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6년을 기준으로 KBO 리그의 심판위원회에는 46명[1]의 심판이 있다. 대부분 프로선수 출신으로, 프로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선수 출신[2]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오히려 프로선수 출신이 드물고 그나마 선수 출신이라고 해봤자 아마추어 선수 출신이다.
심판이 되길 원하는 일반인이나 비선수 출신 아마야구 심판을 채용하지 않기에 프로야구 심판계가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후술할 심판들의 근무환경상 일반인이나 부업 겸으로 하는 아마야구 심판이 프로야구 심판으로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
루킹삼진이 발생하면 구심은 타자 스윙같은 표식이 없는 상황에서 삼진임을 주위에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일반 스트라이크에 비해 훨씬 호쾌한 몸짓으로 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한다. 이 동작도 심판마다 각양각색이라서 나름 야구의 볼거리 중 하나.KBO의 심판들의 삼진콜 그냥 간단히 손만 올리는 심판도 있고 어퍼컷을 하는 심판도 있다. 모션이 과격(?)한 심판과 삼진 많이 잡는 투수가 만나면 재밌는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KBO의 심판들의 삼진콜
1.1 비 선수 출신 심판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주인공 김범수(임창정 분)는 비 선수 출신임에도 자신의 꿈을 좇아 마침내 야구 심판이 되어 한국시리즈에도 출장한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심판 육성 시스템이 완전하지가 않아 비 선수 출신 일반인이 선수 출신을 따라잡기는 상당히 어렵다. 한국에서 비 선수 출신이 프로야구 1군 심판으로 나온 적은 아직까지 없다.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과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뜰 확률과 같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일반인[3]이 심판이 될 수 있는 길은 KBO와 대한야구협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야구심판 양성과정의 일반과정 강좌를 수강해야 하는데, 성적 우수자에 한해 아마야구 심판들이 수강하는 전문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4]. 그리고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1년 이상 활동해야 KBO 심판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야구심판 양성과정이 비교적 짧고, 복잡한 룰[5]을 숙지하기엔 일반인으로서는 무리가 있다. 즉 비선수 출신을 안 뽑는 게 아니라 못 뽑는 거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비 선수 출신 일반인이 프로야구 심판이 된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2001년에 입사한 엄재국이 있다. 엄재국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야구를 시작해, 대한야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야구심판학교를 통해 프로야구 심판이 되었다. 그러나 2군에서만 3년 있다가 결국 사표를 쓰고 현재는 사회인 야구 심판을 보고 있다.
2 역사
실업야구 시절 심판들은 부업 삼아 심판을 봤다. 그러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프로심판을 따로 뽑았다. 총 15명을 뽑아 전임심판 9명과 지방주재 6명으로 나눴고, 다시 전임심판은 3명씩 3개조로 각 지방주재 심판 1명과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KBO에서는 심판들만 뽑았지 이후 별다른 지원을 안 했기에 심판들이 자비를 들여 스스로 유니폼도 맞추고 장비도 샀다고 한다.
원래는 KBO 총재 직속기구였으나, 1996년 한국시리즈 때의 판정시비로 인해 KBO 사무총장 관할의 심판부로 격하되기도 했다. 1999년 심판위원회로 다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KBO 사무총장 관할기구다. 또한 같은 연유로 1997년부터 경기감독관제도가 신설되어 심판의 경기 진행을 감시하게 되었다.
한편 1987년부터 공식적으로 공채 시험을 실시해 심판을 뽑고 있다. 하지만 심판위원회가 KBO의 하위기구이다 보니, KBO의 예산에 따라 좌우지되는 경우가 많아 예산 부족으로 신규 심판을 뽑지 않은 해도 있었다.
2.1 2000경기 출장 심판
이름 | 일자 | 경기 | 활동 기간 |
이규석 | 1999년 8월 18일 | 잠실, 한화-LG전 | 1982~2001 |
오석환 | 2009년 9월 1일 | 잠실, 한화-두산전 | 1990~2013, 현재 퓨처스리그 심판육성위원 |
임채섭 | 2010년 5월 16일 | 목동, 삼성-넥센전 | 1990~2015, 현재 KBO 경기감독관 |
나광남 | 2012년 8월 29일 | 군산, 삼성-KIA전 | 1992~현재 |
문승훈 | 2014년 5월 5일 | 문학, 롯데-SK전 | 1993~현재 |
김풍기 | 2015년 5월 2일 | 대구, 두산-삼성전 | 1994~현재 |
김병주 | 2015년 6월 25일 | 수원, LG-kt전 | 1993~현재 |
3 구성
심판위원회는 KBO 산하에 있다. 1, 2군 총괄은 위원장과 차장이 담당하고, 1군에는 5개 팀을 두고 있다. 팀장의 인사권은 위원장에게 있다. 각 팀장은 4명의 팀원과 함께 움직이고 경기마다 주심, 1루심, 2루심, 3루심, 대기심을 정한다[6]. 1개 조씩 순번대로 돌아가며 4주간 2군으로 내려가 휴식 기간을 갖는다.
심판 공채시험에 합격해 2군에서 대략 5년 정도 활동해야 1군으로 승격될 수 있다. 1군에 속한 심판이 오심 등으로 인해 제재를 받으면 2군 소속 심판이 승격되기도 한다. 한편 퓨처스리그에서는 심판 수 부족으로 3심제로 운영될 때도 있다.
3.1 역대 KBO 심판위원장
이름 | 임기 | 기타 사항 | |
1 | 이기역 | 1983년 | |
2 | 故 박현식 | 1984년~1989년 | |
3 | 김광철 | 1990년~1996년 | 최초 프로심판 출신 심판위원장[7], 현 야구심판학교 교장 |
4 | 황석중 | 1997년~1998년[8] | 현 대한야구협회 심판이사 |
5 | 김찬익 | 1999년~2005년 | |
6 | 김호인 | 2006년~2007년 7월 | 최초 프로선수 출신 심판위원장, 2007년 7월 파벌싸움으로 퇴출 |
대행 | 황석중 | 2007년 7월~2007년 12월 | |
7 | 조종규 | 2008년~2014년 2월 | |
8 | 도상훈 | 2014년~현재 | 1990~2003년 KBO 심판 |
3.2 KBO 심판위원 명단
본격 블랙리스트. 특히 따로 항목이 있는 인물들 물론 항목이 없다고해서 괜찮다는건 아니지만(...)
2016 시즌 기준으로, 직책 - 입사년도 - 생년월일 순. 볼드체 처리된 인물은 오심으로 악명 높은 자들이다. 최규순, 김락기처럼 저들도 하루 빨리 잘리길 기도하자. 근데 볼드체가 너무 많아서 한두명 잘라서는 안되고 아예 세대교체를 해야 할 판
번호[9] | 이름 | 직책 | 입사년도 | 프로 활동 |
10 | 나광남 | 1군 팀장 | 1992 | 외야수 / 삼성(1989~1991) |
7 | 문승훈[10] | 1군 팀장 | 1993 | 내야수 / 해태(1989~1992) |
37 | 김병주 | 1군 팀장 | 1993 | 없음 |
38 | 김풍기 | 1군 팀장 | 1994 | 내야수 / 태평양(1989~1992) |
27 | 최수원[11] | 1군 팀장 | 1994 | 없음 |
19 | 강광회[12] | 심판위원 | 1995 | 외야수 / 태평양-쌍방울(1990~1994) |
29 | 전일수 | 심판위원 | 1996 | 투수 / 태평양-LG(1991~1994) |
12 | 이영재 | 심판위원 | 1996 | 포수 / 삼성(1991~1994) |
25 | 박기택 | 심판위원 | 1997 | 외야수 / 쌍방울-해태-LG(1991~1996) |
34 | 우효동 | 심판위원 | 1997 | 외야수 / 쌍방울(1992~1994) |
31 | 이민호 | 심판위원 | 1997 | 내야수 / 해태(1993~1996) |
26 | 원현식 | 심판위원 | 1999 | 포수 / 빙그레-한화(1993~1995) |
11 | 박종철 | 심판위원 | 1999 | 투수 / 쌍방울-삼성(1990~1996) |
32 | 박근영 | 심판위원 | 1999 | 포수 / 삼성(1996~1997) |
40 | 윤상원 | 심판위원 | 2001 | 외야수 / 현대(1999) |
17 | 오훈규 | 심판위원 | 2002 | 없음 |
43 | 김성철 | 심판위원 | 2002 | 외야수 / 롯데(1991) |
8 | 추평호 | 심판위원 | 2002 | 외야수 / 해태(1995~1997) |
9 | 이기중 | 심판위원 | 2003 | 외야수 / LG(2000~2001) |
6 | 권영철 | 심판위원 | 2003 | 내야수 / 삼성(1996~2001) |
50 | 김정국 | 심판위원 | 2004 | 없음 |
51 | 문동균 | 심판위원 | 2005 | 없음 |
21 | 이계성 | 심판위원 | 2006 | 외야수 / 삼성-쌍방울-삼성-롯데(1996~2005) |
54 | 김준희 | 심판위원 | 2006 | 없음 |
55 | 황인태 | 심판위원 | 2006 | 없음 |
36 | 김익수 | 심판위원 | 2006 | 투수 / 현대(1999~2001) |
35 | 윤태수 | 심판위원 | 2007 | 외야수 / 두산(2001~2004) |
41 | 배병두 | 심판위원 | 2007 | 없음 |
52 | 송수근 | 심판위원 | 2009 | 외야수 / SK(2003~2007) |
59 | 정종수 | 심판위원 | 2010 | 포수 / 두산-현대-히어로즈(2003~2008) |
30 | 이용혁 | 심판위원 | 2010 | 없음 |
42 | 장준영 | 심판위원 | 2011 | 내야수 / KIA(2002~2009) |
39 | 구명환 | 심판위원 | 2011 | 외야수 / 두산(2004~2007) |
44 | 유덕형 | 심판위원 | 2012 | 내야수 / 현대(2005~2007) |
49 | 함지웅 | 심판위원 | 2012 | 외야수 / KIA(2007) |
53 | 차정구[13] | 심판위원 | 2012 | 외야수 / 삼성(2006) |
61 | 김선수 | 심판위원 | 2013 | 없음 |
45 | 김한상 | 심판위원 | 2013 | 외야수 / 넥센(2010) |
47 | 최영주 | 심판위원 | 2015 | 없음 |
56 | 김갑수 | 심판위원 | 2015 | 없음 |
33 | 김태완 | 심판위원 | 2015 | 없음 |
57 | 정은재 | 심판위원 | 2015 | 내야수 / KIA(2009) |
46 | 김정 | 심판위원 | 2015 | 없음 |
62 | 최현종 | 심판위원 | 2015 | 외야수 / 현대-넥센-LG(2004~2013) |
63 | 이호성 | 심판위원 | 2015 | 외야수 / 두산-NC(2005~2013) |
64 | 황인권 | 심판위원 | 2015 | 외야수 / 두산(2011) |
이민호 | 심판위원 | 2016 | 없음 | |
장호석 | 심판위원 | 2016 | 없음 |
4 대우 및 근무환경
한 마디로 열악하다.
1년마다 계약하는 계약직으로 정년은 없데다가 4대 보험과 퇴직금도 없다. 1999년 김광철[14] 전 심판위원장이 사임한 후 KBO에 퇴직금 지급을 요청하며 법정소송을 벌이면서 법원으로부터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허나 2000년대 심판 관련 기사에서는 심판들에게 퇴직금이 없다고 나온다. 아무래도 반노동정서가 강한 우리나라 법상 심판은 자유직업 소득자로 분류되기에, 법정 소송 후 계약서를 수정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퇴직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비단 심판 뿐만 아닌 선수들도 마찬가지지만.
2000년대까지는 특별한 기준 없이 큰 잘못만 안 한다면 재계약은 보장되었지만 2007년부터 3진 아웃제가 시행되었다. 1군에서 3번의 명백한 오심으로 제재를 받으면 2군으로 강등되고, 이후 2년간 1군 승격이 되지 않으면 면직된다. 또 2군에서도 3년 단위로 최하위 고과를 받는 심판은 자동 면직된다.
경기운영위원(경기 감독관)[15]이 심판 판정에 대해 고과측정을 해, 고과에 반영한다. 초임심판의 연봉은 2천만원 정도고, 1군에서 활동하는 심판들의 평균 연봉은 4천만원에서 5천만원 정도. 여기에 각종 수당이 지급되기에, 20년 가까이 활동한 심판은 총 수령액이 1억원을 넘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평균적으로 비교하면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의 경우 메이저리그 심판의 연봉은 적게는 8만 달러에서 많게는 15만 달러 정도다. 일본의 경우 1군 심판 평균 연봉이 1천만엔이고 출전 수당도 구심은 3만 5천엔, 누심은 2만 4천엔을 받고 있고 출장비나 용품비[16]도 별개로 나온다.
선수들과 달리 3경기마다 이동을 하기에 시즌 당 이동거리는 선수들에 비해 더 길다. 또 특급호텔에서 묵는 선수들과 달리 여관에서 머무는 일이 많다. 유영구 KBO 총재 시절에 관광호텔에서 머무르라고 숙박비가 더 올랐지만, 관광호텔은 경기장과 거리가 멀어 여전히 여관을 이용한다고.
주심의 경우 보호대 때문에 여름엔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2kg이나 빠진다고 한다. 그만큼 땀을 엄청나게 흘린다는 뜻인데, 예전에는 심판들을 위한 샤워실은 없었지만 최근들어선 늘고 있고 리모델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심판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보니 휴식일 없이 매경기 참가해야 한다[17] 아이러니하게도 빡빡한 일정 탓에 피로 누적과 부상이나 질병, 오심에 대한 징계 등으로 전 경기 개근하는 심판은 드물다. 심판을 많이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2008년에는 예산 문제로 아예 신규 심판 채용조차 하지 않은 일도 있다. 그나마 2010년부터는 심판을 2명 이상 뽑고 있지만 경험 문제로 최근에 충원된 심판들이 1군으로 승격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심판노조가 1999년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는데 57명의 심판이 해고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파업을 이어나갔었다. 또한 미국내 여러 스포츠들 중 비디오 판독을 제일 늦게 도입했고 메이저리그 심판들에 대한 처우를 계속 개선해 오고 있지만, 일부분은 적당히 타협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 가네다 마사이치 당시 롯데 오리온즈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타카기 토시아키 심판을 폭행해 30일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엔 처분을 받고 폭행당한 타카기 심판은 사표를 제출하고 심판직을 그만두는 사건이 일어나자, 심판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항하기 위해 심판노조를 결성해 마찬가지로 처우 개선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심판노조가 없기에 이러한 낮은 처우가 개선되기에는 더 많은 시일이 걸릴 듯하다. 반노동정서를 대놓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라인데요, 뭘
5 오심 논란
요즘은 모든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인터넷의 활성화로 심판의 판정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에 오심에 대한 논란이 늘어난 것이지, 비단 오심 논란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야구 출범 후부터 계속되어 왔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오심 관련 논란은 똑같이 벌어진다. 다만 미국에서는 심판이 규칙대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국에서는 심판이 하나하나 판정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에 오심 논란이 크게 불거진다는 말도 있다.
역대 KBO 심판 중 최고 심판으로 손꼽히는 이규석도 완벽하게 심판을 본 시합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오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심판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수비수라도 실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심판들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오심이 나오면 TV에서는 계속 그 장면이 반복되어 나오고, 팬들은 KBO 홈페이지 등에 오심에 대한 성토와 함께 오심을 저지른 심판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심지어 일부 극성팬들은 오심을 저지른 심판 본인은 물론이고 그 심판의 가족들까지 인신공격을 하기에[18], 이로 인해 심판들 역시 오심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 스트레스 때문에 심판 출신들은 대부분 60대 초반에 단명한다는 말도 있는다.
KBO에서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명백한 오심에 대해서 제재가 내리고, 앞서 언급한 3진 아웃제 도입 등 오심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다. 심판들 스스로도 오심을 줄이기 위해, 비시즌 기간에도 지속적인 교육과 함께 전지훈련 때 각 팀 선수단에 따라가 연습경기에서 심판을 맡아 현장감각을 유지하는 등의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심판들의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오심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오심을 줄이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비디오 판독이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타구의 홈런 여부를 가리기 위한 비디오 판독만을 실시한다. 다만 방송사의 비디오를 보고 판단하기에, 방송사 카메라가 타구를 잘 못 잡은 경우 판정도 애매해지는 문제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2008년부터 타구의 홈런 여부를 가리기 위한 비디오 판독을 실시했고, 2013년 들어 타구의 파울, 페어 여부 판독도 실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메이저리그에서도 주자의 아웃, 세이프 여부나 볼, 스트라이크 판정은 여전히 심판의 고유 권한으로 판단해 비디오 판독을 하지 않는다. 미국 내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가 보수적인 스포츠인 탓도 있지만, 만약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비디오 판독이 가능해진다면 경기 흐름이 끊어질 뿐더러 심판 판정이 번복되는 일이 잦아지면 심판 판정에 불신을 갖고 경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비디오 판독 외에 다른 종목처럼 외국인 심판 도입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KBO에서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다. 이 말이 나온 게 2007년 김호인-허운 파벌 싸움 때 심판들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하일성 당시 사무총장이 심판 충원을 위해 외국인 심판 도입도 고려한다는 인터뷰에서 나온 것인데, 사실 KBO와는 사전 협의 없이 스스로의 생각을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 말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연봉 때문에 메이저리그 심판을 데려오기는 힘들고, 그나마 데려온다고 해도 마이너리그 심판 정도 밖에 데려오지 못한다. 설령 외국인 심판을 도입한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을 정해놨지만 미국에서는 심판의 재량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상황에 대한 판정이 심판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한편 2008년 이광환 당시 우리 히어로즈 감독은 심판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며 실력향상을 위해 2군에서 적어도 1000경기는 심판을 보고 1군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럴려면 최소 10년간 2군에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는 5년간 2군에서 심판을 봐야 1군 경기에 출장할 수 있고, 일본도 1군 승격까지 3년에서 5년 사이로 한국보다 조금 더 짧은 편이다. 아무래도 이광환 감독이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은 미국의 사례를 든 듯하다. 미국에서는 심판들이 10년에서 12년 정도 마이너리그에서 심판을 봐야 메이저리그로 승격되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심판은 마이너리그 선수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과 고달픈 생활을 해야하기에 많은 심판들이 중도에 포기하기에 거르고 걸러진 심판들만이 메이저리그로 승격된다. 하지만 그런 메이저리그 심판들도 오심 논란에서 자유롭진 않다.
5.1 태도 문제
파일:O48Jxv2.gif
카림 가르시아의 항의를 무시하는 임채섭 심판리듬타세요?
파일:Attachment/심판/KBO 리그/인사.jpg
인사하는 사람은 카림 가르시아.
팬들은 오심 문제와 함께 심판들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나아가 심판들의 자질과 수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 심판들의 경우엔 모두 선수 출신이고 그렇다 보니 코칭스태프나 선수들과는 선후배 사이다. 그래서 심판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선수들에게 심판들은 자신이 야구계 선배임을 내세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오심 저지른 게 제 발 저리는지 이따금씩 선수들의 항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미 팬들과 구단 사이에서도 과도한 항의는 도리어 차후 불리한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진 지경이다. 반대로 감독들, 특히 연배가 많은 노장 감독에게는 자신들이 야구계 후배이기에 저자세로 대한다.
하지만 이는 같은 야구인이라도 외국인에게는 예외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심판 판정에 대해 항의를 많이 했다. 이때 로이스터 감독과 동행한 통역에 따르면,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심판들이 반말로 답했다고 한다. 2010년 카림 가르시아는 임채섭 심판 판정에 항의를 했다가 징계를 받았는데, 임채섭 심판이 대놓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카림 가르시아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이에 대해 비난을 했다가 결국 심판실에까지 찾아가 머리 숙여 사죄했다. 카림 가르시아의 사례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수가 등판할 때는 '선수 길들이기'라고 스트라이크 존도 평소와 달리 짜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한국 심판들에게는 오심을 인정하는 모습이 없다. 메이저리그의 짐 조이스 심판은 2010년 6월 3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에서 9회 2사 후 1루 땅볼을 세이프로 선언해, 아르만도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날려버렸다. 경기 후 조이스는 자신의 판정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며 갈라라가에게 사과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짐 조이스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꼽은 공정한 심판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조이스가 평소 공정한 판정을 하는 심판이라고 평판이 좋았던 탓도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한 영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심판들은 오심을 범하면 '오심도 경기의 일부', '우리나라 심판은 만 번 중 한 번만 실수에도 과도한 비난을 받는다'라며 변명만 일삼고 있다. 진정한 프로는 실수를 부끄럽게 여기고, 실수에는 책임을 져야한다. 팬들은 오심을 범한 것에 대한 인정과 재발방지를 바라지, 판정을 뒤집고 오심이 일어나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 다시 경기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심판의 태도와 관련된 문제는 해당 심판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심판위원회의 상위 기구이기도 한 KBO 역시 문제가 있다. 심판위원회의 상위 기구이기도 한 KBO는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판정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중재해 심판진에 대한 오해를 줄이는 한편, 심판들에게도 오심으로 인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오심에 대해서는 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 확실한 제재를 내림으로써 심판에 대한 팬들의 신뢰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KBO도 지금처럼 오심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심판위원회와 똑같은 입장을 반복하는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는 이상 팬들의 심판들에 대한 불신이 풀릴 리 없다.
비단 KBO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해설위원들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 심판의 오심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 심판이 오심을 하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주기 보다 오심에 대해 침묵하거나 감싸는, 오심에 대한 미온적인 반응은 도리어 팬들의 분노만 산다. 다만 때때로 방송에서 오심에 대해 과도하게 비출 경우, KBO나 심판들이 이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때문에 방송사도 오심에 대해 묵인할 때가 종종 있다.
6 국내 영상판독 도입
2014년 전반기에 오심논란이 심화되자 결국 7월 하반기부터 심판의 판정에 대한 영상판독이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심판의 오심이 의심될 경우 영상판독을 요청할 수 있으며, 오심으로 결정되면 판정이 번복되게 된다. 영상판독은 중계화면을 보고 해당판정이 있은후 30초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즉, 30초가 지나면 그 판정에 대해서는 영상판독을 제기할 수 없다. 이닝이 종료되는 경우는 10초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8월 4일까지 영상판독 요청은 총 19회 제기되었으며 이 중 8건의 판정이 번복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심판 합의 판정제 항목 참고.
7 사건·사고
오심 관련 사건은 오심 기록기준에 따라, 아래 3개 기준 중 2개 이상을 만족하거나 KBO에서 직접 오심이라고 인정한 경우만 기재한다.
- 국내 스포츠 신문 2종 이상에서 오심에 대해 직접 거론한 경우
- 동종업계인(심판)들이 오심 유무에 대해 이야기 한 경우, 야구선수나 감독 중 제3자에 해당되는 이가 공개석상에서 오심에 대해 거론된 게 보도된 경우
- 비디오 판정으로 오심인게 확실한 경우
7.1 1998년 초 심판들의 수난
1998년에는 KBO의 예산 축소로 예년과 달리 대기심 없이 심판 4명만이 경기에 나갔다. 공교롭게도 시즌 개막전부터 심판들의 수난이 이어졌다.
4월 11일, 전주에서 열린 쌍방울과 한화의 시즌 개막전에서 백대삼 주심이 파울타구에 얼굴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때마침 경기장에 와 있던 황석중 심판실장이 대신 주심을 봤다.
4월 23일, LG와 쌍방울의 경기에서 장진범 주심이 파울타구에 얼굴을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다.
4월 30일, 잠실에서 열린 OB와 한화의 경기에서 최규순 3루심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바로 전날 OB의 캐세레스의 타구에 복부를 맞았는데 그때는 별탈 없이 경기를 마쳤다가 통증이 하루 늦게 온 것. 황석중 심판실장이 이 때도 타이밍 맞춰 잠실구장을 와 있었던 터라 결원 없이 4심제 그대로 진행되었다.
5월 13일, 잠실에서 열린 LG와 롯데의 경기에서 김호인 주심이 파울타구에 어깨를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결국 프로야구 최초로 3심제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바로 하루 뒤인 5월 14일, 또 잠실 LG와 롯데 경기에서 최규순 주심이 파울타구에 또 복부를 맞으면서 불과 보름만에 또 병원으로 실려갔다.
7.2 2005년 권영철·민영기 교통사고
2005년 3월 15일, 권영철과 민영기 심판이 2군 경기 심판을 보기 위해 경산구장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두 심판은 2달 넘게 병원 신세를 졌다.
7.3 2005년 김락기·임채섭 2군 강등
2005년 4월말 김락기 심판이 사흘 연속 오심을 저질러 2군으로 강등되었다.
2005년 4월 2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8회말 1사 만루에서 손시헌이 유격수 땅볼을 치고 1루에서 세이프되었지만 임채섭 1루심이 아웃을 선언, 병살타가 되었다. 그리고 5월 13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강병식이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에서 세이프되었지만 임채섭 1루심은 이번에도 아웃을 선언하는 오심을 범했다.
임채섭은 4월 26일 오심으로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또 오심을 저질렀기에, 박용오 당시 KBO 총재는 상벌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임채섭을 1년간 2군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김찬익 당시 심판위원장은 연이은 오심 논란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고, 임채섭도 사의를 표했다. 둘다 사표가 반려되어 조용히 복귀했지만 1군에 다시 못 올라온 김락기와 달리 임채섭은 7월 20일 1군으로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임채섭이 두번째 오심을 저지른 5월 13일은 금요일이었는데, 이날 경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심판을 보기 두렵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7.4 2006년 오석환 3경기 출장 정지
2006년 6월 6일,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9회 2사 1,3루 상황에서 홈으로 뛰어들어온 김인철이 세이프되었지만 오석환 주심은 포수에 가려 장면을 보지 못하고 아웃을 선언해 그대로 한화가 졌다. 이후 오석환은 3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2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7.5 2007년 김호인-허운 파벌 싸움
2007년 김호인 심판위원장과 허운 심판 간에 파벌 싸움이 벌어져 사상 초유의 심판진 보이콧까지 벌어졌다. 다만 이 둘의 파벌 싸움만 아니라 KBO의 삽질 미숙한 행정처리가 더해진 결과였다.
파벌의 양측 수장으로 지목된 김호인과 허운 간의 갈등은 2005년 말 김찬익 심판위원장이 위원장 직을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심판위원장을 두고 시작되었다. 심판들 대부분은 허운을 신임 심판위원장으로 추대했지만, 이상국 당시 KBO 사무총장은 연배가 많은 김호인을 심판위원장으로 앉혔다. 그러면서 일단 연배가 있는 김호인은 1년간 심판위원장으로 지낸 후 심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허운이 심판위원장 자리를 이어 받기로 약속했다. 허운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대신 심판들의 복지 개선과 연봉 향상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렇듯 허운은 심판진 중 최고참 격으로 후배들을 대신해 앞서서 처우 개선에 힘쓰며 다른 심판들의 더욱 더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후 하일성 신임 사무총장이 오면서 이상국 전 총장과의 약속은 깨졌다. 2006년 5월 하일성 총장과 김호인은 심판진의 개혁을 위해 심판차장직 신설 및 조장 교체를 하려 했지만 심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006년 12월, 김호인은 심판진 개혁의 반대에 앞장섰던 허운에게 팀장직 자진사퇴를 종용하고 거부시 2군 강등을 하겠고 통보했지만 허운이 거부했다. 2007년 1월 끝내 인사 이동을 강행되면서, 허운은 7명의 다른 심판들과 함께 경력과 서열을 무시하면서 평소 하일성 총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차장과 팀장으로 임명했다고 부당성을 주장했다. 하일성 총장은 허운을 비롯한 8명의 심판과 김호인 간 화해를 중재하려 했지만 김호인이 거부했다. 그러면서 김호인은 허운의 2군 강등과 연봉 삭감을 포함해 허운을 비롯한 심판 8명에게 징계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체제에 이득을 본 심판들과 이에 배제된 심판진들간의 파벌이 조성되었다. 원정 때 이동을 따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식사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파벌간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불거졌는데, KBO에서 허운과 그에 동조한 심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허운에게 시즌 개막 3개월 후에 1군으로 복귀시켜 준다는 각서를 써준 것이다. 그러면서 KBO는 나름대로 심판진 내분을 수습하고자 했는데 김호인과 허운 간의 앙금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김호인은 KBO에서 허운에게 1군 복귀 각서를 써준 것을 뒤늦게 알고나서 지속적으로 허운의 1군 복귀를 반대했고, 급기야 김호인과 심판차장과 팀장들은 허운 복귀 반대를 걸고 사퇴까지 선언했다. 결국 7월 15일, KBO는 김호인을 심판위원장에서 경질시키며 허운을 1군 심판으로 복귀시켰다. 이에 김호인은 사태해결을 위해 하일성 총장과 이상재 운영본부장에게 신상우 총재 면담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어쨌든 첫 프로선수 출신 심판위원장이 된 김호인은 사상 최초로 시즌 중 경질된 심판위원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허운의 1군 복귀가 결정되자 비 허운측 심판들은 김호인 심판위원장 경질 반대와 허운의 1군 복귀를 철회해달라고 KBO에 결의문을 보냈다. 1군에 복귀하게 된 허운 또한 자신과 뜻을 같이한 심판들에게만 징계가 있었다고 불만을 표하면서, 심판진 2/3가 자신을 따른다는 등의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말을 하며 KBO에 심판위원회 인사권을 요구했다. 이러한 허운의 돌출행동으로 KBO는 불과 3일만에 허운을 다시 2군으로 강등시켰다. 또한 허운에게 동정적이었던 여론도 등을 돌렸다. 이에 7월 19일, 허운은 KBO의 오락가락하는 행정에 불만을 표하며 심판위원 25명과 함께 보이콧을 선언했다. 앞서 2006년 하일성 총장이 심판진 인사 관여하려 했으며, 이번 사건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김호인과 허운 자신에게 서로에게 득만 되는 약속만 하면서 갈등만 더 크게 만들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허운 자신이 2군으로 강등된 후 자신과 2군 심판들 사이 관계를 이간질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KBO는 7월 20일 사건 무마를 위해 김호인과 허운 모두를 심판위원회에서 퇴출했다. 이에 허운측 심판들은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허운은 하루만에 강경노선에서 전환해 팬들을 생각해야 한다며 후배 심판들을 설득해 20일 오후 모두 복귀시켰다. 이로써 초유의 심판진 보이콧까지 벌어질 뻔 했던 심판들간 파벌 싸움은 끝났다.
이후로는 파벌과 관련된 잡음이 사라졌지만 파벌을 타파하기 위해 젊은 심판 유망주들도 뽑고 있다. 하지만 KBO의 삽질은 끝난 게 아니었다. 2008년 4월, 여론이 잠잠해지자 신상우 총재는 김호인과 허운을 2군 경기운영위원으로 임명했다. KBO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상우 총재는 둘을 경기운영위원으로 임명해 차후 심판위원으로 복귀시키려 했다. 자른 것도 내가 잘랐으니 복귀시키는 것도 내 마음대로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며 김호인과 허운의 심판계 복귀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경기운영위원으로 남아있다.
시간이 지난 후 허운은 매스컴 때문에 서로 오해가 생겨 감정이 상했다고 회고했다. 김호인과 허운은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원년 멤버로, 나이는 김호인이 3살 더 많지만 1987년 똑같이 심판위원이 되었다. 실제 김호인과는 형동생하는 사이로, 집도 가까운데 살아 이따금 같이 밥도 먹고 서로 아이들끼리 왕래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또한 허운은 매스컴 때문에 그렇지, 실제 당시 심판들 사이에서 파벌 따위는 없었다고 말했다.# 1군 복귀했을 때 심판의 2/3가 자신을 따른다고 했던 말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7.6 2008년 원현식 20경기 출장 정지
2008년 5월 31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중 6회초 SK 공격 때 2사 1,2루에서 박정권이 친 내야 땅볼을 치자 2루수 신명철이 이를 잡기 위해 뛰다가 1루주자였던 박재홍과 충돌했다. 원현식 2루심은 인플레이 상황으로 판단해 세이프 판정을 했다. 이에 선동열 삼성 감독 나와 항의하자, 4심 합의 끝에 박재홍의 수비방해로 번복되면서 공수교대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성근 SK 감독이 나와 한번 내려진 판정을 왜 번복하느냐며 항의하면서 선수들을 철수시켰다. 결국 6회말은 8분 후에야 진행되었다.
경기 후 원현식 2루심에게 오심으로 인한 판정 번복과 선수단 철수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을 물어 전례 없는 20경기 출장 정지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이전까지 4심 합의를 통한 판정 번복도 잘 없었기 때문이었다.
7.7 2009년 김성철 10경기 출장 정지
2009년 5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7회초 이종범의 홈 득점을 김성철 주심은 아웃으로 판정했다. 5월 2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8회말 1사 1,3루에서 3루 주자 나주환이 홈 베이스를 스치듯 태그했지만 또 김성철 주심은 베이스에 닿지 않았다며 아웃 판정을 내렸다.
두 번 모두 TV화면에서 세이프로 나오면서, 5월 24일 김성철 주심에게 잇따른 오심에 대한 책임을 물어 10경기 출장 정지 제재가 내려졌다.
7.8 2009년 민영기 1군 경기 출장 정지
2009년 9월 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10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이종욱이 투수 땅볼을 치며 브래드 토마스가 공을 잡아 2루수 이여상에게 던졌는데, 이여상은 공을 잡았다 놓쳤다. 2루 베이스를 찍고난 후에 공을 놓쳤음에도 민영기 2루심은 아웃 판정을 내리지 않아 김인식 한화 감독이 항의했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한화는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역전패했다.
게다가 앞서 전날인 9월 1일 경기에서도 민영기는 3루심으로 1회초에 오심을 저질렀다. 결국 9월 3일 이틀 연속 오심을 저지른 책임을 물어 1군 잔여경기 출장 정지의 제재가 내려졌다. 민영기 심판은 2010년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 시즌 후 면직되었다.
7.9 2011년 보크 오심
2011년 6월 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상황에서 3루 주자 정원석이 홈스틸을 감행했는데 홈에서 정원석이 아웃되었다. 실은 아웃도 오심이었지만 문제는 투수 임찬규가 마운드에서 투구를 한 게 아니라 송구를 했기에, 보크를 범한 것. 한대화 감독이 나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경기 후 다음날인 6월 9일에 이날 심판이었던 박근영 주심, 이민호 1루심, 강광회 2루심, 오훈규 3루심, 김병주 대기심 등 심판 5명 모두에게 보크를 인지 못한 책임을 물어 9경기 출장 정지가 내려졌다.
7.10 2013년 박근영 2군 강등
2013년 6월 1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만루에서 박용택이 3루수 땅볼을 치자 김민성이 2루로 공을 던졌고 2루수 서건창이 1루주자 오지환보다 2루 베이스를 먼저 밟으면서 넥센 야수들은 이닝이 끝났다고 생각해 덕아웃으로 향했다. 그런데 박근영 2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없이도 서건창이 먼저 2루 베이스를 밟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딱히 박근영 2루심의 시야를 가릴 요소도 없었다. 이에 넥센 투수 브랜든 나이트는 평소와 달리 흥분하며 항의해 포수 허도환이 나와 말릴 정도였다. 염경엽 넥센 감독과 이강철 수석코치가 나와 항의했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5회말은 속행되었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이트는 밀어내기 볼넷과 만루홈런을 맞는 등 결국 8점을 내주며 무너져버렸다.
경기 후 다음날인 6월 16일에 심판위원회 자체 징계로 박근영 2루심을 2군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KBO는 자체 징계만으로 충분했다며 추가 징계를 내리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7.11 2014년 오심 후 심판 자진 교체
2014년 4월 29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SK가 기아 선발투수인 한승혁을 상대로 4점을 낸 이후 2회 무사 1, 3루 상황에서 추가득점 기회를 맞이 하였다. 이때 1루 주자이던 조동화가 도루를 시도하였고 2루수 안치홍은 포수 차일목의 송구를 받아 조동화의 허벅지에 터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광남 2루심은 이에 대해 세이프 선언을 하였고 선동열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항의를 해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가봐도 조동화가 늦어 아웃이 선언되었어야 할 상황#이후 나광남 2루심은 아프다는 이유로 3회 초 대기심과 자진 교체했다. 그러나 대기심이 박근영인게 함정.
- ↑ KBO 가이드북에 따른 것인데, 이 가이드북은 매년 3월쯤에 제작된다. 그런데 KBO 심판은 매년 4월 초에 정식 채용되기에 KBO 가이드북과 달리 신규 심판이 더 있을 수도 있다.
- ↑ 이 경우 아마야구 심판 경력을 하다가 채용된 경우가 많다.
- ↑ 참고로 175cm 이상이어야 한다.
- ↑ 단 일반과정을 수료해도 수료증은 나온다.
- ↑ 미국의 경우엔 심판에에 많은 재량을 부여해 룰북이 50페이지 정도로 얇지만, 한국은 플레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정한 일본의 규칙을 많이 참조해 룰북 자체가 두껍다.
- ↑ 원칙적으로 2루심은 그 다음 경기 주심을 보고, 주심은 그 다음 경기에는 대기심으로 빠진다.
- ↑ 김광철 위원장 이후 위원장은 모두 프로심판 출신이다.
- ↑ 이 때만 직함이 심판실장이었다.
- ↑ 심판 유니폼 팔 소매에 번호가 붙어있다.
- ↑ 문선재의 작은아버지.
숙부라이크 - ↑ 故 최동원의 동생.
- ↑ 강진성의 아버지.
- ↑ 차영화 전 KIA 코치의 아들.
- ↑ 프로야구 초창기 심판이기도 했다.
- ↑ 경기운영위원의 업무 중 경기 감독 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심판의 관리와 감독이다.
- ↑ 참고로 한국에서 심판 장비는 수요가 없다보니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아 아마야구나 사회인야구 등 심판들은 서로 장비를 빌리거나 대여해서 쓴다고 한다.
- ↑ 다만 2014 시즌에 한정하여 휴식일이 생겼다. 2015시즌부터는 kt 위즈의 리그 참여에 따라 매일 5경기가 열리므로 심판도 5개조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에 대비해 한 시즌 앞서 5개조로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4 시즌에 심판 자질 문제가 유독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 중에는, 심판조가 늘면서 경험이 부족한 심판이 한꺼번에 1군으로 올라왔다는 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 단순히 욕설글을 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심판들 집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전화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