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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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양용모(梁龍模 / yong-mo Yang)
생년월일1967년 12월 20일
출신지충청남도 서산시
학력언암초-태안중-북일고-동아대
포지션포수, 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1년 빙그레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빙그레 이글스(1991~1993)
삼성 라이온즈(1996~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9)
SK 와이번스(2000~2002)
지도자 경력삼성 라이온즈 2군 배터리코치(2003~2004)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2005)
LG 트윈스 2군 배터리코치(2006)
롯데 자이언츠 2군 배터리코치(2008~2011)
롯데 자이언츠 육성군 배터리코치(2013)
롯데 자이언츠 1군 배터리코치(2014)
롯데 자이언츠 드림팀(3군) 수석코치 겸 배터리코치(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1997~1998)
김한수(1996)양용모(1997~1998)정회열(1999)
SK 와이번스 등번호 26번(2000~2002)
팀 창단양용모(2000~2002)박경완(2003~2013)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최태원
(2000)
양용모
(2001)
박계원
(2002)

1 소개

전 야구 선수. 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눈에 띄게 활약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발이 빠른 것에 착안해 외야수를 본 적도 있다. 도루 개수도 제법 많은 편.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멀티 포지션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 준 선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1993 시즌 빙그레 이글스가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선수층이 많이 얕았는데, 이 때 양용모가 포수와 외야수, 1루수를 종횡무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도중에 포지션을 변경한 경우도 잦았으며 실제로 이 때 양용모의 장비 가방엔 포수 미트, 내야수 글러브, 외야수 글러브 등 글러브가 종류별로 가득해 글러브 수집가라는 우스개를 듣기도 했다. 해태 타이거즈에서도 정회열이 그즈음 포수로 나오면서 간간히 우익수를 봤지만, 포수가 멀티 포지션을 하면서 도루도 심심치 않게 하는 건 KBO 역사상 독보적인 케이스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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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시절[1] (출처 :MK스포츠)삼성 시절 (출처 : 포토로)쌍방울 시절 (출처 : 포토로)

1991년 빙그레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1993년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든 이정훈 대신 진상봉과 중견수를 번갈아 맡은 걸 빼면 주로 백업으로 나왔고 눈에 띄는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1993년 시즌 후 빙그레를 퇴단해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1996년 입단 테스트를 받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영진한테 밀려서 백업으로 출장하다 1998년 말 쌍방울 레이더스트레이드되었다.(현금 20억+양용모+이계성김기태+김현욱) 2001년에는 SK 와이번스에서 주장을 맡았고 2002 시즌 후 은퇴했는데 1993년 시즌 후, 빙그레 퇴단 후 후신 한화를 포함하여 고향 팀에 선수, 코치로 더 이상 돌아오지 못했다. 현실은 타율이 .240을 못넘으면 수비가 아무리 좋고 발이 빨라도 쉴드를 쳐주기가 어려운 법인데, 그 김영진과 번갈아 출장했다면, 포수로서의 능력은 부족했다고 보는게 옳을듯..

3 지도자 시절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삼성에서, 2006년에는 LG에서 배터리코치를 했고, 2008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2군 배터리코치를 맡았는데 2011 시즌 후 재계약 포기 통지를 받아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2013 시즌 롯데 자이언츠 육성군 배터리코치로 복귀했고 시즌 후 1군 배터리코치로 올라왔다.

코치로서의 능력은 여러모로 애매한데, 양상문 LG 감독이 롯데에서 2군 감독을 하던 시절 그의 인맥으로 데려온 인물이 양용모와 이강돈.[2] 하지만, 이 시절 1군 배터리코치인 한문연 코치와 더불어 팬들은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표했다. 삼성, 롯데 시절 실적이 없는데다가, 현역시절 수비가 김영진급인지라, 포수가 아니라 외야수 알바를 뛰기도 했었고[3]김영진의 백업 포수로 뛰던 양용모의 능력에 어느정도 신뢰가 안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장성우 등의 포수 유망주 성장에 공헌이 아예없지는 않은 듯하다.

2016년에는 3군 수석코치를 맡았으나, 시즌 후 롯데를 떠나 고향팀이자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의 배터리 코치로 가게 된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1빙그레 이글스5777.24719300572
199293194.2685263430368
1993113394.215751612263515
1994군복무(현역병)
1995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6삼성 라이온즈1327.1113100001
199767179.25746603262314
199870143.224325211696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9쌍방울 레이더스59178.24243714232512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000SK 와이번스97212.26957100532317
2001103192.23445901193012
200274107.2152380110146
통산7461658.2383957172118721083
  1. 이강돈 오른쪽에 있는 선수가 양용모 선수.
  2. 이강돈 코치 역시 1999년부터 줄곧 한화에서 2군 타격 코치, 1군 외야 수비 코치 등을 거쳤으나, 성과가 딱히 없어서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롯데에서 해임되었고, 빙그레 시절 후배인 이정훈이 한화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북일고 감독에 선임됐다.
  3. 물론 외야 수비도 잼병이어서 돌글러브라 봐도 무방했다. 더군다나 당시 삼성의 외야가 이종두 등의 노장을 은퇴시키거나 이적시키던 상황인지라,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던 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