KBO 리그 심판위원. 트레이드과 관련된 악연이 많다.

2 선수 경력

1996년 신인 2차 지명에서 삼성에 9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1996년 2차 지명이 역대 가장 많은 선수가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위 라운더도 아니고, 대학 진학에 진학해 기량이 향상돼 입단한 것도 아니고[1] 바로 입단했음에도 의외로 계약금 1억원을 받았다. 원래 성균관대 진학이 예정돼 있었던 차에 수능 점수 미달로 탈락했던지라 삼성 구단으로부터 많은 계약금을 약속받고 일부러 수능을 망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참고로 같은 팀에 5라운드 지명을 받은 정경배는 계약금 5천만원을 받았다.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 프로에서 와서는 주로 2군에만 머물다 이따금 1군에 올라와 백업 외야수로 출장할 정도였다. 그러던 1998년 12월 삼성이 쌍방울의 중심타자 김기태와 특급 계투 김현욱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양용모와 쌍방울로 이적했다. 쌍방울 시절에도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1999년 12월 김광현과의 트레이드로 1년만에 다시 삼성에 돌아왔다. 그리고 2001년 2월, 삼성이 롯데와의 트레이드로 마해영을 영입하면서 김주찬과 함께 롯데로 이적하면서 삼성에 돌아온지 1년만에 또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됐다. 이렇듯 4년 사이 매시즌 트레이드됐고, 트레이드되면서 떠났던 원 소속팀에 트레이드돼 돌아왔다가 다시 1년만에 타팀으로 트레이드되는 진기한 기록도 남겼다.

롯데로 이적한 첫 해인 2001년에는 중용돼 100경기 넘게 출장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시즌 최종 타율이 2할 5푼에도 못 미치면서 이듬해부터는 다시 백업으로 밀려나 다시 1,2군을 전전하는 처지가 됐고, 2005년을 끝으로 방출됐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6삼성 라이온즈24.0000000000
199722.0000000000
19981520.3507301510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9쌍방울 레이더스1828.2146100120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000삼성 라이온즈67136.2353251216192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001롯데 자이언츠109292.24371182435386
200269124.218277017132
200359135.2593510031880
20045456.17910000531
20051311.0911000110
통산408808.23418944311888511

3 심판 경력

롯데에서 방출된 후 심판 교육을 이수받고 자격을 취득하여 2006년부터 KBO 소속의 심판위원이 됐다. 으레 KBO의 심판들이 그렇듯, 오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계성을 치면 '이계성 오심'이 자동검색어로 뜰 정도.

4 기타

선수 시절에는 프로필상 체격이 183cm 81kg로 적당한 체격이었지만 심판이 된 이후로는 살이 좀 쪘다. 선수 시절에는 매 끼니마다 밥을 7~8그릇 정도 먹었을 정도로 대식가였는데 운동을 그만둔 영향인 듯. 특히 삼성 시절에는 "경산 볼파크하이에나"란 별명이 있었던 입단 동기 정현욱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다. 경산 볼파크에서 숙소 생활을 하던 어느날 저녁에 정현욱과 둘이서 남은 식당밥을 다 먹어치우고도 배가 안 차 밖에 나가서 감자탕 한 솥을 비우고는 돌아오는 길에 빵을 사와서 숙소에서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계성은 물론이고 정현욱도 그저 그런 2군 유망주에 불과했기에 이를 본 당시 삼성 구단 관계자는 식비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트레이드 해야겠다는 농담도 했다고. 한 명은 2번의 트레이드 끝에 내보내는데 성공했지만 다른 한 명실패했다 하지만 그 다른 한 명도 이제는 삼성에 없다

KBO 심판들 중에서 선수 시절 커리어가 제일 화려하다.
  1. 2003년 신인 지명까지는 고교 선수가 대학 진학을 하더라도 지명권이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