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1969)

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장효조
OF / 삼성
이순철
OF / 해태
양준혁
OF / 삼성
김재박
SS / MBC
박정태
2B / 롯데
한대화
3B / 해태
선동열
P / 해태
장종훈
1B / 빙그레
김기태
DH / 쌍방울
이만수
C / 삼성
?width=120(현재 감독)
파일:Attachment/doosan bears s.png김태형
(두산 베어스)
파일:Attachment/nc dinos s.png김경문
(NC 다이노스)
파일:Attachment/nexen heros s.png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양상문
(LG 트윈스)
width=58김기태
(KIA 타이거즈)
파일:Attachment/sk wyverns s.png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파일:Attachment/hanwha eagles s.png김성근
(한화 이글스)
파일:Attachment/lotte giants s.png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파일:Attachment/samsung lions s.png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파일:Attachment/KT Wiz s.png김진욱
(kt wiz)


파일:IMG 20160826 200412.jpg

쌍방울 레이더스 역대 주장
최태원
(1994~1995)
김기태
(1996~1998)
최태원
(1999)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류중일
(1999)
김기태[1]
(2000)
김태균
(2001)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박계원
(2002)
김기태
(2003)
조원우
(2004)
LG 트윈스 역대 감독
박종훈
(2010~2011)
김기태[2]
(2012~2014)
양상문
(2014~)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선동열
(2012~2014)
김기태
(2015~)
KIA 타이거즈 No.77
김기태 (金杞泰 / Kim Ki-Tae)
생년월일1969년 5월 2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광주광역시 북구
학력광주서림초 - 충장중 - 광주일고 - 인하대
포지션1루수, 지명타자[3], 좌익수
투타좌투좌타
신체1RD180cm, 85kg
프로입단1991년 신생팀 특별우선지명
소속팀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8.12.25)
삼성 라이온즈 (1998.12.26~2001.12.15)
SK 와이번스 (2001.12.16~2005)
지도자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코치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4] 타격코치 (2007)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8)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8~2009)
LG 트윈스 2군 감독 (2010~2011)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11)
LG 트윈스 감독 (2012~2014)[5]
KIA 타이거즈 감독 (2015~)
별명눕동, 숲기태, 런기태, 포기태 등등
종교불교
역대 수상

1992년, 1993년, 1994년, 2004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4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1997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1994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1994년 199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1992년 199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1 소개

돌격대의 4번타자, 왕방울, 왼손의 신사, 좌타거포 계보의 창시자.
KBO 최초의 좌타자 홈런왕이자 KBO 역사상 김성한, 장종훈에 이어 3번째로 30홈런을 달성한 인물

선수 은퇴를 선언한 뒤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6], LG 트윈스 코치 & 1군, 2군 감독을 지냈었고 현재는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고 있다.

2 현역 선수 경력

KBO 좌타자의 한 획을 긋다
돌격대의 신사
김기태(1969)/선수 경력 문서로.

3 코치 경력

3.1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은퇴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나, 2006년 8연패에 빠진 SK 와이번스의 사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의 요청으로 연수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타격 보조 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팀은 결국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조범현 감독이 물러난 후 그도 코치에서 물러나 다시 일본으로 연수를 받으러 건너갔다.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30[7]
김기태(金杞泰)
요미우리 자이언츠 No.84[8]
김기태(金杞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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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시즌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김종훈, 김한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친 후 코치 생활을 했다. 2008년 시즌 중에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6 시즌 후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면서 한국인 코치 1명[9]을 데려갈수 있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 조항으로 김기태가 갈 수 있었다고 한다.[10]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솔선수범하여 이승엽만을 위한 보조코치에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팀의 정식 타격코치로 선임되었고, 요미우리의 퓨처스 팀 감독도 맡았다. 당시 요미우리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아서, 후에 국내 복귀 뒤에도 여러 일본프로야구 팀에서 탐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한때 몸담았던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2009년 강봉규신명철의 타격 성장에 기여한 나가시마 기요유키 타격코치가 치바 롯데 마린즈로 옮기자 김기태를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3.3 LG 트윈스 시절

LG 트윈스 No.71
김기태(金杞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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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즌을 앞두고 박종훈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김기태 차기 감독 내정설을 불러 일으켰다. 2011 시즌 말미에는 김영직과 보직을 바꿔 1군 수석코치로 콜업되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박종훈 감독이 사임한 후 후임 감독으로 수많은 카더라가 난무하던 가운데, 유일한 내부승격 후보였다. 이 때 LG 2군 선수단을 본인의 유명한 카리스마로 휘잡으면서 '사신기태'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4 감독 경력

역대 감독 전적
연도경기정규리그최종 순위
2012LG 트윈스133577247위-
2013128745402위3위
20141741219위[11]-
통산2781351385­
연도소속팀경기수 정규리그최종순위
2015KIA 타이거즈144677707위-
2016144707315위5위[12]
통산2881371501­
총계5662722886­

없는 걸 있게 하는 것 하나는 자신있는 감독 - 최훈왈.
있는 걸 계속 있게 하는건 아직 잘 모른다고 한다
보기 드문 지명타자 출신 감독

4.1 2012 시즌

LG 트윈스 No.91
김기태(金杞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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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직접 지휘하는 현역 최연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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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타격 케이지 안에서 타격시범을 보이는 김기태 감독.[13]

김기태(1969)/2012년 참조.

4.2 2013 시즌

LG 트윈스 No.91
김기태(金杞泰)

6668587667의 비밀번호를 탈출하고 11년만에 드디어 가을야구에 진출!

김기태(1969)/2013년 참조.

4.3 2014 시즌

LG 트윈스 No.91
김기태(金杞泰)

시즌 초반에 사퇴. 런동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김기태(1969)/2014년 참조.

4.4 2015 시즌

KIA 타이거즈 No.77
김기태(金杞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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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피트 아웃에 항의하다가 그 거리를 보여준다며 직접 누웠다. 눕동님 1RD = 1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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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투게더 시프트. 미국 ESPN에 소개 될 정도로 엄청난(?) 시프트 였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김기태(1969)/2015년 문서로.

4.5 2016 시즌

KIA 타이거즈 No.77
김기태(金杞泰)

리빌딩에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단기간 투수 혹사와 이해 안되는 작전야구를 보여 명과 암이 공존했던 시즌
그러나 기아의 암흑기를 끊어내고 5년만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


KIA 타이거즈에서 2년차. 프런트에게 FA 선수 중 손승락을 꼭 잡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구단 내 재활 시설과 선수육성 시스템을 대략 개편해서 리빌딩에 더 큰 도움이 될만한 해다.

지난해 어느 정도의 리빌딩과 작년보다 나아진 용병 투수들을 보면기대가 되는 시즌. 그리고 시즌 전 순위 예상을 뒤엎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자세한건 김기태(1969)/2016년 참조

LG 트윈스에 이어 기어코 감독 2년차에 가을잔치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설마 내년에 또? 읍읍...

5 리더십

5.1 긍정론

2013년 김기태의 리더쉽을 칭찬하는 엘레발책이 나왔을 정도다.# 제목이 묘하게 거슬리지만 신경쓰지 말자 사실 노렸다 2013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정현욱이 당시 삼성과의 FA 협상에 실패 후 다른 팀과의 계약을 알아보던 당시 김기태가 "형이랑 같이 하자"라고 말해 감동해서 LG로 왔다고 카더라[14]

또한 임찬규 물벼락 사건 때 임찬규의 불찰을 감독으로서 사과하는 모습이 조직의 수장으로서 아랫 사람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이 훌륭한 리더십의 귀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본인이 사신기태라는 별명에 대해서 자신은 한번도 화를 낸적이 없는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다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왜긴 왜야 갈았다 하면 코다니깐 사신이지 실제로 성격은 마치 큰 형처럼 선수들과 서글서글하게 지낸다고. 후술할 정현욱과의 FA 영입 일화 역시 이러한 큰 형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 게다가 전술했다시피 이승엽도 김기태를 보스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선수협때 이승엽을 가지 못하게 윽박지른 장본인인지라 사이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을텐데 저렇게 인터뷰까지 해주는 걸 보면 선수협 여부를 떠나서 선수들에게 확실히 잘해주긴 잘해준듯. 아니면 이승엽이 대인배거나..

KIA 타이거즈감독 부임 이후론 2015시즌에는 그동안 상성관계인 삼성과 5할을 승부를 거두었다는 점과 전임 감독 선동열의 실적과 더불어 조금 지지를 받긴 하였다. 하지만 KT한테 9승 7패로 우위를 점했던 것과, 삼성과 8승 8패로 호각을 보였던거 빼면 나머지는 각동님 때와 비교해서 그냥 그대로라는게 여실히 보여졌다. 그리고 2016년에는 팀 전력이 나름 업그레이드 된 KT와, 포기할때는 확실히 포기하는데 그 포기하는 댓가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 6월 때는 그런 거 없다. 그러나.. 기아의 5년만의 가을야구가 유력해져서 팬들은 포스트시즌에서 팀이 맹활약 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중. 이로써 타이거즈 감독에서 각동님만 뺀다면 모두 가을야구를 한 감독들..

5.2 부정론

위와 같은 포용적 리더십은 팀과 상관없이 인정받는 대한민국 야구 팬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자기 팀에만 적용된다고 보여진다는 점에서 타팀에서는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김기태 부임 이후 벤치 클리어링이 없어지다시피 했다는 벤치 클리어링에서의 설명과는 별개로 야구계 전체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비판의 대상. 특히 자기 팀만을 포용하고, 타 팀에 대한 피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야구계의 선배로써 옳은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다.애초에 선수협 5적 중 한명에게 뭘 기대하겠냐마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레다메스 리즈 배영섭 사구사건 때 리즈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론이나, 정찬헌 정근우 사구 사건 때의 정근우에 대한 보복 사구라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야구계 선배인 이만수 감독에게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쓰는 결례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대 벤치가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등의 어이없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한 점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벤치 클리어링이나 상대 팀을 공격하는 것으로써 자팀의 결속력을 다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타 팀 팬들의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김기태의 사퇴 당시 대부분의 타팀팬들은 크보 물을 더럽히는 감독따위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질릴대로 질려있던 상황이었다. 뭐 임찬규 물벼락 사건부터 해서 정근우 사구 사건까지 LG 트윈스의 도를 넘어선 물의들[15]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본인의 대처도 문제투성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한편, KIA 감독으로 부임한 뒤 이대형kt 위즈가 데려가도록 하는 바람에 이대형과 악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다시금 나오고 있다. 본인은 외야 자원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팬들 입장에선 현재 KIA에서 이대형 자리를 메꿀 정도의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6]

또한 너무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향 때문에 부진하고 있는 선수나 함량 미달의 코칭스태프도 계속 신뢰를 가지고 감싸주며 기회를 준다. 자신이 직접 점지한 사람은 내칠 수 없다는 확고한 마인드가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믿음의 야구.

5.3 독특한 훈련방식

1. 꽃게 자세 훈련 (부제 : 꽃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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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과 하체 훈련 대결...여유롭게 승리한다.

훈련하는 고영우 선수, 바라보는 고참 김주형선수, 시키는 김기태감독
타자의 하체밸런스를 키우기 위해 양쪽 엄지발가락에 힘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무릎을 굽힌 후 양손은 쟁반을 들고 있는 것처럼 해서 좌우로 껑충껑충 뛰면서 왔다갔다 하는 훈련이다.

2. 망치 타격 훈련 (부제: 김기토르, 토르태)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7/14682052727dde5936279d4b15adcdcb814b94e144mn308958w300h168f9605__Ym201607.jpg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7/14682068002aa2fb00577a4fb58e24ce3574db22d0mn308958w333h183f2549877__Ym201607.gif

흥미롭게 훈련하는 윤완주선수, 김기태 감독
공이 몸에 최대한 가깝게 붙였을 때 손목스냅으로 망치를 휘둘려야 맞출 수 있는 훈련방식이다. 컨택능력을 향상에 도움이 된다.
배트보다 때리는 면이 작은 망치를 통해 집중력과 정확한 타격 능력을 높이고 똑같은 훈련이라도 지루하지 않도록 고안한 방법이다.

3. 타격지도 하는 김기태 감독(feat. 김호령)

기아 김기태 감독이 26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킨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연습경기를 마친 뒤 김호령 선수의 타격을 지도하고 있다.

2016. 2. 27. (오마이뉴스 사진부)

영상을 보면 알수 있듯이 타자 출신으로 타격훈련은 직접 챙긴다. 타격하는 선수의 바로 옆에 앉아서 배트가 가르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5.4 총평

자기 팀을 최대한 리더로써 감싸면서, 상대 팀과는 좀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인 관계를 가져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는 유형의 통칭 "큰형님 리더쉽"으로 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평가받았다.나바로한테 펑고 도와주는 거 보면 이것도 아닌듯 한데 가장 비슷한 감독의 예로 김성근 그리고 주제 무리뉴를 들 수 있지만, 위의 둘에 비하면 타팀에 대한 독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정서상 지나치게 승부욕을 갖고 타 팀과의 배타적 경쟁체제로 몰아가는 유형의 팀은 매우 비난받는다는 것. 특히 기업의 홍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단 입장에서 선수나 감독 등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으로 인한 잦은 구설수를 좋게 볼리가 없다. 2013년에는 성적이 잘나오니 봐줬지만 성적이 최하위인 상태에서 잘못 건들면 언제든 크게 한방 터질 여지가 있는 타팀 선수를 상대로 똑같은 수준의 막장 짓을 한 걸 본 구단 측에서 안되겠다 싶어 이미지 관리 및 징계 차원에서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한 농구팀인 서울 SK 나이츠의 감독 문경은과 비교되곤 하는데, 10년간의 긴 암흑기를 끊어내고 호성적을 냈고 모래알 팀워크를 강력한 조직력으로 바꿔놓은 점이 닮았다고 했지만 김기태가 2014 시즌 초반 사퇴를 강행하여 나 몰라라 팽개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경은과 비교하는 건 문경은에 대한 실례가 됐다. 그리고 2015년 말, 문경은은 돌경은이 되었다

그러나 2013 시즌 벤자민 주키치를 끝내 교체하지 않은 LG 프런트의 이해 못할 결정부터 시작해서 2014년의 말 많은 용병선발 등등 엠팍과 디씨 등지에서도 프런트가 김기태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대로 지원 안해준 것 아니냐는 썰도 공공연히 돌고 있었던 터라 김기태 감독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 좋지 않게 보는 가장 큰 이유가 시즌 초에 팀을 버리고 나갔다는 것인데 물론 그 자체가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2014년 9월 18일 LG - 국가대표 야구단 연습경기에서도 LG 선수들과 반갑게 해후하는 모습도 나온 터라 김기태의 중도 사퇴가 프런트측의 개입이 있던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냥 이유 없에 무책임하게 팀을 버리고 나갔다면 LG 선수들의 표정이 좋았을 리가 없었을테고. 글쎄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는 이상 야구계 선배랑 척져서 좋을 일이 있을까?

2015시즌부터 기아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한 뒤로는 확실히 젊고 달라진 팀을 보이며 기아팬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당장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것도 사실이며,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보니 보는 팬들 입장에선 참 속터지지만 결국 이것도 어느정도 기대치라는게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임감독 때 그 처참한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 젊은 선수 위주의 라인업, 그리고 풍성해진 2군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김기태 감독의 공로라 볼 수 있다. LG시절의 비밀번호 탈출, 그리고 기아타이거즈의 성공적인 리빌딩을 보면 최소한 팀을 키우는 능력이 있는 감독임은 분명하다. 잦은 라인업 교체, 작전 등으로 자주 비판받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쓸 놈만 쓴다며 비판받고 작전의 경우는 중하위권 감독은 무조건 다 까인다. 심지어는 삼성왕조 시절의 류중일 감독도 '돌'이니 '관중'이니 소리 듣던 걸 생각해보자. 잦은 라인업 교체는 여러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 불가피하고 작전의 실패는 당장은 속터지고 안타깝겠지만 크게 보면 다 선수의 경험치로 환산된다. 경기 중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인, 유망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확실하게 진 것이 아닌 경기도 체력과 혹사 지양을 이유로 포기하다시피 하는 모습 때문에 포기태라고 욕을 먹고 최악의 감독이라는 소리도 듣지만, 시즌이 끝나고 보면 좋은 감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신기한 감독. 그리고 본인 능력치는 매니징 쪽에 몰빵되어 있는데 자꾸만 되도않게 명장놀이를 해서 안타깝게 비판받는 감독.

부상이 잦았고 침울했던 분위기의 기아를 리빌딩 2년만에 투지와 투혼이 넘치는 활기찬 팀으로 팀컬러를 바꾼 것을 보면 분명 실력이 있는 감독이다. 2016시즌은 리빌딩과 성적 두가지를 모두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 상당히 실력있는 감독임을 증명하였다.

감독의 또 하나의 필요자격이라 볼 수 있는 승부사로서 김기태감독을 평가할 수 있는 시즌은 근래 타이거즈 전력 중 가장 괜찮다고 예상되는 2017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반쯤은 답이 나온 거 같지만 그래도..)

6 여담

  • 홈런왕+타격왕을 달성한 한국프로야구 선수 5명 중 하나.[17] 그러나 14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97년에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이승엽이 170안타를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 그는 최다 안타와는 인연이 없다. 다만 언급되는 이야기로, 김기태 감독이 현역시절 클러치 상황이 아닐 때 의도적으로 루킹 삼진을 당하며 약점 인 척 노출시키고 결정구의 구질이나 위치 등을 기억하고 있다가 중요한 시점, 한방이 필요할 때 투수가 전 타석에서 사용한 똑같은 결정구를 사용하면 쳐냈다는 일화를 봐선 굳이 욕심부려가며 안타를 생산해내는 스타일은 아닌 듯 하다.
  •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우승이 없기로 유명하다. 2003년 한국시리즈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해 콩라인에 가입되었다. 커리어 기준으로도 번번이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에 밀린 안습한 2인자 인생. 1994년에 홈런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절친한 동생인 이종범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최다 홈런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홈런왕이 되지 못하고 나중에 홈런왕을 기록하긴 했지만 MVP를 차지하지 못했던 심정수와 비슷한 케이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직전에 LG의 2군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탈퇴하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한 게 선수, 지도자 합해서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창립을 결사 반대했던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 이호성과 함께 선수협 오적으로 불리우는데 63빌딩 창립총회 당시 뒤늦게 들어와 TV 방송 카메라들이 뻔히 중계하고 있는 자리임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을 거친 말과 행동을 위협해 모두 끌고 나갔고 자신의 행동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의 K 선배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출처

  • 마구마구 관련 고정글 중 해기태와 비기태에 대한 비교글이 있다.보러가기 첨언하자면, 꼭 쌍방울 올스타를 하지 않을바에야 파워-컨택 모두 나은 비기태가 잡덱에서도 많이 쓰이며, 저 글에서는 7렙을 찍는다는 가정하에 해기태>비기태 드립을 치는 것이다. 낚이지 말자(...). 게다가 해가 뜨면 99 샌더스 or 스미스를 쓰지 김기태를 쓰면 바보다
  • 참고로 김기태의 주변인맥이 깨는데, 먼저 이종범과는 어린 시절 친한 동네 형-동생 사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기태가 이종범의 집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종범아~ 자전거 타자~라고 자주 불러내서 놀았다고... 선수 시절에도 이종범이 배트를 거리낌없이 가져갈 정도였다.그런데 1994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또한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인 염경엽과는 광주 충장중-광주일고 동기동창으로 서로 절친이라고 한다.[18]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던 김기태를 박종훈의 요청을 받아 LG 트윈스로 데려온 장본인이 염경엽이었고, 김기태가 감독에 선임되었을 때 염경엽을 수석코치로 기용하려고 했지만 염경엽 본인이 거절[19]하고 넥센 히어로즈로 옮기는 바람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서 투수코치로 같이했던 조계현을 수석코치로 영입한다. 그리고 조계현과 호흡이 잘 맞았는지 이후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된 후에도 조계현을 수석코치로 데려왔으며, 김기태가 LG에서 사임한 후 조계현은 "나는 김기태의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담으로 염경엽 감독에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야타족’ 출신 감독”이라고 놀리기도 했다.[20]
김기태와 같이 쌍방울 레이더스에 잠깐 있었던 그의 광주일고 1년 후배 구한성에 의하면, 생활이 어려운 편이었다고 한다. 글에 의하면 이종범의 집이 김기태 감독의 두 집 건너 이웃이었다 하니.... 뭐...
  • 두 사람의 프로필을 봐도 알겠지만 염경엽 감독이 원래 1살 더 많은데, 김기태 감독과 동기동창이 된 이유는 염경엽 감독이 중학교 때 1년 유급했기 때문이다.[21] 중학교 3학년 때 야구 안 한다고 둘이 같이 도망나와서 서울역에서 3일 동안 구두닦이를 했었다고(...). #
  •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하면서 3개월만에 왼손잡이로 전향했다. 우투좌타 스타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동네 동생인 이종범은 그 반대로 왼손잡이이지만 우투우타라는 것.
  • 해태-KIA 타이거즈 연고인 광주광역시 출신이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은 이후로 고향 연고인 타이거즈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22] 이 때문에 좌타자 잔혹사에 시달렸던 타이거즈에서 뛰어 봤었음 하면 어땠을 까 하는 많이 아쉬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23년 후 그 김기태를 감독으로써 KIA 타이거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만, 골든 글러브도 지명타자로써 2번을 받기도 했고 경기 출장도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우가 많아 엄밀히 말하면 전문 지명타자에 가깝다. 사실 뛰어난 타격에 비해 수비에는 약점이 많기도 해서 지명타자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23] 찰스 스미스에 밀려 좌익수 수비를 하지 못했다면 말 다한 것.[24] 사실상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지명타자 출신 감독!
  • 거포 이미지와는 달리 주루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이상이었다. 남들은 한번도 하기 힘든 러닝 홈런을 2차례나 성공했고, 두 자릿수 도루도 네 차례나 기록했다. 거기다가 빵사마도 못해본 11년 연속 3루타 기록까지...하늘이 밸런스 붕괴를 우려해 돌글러브 속성을 준 듯
  • 2012년 5월,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유동닉 갤러에 의해 발굴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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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김꽈당이 따로 있었다 눕동님 비긴즈
정작 본인에게는 잊을 수가 없는 흑역사이지만, 워낙 오래 된 일이다보니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안도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러 손을 건넸다가 저걸 본 타자(심성보 추정) 기분은 어땠을 런지…. 다행스럽게도(?) 해당 게시글은 전혀 뜨지 못하여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모른다는 것. 참고로 저 영상은 네이버 스포츠에 올라온 한국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동영상 김기태 편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여기 올라와있잖아...?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홈런 칠때는 조용하더니 넘어지니까 관중들이 환호하는 건 대체 뭐지?
  • 2015년 시즌을 맞이하고 적극적인 어필 제스처와 의욕적인 모습 덕분에 이해에만 5월 기준으로 7개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박용택, 김태균의 별명왕 명성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2015년에 이 두명의 별명왕을 능가하는 별명 획득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서 만약 시즌을 희망적으로 마치고 김기태 감독이 KIA에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다면 별명 문서가 생길 수준이 되었다.
  •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깬다(...) 거의 서재응급. 얼굴만 봐서는 꼭 굵직한 저음에 할 얘기만 할 것 같은데 의외로 하이톤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예~ 뭐~ 저~머로 운을 떼며 더듬더듬 정신없이 빠른 속사포가 마구 섞여서 마치 시골 이장님같은 수더분하고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덕에 머동님이라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친구인 염경엽 감독이 비교적 안정된 톤에 달변가인 것과 대조된다. 눕동님 대신 예뭐저로 지칭하는 사람도 있다 카더라 2016 KBO 리그 미디어 데이에 어떤 팬이 예뭐저는 아니지만 그뭐저를 사용하지 않고 기아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고 하는 질문에 팬들이 빵 터졌는데 SPOTV에서 그 질문을 예상하고 김기태 감독의 예뭐저를 영상 자료로 준비한 것에 2차로 빵 터졌다 카더라.출처
  • 보상선수 픽의 귀재다. 2012년 LG 감독으로 부임시 여러 요인으로 의 대규모 이탈이 발생했고, 곧이어 전력 보강의 기회로 3명의 보상선수 영입 기회가 돌아왔다. 아무리 리빌딩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도 차포도 모잘라서 마상까지 떼고 장기를 두는 정도의 대규모 전력 출혈이 발생한 이상 즉시전력감 선수를 지명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지만, 김기태의 선택은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프로 1년차 루키 3명이었다. 심지어 셋 가운데 그래도 즉시전력감이라고 평가할 만했던 윤지웅은 이미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상황.[25] LG 팬들 입장에서야 꽤 기대할 만한 유망주들이기에 결과 자체에는 호의적이었지만,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2013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이대형이 FA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는 꽤 나이가 있는 신승현을 선택한다.사실 이미 각동님의 신념의 대졸픽으로 KIA의 신인 뎁스를 박살내놔서 뽑을 루키가 없었다 LG팬들 입장에선 나가도 아쉬울게 없는 이대형에 대한 보상선수인지라 어차피 누구든지 일단 받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신승현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뭔가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앞서 뽑은 루키들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들이지만 신승현은 과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건 이젠 무리다 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기대치 자체가 높아질 수가 없었기 때문. 차라리 앞서처럼 신인이나 뽑지 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아글쎄 뽑을래도 대졸밖에 없다니깐
이 보상선수 4인방 가운데 임정우와 윤지웅은 2014년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미 LG 마운드 구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자원이 되었다. 또한 2015년에는 LG가 전년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쑤는 가운데 전혀 기대도 안했던 신승현은 뜬금없이 나타나서 7월 기준으로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음주운전으로 자숙에 들어간 정찬헌과 폼이 박살나서 2군에 틀어박힌 유원상, 신재웅의 공백을 제법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타선의 노쇠화, 부상, 시즌전 기대했던 최승준 등이 삽질을 하는 가운데 기회를 얻은 나성용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상선수로 뽑은 4인 모두가 1군 엔트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보상선수 선구안을 보여줬기에 KIA 팬들은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선택한 임기영[26]에 대해서 기대를 해보는 상황. 전년도까지 성적은 그렇게 훌륭하진 않지만 어쨌건 젊은 선수들 재능을 꿰뚫어보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김응용 전 감독이 눈여겨보던 자원이었으며 상무 입대후 2군리그에서 썩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연 보상선수 불패신화를 계속 이어갈 가능성도 보인다.
  • 자타 공인 고졸 성애자이다. 2016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로 도배하다시피 선발을 해서 전임 선동열감독의 미래가 없는 미칠듯한 대졸 사랑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며 팬들이 환호중이다. 또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김기태 감독의 평소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평. 앞으로도 김기태 감독의 이런 신인 선발은 꾸준할것으로 보인다.
  • 롯데 자이언츠가 2016시즌을 이끌 새 감독으로 조원우를 선임함으로써 길게 이어져왔던 막내감독 딱지를 드디어 뗐다.

7 연도별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1쌍방울 레이더스124427.26211215027
(2위)
92
(2위)
65776.487
(9위)
.370
1992123398.30212028
(2위)
331
(2위)
96
(3위)
86
(8위)
5122.621
(2위)
.461
(1위)
199396317.24076172943361174.391.380
(4위)
1994108376.316
(5위)
119
(10위)
20
(10위)
4
(9위)
25
(1위)
79
(3위)
70
(5위)
976.590
(1위)
.430
(2위)
1995116402.321
(3위)
129
(10위)
34
(1위)
31272
(7위)
481273.510
(3위)
.419
(2위)
199691310.29792173125347354.487.399
1997111390.344
(1위)
134
(10위)
30
(5위)
326
(5위)
79
(4위)
95
(4위)
1086.636
(1위)
.460
(1위)
1998126434.309
(7위)
13428
(9위)
4
(8위)
31
(3위)
90
(4위)
84
(5위)
10104.606
(3위)
.440
(2위)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9삼성 라이온즈130468.29313733
(5위)
2288882588.551.403
2000101333.309103241268069559.622.410
20014485.1761521095017.224.314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2SK 와이번스101284.2577315194632247.412.359
200393236.292697031832227.360.364
2004126403.320
(6위)
129240106760257.454.403
(9위)
200554112.20523400115015.241.297
KBO 통산
(15시즌)
15444975.29414652982724992381683975.515.407
  1. 삼성 라이온즈 창단 최초로 이적생 출신 주장을 맡았다.
  2. 2014 시즌 도중 도망사퇴
  3. 전체 커리어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가 많다.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에서 지명타자로 뽑힌 이유다.
  4.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종목 진출을 위한 올림픽 지역예선이었다. 보통 이 대회는 아마추어가 나오지만, 베이징올림픽 티켓이 걸려있는 만큼, 프로 선수들이 대거 나왔다. 당시 감독은 선동열.
  5. 시즌 도중 자진사퇴.
  6. 한국인 최초 일본프로야구 정식 코치를 맡았다.
  7. 육성 코치 시절 등번호.
  8. 2군 타격 코치 시절 등번호.
  9. 원래 예정된 분은 김동재 전 기아 타이거즈 코치.
  10. 그래서 김성근이 공백기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할 수 있던 것이다.
  11. 시즌 중도 도망사퇴 당시.
  12. 와일드카드 결정전 敗
  13. 감독들은 대개 나이가 있다보니 직접 시범을 보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한국 프로야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례적인 모습
  14. 근데 필진들의 면면도 그렇고 글 대목상 농담이 아닌 진지한 대목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15. 비밀번호의 여파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게, 딱 김기태 감독 시절에만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 특히 이광은 감독부터 양상문 감독까지의 시기에 선수 외의 사람을 상대로 피해를 끼치거나 하는 사항은 김기태 감독 시절 말고는 없다.
  16. 하지만 김기태는 이대형을 2년간 밀어주었는데 치라는 안타는 거의 터지지않고 도루만 하니 이쯤되면 이대형 망했다라고 팬들이 욕도 했다고... 그리고 이대형이 중간에 욕을 먹은건 2013년 플레이 오프 때 주루 미스를 하면서 대차게 까였다. 물론 범인은 최태원이 계속 돌렸기 때문...
  17. 나머지 네 명은 이만수, 이대호, 김태균, 최형우이다.
  18. 염경엽 문서에도 있지만 그 염경엽과 김기태의 후배가 바로 이종범이다. 포지션은 염경엽과 이종범 모두 유격수로 동일.
  19. 당시 염경엽의 경우 정치설 때문에 LG에 남아 있기가 힘들었다.
  20.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염경엽도 대단한 게 기사 내용 대로, 술 안 먹고도 잘 놀려면 애주가의 몇배 노력이 필요하기에 더욱 놀라움 그 자체.
  21. 김기태는 같은 1969년생 양준혁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염경엽은 1968년생이고 1991년에 대졸 신인으로 데뷔했는데 이는 염경엽이 중학교 때 유급해서라고. 참고로 1970년생 이종범이 1993년 데뷔, 1969년생 양준혁은 상무를 거쳐서 1년 늦게 25세인 1993년 데뷔함.
  22. 참고로 절친인 염경엽도 광주 출신이지만,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아 타이거즈에서 뛴 전력이 없다.
  23. 쌍방울 입단 초기에 어깨 부상이 있어서 송구를 못 하는 상태였었고, 어깨만 완치되면 1루 수비를 나서려는 본인의 의지도 강했다.
  24. 몸매가 이대호급이었다.
  25. 넥센입장에선 군입대를 통해 픽을 막으려고 한 것이고 실제로 김민성 정도로 추측되는 1군급 선수를 떡밥으로 풀어 그쪽으로 픽을 유도하려 했으나 LG의 선택은 윤지웅이었다. 이후로 보상선수픽에 있어서 한승택 등 군 입대가 확정된 선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기 시작한다.
  26. 윤지웅과 마찬가지로 군입대가 확정된 이후에 보상선수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