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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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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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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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삼성의 코치!

삼성 라이온즈 No.91
황두성(黃斗聖 / Doo-sung Hwang)
생년월일1976년 11월 16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길동초 - 배명중 - 배명고 - 성균관대(중퇴)
포지션포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7년 2차 3순위(전체 20순위, 삼성)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7 ~ 1998)
해태 타이거즈(1999 ~ 2000)
현대 유니콘스(2001 ~ 2007)
넥센 히어로즈(2008 ~ 2011)
지도자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2012 ~ 현재)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3번
김성현(1989~1996)황두성(1997)스캇 베이커(199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2번
오봉옥(1992~1994)황두성(1998)이성훈(1999~2001)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52번
이경복(1989~1998)황두성(1999~2000)KIA 타이거즈 인수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1번
조웅천(1990~2000)황두성(2001~2007)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1번
팀 창단황두성(2008~2011)승부조작범(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1번
김종화(2010~2011)황두성(2012~현재)
투수 왕국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세이브) 투수

1 소개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로 활약했던 선수이자 현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3군) 투수코치. 현역 시절 별명은 "황장군".

입단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뒤늦게 전성기를 맞이해 묵직한 구위로 이름을 날렸다. 현대 유니콘스의 몰락 속에서 팀을 지켜 냈던 마당쇠였으며, 팀에 대한 본인의 희생정신이 컸다. 투수로서 가치가 부각된 2005년부터 시즌 내내 보직이 고정된 적이 없었다.

구속에 비해 특히나 무거운 포심 패스트볼이 일품이었다. 포심을 던질 때 중지와 검지를 붙여 던졌으며, 덕분에 포심이 컷 패스트볼과 유사한 궤적을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제구력은 떨어지는 편이었다는 평. 스태미너도 좋아서 선발, 계투 가리지 않고 기용이 가능했다.

2 선수 시절

성대 중퇴 후 1997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1] 본디 포수 출신이나 시력이 나빠 볼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어깨가 강해 당시 장호연 코치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했다.[2] 하지만 1군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1998년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황두성, 곽채진, 양준혁, 30억원임창용) 그런데 사실 황두성은 트레이드 카드가 아니었는데, 해태 타이거즈 실무자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아 그 밥 잘먹는 투수"라고 해서 트레이드됐단다.[3] 사실 해태 타이거즈 실무자가 당시에 원했던 그 밥 잘 먹는다는 투수는 정현욱이었다고.[4]트레이드 당시 기사

그 후 1999년에 처음으로 1군으로 올라오지만, 해태 타이거즈에서 이렇다 할 활약은 보이지 못한 채 2000년 시즌을 마치고 방출당했다.해태 선수 시절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지만, 당시 탄탄한 투수진에 밀려 2004년까지 2군 생활을 해야 했다.

3 투수혹사 대왕 김시진의 피해자

2005년 황두성은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심정수박진만이 FA 자격을 얻은 후 삼성에 이적하며 현대의 전력은 무너져 가고 있었고, 에이스 정민태와 클로저 조용준 또한 부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피칭 내용을 보여주는 등 투수진도 그야말로 안습이 된 상태였다. 황두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1군에서 마당쇠로 뛰면서 4월 24일 데뷔 첫 승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생애 첫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10승 투수가 되었다. 2005년 기록은 1군 60경기 출장[5], 방어율 3.29, 11승 9패, 128⅔이닝[6], 137K. 그 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엄청난 혹사를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김시진 투수코치는 불펜이 120이닝 던지는게 뭐가 대수냐며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이런 활약에 2006 시즌에 주전 마무리로 내정이 되었다. 하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를 박준수에게 넘겼고,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무려 1이닝 2보크라는 프로야구 역사상 3번밖에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2007 시즌에는 미키 캘러웨이의 이탈로 투수진이 다 무너진 상황에 선발, 중간, 마무리 가리지 않고 나오는 믿을맨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한 경력은 적지만[7], 의외로 국가대표 지역 예선이나 야구 월드컵 등이 열리면 거의 항상 발탁되었다. 특히 對 대만전의 활약으로 인해 대만의 악몽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팀이 우리 히어로즈로 바뀐 후로도 투수진의 구멍을 메꾸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2008년 황-장-마 트리오 결성시 장원삼마일영과 같이 황두성도 처음엔 풀타임 선발이었고, 평균자책점 순위에 올랐으나, 이광환 감독의 지시로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고, 그 후 다카쓰 신고가 오면서 다시 선발을 하였다. 2009년에는 주전 마무리로서 9세이브를 기록하다가 후반기에는 선발로 투입되어 시즌 남은 기간 동안 2점대 방어율로 1선발급 투구를 보여주었다. 고정된 선발로 뛰었다면 전성기 동안 10승 투수로서 개인기록이 화려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항상 팀이 필요한 자리라면 자진해서 그때마다 보직을 변경하였다.

이현승장원삼이 모두 팔려가 신진선수들로만 구성된 2010년 넥센 히어로즈 투수진의 핵심으로 부상할 것을 기대했으나 스프링캠프 도중 부상으로 2010 시즌 내내 2군에 머물렀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구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나이로 30살에야 전성기가 찾아왔고, 그 후 부진했던 2006년을 제외하면 정해진 포지션 없이 막 굴리며 혹사를 당했으니... 이미 2009년부터 구속 저하가 찾아왔던 상태였다.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2011년 11월 25일, 박준수 등 11명의 선수와 함께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되었다. 구속이 지나치게 낮아 사실상 재기 불능으로 평가받는 상황인데다 막판에는 무릎 연골을 다쳤다. 나이도 많아 그대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되었고, 예상대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지도자 시절

이후 2011년 12월 13일,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 제의를 받아 잔류군 재활코치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본인은 잘 풀려서 만족해한다고.

후일 공개된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황두성은 김시진 감독, 넥센 히어로즈 구단에 대해 상당한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있던 도중에 받은 전화로 구단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5 여담

특이사항으로 쌍둥이 형이 있으며, 가끔 동생의 경기를 보러 온 덕분에 경기장 관중석에 가끔 황두성이 앉아 있는 줄 알고 착각했던 팬들도 있었다. 쌍둥이라 신체 조건도 거의 똑같을 텐데 같이 투수를 했더라면...

참고로 별명은 "황장군"이다. 현대 팬이었던 넥센 팬 사이에서는 김수경과 함께 최고의 인기남.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세이브 투수이기도 하다.

강속구 투수가 되기 위해 원포인트 강의를 구술했는데, 사회인 야구에서는 꽤 인기있는 지침서인듯 하다.원포인트 레슨

상술했듯이 평소에는 안경을 쓰고다니는데,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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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7삼성 라이온즈1군 기록 없음
1998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9해태 타이거즈48.100003.24783
200033.200007.36583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1현대 유니콘스11.000000.00200
200246.000003.00434
200313.000003.00333
200435.1000013.501227
200560128.2119173.2910647137
(3위)
20064771.144053.91554476
200746139.279134.4512152142
(3위)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8우리 히어로즈34104.168814.05884777
2009히어로즈4092.183903.51763779
통산243563⅔363319163.94479251531
  1. 사실 가장 가고 싶었던 팀은 OB 베어스였다고 한다. 이유는 배명고 선배인 김동주 때문에.....
  2. 실제로 경기할 때 외에는 안경을 끼고 다닌다.
  3. '키 크고 공 빠른 놈'이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4. 해태 측에서는 받아 보니 정현욱이 아니여서 무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미 유니폼도 준비된 데다가 입단식도 이미 끝내서 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5. 선발로는 5번밖에 출장하지 않았다. 그는 중간계투였다!!!!
  6. 126경기를 치룬 시즌이라 규정 이닝을 넘겼다!
  7. 2009 WBC에 승선하였으나, 막판에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지며 임태훈으로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