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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주인공. 배우는 故 김무생.
왼쪽 위의 '개국 10주년'은 물론 1403년을 말하는 게 아니다
1 개요
조선의 초대 국왕. 역사 속에서 최영이 주도한 제2차 요동정벌을 위해 위화도에 주군하고 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다.
이후 우왕의 진군을 재촉하는 어명을 받고도 이를 전달한 내시부사 김완을 잡아들이고는, 위화도 회군을 진행한다. 결국 최영을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하고 결국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어느 정도 고뇌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처음부터 단호하게 새 왕조 창업의 야심을 품은 인물로서 등장하며 권력을 잡고 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왕을 겁박하는 권신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당장 1화의 위화도 회군 신에서 새 왕조의 기회라며 결심을 다잡는 장면이 있고 이후 공양왕을 옹립할 때는 왕이 되기 싫다며 애원하는 공양왕을 직접 찾아가 반쯤 협박해서 왕위에 앉게 하고 정몽주 사후 동맹을 위해 찾아온 공양왕에게 나 없어도 잘하지 않았냐며 비꼰다. 위화도 회군 직후 최영을 체포할 때에는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보여주었다. 참모이자 지우인 정도전에게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을 보여주는 대인배형 정치가이며 심지어 정적이 되어버린 정몽주조차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계략을 써가며 포섭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후처인 신덕왕후를 매우 총애하다보니 그 소생의 자식들도 매우 총애하지만 본처 신의왕후 소생의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다소 엄하게 대하는 면이 있었는데 이런 태조의 태도로 인해 신의왕후 자식들에게 반감을 산다. 특히 막내 방석을 세자로 정하니 아들들이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는 뒷날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게 된다.
즉위 이후로 옛 고려의 인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받아들이려는 포용력을 보인다. 그 때문에 정도전이 두문동의 유자들을 학살한 일을 두고 분노했을 정도.
신덕왕후의 사후 상심이 커 무리하다가 병상에 눕고, 이것이 이방원파와 정도전파의 대결의 신호탄이 되고 만다. 이방원의 반란 당시엔 점차 몸을 회복해가는 단계였으나 자식들과 사위, 그리고 정도전을 잃게 되어 비탄에 잠기게 된다. 결국 절망 끝에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되고, 그나마 남은 경순공주마저 속세에 뜻을 잃고 출가하게 되자 더욱 절망하게 된다. 이후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이 찾아오자 맹렬한 분노를 드러낸다. 그렇게 계속 이방원과 갈등을 빚는데 이 때 문안을 온 이방원의 머리에 벼루를 투척해서 이 못된놈, 금수 가튼노오오옴! 팍! 으억이방원의 정신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낸다든지, 이방원의 아내 민씨가 다과를 만들어오자 발로 걷어 차버리고 다시는 내 앞에 띄지 말라고 일갈한 뒤 가버린다든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면서 정종에게 이방원을 도모하도록 부추긴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때 민 씨가 시아버지의 박대를 견디지 못하고 분함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동생 이지란이 방원에게 협력한 사실을 알고 분노하지만 이지란이 그것이 이성계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란 사실을 알고 자책하다가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가자 더욱 상심하게 된다.
그 뒤 이방원이 즉위하자 격노하여 동북 면으로 가버린다. 거기서 전부터 이방원파 타도를 위해 암약해오며 세력을 키우던 조사의와 만나고, 태종이 보내는 차사들을 처음에 온 박석명만 살려 보내주고 나머지는 죄다 죽여 버리며 격렬한 거부감을 표시한다.[1] 어미 소와 송아지를 끌고 소장수 행세를 하며 찾아온 박순만은 오랫동안 자신을 모신 그 조차 방원의 명을 받아 차사로 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부모자식의 정을 내세운 그의 설득으로 마음이 살짝 흔들려 그냥 쫓아내 버린다.[2] 끝내는 조사의와 함께 난을 일으키고, 태종이 친정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발견하는 즉시 참해버리라 명한다.
그러나 관군에게 크게 진 이후 분노를 곱씹다가 무학 대사의 설득으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리 준비를 하여 마지막으로 이방원을 활로 쏴 죽이려 하였고 역시 술자리에서 이방원이 자신에게 잔을 올리는 즉시 철퇴로 내리치려 하였으나 모두 하륜의 기지로 실패하자[3], 그 전까지의 연이은 설득들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있어서인지 모든 걸 체념하고 이방원을 왕으로 인정한다. 이후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에서 주로 기거하다가 환궁, 아들과 화해하며[4][5] 자신과 기질이 비슷한 세자 양녕을 총애하며 손자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아들 태종과 며느리 원경왕후, 그리고 민씨 형제들의 갈등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시끄러워 질 것이라 태종에게 미리 얘기를 듣지만 딱히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묵과하고 양녕을 걱정한다.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신덕왕후, 이지란, 정도전, 무학 대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다 먼저 떠나버려 외로움에 사무친 노년을 보여준다. 때문에 성석린 같은 국초부터 함께한 구신 등이 일이 있어 방문하면 공무 차 온 것임을 알면서도 굉장히 반긴다.
이후 노환으로 인해 아들 태종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화일로로 치달아 죽음을 앞두게 된다.
죽기 전 그토록 그리던 신덕왕후와 죽은 아들들과 정도전을 만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죽인 자들의 원념도 목도하여 섬뜩함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난다.[6] 그리고 그 꿈에서 자신도 그가 미워하던 태종과 똑같은 길을 걸어왔다는걸 느꼈는지 아들 태종을 보고 더 이상 피를 보지 말라고, 그 업이 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끝으로 눈을 감는다.
2 캐릭터 평가
용의 눈물의 완성도와 더불어 김무생의 연기력에 힘입어 유동근의 이성계가 나타날 때까지 근 20년간 이성계하면 김무생이 떠오르게 하는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도 김무생의 이성계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고. 사실 김무생은 1983년에도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이성계 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유동근이 이성계 역을 맡기까지 30년 넘게 김무생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던 것.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방원에 대해 고집불통인 모습을 보인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사실 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저지른 일들을 보면 정상적인 반응이긴 한데, 막상 방원이 이성계 앞에선 상당히 저자세로 공손하게 나오고 그에게 인정받는 것을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쪽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안 돼!!"로 정리되는 반응 일변도이기 때문에 이방원에게 감정이입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러나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성계에게 감정이입을 했으며 젊은 시청자들 중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잃고 통곡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모습에 동감하는 비율이 상당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죄를 달게 받을 것이라고 용서를 구하지만 귀여워하던 막내아들들을 죽이고 딸을 청상과부로 만든[7] 이방원에 대해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면서 이러한 이성계의 노여움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편.
이런 모습 덕분에 용의 눈물의 종방 이후 방영된 연예대상 프로그램에선 고집이 센 아이는 엉덩이가 예쁘다는 속설을 근거로 엉덩이가 예쁠 것 같은 캐릭터 1위로 등극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임종 직전의 꿈에 나타난 원혼들의 모습은 아들 이방원으로 인한 숱한 마음의 상처 속에서 말년을 보낸 이성계 또한 그렇게 원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통렬한 각인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에 태종 이방원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마지막 순간 스스로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듯. 자신처럼 피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은 자신 이상으로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걷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이 담긴 마지막 연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용의 눈물이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었기에 본래 이방원과 함께 2대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용의 눈물이 인기에 힘입어 태종의 치세와 죽음까지 방영이 연장되자 조사의의 난 이후로는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 이로 인해 용의 눈물 진 주인공은 이방원이 된다.
3 기타
왠지 모르게 태종을 방원이라고 부른다. 1차 왕자의 난 후 태종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듣고 아니 방원이가!!!라며 멘붕하는데 사실 이때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이니 이름을 부르는 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이성계는 이방원의 아버지가 아닌가. 다만 그 방원이가 왕이 된 후에는, 함흥차사를 재현한 에피소드에선 차사로 온 지신사 박석명에게 하, 방원이 놈이 보내서 왔느냐?라고 묻기도 한다. 차사는 방원이라면... 성상의 존함을 마구 부르시니 신하된 자로서 감당키 어렵사옵니다...라며 멘붕한다.(...) 왕조 시대에는 임금의 이름만큼 귀한 게 없어서 아예 한자를 봉인할 정도였으니 차사가 멘붕하는 것도 당연한 듯. 결국 이방원의 왕위를 인정한 후에는 주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만 태종실록을 보면 태종이 즉위한 뒤에 태상왕 태조가 태종을 '주상'이라고도 부르지만 사가에 있을 때처럼 그냥 '너(汝)'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쪽이 맞는 묘사일지도 모른다.
사족으로 마지막으로 태종 이방원을 죽이기 위해 활과 철퇴를 준비하다가 철퇴를 한 번 허공에 휘두르는 장면이 있는데, 뒷날 공개된 NG 장면에 의하면 이 때 철퇴 사슬이 끊어져 사슬만 달랑 남게 되었다.(...) 김무생 표 이성계의 몇 안 되는 개그적인 모습.[8]- ↑ 정확히 말하면 박순 다음, 마지막으로 차사로 갔던 성석린도 살았다. 다만 성석린이 갔을 때는 조사의 세력이 막 거병하기 직전으로 함흥본궁에 반란군이 득실거리던 시점이라 겁에 질린 성석린은 스스로 차사임을 부정한 채,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돌아와야 했다.
- ↑ 그러나 박순은 얼마 못 가 조사의에 의해 살해당한다.
- ↑ 하륜이 불상사가 생길 걸 대비해 태조을 맞는 자리에 큰 기둥을 세워놔 태종이 화살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술자리에선 태종이 소매 속으로 손을 넣는 걸 보고 위험하다 느껴 아들이긴 해도 왕인 태종이 직접 술을 올리는 건 예법이 맞지 않다며 내관을 시켜 술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이때 분함를 이기지 못하고 수랏상을 철퇴로 내려치고 철퇴를 쥔 채 분노에 몸을 떨다가 "천운이로고..."라며 탄식하는 태조의 모습과 이를 보고 동요하거나 피하시라며 고함을 지르는 신료들에게 "닥쳐라!" 라며 일갈하는 태종의 모습은 참으로 명장면.해당장면.
- ↑ 이것이 용의 눈물에서도 레전드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인 태종 댄스(?)이다. 태종이 곤룡포를 입고 태조 앞에서 눈물콧물을 쏟으며 아바마마 소자를 보시옵소서, 소자가 춤을 잘 추옵니다!!!! 하며 춤사위를 펼치면 태조도 주사아아아아앙!!!! 하며 태종을 만류하는데 두 연기 거장의 감정선 폭발이 아주 진국인 장면.
- ↑ 위의 각주가 묘사하는 장면이다. 춤을 추기 전에 태종은 태조의 앙상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많이 아위셨다"고 하는데, 한때 너무나 강력한 벽으로 존재했던 태조의 힘없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위가 얼마나 그를 가슴 아프게 했는지 뉘우치고 사죄의 의미로 국왕의 체면 따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춘다. 춤을 마친 태종이 어린아이처럼 태조에게 기어가 안겨 오열하고, 그 태종을 말없이 토닥여주며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다.
- ↑ 정몽주는 이성계를 반기진 않지만 비웃거나 원한을 드러내는 것도 아닌 착잡한 표정으로 이성계 앞에 나타난다.
- ↑ 딸은 아예 비구니가 되어 남은 평생을 보냈다.
- ↑ 유동근표 이방원은 의외로 애드립성 조크가 풍부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