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용의 눈물/등장인물, 태종(조선)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진 주인공. 배우는 유동근.
목차
1 왕위에 이르기까지
첫 등장은 아버지 이성계가 요동 정벌 강행과 회군 사이에서 고민하는 와중에 아버지의 지인인 정도전(용의 눈물)과의 장기 한판을 두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참 사이 좋게 장기를 두는 와중에 정도전이 장기판 상황을 빗대어 아버지인 이성계의 상황을 말해주며 아버지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할것이라는걸 말해주고 이를 들은후 바로 가족들을 고향인 함흥으로 피신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이후 위화도 회군을 통해 아버지 이성계가 실권을 쥐게 되는 가운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친어머니 신의왕후를 잃기도 하지만 실제 역사와 같이 아버지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정몽주와 마주한 자리에서 그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를 통해 서로의 속내를 확인하고 그를 암살함으로써 조선의 개국에 큰 공헌을 한다. 대신 그 자신은 정몽주를 포섭하려던 이성계의 큰 분노를 사서 얼마 동안 숨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부터 아버지와의 길고 긴 갈등의 첫 단추를 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엉뚱하게도 개국에 공이 없는 이복동생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분노하며 아버지와 신덕왕후에게 반발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에 자신의 휘하와 종친들을 규합, 정도전과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다. 정도전이라는 강적과 대립하면서도 왕실의 위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답게 무분별한 흑색선전이나 저급한 수단은 지양했다. 아내인 민씨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내관을 매수하고 측근 조영무를 부려서 방석의 세자빈 유씨가 내시 이만과 통정한 일을 잡아내 궁을 뒤집어 놓자 크게 역정을 낸다. "이 이방원이가 제수씨가 바람난 일을 트집 잡아 세자가 되란 말이오!"라는 호통이 절창. 대권에 대한 야심은 버리지 않고 있으나 왕실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스캔들을 기회로 삼고 싶지는 않은 면모를 드러낸다. 사실 바람에 관대한 성격 때문이다 그래도 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은 가하다 여겼는지 아버지 이성계를 찾아가 부인도 건사하지 못하는 방석에겐 세자의 자격이 없다고 간언하지만, 도리어 이게 다 네 수작이란 걸 모를 것 같으냐는 역정만 듣고 만다. 본래 이 일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나, 사태를 적발한 조영무부터가 이방원의 충복이라 오해를 피할 길이 없었다.
실제로 신덕왕후며 정도전까지 모두 이 일의 배후에 이방원이 있을 것이라 지목했는데, 이방원 본인이 움직이지 않았다 뿐 이방원 휘하 세력이 단단히 작정하고 이방원을 위해 벌인 일이니만큼 오히려 당연한 오해라고 하겠다(...). 이방원은 나름대로 세자 자리에 사심이 없다고 구라를 치며 둘째형 방과를 대신 세자로 앉히시라고 주청을 하지만 격노한 이성계는 오히려 세자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고 이방원의 궁궐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후 일을 주도한 부인이며 조영무에게 사람을 뭘 로 보고 이런 일을 꾸몄느냐고 제대로 역정을 낸다.[1]
이후 명나라의 사신으로 파견되거나[2] 사병혁파 등으로 곤경을 겪으면서도[3] 착실하게 세력을 키워가며, 이숙번과도 만나 그의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 보이는 것을 통해 의형제 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신덕왕후와의 갈등도 심해져 사냥한 노루를 성까지 짊어지고 와 아바마마께서 여색에 빠지시어 몸이 쇠하셨다며 이걸 고아 드리라고 상 앞에 던져놓는 패드립을 저지르기에 이른다.[4] 그러나 자신의 압박이나 방석의 비행으로 마음의 병이 심해진 신덕왕후의 임종이 임박해오자,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가지 말라는 원경왕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석에 찾아가 묵묵히 유언을 듣는다. 물론 훗날 가차 없이 무덤을 파버렸지만
신덕왕후 사후 상심한 이성계가 무리하다가 병중에 들자, 정도전 등이 자신을 비롯한 신의왕후 소생들을 암살하려는 타이밍에 반란을 일으켜 역습을 가해 이복동생들과 정도전의 당여들을 죽이고 사실상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이래저래 한이 많이 쌓였던 정도전에게 왜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냐,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이제 그만 쉬게 해달라는 정도전의 거부에 그를 죽일 것을 명하며 그 최후를 씁쓸하게 지켜본다.[5] 이방석의 경우 신병을 확보한 그 즉시 살해했지만 이방번과 이제는 일단 그냥 놓아줬다. 허나 이방간이 그들을 죽이려 쫓아가는 걸 보고 멈추라는 듯, 한 번 부르기만 했을 뿐 결국 그냥 묵과한다.
이 모든 참극에 절망한 이성계가 물러나자 둘째 형 이방과를 왕에 세웠다. 이에 이지란 등이 그럴 것 없이 그냥 왕위에 앉으라고 재촉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정당하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는다. 반란 이후 아버지와 만난 자리에서 벼루를 맞고 물러나는 와중에서도 결코 예의를 잃지 않았고, 강렬하게 거부당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효도를 드리려 할 정도. 또한 공신들과 연회를 가진 자리에서 함께 승전의 기쁨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 집사 앞에서는 결코 기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씁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의 집사가 자신을 암살하려다 죽임을 당하자, 그 충의를 높게 사서 무덤을 마련해주는 등 실제 역사에서와 같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권력 다잡기에는 철저해서 공신들의 원망을 사면서까지 사병혁파를 진행시키는 한편, 넷째 형 이방간이 권력욕을 드러내며 은밀히 움직이는 가운데 자신을 타도하기 위해 암약하던 조사의의 부하들이 이끄는 군사들의 습격에 부상을 입고 드러눕게 되자 위중한 척하며 향후 흘러가는 동향을 살펴본 뒤 건재함을 과시해 방간 등을 반쯤 데꿀멍시키는 등의 압박을 가한다. 훗날 선위 드립으로 신하들을 갖고 놀던 노하우의 싹수가 이때부터 드러난다.
결국 이방간이 박포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자 친형을 치는 것에 주저하면서도 결국 그를 꺾어버린다. 이후 방간의 처우를 두고 갈등하다가 결국 살려주기로 한다. 물론 그 뒤로도 사병혁파에 계속 전념해 끝내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공신들 다수를 유배보내기에 이른다. 그 뒤 백성들 앞에서 현 조정의 건재와 방과와의 우애를 증명해 보이는 차원에서 함께 사냥에 나서지만, 이미 물러나기로 마음먹은 방과는 이제까지의 나약한 모습과는 다르게 방원의 의향과 상관없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2 조사의의 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결
그렇게 염원하던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답답한 궁궐 생활에 싫증을 내서 밖으로 나가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6]
한편 아버지 이성계는 이에 격노하여 동북 면으로 가버리고 그 전부터 세력을 키워오던 조사의와 결탁하게 된다. 방원은 이런 아버지를 모셔오려 연이어 차사를 파견하지만 맨 처음에 보냈던 박석명만 무사히 돌아오고 나머지는 보내는 족족 살해당한다. 본인은 이런 아버지의 반응에 서글퍼하며 난감해하고, 결국 조사의가 난을 일으키자 아버지와 직접 칼을 맞대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갈등하지만 이숙번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고 아직 어린 양녕대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정하기에 이른다. 실로 하늘을 찌를 듯 맹렬한 조사의 휘하 군대였지만 결국 내부의 배반을 유도해 진압에 성공한다. 조사의와 마주한 자리에서 자신과 아버지를 싸우게 한 것에 대한 맹렬한 분노를 드러내고, 그에 대해 냉담히 비웃는 조사의에 대해 삼족을 멸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 이성계를 모셔오게 되고, 미리 활과 철퇴로 무장하고 있던 이성계의 공격에서도 살아남아(...) 드디어 조선의 정식 국왕임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3 아버지와의 이별,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
조사의의 난 이후 수년의 터울을 두고 진행된 2부에서는 아직 별다른 일 없이 왕권강화와 국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성계와는 조선의 국왕임을 인정받는 걸 넘어 그 유명한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 일화로 드디어 화해한 상황.
그러나 후궁의 일로 원경왕후와 갈등을 빚은 뒤, 본격적으로 외척 경계의 싹수를 드러내 선위 소동으로 민무질, 민무구 형제의 꼬투리를 잡아 원경왕후의 원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권력을 박탈시킨 뒤 유배를 보내기에 이른다. 이후 장인어른 민제의 병세가 위중하자 원경왕후의 다그침에 마지못해 일시 두 형제를 유배에서 풀어 아버지의 상을 치르게는 해줬지만,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정없이 다시 유배를 보내버렸고 아예 섬에 위리 안치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전 유배지에서 두 형제에게 대우를 잘 해준 관리들마저 처벌했을 정도.
도중 아버지 이성계의 병세가 위중하자 어의를 닦달하고 어차피 용의 눈물에서 어의는 사망 플래그라 소용없다 [7]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리는 등 안간힘을 써서 쾌유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결국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가 홀로 남게 된 자리에서 "아바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라 절규하며 오열하고 만다.그 뒤 덕망 있는 스님들로 하여금 생전 이성계의 공덕을 금가루로 쓰게 한다.[8]
물론 그와는 별개로 외척 숙청에는 변함이 없어 끝내는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해버렸고 이로 인해 원경왕후로부터 짐승 및 살인마라는 소리마저 듣지만 사정없이 내쳐버린다. 그걸 로도 모자라 두 형제 밑의 두 동생마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죽여 버린다.[9]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의심하고 관련자 앞에서 슬슬 속을 긁는데 편집증에 걸린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양녕의 정신나간 행동이 이해가 안가면서도 이방원의 작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뒤 의형제와도 같은 이숙번 마저 마지막 술자리를 가진 끝에 귀양을 보내며 더욱 왕권 강화에 매진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피로 피를 씻는 권좌에 염증을 드러내 계속 탈선하는 세자 양녕 때문에 속을 썩이면서 매를 치기도 하고 무릎을 꿇으며 빌기도 하는 등 부정을 보여주지만 결국엔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황희 역시 유배형에 처한다.
그 뒤 마침내 충녕에게 진짜로 선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지만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군권은 자신이 쥐고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충녕-세종의 처가에 화살을 돌려 처가를 완벽하게 박살내버리고, 그의 장인 심온은 사사해버렸다. 이에 세종은 눈물기까지 비치며 장인인 심온의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을 부탁하지만, 이방원은 오히려 "썩 울음을 그치지 못할까!!! 임금은 눈물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는 호통[10]과 함께 세종의 태평성대를 위해 악업은 모두 자신이 지고 갈 것이라는 말로 거부한다. 도중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역시 훗날 화가 될 수 있으니 제거해야 한다는 일부 신료들의 간언을 듣지만 단호하게 거부한다. 왕후까지 정리해 버리면 결국 새 중전을 들인다는 이야기인데, 새 중전을 들이면 이전의 살육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법살인이 될 뿐이며, 새 중전 측에 딸린 외척들을 날려버리는 일을 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사람 때려잡는 일도 지긋지긋하다는 분노와 회한 어린 일갈이 일품.
4 말년, 속죄의 죽음
모처럼 돌아온 양녕의 거지같은 몰골에 성화를 내던 중, 원경왕후가 그 꼴을 보고 실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신도 등창이 시작되어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원경왕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 때문이라며 극중 처음으로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후 원경왕후의 병석으로 찾아가 용서를 빌고, 왕좌에 오른 뒤 자신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후 체념이 서린 용서를 받지만 끝내 원경왕후가 눈을 감자 끌어안고 서럽게 운다.[11]
한편 조선 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든 가운데 그의 병세도 악화되어 어의로부터 요양을 갈 것을 요청받지만, 백성들이 고통 받는 가운데 자기 몸이나 돌볼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이젠 자신도 늙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대부분 남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젠 정말 끝이 다가왔음을 절감하며 그나마 세종의 뛰어난 통치력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세종이 찾아와 재차 요양을 갈 것을 부탁하지만 역시 거부하고, 이전 내쳤던 황희의 복권을 부탁한다.
그리고 계속 조선 전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뭄에 걱정을 금치 못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은 사람인 내금위장(정 집사)에게 주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뒤 병이 깊어진 몸으로 홀로 뙤약볕 아래 기우제를 지낸다. # 와중 감정이 복받친 태종은 하늘 아래 자신이 쌓아온 악업을 피를 토하듯 늘어놓는다.
"그러하옵니다. 이 몸은 죄인이옵니다. 씻을 길 없는 많은 죄를 지었사옵니다. 형제도 죽였사옵니다. 아버님의 가슴 속에도 평생토록 한을 심었사옵니다. 계모님도 그랬사옵니다. 평생의 반려자인 대비마저도 그리했사옵니다. 하오나 미련한 이 몸은 그 길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을 했사옵니다. 그랬사옵니다. 동지들도 다 죽였사옵니다. 처남들도 죽였사옵니다. 사돈마저 죽였사옵니다! 다 죽였사옵니다! 왕실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악업인 줄 알면서도 그리했사옵니다! 그것이 악업인 줄 알면서도 그리했사옵니다.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옵소서. 이 몸, 이승을 떠나기 전에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옵소서!"
결국 기우제 끝에 드디어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진다. 이에 태종은 한을 토해내듯 "드디어 이 몸을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옵니까!" 하고 절규한다. 이윽고 세종과 중신들이 일제히 그 자리로 몰려들어 태종을 부축하고, 태종은 세종에게 꼭 성군이 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맏아들 양녕이 보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 아버지... 아... 버..."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게 된다.
5 캐릭터 평가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방원 중에서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존재. 태종 이방원의 인생을 실제 역사에 가깝게 디테일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유동근의 연기력에 힘입어 하늘을 찌를 만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용의 눈물이 지금까지도 한국 사극의 블록버스터로 남게 된 원동력들 중 하나.
원래는 이성계와 함께 2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용의 눈물이 인기에 힘입어 59회나 연장하여 그의 전 생애를 다 다루게 되면서 결국 태종의, 태종에 의한, 태종을 위한 드라마가 되어 사실상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이 드라마의 이방원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친혈육간의 정이 눈물겨운 이이자 무자비한 왕조 시대 정치가이자 군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이성계나 어머니가 같은 형제들에 대한 정이 지극하고, 맏아들 양녕에 이르러서는 평생 하지도 않는 결정 번복이나 애걸복걸도 무릅쓰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라면 고락을 같이 한 공신들도 결국 다 쳐내 버리고, 처남들도 날려버리고, 결국에는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맏아들마저 폐세자를 시킬 정도로 강력한 결단력과 인정사정없는 숙청능력을 선보인다. 원조 킬방원 이러한 태종의 캐릭터를 멋지게 요약하는 대사는 양녕을 두고 뇌까리는 한탄. "과인은 평생 결정을 번복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내 아들이 이토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니...."
대체로 여색과 야심과 냉혹무비함 등 정치인 이방원의 어두운 면모가 여과 없이 묘사되었다는 평이지만, 중간 중간 드러내는 인간적인 흔들림과 고뇌가 강렬하기 짝이 없는 탓에 일부에서는 역사상의 냉혹함에 대한 실드가 다소 들어가지 않았냐는 평도 존재한다.[12] 사극의 특성상 단지 드라마로 바라보긴 힘든 일이겠으나, 어쨌든 한 편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태종의 캐릭터가 가지는 복잡미묘한 입체성과 설득력 자체는 무척이나 뛰어난 편.
사실 미화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용의 눈물에서의 이방원의 작중 행동들을 잘 보면 냉혹한 숙청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실제 역사상에서의 명군으로서의 치세는 그리 잘 묘사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왕권 강화로 인해 백성들이 핍박받고 황폐해지는 식의 묘사마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실록 등에서 이방원을 좀 과하게 쉴드 쳐주는 부분이 있으면 내레이션으로 직접 그것을 반박하는 등의 장면도 있었다.[13]
5.1 불효자이면서 효자
아버지 이성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불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의 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방석이 세자로 등극한 뒤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충돌이 몇 번 빚어지긴 했지만, 왕자의 난 이후로는 벼루가 날아들든 화살이 날아들든 철퇴가 난무하든 항상 공손한 저자세로 일관하며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과 임종 뒤 오열하는 장면,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에서도 아버지를 찾는 모습은 이성계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끊임없이 그를 생각하던 이방원의 효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 똑같이 여말선초를 그린 드라마의 또 다른 이방원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왕자의 난 이후 또 다른 이성계 앞에서마저 패드립을 일삼는 것과는 180도로 다른 모습이다.
5.2 양녕대군에 대한 부성
아들바보로 유명한 그의 부성 또한 심도 있게 다루었다. 양녕대군이 성장한 중후반부 부터 점점 엇나가는 자식을 혼내고 꾸중하면서도 어떻게든 달래고 감싸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녕의 막장행위가 극에 달한 후반부에는 말 그대로 눈물로 애원을 하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헛되이 결국은 양녕을 폐위하게 된다. 세자폐위의 명을 내린 뒤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 또한 압권. 앞서도 서술했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양녕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는데, 그의 깊은 부성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명필로 유명한 양녕대군이 태종의 눈앞에서 뛰어난 서예솜씨를 선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기뻐하는 등 상당히 팔불출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4] 이후 신하들에게 주책없게 자식자랑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5.3 사정없는 외척 숙청
이런 아버지나 아들에 대한 따뜻함과는 별개로, 외척의 숙청에 있어서만큼은 인정사정없는 냉혈한으로 돌변한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정도전의 죽음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방석을 죽이고 방번과 이제의 죽음을 방관할 때에조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180도로 다른 모습. 사병혁파의 과정에서 공신들을 유배 보내다 이를 이루자 일부는 다시 복권시켜주는 포용력과도 전혀 다르다. 사소한 꼬투리 하나를 잡은 것만으로도 반역으로 몰아붙여 권력을 빼앗아 유배 보내고 잔인하게 국문하고 어릴 때부터 그들 사이에서 자라온 양녕대군에게 이를 참관하게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하고[15] 이를 세종의 처가에마저 반복하는 모습은 실제 역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무자비한 숙청 형 군주. 거기다 신덕왕후의 정릉의 석물들을 헐어 청계천에 처박아 정종 부부를 아연케까지 한다.
이에 대한 그의 인간적 고뇌가 드러나는 장면이라고는 세종의 처가에 대한 처우를 두고 역정을 낸 것과 임종을 앞둔 원경왕후 앞에서의 고백, 기우제에서의 고해성사뿐이다. 원경왕후의 짐승에 살인마라는 저주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일면이다. 그 어떤 미화도 들어가 있지 않고 그렇기에 용의 눈물의 평가를 더욱 드높이는 부분.
다만 1990년대 시국이 워낙 권력자의 친인척 비리에 대해서 시선이 안 좋을 때라서, 이런 인정사정없는 모습조차도 단호하다고 호평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무구의 아래 두 동생을 처벌하는 부분은 저렇게까지 해야하는가라는 의견이 나온다.
5.4 노골적인 여색
다른 한편 여색을 밝히는 모습도 타 매체의 이방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독보적이다.[16] 신덕왕후 앞에서 아버지가 여색에 홀렸다고 야유할 처지가 전혀 못 된다 첫 시작은 효빈 김씨.[17] 막내 동생이 세자가 되고 정도전의 견제를 받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일 때 민씨의 여종 덕실을 보고 후실로 들인다. 이일로 인해 원경왕후와 두고두고 싸우게 된다.[18] 그나마 즉위 후 원경왕후가 덕실에 대한 미움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 봉합되는가 싶더니 선빈 안씨를 시작으로 후궁을 계속해서 들이고 침소에 드는 궁녀는 말 그대로 날마다 바꿔서 원경왕후의 복장을 뒤집는다. 원경왕후는 이 문제로 태종과 끊임없이 지지고 볶았는데[19] 이것은 신덕왕후와의 악연, 민씨 형제의 부적절한 처세와 함께 태종이 외척 제거의 결심을 굳히는 원인이 된다.
다만, 공사구분이 철저해서 아버지 같은 원칙에 어긋난 무리수는 없었기에 국정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호색에는 원래 여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왕실의 세력을 키우고[20] 외척인 민씨를 견제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중전의 친정 못지않게 후궁 혹은 그 친정이 왕의 총애에 힘입어 세력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서 선빈 안씨가 자기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는 욕심을 보이자 처소에 발길을 끊어버렸으며 원경왕후를 대신해 궐 안의 살림을 돌볼 후궁 2명을 들일 때도 친인척에게 수혜를 주거나 투기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본인이 호색한이라서 그런지 휘하 공신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다. 무인정사 이후 사병혁파 문제로 대립 중이던 이거이 부자가 방석의 기생첩과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를 공격수단으로 쓰자는 이숙번의 건의에, 사병혁파와 왕권강화라는 숙원 때문에 받아들이긴 하지만 여자문제로 트집 잡는 게 제일 치사한 일이라며 탐탁찮아했고 조영무가 궁녀를 사사로이 첩으로 들였을 때도 혼내는 듯하더니 같은 사내로서 이해한다며 너그럽게 넘어가줬다.[21]
6 기타
극중에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뒷날 공개된 NG 장면들에 의하면 유동근의 장난기 때문인지 애드립성 조크 장면이 많은 편이었다. 극중의 모습이 워낙 강렬했기에 더더욱 뿜게 만드는 장면들.
그리고 먼 훗날 평행세계에서 아버지로 환생하여, 자신의 셋째아들의 환생에게 끔찍한 보복을 당하게 된다. 허나 여기에선 이성계가 야심이 많긴 하지만 한편으로 정도 많고 순박한 인물로 묘사되는데다, 이 쪽 이방원의 마지막 행태가 상당히 패드립적이라 인과응보라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의 위화감을 자아낸다. 묘하게도 네가 왜 이렇게 됐냐는 연민의 대사는 그 이방원과 자신 양쪽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 세자 자리에 대한 야심만큼은 확실히 있었으나 이런 사태는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작중에 명확히 드러난다. 실제로 이번 일의 결과로 이방원이 얻은 것이라곤 왕실의 혼란과 이성계의 어그로밖에 없다(...). 이때 조영무를 꾸짖으면서 '사내에게는 금기가 있어! 적어도 계집 얘기 따위로 한 사람을 매장시키고 죄를 잡으려 든다는 것은 사내가 해서는 아니 될 짓이야!' 하고 호통을 친다. 어쩌면 후일 조영무가 태종의 궁녀를 건드렸는데도 결국 웃어넘기는 개그 에피소드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 ↑ 신덕왕후는 이를 두고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며 화근이 없어졌다며 좋아하다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색이 돌변한다.
- ↑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자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의 집사들이 대신 곤장을 맞는 형에 처해지고, 정도전과의 대화로 인해 완전 폭발하여 그냥 들고 일어나려 하다가 하륜의 질책에 가까운 만류로 겨우 참는다.
- ↑ 이 노루가 마취된 채 살아있는 생노루를 팽겨친 것이고 실제 신덕왕후 역을 맡은 김영란씨가 이걸 모르있다가 기겁했다는 일화가 있다.
- ↑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전에 정집사(훗날의 내금위장)가 방원에게, 정도전을 죽일 땐 꼭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결국 거사가 성공하여 정도전을 직접 베어버린 사람은 정집사가 되었다.
- ↑ 물론 그렇게 기분좋게 나갔다가 사관과 언관들에게 걸려서 포풍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 ↑ 이성계 때는 '환후가 의술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성녕대군 진료하며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소헌왕후가 몸져누웠을 때는 '마음의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이 어의는 병 고치는 장면이 안 나온다.
- ↑ 이를 들은 원경왕후는 그만큼 자기네 일가에게도 신경 좀 써줬으면 하는 원망을 드러냈고, 양녕대군은 생전 그렇게 권력을 두고 다투다 이제 와서 생색을 내냐고 냉소를 드러냈다.
- ↑ 이 부분이 참 비정한 게 민무구, 무질을 죽인다음 무휼, 무회를 불러 양녕을 위로하라 한 다음 양녕에게 친척들끼리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며 타이른다. 그리고 얼마 후 무휼, 무회도 목매달아 버린다. 죄라도 있다면 모르겠는데 태종 본인 입으로 "솔까말 민씨 걔들이 뭔 죽을죄를 지었냐? 좀 분수에 넘친 죄 그거 하나뿐이지."라고 말했다.
- ↑ 여담이지만 조선시대엔 아무리 왕의 아버지라도 왕에게 주상이라고 지칭하며 존댓말을 해야했는데 (물론 왕도 아버지에게 존칭) 이 장면도 처음엔 태종이 왕인 세종에게 존댓말을 하다가 역정을 내며 버럭 반말로 화를 낸다. 이를 통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조차 꾸중듣는 어린애처럼 보이게 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 ↑ 둘의 대화는 1시간째부터, 빠르게 보고싶다면 1시간 8분 40초부터
- ↑ 배우의 연기력과 각본의 힘이 어우러진 탓에 세종을 향한 애비가 주상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한다는 일갈에 설득당하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방원의 잔인한 숙청, 여색 등을 비교적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던지는 자기합리화가 설득력이 강력했던 것.
- ↑ 예를 들면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내가 원래 방석이 방번이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이거이 부자가 나한테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고 나서서 쳐 죽인거임" 이라고 했다는 실록 기록을 소개한 뒤 바로 이어서 이런 실록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까 버렸다(...).
- ↑ 평소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다소 코믹할 정도이다.
- ↑ 이는 이를 통해 양녕에게 자신이 짊어질 책임을 더욱 강하게 통감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 ↑ 사실 이나마도 실제 태종의 행적과 비교하면 많이 줄인 편이다. 작중 내레이션을 통해 여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등장시킬 수 없었다고 대놓고 언급한다.
- ↑ 선빈 안씨가 세자 자리에 욕심내다 총애를 잃어버리는 것과 달리 이쪽은 욕심 없이 태종의 사랑만 갈구한 덕에 (첩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던 세자 시절을 제외하면) 꾸준히 사랑받는다.
- ↑ 이 과정에서 원경왕후는 덕실에게서 난 자식(뒷날의 경녕군 이비)을 죽이려 하다 이방원의 노여움을 사고, 이것이 뒷날 그녀의 남은 두 동생마저 죽게 하는 구실 중 일부가 되고야 만다.
- ↑ 함흥차사로 태종이 한참 심란해졌을 때도 마누라 등쌀에 내전에서 나와 지내고 있었다.
- ↑ 잠저시절부터 왕실은 씨가 넉넉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 ↑ 이에 대한 극중 조영무의 반응도 압권인데, 태종이 이 일을 두고 성화를 내며 내놓을 거냐. 안 내놓을 거냐. 다그치자 안면몰수하고 "내놓지 못하겠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라 뻔뻔하게 응수한다.
배 째결국 태종도 피식 웃고는 조용히 타이르고는 용서하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