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

이 문서는 비공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인물이나 단체는 우만위키에서 저명성이 보증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최소 기준에 미달하는 비공인입니다.
특정한 주관으로 서술하거나 상세하게 서술하는 경우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이 우려되므로 관련 문서에 해당 인물이나 단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인물이나 단체를 부정적으로 서술하거나 부정적으로 해석할 내용을 기록하는 경우 법률적 문제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NISI20140531_0009739166_web.jpg
보면 볼수록 희한하게 생겼단말이지 여자야? 남자야?

1 개요

이요나는 대한민국의 탈동성애 운동가이다. 본인이 동성애자에서 '이탈'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도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은 뒤, 그로 인해 대학생활과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가 자살했다고 한다. 이후 게이바(실제로는 트랜스바)[1]를 차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으나, 30대에 교회에 나가면서 동성애 성향을 유지한 채 게이바를 계속 운영하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요나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아주 유명한 여장남자[2]였으며, 80년대 초반 열애[3]라는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바를 운영하였다.

이 당시 그는 이태원 여장남자들에게 '리애 마마'라고 불리우며 '대모' 취급을 받았고, 그를 비롯한 수많은 여장남자트랜스젠더들이 가십거리가 필요한 각종 여성 월간지 등에 기사가 실리면서 꽤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된 부작용으로 불과 1~2년 후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다.[4]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갈등하다 43세에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혹은 어머니가 자살한 여파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동성애 성향을 버렸다고 한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동성애 성향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므로 모두 동성애 성향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니 버릴거면 니만 버리라고.김유복이라고 하는 남성애 트랜스젠더를 탈동성애 운동에 참여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요나는 게이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책에서도 볼 수 있는데, '게이는 여성스럽다'거나, 붕탁물 보여주면 어떻게 반응할지 심히 궁금하다 '여성성이 강하면 게이가 된다'[5]거나, '게이바여장을 하고 접대하는 곳'이라거나, '게이는 무조건 항문성교를 하며 육체적인 관계만을 탐한다'거나 하는 등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6] 사실 이요나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앞에도 서술하였듯 그가 실제 여장남자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장을 하고 접대하는 곳을 게이바라고 불렀다. 즉 (남성)동성애자여장남자의 용어가 혼용되어 쓰이던 시기였다.

"<선데이서울>은 성정체성에 관한 용어도 혼동하고 있었는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들을 “게이”라 칭하고, 남성 동성애자들을 “호모”라고 칭했다. “호모”들이 에이즈 전염의 주범으로 찍히자 일반 남성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이태원동트랜스젠더바 마담들이 “우린 호모가 아니라 게이”라고 변명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렇다보니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이 제대로 된 성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리 만무했다."

─ 나무위키 게이 항목

1992년에 들어와서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회에서 방영한 '게이 성의 두 얼굴' 에서도 트랜스젠더를 '게이'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다.

90년대 중후반 게이 커뮤니티에서 용어정리가 끝난 이후의 세대들에겐 그의 논리가 앞뒤가 안맞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왔던 70~,80년대 기준으로는 여장남자였던 그가 곧 게이였다는걸 생각하면 이 부분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이태원동트랜스젠더바 마담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였으니까. #, ##

2015년 6월 28일 진중권보수 개신교동성애혐오 운동을 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에 이요나는 진중권의 발언을 '교회 비하'라고 항의하여 분쟁이 있었다. 개신교측 기사

2 같이보기

  1. 여기서 이요나가 얘기하는 게이바란 지금의 이태원이나 종로에 있는 게이바가 아닌 여장남자가 나오는 현재의 트랜스젠더바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9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여장남자를 '게이'라고 불렀으며, 게이바는 여장남자가 나오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2. 동성애자였다는 얘기는 많이 언급되지만, 여장남자였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 당시의 그를 트랜스젠더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
  3. 현재도 같은 이름의 트랜스젠더 클럽이 이태원동에 있다
  4. 이요나 목사의 본명이 이희진이다. 너무나 여성스러워서 가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본명으로, 현재도 그가 운영하는 갈보리 채플의 예금주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
  5. 자신도 여성성이 강해서 게이가 되었다고 한다. 생김새가 여자같기는 하다.
  6. 게이/오해 항목에서도 이 책을 인용하여 그러한 편견을 비판한 내용이 있다. 진중권과의 논쟁에서도 "게이를 옹호하다니 항문성교를 권장하는거냐, 당신도 집에서 부인과 항문성교를 하냐"라는 괴상한 논리를 밀어붙이기도 했다.